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 역사/전우용 사담

전우용의 픽 13화 - 상평통보와 소매치기

Buddhastudy 2019. 5. 31. 20:01


전우용의 픽입니다.

요즘 사람들, 뭐 비단 요즘 사람에 국한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요즘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게 돈 이라는 데에는 이견의 여지가 없을 겁니다.

 

그런데 돈이라는 말은 어떻게 생긴 걸까요?

실제로 돈은 금속의 칭량(稱量) 단위였습니다. 지금도 그렇게 쓰고 있죠.

 

금은 같은 비금속을 사고팔 때에는 돈 단위로 거래를 합니다.

10돈이 1냥이죠. 10분의 1냥이 한 돈입니다.

 

원래 금속의 무게를 재어서 화폐로 사용하던 시절에

한 돈, 두 돈하던 말이 정착이 되어서

화폐를 대표하는 순 우리말 용어처럼 되어버렸습니다.

 

금속을 화폐로 사용한 역사는 매우 오래됩니다.

우리가 금속을 단위로 역사를 구분하잖아요.

석기시대 다음에 청동기시대, 철기시대 하듯이.

 

이른 바 고조선에 관한 이야기, 역사의 서술인 삼국지위서동이전에 보면, 고조선에 팔조법금이 있었다.

 

그 중에 하나가

남의 물건을 훔친 자는 데려다 노비로 삼는다.

속죄하려면 50만 전을 내야 한다.’

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고조선 시대에도 돈이 사용 되었다 라고 하는 근거가 되겠습니다.

물론 이 사료의 신빙성에 대해서는 논란이 좀 있습니다.

돈이 사용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라는 의견이 제기 되어 있죠.

돈이 사용되었다고 해도 그것이 국가가 제조한 화폐였을 가능성은 상당히 낮습니다.

 

우리 역사상 국가가 화폐를 제조하기 시작한 것은 고려시대부터였습니다.

거래를 할 때마다 무게를 재는 불편을 덜기 위해 공신력 있는 기관을 통해서 제조해서 유통시키고 했던 것이죠.

 

고려시대 해동통보, 동국통보, 조선초기 중기에 조선통보 등이 발행이 됐습니다마는

상품을 화폐로 거래하는 그런 문화가 정착하지 않아서 널리 유통되지는 못했습니다.

 

금속화폐가 본격 유통되기 시작한 것은 17세기 중후반부터였습니다.

이른바 상평통보라는 화폐가 발행된 뒤였죠.

이 화폐가 우리 역사상 가장 오래, 대략 250년 간 통용되었던 금속화폐입니다.

 

둥근 모양에 가운데 네모난 구멍을 뚫었습니다.

동양의 전통적인 우주관, 천원지방설이죠.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나다.

 

이런 생각을 받아들여서 모양을 둥글게 하고, 가운데 네모난 구멍을 뚫었습니다.

그리고 이 네모난 구멍 사이로 노끈을 꿰어서 돈들을 묶어서 그렇게 보관했죠.

그래서 돈을 꿰미라고 합니다.

 

돈이 늘어나면 이 노끈길이도 늘려야 되겠죠.

아니면 노끈 사이, 돈 사이사이를 벌려서 거기에 다른 돈을 더 끼워 넣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돈에 대해서는 벌다라는 동사, ‘벌리다라는 뜻이죠.

벌다라는 말을 쓰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17세기 중반부터 금속화폐가 널리 유통되기 시작했음에도 불구하고 화폐유통초기에는 사대부들이 특히 이 화폐를 직접 사용하기를 굉장히 꺼렸습니다.

 

첫째는 별 쓸모없는 쇠부스러기로 남의 귀한 물건과 맞바꾸는 것은 도리에 어긋난다.

군자가 할 일이 아니다 라는 유교적인 도의론에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고.

 

둘째로는 사실 그래서 이 돈 전()자가 생긴 것이긴 합니다만

돈 전()자와 천할 천()자가 한자로 사실상 같은 뜻의 글자였습니다.

 

그래서 사대부들은 돈을 직접 만지는 것을 수치로 여겼습니다.

돈을 쓸 일이 있을 때에는 돈꿰미를 든 노비를 남자 노(). 남자노를 데리고 다녔습니다.

남자 노는 하는 일이 사대부의 돈을 지키는 일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가진 돈은 많으나 자기 마음대로 단 한 푼도 쓰지 않는 사람, 쓰지 못하는 사람, 이런 사람을 비웃는 말로 수전노(守錢奴)라는 말을 쓰게 되었죠.

돈 지키는 놈이라는 뜻입니다.

 

수전노를 데리고 갈수 없는 공간이 있었어요.

기방에서 사대부가 기생에게 주는 돈을 행하(行下), 또는 돈 자를 붙여서 행하돈이라고 불렀습니다.

아랫사람이 할 일을 대신한다 라는 뜻입니다.

원래 돈 주는 것은 아랫사람이 대신해야 되는데, 부득이 사대부가 직접 한다 그래서 행하라고 했죠.

 

그런데 그것도 직접 만지는 것이 부끄럽다고 해서 젓가락으로 집어주곤 했다고 합니다.

 

이런 정도였으니, 돈은 그렇게 숭배할 물건이 아닌 것으로 취급되었던 샘이죠.

 

노비를 데리고 다닐 수도 없고, 또 기방에서 쓰는 것도 아니고, 시장이나 시장가에서 물건을 살 일이 있을 때 가난한 양반들은 어떻게 했을까요?

돈꿰미를 만지더라도 오른손으로 만져서는 안 되었습니다.

, 전 세계 공통입니다.

 

우리말에서 이 손을 오른손이라고 하잖아요. 바른손이라고도 합니다.

둘이 뜻이 같아요. 올바른 일을 할 때 쓰는 돈.

(오른손=바른 손=올바른 일을 하는 손)

 

이 손은 왼손입니다. 나머지, 사투리 같은데요, 온갖 잡일, 왼갖 잡일 할 때 쓰는 이런 손이라는 뜻입니다.

(왼손=온갖, 왼갖 잡일을 하는 손)

 

그래서 글씨 쓰거나 또는 누구를 칭찬하거나 밥을 먹거나 이런 일은 오른손으로 하고

좀 나쁜 일, 또는 더러운 일, 이런 일들은 왼손으로 하는 문화를 전 세계 공통으로 만들어왔죠.

그래서 양반사대부들은 돈을 만질 때에도 이게 옳은 일이 아니기 때문에 오른손으로 만지면 안 되고 왼손으로 만져야 했습니다.

 

그러면 어디에 돈을 넣고 다녀야 편했을까요?

오른쪽 도포 소매자락입니다.

 

그래서 오른쪽 도포 소매자락에 돈 꿰미를 넣고 다니다가 돈을 꺼낼 일이 있을 때 왼손으로 꺼내서 지불하는 이런 풍속을 만들었던 거죠.

그러니까 오른쪽 소매자락이 불룩한 양반을 보면 틀림없이 거기에 돈이 들어있는 겁니다.

 

뒤에서 봤을 때 오른쪽 소매자락이 축 늘어져있는 시골양반으로 보이는 사람이 보이면 가까이 다가가서 오른쪽 소매를 툭 칩니다.

그러면 그 사람의 오른팔이 올라가고, 도포자락에 들어있던 돈 꿰미가 땅으로 떨어지죠.

그 옆에 미리 대기하고 있던 한 패가 재빨리 그 돈을 주워서 달아납니다.

이런 범죄를 소매치기라고 했습니다.

 

소매 안에 돈이 들었기 때문에,

소매 안에 돈을 넣었기 때문에

소매치기라는 범죄가 생긴 거죠.

 

뭐 요즘은 이제, 지급이나 가방 안에 돈을 넣고 다니는데, 그렇기 때문에 소매를 쳐봤자 아무것도 안 나오죠.

그래도 이 소매치기라는 이름만은 여전히 남아서 사전에까지 등재되어 있습니다.

 

돈을 천하게 여기던 시대에 만들어진 관념의 일부는 지금도 전해집니다.

그러나 돈이 본격 유통되기 시작한 뒤 사람들을 암흑 속에서 돈을 탐하는 마음은 점점 커져갔습니다.

이제는 돈보다 더 좋은 건 없다고 해도 좋은 세상이죠.

세상 모든 문제가 돈으로 인해 발생하고요, 돈을 두고 모든 사람이 경쟁하던 시대가 현대입니다.

 

그리고 이 시대에 가장 어려운 처지에서 일하는 사람들, 최저임금 노동자들의 임금을 올린 문제, 최저임금 인상을 두고 논란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최저임금이 올라서 나라가 망한다!?’

이렇게 생각하고, 주장하는 사람도 적지 않습니다.

 

그런데 한번 좀 생각해보죠.

우리가 최저임금을 가지고 심각하게 논란을 사면서도 당장 최저임금 말고 그 반대, 최고임금이 얼마인지 우리는 관심을 갖고 있는 걸까요?

 

말씀드렸듯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랫동안 유통되었던 돈의 이름은 상평통보입니다.

둥근 모양에 네모난 구멍을 뚫어서 천지를 상징한다고 말씀드렸고요

거기에서 네 글자는 항상 공평하게 유통되는 보물이라는 뜻입니다.

항상 = 항상 상

공평 = 고르다 평

유통 = 통하다 통

보물 = 보배, 보물 보

 

그래서 천지간에 항상 공평하게 유통되는 보물이라는

그 이름을 붙인 의미는 지금도 또 돈이 지배하는 세상의 지금도 우리가 돌이켜봐야 할 그런 생각이 아닌가 싶습니다.

 

안중근 의사의 ...

견리사의(見利思義)는 견위수명(見危授命) 라는 글이 있습니다.

(이익을 보거든 정의를 생각하고 위태로움을 보거든 목숨을 바쳐라-도마 안중근)

 

이익을 보면 먼저 의리를 생각해라. 이런 뜻이죠.

상평통보에 담긴 뜻도 돈을 보면 먼저 이익을 생각하기 전에 공평을 생각해라.

이런 뜻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공정사회, 포용국가에 어울리는 최저임금에 대해서 좀 더 마음을 열고 고민하고 논의할 때가 아닐까 싶습니다.

 

전우용의 픽, 여기에서 마치겠습니다.

앞으로도 KTV 유튜브를 통해 계속 찾아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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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