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부처님이야기

[법륜스님의 부처님 이야기] 54. 상대의 입장을 이해하고 베풀어라

Buddhastudy 2019. 3. 25. 20:22


안녕하세요.

부처님께서 사위성 기원정사에 있을 때 얘기입니다.

우기가 끝나고 즉, 장마가 끝나고 햇살이 따뜻하게 내려쪼이는 그런 어느 날이었어요.

우리도 장마가 길지마는 인도는 장마가 한 3개월 정도 아주 길죠.

 

인도 장마 시기에게는 이 방안에 있는 모든 것들이 다 곰팡이가 낍니다.

옷이며, 심지어 벽지까지도. 그래서 벽지를 못 바르죠. 너무나 습하기 때문에.

그러니까 옷같은 게 다 눅눅할 뿐만 아니라 곰팡이가 끼고 이러니까 우기가 끝나면 사람들은 옷을 밖에 말리죠.

 

어떤 사람이 날씨가 좋아지니까 장롱에서 전부 옷들을 꺼내서 밖에다가 말립니다.

인도에 가보면 땅바닥에 그냥 널어놔요.

 

그런데 한 스님이 그 숲을 지나가다가 옷감이 널려있으니까 그 중에 하나를 주워서 그냥 가져갔어요.

그러니까 어떤 사람이 헐레벌떡 뛰어오더니

왜 당신이 이 옷감을 훔쳐갑니까?”

훔쳐가다니요.”

당신이 내거 가져가지 않습니까.”

이 옷감이 당신 겁니까?”

그렇소

, 제가 몰랐습니다. 저는 그냥 땅에 널려 있길래 버려진 것으로 알고 가져갔습니다.

제 옷이 여기 떨어져서 이걸 기울까해서 가져갔지 딴 뜻은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그 사람이 돌려받고는 특별한 문제를 재기하지 않아서 이 스님이 정사로 돌아왔어요.

정사로 돌아와서는 오늘 있었던 일을 얘기한 거요.

 

난 오늘 사실은 돌아오다가 천조각이 하나 있길래 주워서 가져왔는데 잘못하면 도둑의 누명을 쓸 뻔했다.

그 사람이 와서 자기 물건 훔쳐갔다고 화를 내고 그래서 사정을 얘기하고 돌려주고 왔다고.”

이런 얘기를 했단 말이오.

 

그러니까 스님들이 다 관심을 가지고

천조각이 얼마나 큰데? 무슨 색깔이었는데? 좋은 거였어?”

이렇게 그 천에 대해서 이러쿵 저러쿵 다 묻는데, 이 스님이 아무 기억도 안 나는 거요.

천조각이 길었는지 짧았는지, 큰지 작은지, 색깔이 뭐였는지

 

그래서 이 스님이 잘 모르겠다고.

그러니까 사람들이 거짓말 한다고 그러는 거요. 양심 불량이라는 거요.

어떻게 자기가 천조각을 집어 가져왔는데, 거기에는 이미 탐심이 있었다는 거요. 뭔가 욕심이 있었다는 거요.

그리고 그걸 가지고 왔는데 어떻게 긴지 짧은지 무슨 색깔인지 어떤 천인지도 모르는 게 말이 되느냐, 당신이 그 욕심을 숨기려고 그런 거 아니냐.

이렇게 해서 또 내부에서 논쟁이 되었다는 거요.

 

이런 얘기 들으면 당시에 스님들도 우리 수준과 좀 비슷했던 거 같아요. 그죠.

부처님께서 이 말씀을 들으시고는

 

비구형제여, 그 천은 길었습니까? 짧았습니다. 거친 천이었습니까? 고운 천이었습니까?”

나는 그걸 모르겠소. 나는 그것을 버려진 것이라 생각하였을 뿐이오.”

 

/비구들이여, 그 비구는 거짓말을 하지 않느니라.

저 비구는 사실을 말하고 있으며 그 말은 진실이니라.

저 비구와 같이 모든 악한 마음을 다 제거해 버린 사람은 다른 사람의 물건을 욕심 때문에 가져오는 법은 없으며 그것에 애착을 남기지도 않느니라./

이렇게 말씀하시면서 그 비구가 마음속에 그 물건에 대한 어떤 애착을 가지고 훔친 것이 아니다.

그는 정말로 길을 가다가 천조각이 있었기 때문에 무심코 들고 온 거고

또 사람이 나타나서 자기 거라고 하니까 돌려준 거다.

 

이런 것을 보면서 우리가 계율의 핵심은

행위도 중요하지만 행위보다

마음속에 집착, 애착이 있었느냐,

, 짜증이 있었느냐가 중요하다.

 

그래서 부처님께서 이런 게송을 읊으셨어요.

/누구든 간에 그것이 길거나 짧거나 거칠거나 곱거나, 좋은 것이거나 나쁜 것이거나

남이 주지 않는 물건을 갖지 않는다면 나는 그를 수행자라 부른다./

 

그래서 도둑의 계율에는 3가지가 있습니다.

1. 주지 않는 남의 물건을 뺏지 마라. 강도

2. 주지 않는 남의 물건을 훔치지 마라. 도둑

이 두 가지만 있는 게 아니에요.

3. 주지 않는 남의 물건을 갖지 마라.

 

누가 나에게 강제로 내 물건을 뺏어간다면 얼마나 억울하고 가슴 아프겠어요.

누가 내 없는 동안에 내 방에 와서나 내 집에 와서 내 물건을 몰래 훔쳐간다면 얼마나 가슴 아프겠느냐.

 

그러나 이 가슴 아픈 것은 내 보는 앞에서 뺏어가는 것보다는 덜하죠.

그러나 이것도 가슴 아픈 일이오.

 

그 다음에 세 번째, 내가 가방을 식당이나 역이나 길이나 어떤 휴게소에 놓고 깜빡 잊어버리고 왔다.

그래서 내가 달려갔더니 그 자리에 없었어.

이것은 누가 내 물건을 뺏어가거나 훔쳐간 것은 아니죠. 그래도 가슴 아픕니까? 안 아픕니까?

잃어버렸을 때도 가슴 아프잖아.

 

빼긴 것,

도둑맞은 것,

잃어버린 것,

이랬을 때도 사실 가슴 아파요.

 

뺏지도 말고

훔치지도 말고

내 것이 아니면 그냥 놓여있더라도 갖지 말라.

이 세 번째 계율을 충분히 이해하셔야 합니다.

 

내 실수로 물건을 잃어버렸을 때라도 얼마나 그것이 나에게 가슴 아픈 일입니까.

아무도 그것을 손대지 않는다면 나는 내가 놓고 온 곳에 가면 그것을 찾을 수 있지 않느냐.

잃어버리고 갔을 때, 그 자리에 있으면 반가워요, 안 반가워요. 반갑지.

 

그러니 주지 않는 남의 물건을 갖지 말라.

주지 않는 남의 물건을 갖지 말라 하는 말에 3가지가 들어있단 말이오.

 

하나가 뺏지마라.

훔치지 마라.

내 것이 아니면 놓여있더라도 가져가지 말라는 거요.

 

이것은 첫째, 내가 그렇게 겪었을 때 얼마나 가슴 아픈가 하는 거를 견주어서

타인이 그랬을 때, 얼마나 가슴 아프겠느냐 하는 타인의 마음을 이해해라.

그 타인의 마음을 나의 경험에 견주어서 이해한다면 우리는 능히 이렇게 하지 않을 것이다.

 

도둑질을 하지 않으면

비난, 가난의 과보를 면한다.

 

여기에서 넘어가서 뺏지 않고 훔치지 않고 갖지 않는데서 넘어서

비록 그것이 내 것이라고 하더라도

상대가 곤궁해서 필요하면 오히려 주라는 거요.

이것이 보시죠.

 

내가 곤궁할 때 남의 도움을 받으면 얼마나 기쁩니까.

그것을 생각해서 타인에게 그렇게 하라.

그렇게 했을 때 내가 은혜를 갚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습니까.

 

그래서 하나를 받으면 열을 갖고 싶은,

곤궁할 때 내가 하나의 도움을 받았으면 내가 여유 있을 때 열을 갚고 싶단 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이게 복이 된다는 거요.

하나를 짓고 열을 받는 도리라는 거요.

 

우리도 지금 4050년 전에는 식량이 부족해서 보릿고개도 겪고 그럴 때는 조밥 수수밥은 말할 것도 없고, 감자 고구마로 끼니를 때우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무나 시래기 풀뿌리 같은 것까지 해서 연명을 하고, 부황이 든다 그래서 얼굴이 붓고 이런 경험을 했죠.

 

또 이렇게 영양실조 상태가 계속 되면 갖가지 질병에 쉽게 노출이 되어서 약이 또 없으면 많이 죽게 되죠.

이런 고통을 겪고 그것을 극복하고 오늘 우리가 여기에 왔단 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오늘날 지구상에 가난한 나라들, 저 먼 나라는 놔놓고라도

바로 우리 동포인 북한사람들이 식량이 부족해서 이렇게 풀뿌리 캐먹고, 한 끼 걸러가면서 국수로 때우고, 죽 써먹고,

이렇게 겨우겨우 연명을 하고, 그것도 없어서 굶어죽기도 하고, 사람들이 키가 제대로 크지도 못하고, 이런 고통을 겪고 있다.

 

그럴 때, 우리들이 겪었던 경험에 견주어 본다면

이것이 어떤 이념적, 종교적 문제가 아니라는 거요.

 

배고픈 자는 먹어야 하고

병든 자는 치료받아야 합니다.

 

너는 나하고 종교가 다르니까 너는 우리 민족이 아니니까, 너는 나하고 이념이 다르니까

너는 굶어서 죽어도 돼.

이렇게 말할 수는 없어요.

 

그러기 때문에 굶주린 자는 먹어야 하고

병든 자는 치료받아야 합니다.

누구 집 아이든지 어린 아이들은 제때 배워야 하는 거요.

 

그런데서 오늘 우리들은 지금은 비록 우리가 배불리 먹고, 아프면 치료 받고, 다 학교에 다녀서 요즘은 대학 졸업하는 사람이 안한 사람보다 많은 이런 상태에 이르렀지 않습니까.

 

그러나 아직도 그렇지 못한 배고픈데 먹지 못하고 병든데 치료 받지 못하고

어린아이들이 학교에도 못 다니는 이런 상황에 놓여 있는 사람이 지구상에 너무 많아.

가까이 있는 북한은 아직도 그런 상태에 있다.

 

그럴 때 우리가 여기에 식량을 지원하고, 의약품을 지원하고, 학용품을 지원하는 것은 마땅한 도리에요.

그런데 오늘날 우리는 어떤 이념적인 그런데 집착되어서

식량도 주지 마라. 비료도 주지마라. 약품도 주지마라. 학용품도 보내지 마라. 왜 퍼주냐?

이렇게 할 때, 왜 그렇게 얘기하느냐.

 

여기에는 첫째, 상대에 대한 이해가 없다.

상대의 처지에서 그들이 겪는 아픔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이렇게 얘기하는 거예요.

 

특히 요즘 젊은 세대들은 부모세대에서 열심히 노력한 그런 결과로 이런 경험도 또 없지 않습니까. 이런 경험이 없기 때문에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거요.

그래서 아이들은 뭐라고 그럽니까?

 

스님, 밥 없으면 라면 끓여먹으면 되잖아요.”

이렇게 쉽게 입에서 말이 나온단 말이에요.

연필이 없다고 그러면

연필이 없으면 볼펜 쓰면 되잖아요.”

이런 얘기가 쉽게 나온단 말이에요.

 

이런데서 우리들이 남의 물건을 뺏지 않고, 훔치지 않고, 갖지 않는다는 것은 소극적이에요.

수행자가 소극적으로 해야 할 일이다. 이것은 마땅히 하지 말아야 할 일이에요.

그러나 마땅히 하지 말아야 할 최소치만 갖고 수행자라고 할 수가 없다.

우린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서 곤궁에 처함 사람을 돕는 일을 해야 한다.

이게 바로 보시다. 이게 바로 보살이 행하는 보시바라밀이다.

이 도움으로 해서 복을 짓는 거요.

 

그런데 이렇게 복을 짓지는 못할망정,

굶주리고 죽어가는 사람을 죽게 내버려두거나

그걸 돕겠다는 사람까지 말려서 죽음으로 몰아간다면

그것은 결국은 살생죄에 해당이 되고

결국은 도둑의 죄에 해당이 된다. 이렇게 볼 수 있어요.

 

그래서 오늘 우리가 이런 길거리에서 천을 하나 주워도

거기 아무런 욕심이나 집착이 없는 상태에서 주웠을 때는

상대가 볼 때는 도둑으로 오해받을 일이죠.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그는 도둑의 죄를 범하지 않았다.’ 이렇게 말하는 거요.

 

그럼 오늘 우리가 굶주린 사람, 병든 사람을 외면한 이것을 부처님께서 보시면 어떨까?

내가 뭐 훔치지도 않았고, 뺏지도 않았으니까, 난 아무 죄가 없다.’ 이렇게 말할 수가 있을까요?

우리들의 마음속을 들여다보면, ‘나만 배부르면 되지이게 잡혀 있단 말이에요.

그러면 이것은 욕심이죠.

 

저 사람에게 나눠주면 내가 먹을 것은 없지 않느냐.’ 이런 마음속의 욕심이 있단 말이에요.

그래서 이것은 오히려 도둑의 죄를 지었다라고 말할 수가 있다.

 

그래서 계율을 해석을 할 때

겉으로 드러난 것만으로 해석하면 안 된다.

 

, 마음만 깨끗하면 겉으로 어떻게 해도 좋으냐, 이런 얘기가 아니에요.

마음이 깨끗한데 겉으로 왜 그렇게 하겠어요.

마음이 깨끗하면 겉으로 그렇게 하지 않는다.

 

그러나 겉으로 그렇게 하는 행위가 설령 나타났을 때도 때로는 아주 희귀한 경우에는 마음이 깨끗한 경우도 있다. 이 스님처럼 말이에요.

겉으로는 깨끗하지만 마음이 깨끗하지 않은 경우가 있다.

이건 비일비재하게 많습니다.

이걸 가지고 우리가 마땅히 계율을 지켰다. 이렇게 말해서는 안 된다.

 

굶주리는 자를 보면 굶주림을 면하게 하고

병든 자를 보면 병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이

마땅히 수행자가 가야 할 길이다.

자선사업가로서가 아니다.

 

나눠먹을 것이 없으면 위로라도 해야 된다.

내줄 것이 없으면 다른 사람에게 이 소식을 알리기라도 해야 된다.

그런데서 우리가 이 계율을 좀 더 적극적으로 이해한다.

 

이 도둑질을 하지 말라. 훔치지 말라 하는 계율은 이런 연유로 나왔습니다.

이 빈비시라왕은 부처님의 재가제자였지 않습니까. 신자였단 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맹세를 할 때,

부처님께서 하시는 일이면

, 이 나라의 모든 것들은 다 부처님의 것입니다. 삼보에 제가 기증하겠습니다.”

이렇게 그런 마음으로 살으셨단 말이오.

 

그런데 어느 해 어떤 일이 있었느냐.

한 스님이 성을 쌓으려고 많은 목재를 쌓아놨는데, 와서는 그 목재를 가져가는 거요.

그래서 지킴이가 목재를 가져가서는 안 됩니다.” 그러니까 허락받았다는 거요.

누구에게 허락받았습니까?”

왕한테 허락받았습니다.”

왕한테 허락받았다니까 할 말이 없는 거요. 그래서 놔뒀어.

 

그런데 한 대신이 이곳에 왔다가 성을 쌓으려고 모아둔 많은 목재를 누가 가져가는 거요.

그래서 못 가져가게 명령을 내린 거요.

지킴이 보고 왜 이걸 갖고 가게 했냐 하니까 허락을 받았다고 하는 거요.

누구한테 허락을 받았냐. 대왕한테 허락을 받았다고 들었다는 거요.

 

그래서 왕한테 가서 물어봤어. 허락한 적이 없다는 거요.

그래서 이 사람을 가두었어.

 

이 스님은 목재를 가져갔다가 또 가지러 왔는데

목재를 지키던 사람이 묶여 있는 거요. 그리고 하소연을 하는 거요. 살려달라고.

그때 마침 대신이 온 거요.

 

그래서 누구한테 허락을 받았습니까? 왕한테 허락을 받았다는 거요.

왕한테 갔어. 왕은 허락한 적이 없다는 거요.

그런데 어떻게 해서 허락을 받았다고 하는가? 했더니

 

왕이 부처님께 귀의할 때,

이 나라의 모든 산천초목은 다 삼본님께 바칩니다.’ 이런 말을 옆에서 듣고는

왕이 부처님의 제자니까, 내가 하는 일은 다 왕이 허락할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고는 국가재산을 가지고 정사를 짓는데 허락도 안 받고 쓴 거요.

 

그래서 왕이 처벌을 하려고 했는데, 스님이니까 차마 처벌은 할 수가 없어서

이 사실을 부처님께 연락을 하고 방면을 했어요.

 

그러니까 시민들이 들고 일어난 거요.

왜 저 사문들은 국가의 많은 재산을 훔쳤는데도 저렇게 내보내느냐.

저렇게 하면 누가 법을 지키겠느냐. 누구든지 다 훔치지 않겠느냐.

이렇게 항의가 빗발친 거요.

 

그러니 부처님께서 그 사실을 아시고, 그 비구의 행위를 꾸짖으면서 집으로 돌아가라.’ 이렇게 명령을 내린 거요.

그래서 계율이 생긴 거요.

주지 않는 남의 물건을 갖지 말라.

 

부처님이 성도하신 후, 10년까지는 이런 일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많은 사람이 부처님의 제자가 되면서 이 불교가 사회적으로 알려지니까 부처님의 제자가 되는 것에 우쭐 되어 이렇게 된 사람이 가끔 있었나 봐요.

 

법의 이치를 깨닫고 출가한 게 아니고,

이런 시류에 편승해서 출가를 하신 분들도 있었고

그러다보니까 이런 문제가 발생한 거요.

 

그래서 부처님께서 주지 않는 남의 물건은 갖지 말라.’ 이렇게 계율이 정해진 거요.

그래서 이 계율을 어기게 되면 집으로 돌려보냅니다.

 

이 사바라이, 4중죄라 그래서 이 4가지 계율을 어기게 되면 참회해서 해결되는 게 아니고, 집으로 돌려보내는 거요.

이게 바로 살생죄, 도둑죄, 음행죄, 망어죄

4가지는 중죄라 해서 집으로 돌려보내는 죄에 해당되고 나머지는 뉘우치면 죄가 없었던 걸로 되는 거요.

 

그러니까 앞에 이 비구가 천조각을 쥔 건 뭐가 됩니까?

도둑의 죄업에 해당이 되죠. 그러니까 굉장히 중죄에 해당이 되는 거요.

 

그러니까 사람들이 이걸 갖고 문제를 삼은 거요.

그러나 그는 정말로 아무런 내면의 탐심이나 욕심없이 그냥 길을 가다가 바람에 천조각이 날리기 때문에 하나 주워서 가져온 것인데

사실은 누가 빨래를 널어놓은 천이었다. 이런 얘기죠.

그래서 이 도둑의 누명을 쓰고 비난을 받았을 때, 부처님께서 그는 죄가 없다.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오늘 우리는 이것을 교훈삼아서 여기서 머무를 것이 아니라,

우리는 비록 겉으로는 아무 죄를 지은 것 같지 않은 그런 삶을 살고 있지마는

우리들의 내면을 보면

우리들은 우리들 주위의 고통받는 사람을 외면하고

굶주리는 사람, 병든 사람 이런 사람들을 외면하고 살아가는 이 마음은

바로 계를 범한 것에 해당이 되지 않느냐.

 

그래서 비록 형식은 범하지 않았지만 마음은 범하고 있다.

이런데서 우리들의 이웃이게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가난한 사람들에게

우리들이 갖고 있는 것을 나누어 가짐으로 해서

계율을 청정히 지켜가는 그런 삶을 살아가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