법륜스님/즉문즉설(2010)

즉문즉설_법륜스님(제331) 올바른 인성교육

Buddhastudy 2010. 7. 28. 2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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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상황에서도 개인이 노력을 해야 된다 이렇게 생각을 합니다만은. 저는 현재 한국의 교육제도로 볼 때 그런 인성교육은 거의 불가능하지 않느냐. 이렇게 생각을 해요. 왜냐하면 선생님이 아이들의 그런 도덕적인 문제로 얘기를 해서 애가 안 들으면 체벌이라도 하든 야단을 치든 하면 애가 엄마한테 가서 얘기하고. 엄마가 교장선생님한테 전화 한 통화하면 교장이 선생님 불러서 야단을 치는 이런 구조가 되어있기 때문에. 선생의 목숨 줄이 애한테 달렸다 이 말이오. 그러니까 선생이 애를 교화할 수가 없다. 그래서 그 다음에 또 아이들의 기본 성장 과정이 그 부모가 하나 밖에 없는 애를 왕자로 전부 다 키워 놨고. 애완용 동물 키우다 시피 해 놨기 때문에. 그게 학교와서 선생님이 잠시 얘기한다고 개선 될 수가 없는 구조다.

 

그러니까 제일 좋은 것은 그게 자꾸 골치 아프면 선생을 그만 둬 버리는 게 제일 좋아요. 나 같으면 선생 그만 둬 버리죠. 그런 제도 시스템하에서 내가 내 역할을 할 수가 없는 구조니까 그만두고. 내가 내 역할을 할 수 있는데 가서 내 재능을 쓰는 게 낫지 않느냐? 예를 들면 인도에 우리 불가촉 천민마을에 수자타아카데미라고 있는데. 여기는 부모가 자식을 다 버리니까. 우리가 데려와서 무슨 교육을 시키든지 부모가 아무 상관이 없어요. 거기에는 아이들에게 선생이 필요한데 선생이 없거든요. 그럼 그런데 가서 선생하면 얼마나 좋으냐? 대신 월급이 없죠. 그러면 내가 돈 몇 푼에 내 인생을 팔고 살겠느냐? 아니면 내가 보람을 느끼는 쪽으로 살겠느냐? 이렇게 길이 없는 거는 아니에요. 그런 길이 있지만은 내가 못 가죠. ? 내가 돈을 벌어야 되니까.

 

그러니까 돈을 벌어서 내가 못 가니까. 이런 제도 하에서라도 내가 붙어서 살면서 돈 받아 먹고 살아야 되니까. 자기를 비하하지말고. 이게 현실이니까. 그러면 그 현실속에서 내가 할 만큼만 하면 되는 거지. 그 현실 속에서 너무 이상을 꿈꾸면 해결이 안 된다. 내가 내 인생을 어떻게 살겠느냐는 내 문제지. 내가 어떻게 살 거냐. 그러니까 자기가 선택을 해서 이렇게 내가 내 인생을 낭비할 필요가 없다 하면 그만두면 되고. 그래도 뭐 이렇게 살 수 밖에 없다 하면 이걸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내가 할 역할을 찾아야 된다. 개선이죠. 그 안에서 내가 그래도 조금이라도 더 그냥 단순히 월급쟁이에서 벗어나서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야 되겠다. 이렇게 방향을 잡고 살 수 밖에 없다.

 

그러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야 되겠다 이러면. 아이들에게 자기가 원칙을 좀 정하면 되요. 아이들의 행동 중에서 우리가 사회 전체적으로 생각해서 첫째, 애들 때리는거 이거 어때요? 애들 약한 애 데려가 때리는 거 이건 안되잖아 그죠? 이건 철저하게 안 된다. 그 다음에 남의 물건 훔치고 뺏고 이거 안 된다. 성추행 하는 거 이거 안 된다. 거짓말하고 욕설하는 거 이거는 안 된다. 이거는 그 아이가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것 뿐만아니라. 그 아이의 미래를 위해서도 안 좋다. 그러니까 내가 적어도 선생님으로 있는 한. 내 아이들에게 이런 거는 내가 말려야 되겠다. 애가 욕하고 이러면 선생이 말려야지. 체벌을 줘야지. 말 안들으면. 성질 내서 때리면 안된단 말이오. 그거 고치기 위해서.

 

그래서 교장선생님한테 비판을, 학부형이 전화해서 교장선생님한테 비판이 오면 그냥 '알았습니다 교장선생님. 저는 제 교육관으로서 소신 것 하고 있습니다. 감정으로 처리한건 아닙니다.' 이렇게 얘기하고 그래도 몇 번 중복이 되서 교장선생님이 선생님 그만두라 하면 '알겠습니다.' 이러면 되지. 뭐 어려워요? 안 그래도 그만 둘려고 했는데 잘 됬다. 이렇게 딱 자신이 있어야 자기 갈길이 분명하고 학부형이 딱 와가지고 문제제기해도. '아 그래요? 그럼 당신 아들 욕을 하든 때리든 형편없이든 그냥 놔 둘까요? 선생으로서 내가 양심상 그럼 나도 편하지만 그래도 누구집 애든 어떻든 해야 될 꺼 같아 제가 했을 뿐입니다.' 비굴하게 굴 필요가 뭐 있어요. 변명할 필요가 뭐 있어?

 

뭐 잘났다고 애를 그렇게 키우면 안된다라고 말 할 필요도 없고. 남의 애 내가 간섭할 필요도 없고. 집에서 어떻게 하든 그건 당신이 알아서 하고. 학교에 와서 내가 권한이 주어진 안에서는 거짓말은 안되고 이거는 안됩니다. 이렇게 딱 부러지게 얘기하고 생활하면 되는 거고. 그 다음에 가정에 안 좋은 일이 있어서 아이가 이런 거 있으면 야단만 칠게 아니라 껴안아 주고. 친구가 되어 주고. 엄마같이 대해 주면서 애를 감화 시키고. 이렇게 해도 얼마든지 역할이 있지만은. 내 어떤 기본적인 빼놓고 온갖 내 성질 대로 하려니까. 애가 버릇이 나쁘다면 태도가 불량하다 이런 것 갖고는 성질 낼 필요가 없어요. 왜냐하면 태도가 어떻다 예의가 어떻다는거는 옛날에 우리하고 지금의 애들하고 예의의 개념이 달라져 버렸다 이 말이오.

 

그러니까 그런 거는 특별히 문제 삼을 거 없어요.그런 거는 애 이렇게 하라고 가르키지만 안해도 그것은 문제가 없다. 뭐 똑바로 안 앉고 요렇게 앉았다 해서 남한테 피해준거는 아니니까. 똑바로 앉아라. 이러고 들으면 다행이고 안들어도 그것은 문제가 없다. 그러니까 이 기준이 분명하다는거요.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것과 주지 않는것. 주지 않는것은 결국 자기한테 피해를 주는건데. 그건 들으면 다행이고 안들으면 그만이오. 남한테 피해를 주는것은 엄격하게 제제를 가해줘야 되요. 그게 선생이에요. 그렇게 해서 불이익이 오면 그걸 받아 들여야 되. 그런데 뭐 어렵겠어요? 나는 월급도 안 받고도 하는데. 자기는 월급받고 하는데 뭐 어려워요? 그런데 여러 분들이 자꾸 눈치를 보고 두려워 하고 자꾸 이러죠. 그러니까 이해에 매달리니까 두려워 하거든요. 두려워 할 필요가 없어요.

 

선생님으로서 아이들한테 조그마한 그 초등학교 6학년 한테 두려워 해가지고 어떻게 선생을 하겠어요. 그러나 내가 얘기 하지만 감정으로 하면 아무리 애가 말을 안들어도 감정으로 대하면 교육효과가 떨어집니다. 나도 불편하고 애한테 교육효과가 안나요. 나도 어릴 때 맞아 봤거든요. 초등학교때도. 그런데 선생이 감정으로 때리면 내 잘못한거는 온데간데 없고. 분한 마음이 들거든요. 그래서 교육효과가 안나요. 그런데 선생이 감정을 넘어서서 딱하면 내가 잘못한 걸 자각을 하게 되거든요. 그 때 자각을 못하고 억울해도 시간이 지나면 진위를 알게되서 자각하거나 교육효과가 나게됩니다. 그런데 보통 선생님들 보면 감정으로 많이 때리잖아 그죠? 성질 난다고 신발짝 벗어서 때리는 사람부터 남자선생님 그런 사람 있거든. 그렇게 되면 그것은 교육효과가 안난다.

 

그러니까 체벌이라는 것이 때린다에 있는것이 아니라. 그것이 감정을 억제하고 아이를 개선하기 위해서 하느냐. 감정으로 대하느냐. 말을 한마디해도. 그것만 자기가 구분해야 되요. 수행자는 감정으로 하면 안되죠. 물론 사람이 감정이 올라오죠. 감정이 올라오면 그건 자기가 반성해야 할 일이지. 책임전가 할 일은 아니다. 이런 관점을 가지면 될 거 같아요. 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