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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범스님_ 부처님이 되신 이야기 [큰스님께 듣는 깨달음의 길]

Buddhastudy 2021. 2. 11. 07:11

 

 

 

오늘 법문은 부처님께서 부처님 되신 이야기

이런 내용으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부처님을 예경할 때 여래10호 삼신불

이렇게 항상 예경을 해요.

그런데 여래 10호는 경전마다 다 나오거든요.

10가지 명호가 있지만 그 가운데에서도

여래, , 세존, 3가지 명호가 아주 중요하게 봉송이 되요.

 

금강경 구경무아분이라는 경문이 있는데요 거기에

如來者여래자는 諸法如義제법여의

 

제법은 모든 법, 모든 사물, 모든 존재 이게 제법인데

그 제법에는 변하지 않는 뜻이 있다는 거예요.

그걸 여의라고 그래요. 부처님이 깨달은 게 그거거든요.

제법 속에서 변하지 않는 뜻을 깨달았다. 여의를 깨달았다.

같을 여, 뜻 의.

 

여라는 건 여여하다, 또 진여하다, 참 그대로다. 여여진여.

그런데 제법은 천지만물 우주인간, 전체가 제법인데

거기에는 여의라는 게 있다는 거죠.

 

여의는 뭐냐? 실상이다. 진실상. 불변이다. 또 상주다.

실상, 불변, 상주. 항상 머문다.

그래서 부처님을 상주불이라고 그럽니다. 항상 머무는 부처님이다.

여래라는 뜻이거든요. 여의.

 

그래서 우리 인식과 지혜가 있는데, 우리 인식은 형상만 보게 돼요.

하늘도 보고 땅도 보고, 태어나는 것도 보고 죽는 것도 보고

형상이 없으면 인식은 못 봐요.

 

그런데 지혜는 실상, 진실상, 불변상, 변하지 않는 상, 상주상

그거는 지혜로 보는 거거든요. 그래서 그걸 여의라고 그래요.

 

금강경 위의적정분에서는

如來者여래자는 無所從來무소종래

亦無所去역무소거 故名如來고명여래

여래자는 어디서 오는 게 아니다.

역무소거, 어디로 가는 게 아니다.

고명여래라, 그렇기 때문에 여래라고 그런다.

 

이 세상에는 진실상이 있고 불변상이 있고 상주상이 있는데

부처님은 그걸 깨달아서 부처님이 되었다 이거거든요.

 

깨달았다는 것은

형상만 보는 인식, 생각만으로는 못 보고

그 생각을 일단 중지시킨다.

그래서 생각을 그치면 보여요.

 

보인다고 그럴 때 상이라 그러거든요. 생각 상, 명상.

그치고 보면 보인다.

그런데 안 그치고 보면 안 보인다.

 

생각은 멈추고

멈추고 멈추고 보니까

거기서 탁 튀오나온 게 있는데 그걸 지혜라고 그래요.

생각을 멈추고 보면 지혜가 나온다.

 

이걸 생혜라고 그러거든요. 날생, 지혜 헤, 생혜가 나온다.

그걸 깨달음이라고 그래요.

 

의식과 지혜가 있는데, 의식을 멈추고 바라보면

의식을 멈추고 잠들면 또 못 깨달아요.

의식은 멈추되 분명하게 보면. 그걸 관이라고 그러거든요. 볼관. 지관, 정혜

그치고 분명하게 보는 것을 지혜 혜자를 써서 정혜라고 하고요.

그치고 분명하게 보는 거예요. 볼 뿐이에요.

 

거기다 무슨 생각을 내면 그치는 걸 안하는 게 되어서 못 깨달아요.

딱 그친 상태에서 밝게 탁 보고

밝게 보는 상태에서 다른 생각을 일으키지 아니하면

이걸 불생이해라고 그럽니다. 다를 이, 견해라고 하는, 해석한다는 이해 해자를 써서

다른 해석을 내지 않는다.

 

그런데 생각으로 살아가는 범부는

다른 생각을 안 낸다는 게 굉장히 힘들어요.

그러니까 이걸 눈으로 탁 볼 때, 그냥 탁 보기만 하고 다른 생각을 안 내면

다른 생각 안 내는 건 그치는 거고

딱 보는 건 그냥 보는 거거든요.

 

그래서 그냥 다른 생각 안 내고 보는 거를 바를 정, 볼 관, 정관이라고 하거든요.

이 정이라는 뜻은 무작이에요. 섞인 게 없으면 정이에요. 무작.

잡념을 넣지 않으면 정관이 되고요,

정관을 계속하면 정각이 되요. 바르게 깨달아요.

또 바르게 깨달으면 깨달음 부처님은 뭐로 사는가?

정념, 바를 정, 생각 념, 정념으로 살거든요.

 

그래서 뭘 보든지 깨닫고 나면 물질은 없어지고 마음만 있는 거예요.

이게 어려운 얘기인데, 깨닫기 전에는 물질만 있고 마음이 없어요.

깨닫고 나면 모든 게 마음뿐이에요.

일체가 유심이에요.

일체는 마음으로 만들어졌다.

 

그래서 항상 물을 봐도 마음의 상태로 보는 게 그게 정념이고요

죽음을 느낄 때도 마음 상태로 느끼는 그게 정념이고요

삶을 느낄 때도 마음 상태로 느끼는 게 그게 정념이고요.

 

그래서 부처님은 靜觀(정관)으로 正覺(정각)을 해서 正念(정념)으로 항상 머무셔서

그런 걸 일러서 부처님이 되셨다고 한다. 부처님이 되셨다.

 

그러면 부처님은 (), 하는 이게 바르게 깨달았다. 이런 뜻도 되고요

또 깨달은 분이다, 인칭도 되고

덕칭도 되거든요. 덕이라는 건 뭘 했다, 이거잖아요.

그래서 불은 깨달았다 할 때는 덕칭이고 깨달은 분이다할 때는 인칭이거든요.

 

여두 마찬가지에요. 여여하면 그냥 여여인데

그런데 여여를 얻은 분이라고 할 때 여래라 이러는데요,

그 여는 진여인데 진여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게 아니다.

뭐 이래서 불에는 늘 삼불이 구족하다.

삼불이 원융하다, 이래요.

부처님에게는 3가지가 항상 구족하고, 원융하다.

 

그럼 삼불은 뭐냐?

첫째는 부처님에게 화신불이라고 하는데요, 화신불이라는 것은 현신불이라, 몸을 나타낸다 . 몸을 나타내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우리가 형상불을 모시는데, 형상불은 부처님께서 몸을 나타내지 않았다면 형상불 만들수가 없어요.

몸을 뭔가 보였기 때문에 몸대로 조성한게 형상불이거든요.

그게 현신이에요.

 

그리고 사리타불 모시는데, 사리타불은 부처님이 돌아가시지 않으면 사리가 있을 수 없어요.

태어나셨기 때문에 몸의 형상이 있어서, 그 형상대로 불상을 조성하고

돌아가셨기 때문에 돌아가신 몸을 태워서 거기서 사리가 나와서 그 사리로 탑을 모시고

부처님 팔자가 이래요. 팔자가 아주 이상해요. ㅎㅎ

 

몸은 전부 형상으로 만들어서 예경을 올리고

또 뼈는 전부 사리로 모셔서 예경을 하고.

그런데 뼈도 없고 몸 형상도 없는 거예요. 부처님은, 다 그냥 중생 앞에 제공되어서.

성불하면 좋은 게 뭐 있어요? 좋은 거 하나도 없어요.

 

이렇게 이야기하는 거는 전부 부처님이 입으로 말한 거거든요. 경전이라는 게.

말씀은 전부 경전이 된 거예요.

말씀은 경이 되고 뼈는 사리가 되고 형상은 불상이 되어서 뭘 하고자 하느냐?

중생들이 고통에서 벗어나게 되는데요

 

고통이라는 것은 어디서 오느냐?

형상에 집착하고 마음을 모르는 데서 고통이 와요.

마음을 모른다는 건 뭐냐?

집착하는 대상에만 마음이 쫓아가고 집착하는 자신은 모르는 거예요.

 

그러면 깨달음이라는 것은

모든 게 마음이라는 것을 확실히 아는 게 그게 깨달음이거든요.

그러니까 생각은 쫓아만 가요.

 

그런데 마음이라는 것은 그 마음의 거울에 대상이 그냥 비췄을 뿐이거든요.

그 비춰지는 거울은 어떤 것도 아니면서 어떤 걸 다 비출 수 있는 게 마음이에요.

그걸 깨달은 거예요.

 

죽음이라는 것도 비출 수 있고요, 그렇지만 죽음은 아니에요.

삶이라는 것도 비추는데 삶은 아니에요.

악한 것도 비추는 데 악한 것도 아니에요.

선한 것도 비추는 데 선한 게 아니에요.

 

또 마음은 무형무색이라

형상도 없고 빛깔도 없기 때문에 없는 데가 없어요.

또 있는데도 없어요.

무정무상이라, 자취도 없고 형상도 없는데

그거는 오직 지혜로만이 알 수가 있어요.

 

생각은 형상만 쫓아가니까 형상만 쫓아가는 생각가지고는

형상도 없고 자취도 없는 마음을 알 수 없어요.

그러면 어떻게 되느냐?

생각을 그치고, 그대로 보면 그게 정관인데

정관을 하면 그 지혜광명이 나와요.

그걸 깨달음이라고 그러거든요.

아주 간단한 거예요. 원리가. 아주 간단한 거예요.

 

그런데 그중에서 일체중생과 똑같이 현신불, 몸을 나타냈다,

사월초팔일에 몸을 나타내서 이월보름날 돌아가시는 모습을 보이는 것을 현신불이라고 그래요.

현신불을 구체적으로 나누면 여덟가지로 나눠서 팔상이라고 그러거든요. 팔상현실이래 얘기를 해요.

 

그런데 거기서 중요한 거는 태어나고 돌아가시는 거예요. 생멸.

생멸은 현신이거든요.

그래서 태어나신 모습에 의해서 불상이 만들어지고 돌아가신 그 자취로 사리를 남겨서 불교에는 불상과 불탑이 예경의 대상이 되는 거예요.

 

그러면 태어나고 돌아가시는 그 속에 복덕이 있어요.

공덕, 복덕. 그걸 보신불이라고 그러거든요.

 

공덕은 복덕상과 지혜상이 있는데, 복덕은 32상이라고 그래요. 부처님한테.

그게 불상 모신 모습이에요.

불상을 모시는데, 아주 중요한 게 형상이 이렇게 있는데

그 형상 속에 지혜상과 복덕상을 어떻게 드러내느냐가 이게 아주 핵심이거든요.

 

부처님 얼굴에는 복스러운 것만 있는 게 아니고 지혜가 있단 말이에요.

그 지혜와 복덕을 잘 드러내는 그게 최고의 불상인데요

신라시대에는 그런 불상이 많아요.

 

참 이상해요. 똑같은 돌로 조성을 했는데, 딱 보면 그냥 보통 얼굴이 아니라 복덕도 충만하고 지혜도 충만한 모습이 느껴져요.

그거는 만드는 시대의 만드는 분들의 정성이 드러나는 거예요, 그냥.

((((그림1

 

 

그래서 공덕이라는 거는 복덕과 지혜가 다 공덕이다.

그래서 그 공덕에 의해서 지혜를 이루고, 또 공덕에 의해서 복덕을 이룰 때

지혜는 지혜광명이 되고, 복덕은 32상이 되었다.

 

그런데 지혜도 닦아서 이롭고, 복덕도 닦아서 공덕에 의해서 이루었기 때문에

공덕은 닦는 거거든요.

복이라는 것은 물려받을 수 있는데요 공덕은 물려받지 못해요.

 

태어나자마자 자기가 부자된 건 그건 공덕이 아니라 복덕이거든요.

그런데 자기가 열심히 해서 지혜를 닦고, 지혜는 복덕으로 안 돼요.

지혜는 부모가 물려줄 수가 없어요. 그거는 닦는 거예요.

닦은 보답에 의해서 이루어진 몸이라고 그래서 보신이라고 그러거든요.

그냥 현신만이 아니고.

 

보신이 지혜와 복덕을 드러내는 부처님이 보신인데

이걸 만신이라고 그래요.

지혜도 아주 만족하고 복덕도 만족하다.

만신, 가들할 만, 현신 만신.

 

그런데 그 현신이나 만신이 다 진신, 진여, 실상, 상주,

이 진실을 조금도 떠나지 않는다는 거죠.

그걸 진신이라고 하거든요. 실상.

 

그래서 부처님에게는 진신여래 만신여래 현신여래,

이게 삼여래, 삼불인데 이게 원융하다는 거예요.

 

현신에게도 보신과 진신이 있고,

보신에게도 진신과 현신이 있고

또 진신에게 보신 현신이 다 있어서 아주 구족하고 원융하고 원만하다.

이런 분을 부처님이라고 그러고

삼불이 구족하고 삼불이 원융하다 이래서

삼불을 청정법신비로자나불, 법신을 진신이라고 그러거든요. 원만보신비로자나불

천백억화신 석가모니불 이래서.

석가모니불은 현신이거든요. 사월초파일날 오시고 가시고. 12월 보름날 가시고.

 

현신 만신 진신이 다 하나로 구족하고 하나로 원융한 것이 부처님의 세계다.

이런 거죠.

 

그러면 어떻게 해서 이렇게 되었느냐?

지혜를 이루고 복덕을 이루는 게 부처님 성불인데

복덕은 과거과거에서부터 금강경 정신희유분 제6이 있는데

거기에 말세중생이라고 하더라도 복을 닦는 중생, 계법을 지키는 중생은

과거 1, 2, 3 4 5불 세계에서 공덕을 닦는 게 아니라 그냥 무량천만불소에서 공덕을 닦았다.

그래서 이 복덕은 과거 천만불소에서 다 닦은 거예요.

 

우리가 이렇게 성도재일날 법회하고 정진하면 이 복덕 이 공덕으로 다 성불해요.

그게 성도불사에요. 안 믿어져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