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인지그라운드(2018)

길을 찾게도, 길을 잃게도 하는 독서 [독서, 책읽기, 집중]

Buddhastudy 2019. 1. 7. 20:01


오늘날 모든 불행의 근원은 한 가지다.

인간이 홀로 조용히 방에 머무를 수 없다는 사실이다.

-17세기 철학자 블레즈 파스칼(1623~1662)

 

이미 17세기에도 고요히 방 안에 홀로 있을 수 없다고 한탄했는데

지금은 어떻겠어요.

 

더구나 지금은 과잉연결의 시대라고 하잖아요.

우리가 겪는 문제의 상당 부분은 혼자 있는 시간이 모자라서 생기는 게 아닐까요?

 

그런데 독서는 혼자 있는 시간의 가장 영화로운 순간을 만들어주는 것 같아요.

책을 읽는다는 건 기본적으로 혼자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독서 체험 자체가 기본적으로 고독한 행위입니다.

현대인들이 가장 못 하는 것이 바로 그 고독한 행위인데

정신적으로 홀로 설 수 있는 시간을 만든다는 것은 어쩌면 가장 필요한 일인데, 이 역할을 독서가 대신해 줍니다.

그렇다면 이런 순기능을 갖고 있는 좋은 독서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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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독서를 위한 첫 번째 질문

책의 내용을 100% 흡수해야 할까?

++++ ++++

 

책과 나 사이에 일어나는 무언가에 주목하라.

한 사람이 책 한 권을 쓴다는 것은 하나의 세계를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우리가 책을 읽는다는 건, 저자가 만들어낸 지적인 세계, 그러니까 한 사람의 세계와 통째로 만나는 것입니다.

또한 책을 읽으면서 자기 반영적인 태도를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읽으면서

내가 토마시 같은지 테레자 같은지 생각해 보게 됩니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책을 내가 습득해야 할 무언가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책을 다 읽고 나면 그 내용이나 생각이 다운로드 되듯

나에게 그대로 옮겨지기를 바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좋은 독서를 위해서는 책을 읽는 자체가 아니라

책을 읽음으로써 나에게 일어나는 어떤 것, 그것에 주목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독서에서 정말 신비로운 순간은

책에 있는 것도 아니고 내 마음에 있는 것도 아니고

책을 읽을 때와 나 사이 어디인가에 있지 않나 싶습니다.

그것은 신비로우면서도 황홀한 경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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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독서를 위한 두 번째 질문

꼭 무엇을 얻기 위해 책을 읽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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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는 우리에게 길을 잃게 해, 못 보던 세계를 보여준다.

책 속에 길이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길을 찾기 위해서 책을 읽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을 겁니다.

 

그런데 저는 생각이 약간 다릅니다.

독서의 어떤 부분은 길을 잃기 위함도 있는 것 아닐까요?

 

우리는 일반적으로 살아가고 성장하면서

정해진 길이 있다고 믿습니다.

초등학교를 마치면 중학교에 가야 하는 것처럼 말이죠.

 

그러다가 조금만 벗어나서 다른 길로 가게 되면 너무나 두려워집니다.

하지만 정해진 길로 가는 사람들이 모두가 행복한 것은 아니지요.

정해진 길로 가는 사람들도 불안해합니다.

 

그런데 독서는 길을 잃는 경험도 만들어줍니다.

진정한 독서는 정해진 길 밖으로 나가게도 만들고

그래서 길 위에만 있으면 안 보이는 것들도 보게 해줍니다.

 

독서는 길을 일부러 헤매게도 만듭니다.

우리가 살면서 크게 흔들리면 위험하잖아요.

그런데 책을 읽으면서 흔들리는 건, 상대적으로 덜 위험할 겁니다.

그리고 길 잃는 것의 해방감이나 쾌락또는 생각지도 못한 이득도 얻을 수 있습니다.

 

이탈리아 베니스에 몇 번 가보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베니스 하면 산 마르코 광장을 말해요.

하지만 저는 아닙니다.

 

베니스에서 가장 좋았던 기억은 그 뒷골목을 헤맸던 것입니다.

골목 들을 헤맸던 경험이 베니스를 보는 가장 큰 즐거움이었습니다.

 

어떤 책들은 베니스를 여행할 때 산 마르코 광장에 가보라고 하지 않고

오래된 골목길들을 헤매보라고 합니다.

 

그래서 좋은 독서는 신비스럽게도 이중적인 성격을 갖고 있습니다.

길을 찾게도 만들고 마음껏 헤매게도 만듭니다.

그리고 홀로 서게 만듭니다.

 

 

좋은 독서를 위한 두 가지 질몬

Q. 책의 내용을 100% 흡수해야 할까?

책과 나 사이에 일어나는 무언가에 주목하라.”

 

Q. 꼭 무엇을 얻기 위해 책을 읽어야 할까?

독서는 우리에게 길을 잃게 해 못 보던 세계를 보여준다.”

 

정신적으로 홀로 서게 하면서, 때로는 길을 읽게 해주는 독서

책장을 넘기며 경험하는 황홀한 세계로 초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