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 역사/전우용 사담

전우용의 픽 14화 - 가르침과 배움

Buddhastudy 2019. 6. 4. 20:20


전우용의 픽입니다.

요즘 한창 많은 관심을 끌고 있는 드라마가 있죠. <녹두꽃>

중고등학교 역사교과서에도 빠지지 않고 나오는 사건이고 인물이라서 녹두장군 전봉준과 동학농민혁명에 대해서는 많은 분들이 알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녹두꽃>에 연관검색어로 동학농민혁명이 뜬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오늘의 픽은 그 동학(東學)이 왜 동학(東學)인지, 이 동학이라는 이름에 담긴 우리들의 우리 민족에, 또는 우리 역사속에 형성된 우리 국민의 종교관에 대해서 이야기해볼까 합니다.

제목은 가르침과 배움으로 정해봤습니다.

 

종가(宗家)라는 말이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한 가문에 전통을 이어 온 그런 집안으로 종가라고 하지요. 한 가문에 여러 개의 종가가 있을 수는 없습니다.

()이라는 글자는 마루, 으뜸, 근본, 정통 등의 뜻을 담고 있습니다.

하나밖에 없다는 유일성의 표현이기도 하죠.

 

그래서 엄밀하게 말하면 종교(宗敎)도 한 나라의 두 개가 있을 수 없습니다.

종교란 그 나라에 으뜸이 되는 기본적인 유일한 가르침이란 뜻이죠.

 

그래서 근대민족이론에서 종교는 혈연, 지연, 언어, 문화를 뛰어넘어서 민족을 구성하는 가장 기본적이고 1차적인 요소로 간주되어 왔습니다.

오늘날 세계 곳곳에서 아직까지도 벌어지고 있는 민족분규는 기본적으로 종교전쟁, 종교분쟁의 형식을 띕니다.

기독교와 이슬람의 분쟁, 시아파와 수니파의 분쟁 하듯이 말이죠.

 

종교란 이렇게 사람과 사람을 가르는 기본적인 경계선 역할을 해 왔습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오는 그런 점에서 비추어보자면, 대단히 예외적인 현상을 보이고 있는 것이죠.

 

우리나라에서도 종교란 본래 근본이 되는 가르침또는 유일하게 옳은 가르침이라는 뜻이었습니다.

조선왕족 개창 때 억불숭유의 정책을 세웠던 것이나, 또 조선왕조 말기 가톨릭에 대해서 혹독한 탄압을 가했던 것이 이런 종교관에 입각해 있었기 때문이죠.

 

하지만 전체적인 역사에서 보자면 이런 종교를 교()로서 보다는 학()으로써 대하는 태도가 더 지배적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대한제국을 선포한 뒤에 고종은 굳이 유교를 종교로 함이라고 하는 조칙을 반포합니다.

 

무슨 뜻인가?

물론 학자간의 일부 논란은 있습니다. 하지만 이 말은 무슨 얘기냐 하면

유교 이외에 다른 가르침도 인정함이라는 말을

당시 조건에서 우회적으로 표현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조칙을 발표한 직후에 이른바 서울 창신동에 세워진 불교 사찰 원흥사가 섭니다. 고종이 직접 후원한 사찰이었죠.

서대문 밖에는 도교 사원이 섭니다. 역시 고종이 직접 설립을 지시한 사원이었습니다.

 

유교·불교·도교를 모두를 다 자유롭게 믿어도 좋다.

, 그러나 그 중에서 으뜸이 되는 종교는 가르침은 유교다.

라는 정도의 조칙이었던 것입니다.

 

좀 넓게 해석하자면,

종교자유선언이라고 해도 좋을 겁니다.

 

우리 조상들은 가톨릭교를 처음 접했을 때, 그것을 서학(西學)이라고 이름을 붙였습니다.

배운다는 뜻이죠.

유교의 가장 기본이 되는 경전인 논어에 나오는 첫 번째 글자가 바로 ()’입니다.

학이시습지(學而時習之)로 시작하죠.

 

, ()는 가르치는 자가 주체이고

또 반면에 학()은 배우는 자가 주체입니다.

 

()에는 교리(敎理), 교조(敎條)처럼 정해진 것들이 중심이 되지만,

()은 회의와 사유, 다양한 것들에 대한 인정, 탐구 이런 것들이 중심이 됩니다.

의문을 품는 것, 질문하는 것, 다른 생각을 표현하는 것이 모두 배우는 과정이죠.

 

유학의 전통에 입각해서

가톨릭을 교()가 아니라 학()으로 이해했기 때문에

우리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선교사나 사제의 가톨릭 신부의 지도 없이

새종교를 받아들일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조선 순조 때, 그리고 대원군 때 가혹한 서학(가톨릭)탄압이 있었고, 유학자들은 서학을 사학한 학문, 즉 사학으로 규정해서 위정벽사니 위정척사니 이런 이론들을 정립했지만,

고종이 직접 정치를 담당한 이후로는 서학에 대해서 국가적 차원의 탄압은 없었습니다.

 

조선 말기에 최제우는 민간에 퍼져있던 반 서학 정서를 기반으로 하면서 우리나라 전례에 유불선 삼도를 통합해서, 거기에 동학(東學)이라는 이름을 붙입니다.

()가 아니라 학()이라는 이름을 붙였다는 것, 여기에 주의할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동학이 설파한 핵심적인 가치관은

인내천(人乃天), 사람이 곧 하늘이다 였습니다.

 

이건 평등사상이라는 점에서 그 당시에 서학이라고 불렸던 가톨릭의 평등사상과 맥을 같이 하지만, 가톨릭의 평등사상이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피조물이다라고 하는, 신 앞에 평등을 얘기하던 반면

이것은 사람이 곧 하늘이다, 사인여천(事人如天), 사람 섬기기를 하늘 섬기듯 하라. 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훨씬 더 전면적인 그런 평등지향사상이였습니다.

 

학이라는 이름이 갖는 또 다른 의미는 열린 마음입니다.

가르침이라고 하는 것이 일정한 원칙, 기준, 교리, 교조, 이런 것들을 중심으로 한다면

말씀드렸듯이 배움이라고 하는 것은 언제나 열린 마음을 전제로 합니다.

 

오늘 날 우리나라에서 종교로 인한 분쟁이 아주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물리적 폭력이나 테러로 표출되는 그런 사태는 일어나지 않습니다.

지난 100년 넘게 그런 일이 일어난 적이 없습니다.

 

스리랑카에서 대규모 테러로 인한 참사가 일어났습니다. 종교적 이유 때문이었죠.

그런데 우리는 그런 걱정 없이, 살면서도 단일민족이라고 하는 자아의식이 손상되지 않는, 세계적으로 다종교 일민족 국가를 형성하고 있는 아주 드문 사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불교사찰에 기뿌다 구주오셨네라는 현수막이 내걸리고, 천주교 성당에 석가탄신일을 축하합니다라는 현수막이 내걸리는 나라는 지구상에 우리나라에 밖에 없습니다.

종교에 대한 이런 개방성이 지역, 계층, 이념에 따른 이른바 원심력을 상쇄할 정도로 우리의 국민적 통합을 유지할 수 있게 해주는 이 역사적 문화적 힘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나의 믿음만이 진리이고

그 밖에 다른 것들은 모두 가짜이다 라는

사교로 취급하는 것은 사실은 모든 종교의 보편적 속성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아주 드물게 종교적 똘레랑스(tolerance)라고 하는

한국 문화적 특수성을 만들어 왔습니다.

우리의 이런 문화를 잘 지키고 한층 발전시키는 것이

이미 전개되고 있는 국경 없는 시대, 다문화 시대의 세계 평화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길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 전유용의 픽, 이거로 마치겠습니다.

앞으로도 KTV 유튜브를 통해 계속 만나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