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즉문즉설(2019)

[법륜스님의 즉문즉설 제 1539회 둘째 아이가 저희에 대한 반감으로 집을 나갔습니다

Buddhastudy 2019. 10. 15. 19:35


둘째 아들이 작년에 저희 부부와 형에 대한 반감으로 집을 나갔습니다.

저희와 만나려 하지 않고 연락하기조차 힘든 상황입니다.

어떤 맘으로 기도하고 살면 영원히 이별하지 않고 언젠가는 다시 만날 수 있는 희망을 가질 수 있는지요?//

 

그런데 뭣 때문에 갈등이 있어서 나갔어요?

어떤 양보? 구체적으로.

그래서 작은 아이가 손해 본 게 뭐가 있어요?

큰 아이한테 왜 그렇게 했어요?

그런데 큰 아이 데리고 미국에 갈 때 작은 아이는 안 데리고 갔어요? 같이 데리고 갔어요?

같이 데리고 갔어.

그런데 그게 형 때문에 자기는 왔다. 어쩔 수 없이 왔다.

.

 

뭐 그런 정도는 큰아이 때문에 갔다, 형 때문에 갔다, 이렇게 생각해서 문제이기는 한데,

아버지가 외교관이라서 여기저기 발령이 나면 그렇게 다녀야 될 거 아니에요.

 

그러니까 지금 자기가 볼 때, 작은 아들이 어떤 우울증이나 정신적인 질환이 있다고 보는 거예요?

그런 건 아니고, 이런 형에 대한 상처 때문에 나갔다고 생각합니까?

 

대학은 졸업한 상태에요?

그럼 뭐, 자기 나름대로 살게 두세요.

 

다시 볼 수 있을까라는 것은 욕구에요.

어떻게 기도하면 다시 볼 수 있을까?”

그거는 어떻게 기도하면 내가 임금이 될까?”

내가 어떻게 기도하면 저 젊은 여자하고 결혼할 수 있을까?”

이거와 똑같은 건데...

 

자기가 아직 그 욕망을 집착을 못 내려놓고 있는 거요.

기도라는 것은 집착을 내려놓는 걸 기도라고 그러지,

뭐뭐 해주세요라고 기도라고 말 안 해요.

그건 기복이라고 말하지, 기복.

그건 기복이다.

 

예수님이 죽으면서 나 살려주세요이렇게 기도 안했잖아요.

자기를 십자가에 매단 사람을 위해서

주여, 저들을 용서하소서이렇게 기도를 했지.

 

그런데 자기 지금 기복을 하고 있는 거예요. 기도를 하고 있는 게 아니고.

집착, 욕구를 성취시키기 위해.

 

욕망을 내려놓는 것을 기도라고 하는데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하는 거는 기복이라고 그래요. 기복.

자기가 지금 기복적 관점을 가지고 하고 있거든요.

 

문화나 종교가 다 기복적으로 흘러가 버렸죠.

참 기도를 하는 사람은 드물다. 이런 얘기에요.

 

아이가 스무 살이 넘어서 성인이 되었기 때문에, 어디를 가든 집에 있든, 나가든, 어떻게 하든, 그건 아이의 자유이거든요.

그런데 부모가 그 자녀가 집나간 거에 대해서 저렇게 안쓰러워하는 거는 이해는 되지만, 자녀한테 좋은 것은 아니에요.

 

벌써 그건 뭐냐하면, 자녀를 성인으로 안 보고 어린애로 보고 있다는 거요.

그러면 부모가 자식을 어린애로 보면 다 큰 자식은 답답하죠.

그것이 자기에게 사랑으로 느껴지는 게 아니라 속박으로 느껴지죠.

 

그러면 자기가 이렇게 한 번 생각해 보세요.

자녀하고 부모가 있는데,

자녀를 위해서 부모가 필요합니까?

부모를 위해서 자녀가 필요합니까?

 

그런데 지금 자기는 자기를 위해서 자식이 필요하잖아요.

내 외로움 허전함을 위해서 네가 와라.”

나를 위해서 자식이 필요하잖아요.

부모가 아니에요, 자기는.

 

부모라는 것은 자식에게 필요한 게 부모란 말이에요.

어릴 때는 똥오줌 가려주는 게 자식한테 필요하니까 그 역할을 부모가 해야 되고

조금 크면 애가 공부하는데 필요하니까 도와주는 거고

조금 더 크면 또 이러니까 도와주는 거고.

필요한 만큼 도와주는 거요.

스무 살 때까지.

 

스무 살이 넘으면 애가 필요하다해도 도와주면 안 돼요.

그건 아이의 자립심을 해치는 게 된다.

그러면 이 아이는 몸뚱이만 성인이지, 영원히 정신세계는 어린아이로 살아가는 거요.

 

그래서 부모의 자식에 대한 사랑은

어릴 때는 따뜻하게 돌봐주는 게 사랑이고

조금씩 조금씩 크면서는 냉정해지는 게 사랑이에요.

안타까워도 도와주지 않는 게 사랑이다.

그리고 스무 살이 넘으면 딱 정을 끊어주는 게 사랑이에요.

 

모든 자연에 있는 동물들이 만약에 자기처럼 하면 종이 다 멸종합니다.

부모의 자식에 대한 최고의 사랑은 자립할 수 있도록 해주는 거요, 자립할 수 있도록.

자기가 스무 살이 넘었을 때 살아갈 수 있도록 해주는 것.

뭐하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고.

 

그런데 자기 지금 자기마음이 지금 그렇지가 못하죠.

그러니까 자기보고 싶고, 자기 허전함 때문에 애가 집에 와야 된다는 것은 맞지가 않죠.

 

자식이 필요 없다하면 자긴 딱 끊어야 되요.

자식이 필요하다면 도와주는 거고.

스무 살이 넘었으니까 이제는 보호자, 피보호자의 관계가 아니고

성인대 성인의 관계로

그거는 자식이 필요할 때 자기가 계산을 좀 해보고 지원을 해야 된다.

 

지원하는 게 아이한테 도움이 될까?”

이게 지원하면 나한테는 부담이 안 될까?” 이런 이해타산을 해도 괜찮아요.

성인과 성인의 관계이기 때문에.

 

그런데 보호자 피보호자라는 관계에서 자기의 역할은 끝났기 때문에,

이제는 자기가 나를 위해서 네가 집에 들어와라.” “나를 위해서 네가 어떻게 해라이런 수준이란 말이오.

그러니까 그건 부모의 역할은 아니에요.

자기의 집착이 지금 자기를 괴롭히는 거죠.

 

자기 할 일 끝났다이렇게 생각해요.

내 할 일은 끝났다이렇게.

이게 기도에요.

 

--

, 좋아요.

원수 보듯이 한다는 것은 확실히 독립을 했다는 얘기 아니오.

 

만약에 제가 출가해서 수행을 하는데, 우리 부모가 나를 자꾸 결혼을 시키려고 그러면 원수 보듯이 봐야 되잖아요.

원수 보듯이 안 보면 내가 어떻게 생활을 해요.

스무 살이 넘은 젊은이들이 부모를 원수 보듯이 봐야 자립이 되는 거요.

아무 문제가 없는 거요.

 

--

이제 스무 살이 넘었기 때문에 여러분들은 관계를 맺을 때 성인과 성인의 관계로 재정립해야 됩니다.

스무 살 이전에는 나하고 자녀는 어떤 관계다?

보호자, 피보호자의 관계다.

스무 살이 넘으면 어떻게?

성인과 성인의 일대일 관계로 정립이 되어야 되요.

 

그래서 여러분들이 엄격하게는 성인식이 딱 끝나면 자녀에게 경어를 써야 됩니다.

그리고 일체 요구를 하거나 간섭을 하거나하면 안 돼요.

 

그리고 또 도와줘야 될 의무도 하나도 없어요.

여러분들이 이웃사람만나서 이해관계를 따져서 관계 맺듯이 그렇게 딱 맺어줘야 되요.

그래야 자녀가 집에서 부모로부터 어른대우를 받아야 밖에 가서 신뢰받는 사람이 되는 거요.

 

대부분 자녀들을 25, 30살이 되었는데 부모는 애 다루듯이 야단을 치잖아요.

그게 아이들에게 엄청나게 상처를 줍니다.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부모 자식 간에 왜 원수가 되고 이런 문제가 생기냐?

어릴 때는 제대로 안 돌보고, 자기 살기 바쁘다고 제대로 안 돌보고

커서는 독립해야 되는데 자꾸 자기 허전함, 자기 집착으로 아이를 과잉보호하려고 하기 때문에 인간관계가 복잡해지는 거요.

 

자연생태계 부모자식 간에 갈등이 생기는 관계 봤어요?

없어요.

자기 새끼를 버리는 어미도 없고, 다 컸는데 뒤따라 다니는 어머도 없어요.

어릴 때는 보살펴주는 게 사랑이고

크면 냉정하게 정을 끊어주는 게 사랑이다, 이 얘기에요.

 

그러니까 그 집착은 아무 도움이 안 됩니다.

제가 출가해서 절에 있다면 우리 부모님이 정을 딱 끊어줘야 내가 수행이 되지

우리 부모님이 매일 울고 있다.

그러면 명상한다고 앉아서 계속 어머니 생각한다.

이게 부모가 원수고 마구니지.

도를 방해하는 게 마구니 아니에요.

 

그래서 여러분들은 그 집착 때문에 서로 좋은 관계를 맺어야 할 부모자식이 지금 원수관계가 되고,

올해 들어와서 작년보다 존속살해가 2배로 늘었데요.

갈수록 저는 더 늘 거라고 생각합니다.

자녀의 부모에 대한 지나친 의지

부모의 자녀에 대한 지나친 보호로

성인과 성인이 어린애와 부모가 자식을 애 다루듯이 다루고

자식은 다 컸는데 어린애처럼 부모에게 뭐 해달라 그러고.

그러니까 여기에 갈등이 생기는 거요.

 

좋은 거 아닙니다.

여러분들이 이렇게 안 살아도 되는데,

여러분들은 과잉보호해서 무거운 짐을 부모는 지고

자식은 부모에게 의지함으로 해서 죽을 때까지 어린애 취급받고 살아야 되고, 잔소리 듣고 살아야 되고

이거 서로가 서로를 해치는 거다. 이 얘기에요.

 

그러니까 내 할일 다 했다. 네 알아서 살아라.”

이렇게 딱 끊어야 되고

보고 싶으면 그냥 내 여자 친구나 보세요.

내 부인이나 아끼고.

 

그 동안 부부지간에 자녀를 키우면서 아까 남자도 얘기했지만

아내가 남편을 제대로 못 돌보고, 남편도 아내를 제대로 못 보살폈잖아요.

그런데 자녀가 성인이 되면, “아이고 너희일 끝났다. 우리 둘이 즐겁게 행복하게 삽시다.”

이렇게 정을 다시 돌려줘야 됩니다.

원래 살아야 할 사람에게 정을 돌려줘야 된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다 부부 정은 온데간데없고

그저 남자든 여자든 젊은 거 좋아해서, 거기에다가 마음을 다 빼앗기고 사는 거요.

 

웃을 일이 아니에요.

젊은 게 그렇게 좋으나, 아이고...

이거 우리나만 겪는 거 아니에요.

일본에서도 이거 겪고 있어 굉장합니다, 이런 과정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