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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범스님_ 생각을 그치고 바로보면 지혜광명이 솟아난다 [큰스님께 듣는 깨달음의 길]

Buddhastudy 2021. 2. 15. 18:26

 

 

 

그런데 처음에 부처님이 깨달을 때, 인연법을 말씀하시는데

모든 법은 인연으로 생긴다. 모든 법은 인연으로 사라진다. 이걸 항상 말씀하시는데

이 말은 뭐냐?

법이 없다는 얘기에요.

인연법이라는 건.

 

인연법은 무법이다, 이거에요.

연법은 무법이다. 아 이거 참...

인연법은 법이 없는 거예요. 무법이에요.

 

왜 그러냐?

만나면 생기고 안 만나면 안 생기고, 흩어지면 사라지고 만나면 생기고.

이래서 만나서 생기고 흩어지면 사라지는 이 자체는 없어요.

부처님이 이걸 깨달은 거예요.

 

그래서 인연을 깨달았다라는 것은

인연은 법인데 법은 없다라는 거에요.

그걸 색즉시공이라고 그래요.

 

공이라는 게 법은 없다는 소리에요.

색은 없다는 얘기고. 색이 공이라는 얘기는.

 

박수 치잖아요. 그러면 치라는 소리가 아니고 ㅎㅎ 설명해 드리려고 ㅎㅎ

박수를 치잖아요.

그러면 이 소리가 어디서 나왔냐는 거죠.

 

이쪽 손바닥에서 왔냐, 저쪽 손바닥에서 왔냐?

허공에서 왔냐? 공기에서 왔냐? 귀에서 왔냐?

아무 데도 온 데가 없어요.

그러면 딱 칠 때는 있다가 금방 또 사라지잖아요. 안치면 사라져요.

 

하늘도 이거와 똑같고 땅도 이거와 똑같고 사람도 이거와 똑같아서

모든 건 인연으로 생겨서 인연으로 사라진다.

 

그러니까 생겨도 생긴 법이 없다.

사라져도 사라진 법이 없다.

 

이걸 깨달은 거예요.

법이 없다라는 걸 깨달았어요.

하늘이 없어요.

 

여러분 하늘 보셨어요?

또 하늘에서 도망간 일 있어요?

하늘은 잡을 수도 없고 도망갈 수도 없고,

이건 뭐라고 생각으로는 정의가 안 되는 게 하늘이거든요.

 

그런데 우리가 명칭을 붙이잖아요.

그런데 다른 동물들, 모기나 개미나 이런 애들보고

너 하늘 알아?” 그러면 걔네들은 관심이 없죠. 사람만 관심이 있거든요.

 

사람이 하늘이라고 생각해서 하늘이지

하늘 자체는 잡을 수도 없고 피할 수도 없고.

 

왜냐하면 이게 생각으로 정의가 안 되는 거예요.

있다고 할 수도 없고. 있다 없다는 게 생각인데,

 

하늘이 있는 거냐?

있다고 할 수 없어요.

왜냐하면 형상이 아니기 때문에.

 

또 하늘이 없는 거야?

없다고 할 수 없어요.

맨날 하늘 속에서 우리가 사니까.

 

이런 것처럼 안경에 안경이 없다.

안경 이게 뭐냐? 여러 가지 안경 알이나 틀이나 이런 것이 만나서 인연으로 된 것이기 때문에

이거 하나하나 분리 해체하면 안경은 없어요.

 

이걸 몸이라고 그러는데

여기 뭐 하나하나 이걸 분리 해체하면 몸 없어요.

이게 인연법이에요.

 

그래서 부처님이 이걸 깨달은 거예요. 이걸...

모든 법은 인연으로 생기고

모든 법은 인연으로 사라진다.

 

모이면 나타나고

흩어지면 사라진다.

 

아주 간단한 거예요.

그래서 이 세상에는 있다고 붙잡을 것도 아니고

없다고 두려워할 것도 아니다.

 

그래서 오는 사람 막지 말고

가는 사람 잡지 말라.

이게 인연법에서 나온 거거든요.

 

오는 거 인연이니까

어서 오세요

가면

안녕히 가세요

그걸 도인이라고 그래요.

 

도라는 건 거기서 지혜인데

인연법을 깨달은 지혜가 있는 사람이다, 이런 소리거든요.

가지 말라고 애원했지만.. 이런 거는 ㅎㅎ

이건 인연법을 모르고 형상에 집착하는 거거든요.

 

우리가 맨날 이야기를 들어보면

전부 인연법을 모르고 형상에 집착하는 그런 하소연과 그러한 고통을 얘기해요.

너무나도 그님을 뭐 어쨌기에 ㅎㅎ 어떻게 한다고 그러고...

 

전부 이게 형상에 집착하는 괴로움이거든요.

그래서 모든 것은 인연이고.

 

이게 아주 엄청난 거예요.

말이 그렇지 이걸 깨닫는다는 게 쉬운 게 아니에요, 진짜로.

 

죽음이라는 형상만 보고 죽음을 무서워하고 삶을 좋아하고 하는 게 우리 인생의 길인데

삶이라는 것도 인연에 의해서 나타난 것이고

죽음이라는 것도 인연에 의해서 나타난 것이니까

 

인연소치, 인연으로 이루어진 바는

삶의 결과나 죽음의 결과가 똑같다.

이거거든요.

 

항상 깨달음의 비법을 말할 때

달마대사한테 혜가대사가 찾아가서

제 마음이 불안합니다.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십시오.”

이게 천하의 아주 바로 들어가는 깨달음 법문이에요.

 

그러면 보통 우리 같으면 뭐...

여행을 해보세요. 운동을 해보세요, 좋은 사람을 만나보세요, 일을 해보세요.

이러잖아요.

 

그거는 그게 언발에 그냥 뜨신물 붓는 거지 확실한 방법은 그때뿐이거든요.

그러면 불안한 마음을 가져와라.

그 불안한 마음.

 

인간은 불안하거든요. 죽음이 불안하고, 삶이 불안하고, 노인이 불안하고

노인이 다 늙었는데 뭐가 불안하냐?

그건 노인 안되어봐서 하는 소리예요.

노인 되어보라고요, 불안한게 없나.. 참 내..

시정이 그렇게도 없어. 그래...

 

그런데 이게 전부 다 생각이거든요.

죽음이 와서 불안한 게 아니에요.

죽음을 미리 생각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그 불안한 마음을 가져와라.

그러니까 찾아보잖아요. 없어요. 불안한 마음이...

그 불안한 마음이 없습니다.

불안한 마음이 없는데 불안이 어디있냐

내가 너를 이미 편안하게 해줬다.

이게 아주 천하의 비법이거든요.

 

그러니까 그 불안한 마음을 중지시키고, 돌아봐서

불안한 마음이 자취가 없는 상태로 들어가게 하는 게

그게 정관이거든요. 바르게 보는 거...

 

그러면 불안한 마음이 하나도 없는 깊숙~~~히 들어가면

거기에는 광명밖에 없어요.

그대로 광명인데, 거기에는 하늘도 없으면서 하늘을 비출 수 있고요

땅이 없으면서 땅을 비추고

사람이 없으면서 사람을 비추고.

뭐를 다~~~ 비춰도 그 어느 것도 아니에요.

 

능일체 비일체

일체를 다 비추는 것이 가능하지만 일체가 아닌 거예요.

 

이거는 생각해도 알아요.

우리가 이 눈으로 그동안 사람도 보고 물질도 보고 작은 것도 보고 큰 것도 보고 다 봤잖아요.

그런데 눈이 본 게 아니라 눈은 마음이거든요.

보지 못하는 눈은 죽었다고 그래요.

산 눈은 마음인 거거든요.

마음으로 본 거예요. 눈이 아니라...

 

그러니까 이게 눈이 그냥 이렇게 눈동자를 분리 해체해보면

보는 게 아무것도 없는 거예요.

눈동자 하나 빼봐요. 그게 뭘 보나.. 큰일 나요 잘못하면...

 

그러면 눈으로 하여금 보게하고, 귀로 듣게 하고, 몸으로 느끼게 하고, 발로 움직이게 한 게 마음인데

그 마음은 분~~명히 움직이고 작용을 하는데 이걸 동용이라고 그래요.

움직일 동, 작용할 용, 쓸 용자, 동용.

 

이 동용을 그냥 쉼 없이 하는데 찾아보면 자취가 없어요. 찾아보면

이걸 청정이라고 그러거든요.

청정은 아~~무 티끌도 거기 안 묻었다는 거예요.

 

동용은 하는데 자취가 없다.

무적청정이라,

또 부절동용이라, 끊어짐이 없이 부절, 움직여.

그런데 자취 없이 청정해요.

거기에 들어가면 이 죽고 사는 게 전부 자취 없는 마음에 비추어진 그림자에요.

 

그래서 이걸 일체가 유심이라는 거예요.

이 몸도 내 마음에 비추어진 그림자고요.

그걸 알면 모~~든데서 해탈하고 모든데서 자제해요.

이걸 부처님이라고 그러거든요.

 

해탈 자제. 무슨 소리인지.. 진짜 어렵긴 어렵다이~~~ ㅎㅎ

어렵긴 어려워. 왜냐하면 이런 소리 잘 안 들어봤거든요.

왜냐하면 생각만 가지고 살아서 이래요.

 

그래서 인연법을 깨달으면서

법은 없다. 오직 마음뿐이다.

 

이걸 비유를 한 게 도둑이 뭐 훔치러 어느 집에 들어갔어요.

집에 들어가니까 집에 아무것도 없어. 텅 비었어.

그러니까 훔칠 마음이 싹 달아난 거예요.

 

그래서 인연법을 딱 알고 보니까 인연법이 없어.

그런데 인연법을 깨달으면요, 어떤 것도 구하려는 마음이 없는 거예요.

왜냐? 그게 다 허망하고 무상해서.

 

법에 법이 없다.

사람에 사람이 없다.

사람을 구해서 그 사람이 없어요. 사라져요.

물질을 구해도 물질이 없어요. 사라져요.

산을 확보해놔도 산이 없어요. 사라져요.

구름에 매달려 구름이 없어요. 사라져.

그래서 그것에 그것이 없는 걸 아는 게 인연법이거든요.

이걸 어려운 말로는 자성이 없다고 그래요. 자체 성격이 없다고...

 

미움에 미움이 없는 거예요. 사라져요.

그러니까 이걸 뭐든지 구하는 것은 그것에 그것이 없는 인연법을 모르는 미혹이요, 집착이다. 이렇게 되요.

 

열심히 구하다가

마지막에 후회의 눈물 흘리고 가는 게 인생이거든요.

인연법 몰라서 그래요.

 

부처님이 그걸 안 거예요.

아 이 세상에 구할 게 없구나.”

왜냐하면 인연으로 생겼다 인연으로 사라니까 뭘 구해도 다 사라진다.

그걸 허망하다고 그래요. 불교에서는. 그걸 무상하다고 그래요. 사라지는 걸...

 

그러니까 그 대상은 다 그렇게 사라지고 지금까지 대상을 구했던 마음만 남는 거라고요.

그래서 도둑이 방에 들어가서 훔칠 물건은 없는데, 훔치러 온 두둑만 지금 있는 거예요.

그걸 마음이라고 그러거든요.

 

도둑이라는 녀석도 가만보니 그것도 없어.

그다음에 뭐냐?

그냥 광명뿐이야.

그 광명은 형상과 그림자가 있는 광명이 아니라 무적광명이에요.

자취없는 광명이다.

이걸 광명지. 대광명.

 

또 생각을 딱 돌이켜보니까 역시 생각도 생각이 없더라.

생각에 생각이 없다.

물질에 물질이 없다.

 

그러면 물질도 없도 생각도 없는 것을 아는 그 마음만 있는 거예요.

그걸 청정심이라고 그러거든요.

그걸 지광명이라고 그러고.

 

그래서 그 마음은 진신이라, 진여신. 참몸이라.

생겨도 그 마음은 생긴 게 아니고, 사라져도 그 마음은 사라진 게 아니고

그 사라지는 그림자를 느낄 뿐이지, 그건 사라진 게 아니고요.

생기는 그림자를 느낄 뿐이지 그건 생긴 게 아니고.

 

그래서 이거를 바로 아는 걸 진여삼매라고 그러는데, 진여삼매.

진여는 실상이고, 여여이고 불변이고 상주고, 그게 마음, 본체인데요,

그걸 떡~~ 보면 죽고 살고 ,오고 가는 건 전부 실상마음의 비추어진 그림자에요.

 

그래서 진여삼매에 들면 공포 불안 전혀 없어요.

내가 죽을 때 어떡하나?

죽어보지도 않고 미리 걱정하는 게 생각이거든요.

 

어떤 사람은 내가 며느리 잘못 들어와서 집안 망치면 어쩌노

맨날 이 걱정하는 사람 있어요.

아들은 왜 들어오지도 않았는데 미리 걱정하냐.

 

공부한 사람은 며느리 잘못들어와서 집안 망치면 어쩌나 이런 생각이 들 때

그 생각을 이렇게 돌아보면 싹 사라져요.

그게 잘 안 되면 경을 읽으면 사라지고.

생각이 중지되는 거거든요.

 

염불, 기도하면 또 딱 사라져요.

방법이 똑같아요.

 

생각을 중지하고 보는 거랑,

~~속 관세음보살, 기도하는 거를..

관세음보살을 생각하면서 거기에 집중하니까 다른 생각은 중지가 되는 거거든요.

경을 읽어도 마음이 조용하고 깨끗해지는 게

일단 잡념이 중지가 되요.

한 곳에 이렇게..

금강경인데 금강경을 딱 보는 순간에 여기에 집중하고. 이게 보는 거예요.

다른 마음은 중지되니까 그치는 거예요.

그치고 밝게 보면 깨닫는다.

 

왜 못 깨닫느냐?

안 그치고 안 보는 거예요.

맨날 따라가기만 해요.

따라가면 못 깨닫고

그치고 바로 보면 깨닫는다.

 

그래서 진여법을 깨달아서 나중에는 진여법을 떠나지를 않고

떠날래야 떠날 수가 없고 허공과 같이

진여법을 보태낼야 보탤 수가 없는 거. 그걸 정념이라고 그래요 정념.

 

부처님은 바로 봐서 그 자취 없는 마음을 바로 깨달아서

그 자취 없는 마음속에서 머무는 것을 부처님이라고 한다.

이런 거거든요.

 

그래서 이런 거를 처음 딱 그 생각은 멈추고, 지혜가 나타났을 때, 그걸 처음 시, 깨달을 각, 시각이라고 그래요. 시각.

그런데 처음 깨닫고 보니까 이 마음은

본래부터 청정하고 영원히 청정하고 변함없이 청정하다. 이걸 본각이라고 그래요.

본래 본자.

 

그런데 거기서 더 들어가보니까

이거는 처음도 근본도 아니고 그냥 그대로다.

이걸 국영각이라고 그래요. 이걸 삼각이라고 그러거든요.

시각, 본각, 국영가. 기신론에서 이렇게 가르쳐요.

 

그러면 이걸 비유로 들면 뭐냐?

어떤 사람이 방에서 나가서 돌아다니다가 돌아다니다 돌아다니다 춥고 배고프고 힘들고 그래서 집을 찾아간다고 자기집에 오는 거예요. 물어물어서 와서

본래 자기가 살던 방문을 탁 여니까 자기집 방이 탁 보이는 거예요.

그걸 시각이라고 그래요.

 

자기 방이었지만 그냥 자기방 잃어버리고 돌아다니가 처음와서 방문 딱 열고 방안 보는 순간, 그건 처음이거든요. 보는 사람 입장에서.

지금까지 그걸 생각으로만 살았지, 지혜의 눈은 한번도 못 떠봤다.

처음 봤어요. 시각이에요. 들어와서 들어왔더니

본래 내가 사놨던 거 내가 사용하던 그대로 자기 거란 말이에요. 그걸 본각이라고 그래요

 

그런데 거기서 자유로워지니까

처음에 방문열고 봤을 때나.. 그냥 아무것도 아니고 본래의 그대로

나의 방이고, 나의 물건이더라 이걸 구경각이라고 그러거든요. 구경각.

 

그리되면 어찌되냐.

그 청정심, 대지혜, 그거 뿐이다, 이거죠.

그러면 이렇게 이런 물건을 볼 때, 요거 의식으로 보면 이게 물건인데

이 물건은 없고, 이 물건을 바라보는 자기 마음뿐인 거에요.

 

그런데 범부는 여기 물건인 줄만 알지 바라보는 자기 마음이라는 건 꿈에도 모르는 거예요.

요걸 미혹이라고 그러거든요.

 

그런데 어떤 물건을 보더라도 보는 마음이 없이 물건은 존재할 수 없어요.

그런데 이걸 전혀 모르는 거예요.

 

누구를 좋아하더라도

그 좋아하는 마음 없이 좋아하는 사람이 존재할 수 없어요.

.. 이거 참...

 

말을 하면서 좀 염치가 없네요.

말을 하면서도 염치가 없어.

지금 우리 입장이 전혀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이거 안경인데, 안경이 있잖아요.

이걸 바라보는 마음없이 이게 있을 수 없는 거예요.

우리가 이걸 딱 보는 순간에 이것만 알지

보는 마음은 까맣게 모르는 거죠.

 

두려워하기 전에 두려운 마음을 그치고 봐라.

그러면 두려운 건 없다.

미워하기 전에 미운 마음을 그치고 그대로 봐라.

그러면 미움은 사라지고 보는 마음뿐이다.

 

짜증이 날 때, 짜증나는 마음을 그치고 그대로 봐라.

그러면 짜증은 사라지고 보는 마음 뿐이다.

이거는 전부 내 생각이 만들어내는 행위에요.

그래서 생각이라는 것은 그림자와 같고, 아지랑이와 같아서

생각이 일어난다고 거기 쫓아가서

, 그렇지. 옛날에 우리 엄마가 나한테 잘못했지. 맞어.”

 

그런 거 막 쫓아가고 그러면 아무... 고통만 있지 아무런 이익이 없어요.

그런 생각이 일어나도 쫓아가지 말고 내버려 두세요.

그냥 딱 보기만 하는 거예요.

 

그게 수행이에요.

그냥 볼뿐이에요.

보면 생각은 구름처럼 맑아지고, 지혜는 태양처럼 솟아난다.

생각을 그치고 바로보면 지혜광명이 솟아난다.

그걸 정각이라고 한다. 이거죠.

정각을 얻으면 그다음부터는 정각뿐이다.

 

그래서 뭘 보더라도

보는 것은 그림자이고

보는 마음뿐이다.

 

뭐든지 뭘 보더라도 그게 내 마음광명인 거예요.

내 마음광명에 비추어진 그림자

내 마음 물에 비추어진 그림자.

 

이렇게 참가를 했으면, 이게 엄청나게 중요한 거예요.

근래에 나도 못했어요.

성불한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