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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록] 김강우, 신채호를 기억하여 기록하다

Buddhastudy 2019. 8. 8. 20:09


세수할 때 고개를 숙이지 않아

바닥과 저고리 소매, 바짓가랑이를 온통 물투성이로 만들었던 사람.

그는 왜 고개를 든 채 세수했을까?

 

조선은 고대 이래 중국과 일본에 복속했다.”

조선 침략을 정당화하기 위해 일제가 퍼뜨린 초기 식민주의사관

 

단재 신채호는 동열한 필치로

일제의 역사왜곡에 맞서 역사 투쟁을 전개했습니다.

 

역사는 민족의 혼이자 뿌리다.”

-독사신론, 이순신전, 을지문덕전 등 저술

 

1923년 단재 신채호가 의열단장 김원봉의 요청을 받고 작성한 의열단 선언

(의열단, 만주 지린성에서 조직된 항일 무력독립운동 단체)

일제를 공포에 떨게 했습니다.

 

혁명의 길은 파괴부터 개척할지니라.

파괴만 하려고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건설하려고 파괴하는 것이다.

고유적 조선을 발견하기 위하여 일본 통치를 파괴하는 것이다.

 

그러던 그가 군자금 마련을 위해 대만으로 갔다 일제에 체포됩니다.

19305, 10년형 선고

 

뤼순 감옥에 수감된 단재 신채호

일제는 고문으로 그의 건강이 악화되자, 병보석을 제안했는데

한 친일파의 보진이 그의 조건이었습니다.

 

그러나 단재 신채호 선생은

이 제안을 단호히 거부합니다.

 

그런 사람에게 내 목숨을 구걸하지 않겠다.

동상과 영양실조, 그리고 고문 후유증으로 고통 받던 신채호는

1936년 뤼순감옥에서 순국했습니다.

 

유언도 끝까지 신채호 다웠습니다.

일본인이 지배하는 땅에 묻히기 싫으니

화장을 해서 물에 뿌려 달라.”

-단재 신채호

 

일제가 우리 땅을 지배하는 한

어느 방향으로든 허리를 굽히지 않겠다며

세수할 때조차 고개를 든 단재 신채호

 

일제에 강점 된 조국에서 호적을 만들 수 없다며

무국적자로 살았던 신채호의 국적이 회복된 것은

해방 64년만인 2009

 

지금도 수많은 독립운동가가

대한민국 국적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역사를 떠나서 애국심을 구하면

이것은 눈을 감고 보려는 것이며

다리를 벌리고 달리는 것이다.

 

신채호

(1880.12.8.~1936.2.21)

 

김강우,

신채호를 기억하여 기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