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너는 그럴 수가 있나, 저런 놈을 친구라고’ 등등
그냥 딱 하나야, 그럴 뿐이야.
그리고 그것들이 허상성이 보이니까
조용해지는 거예요.
--관법을 계속해 나가면
오온개공의 정견이나 또는 안이비설신의를
무로 보는 관법을 계속 진행해 나가시면
그 어떠한 복덕이라고 해야 되나
어떠한 그 깨어남이 있게 되냐면
[세상의 모든 일들이
그냥 바다 위에 파도가 생멸하는 것처럼
그냥 그럴 뿐이다]가 돼요.
옛날에는 어떤 사소한 일 하나에도
내가 막 그냥 지지고 볶고 가슴이 천근만근
‘어쩌면 너는 그럴 수가 있나’
‘저런 놈을 친구라고’ 등등
‘이 마누라가 아직도 이 모양인가’
뭐 이런 내면의 목소리가 막 지지고 볶고
그냥 복잡해요.
그런데 이걸 하게 되면
이 모든 게 교통정리가 되는 거예요.
그래서 어떻게 되느냐?
다 그냥 딱 하나야 그럴 뿐이야.
그리고 그것들이 허상성이 보이니까 조용해지는 거예요.
조용해지고
세상이 침묵하기 시작해.
그냥 조용하고
빛만, 내 의식의 빛만
홀로
마치 무슨 보름달이 무슨 추석 명절에 하늘 한가운데 떠 있듯이
대보름달이
그러더니 혼자 독로한 거예요.
그러면 조용해서 여여부동해지기 시작해요.
이런 어떤 부수 효과가 있어요.
다시 말하면
세상사에 여러분들이 스트레스를 안 받게 돼
--세상의 본질?
세상사의 본질이라고 하는 것이 다 환영이기 때문에
그리고 그것들을 통해서 여러분이 깨어날 수가 있는 거죠.
근데 깨어난다는 것은
내가 마치 이렇게 말씀을 드리니까
여러분들이 ‘아 그럼 이런 경제를 통해서 이런 경제로 나아가는가 보다’
이렇게 생각하시는데
그게 아니고요. 깨닫는 건 그냥
지금 이 자리에서 일어나는 일이에요.
그냥 이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으면
그냥 내일은 또 기약해야 돼.
내일 안 돼?
그럼 또 모레를 기약해야지.
그러니까 ‘내가 오늘 안 되더라도 뭐 내일 하면 되겠지’
이런 생각하시면 안 돼요.
‘지금 아니면 못 깨닫는다, 못 깨어난다’라는
절박한 마음으로, 간절한 마음으로 하셔야 되는데
제가 참 아쉬운 게
‘교장이 저기 있으니 나중에 때가 되면 깨닫게 되겠지.
난 지금 바빠서 좀 할 일 좀 해야 되고
내가 하는 일이 더 우선이고’
이런 분들이 너무 많으신 것 같아.
그게 나중에 되는 일이 아니에요.
나중이라는 건 없어요.
오직 지금 여기만 있는 거예요.
계속 지금 여기만이 존재하고 있는 거예요. 그렇잖아요?
그러니까 지금 깨나지 않으면
나중이라는 건 없어.
그래서 이러한 안목에 우리가 눈이 뜨이면
세상 일체의 고유한 뜻이라는 게 없어요, 아무 뜻이 없어.
그냥 내가 뜻의 의미를
‘이게 이러한 거다’라고 생각하니까 그 뜻이 생기는 거지.
그냥 이거는...
여러분 보세요.
마치 우리가 그 양자물리학에서 보면
우주에 브라운운동이라든지, 소립자들의 파동운동이 있어요.
소립자들의 파동운동이 무슨 뜻을 가지고 파동을 일으키나?
내가 오늘 무슨 오늘은 김아무개를 좀 기쁘게 해주고
아니면 인류의 영성을 향상시키기 위해서
오늘 우주의 소립자들은 파동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뭐 이런 거 있나?
없어요.
그냥 자기들은 그냥 그러고 있을 뿐이야.
그러면 여러분들이 그럼 뭐 생각을 일으켜서
‘이렇게 덧없고 무의미한 세상을 살아서 무엇 하나?’
또 이런 생각도 하시는 분들이 있어.
그러니까 이 생각 아니라고 하면
반대되는 저 생각이 떨어지는 거예요.
--본래면복자리 깨닫기
근데 본래면목자리를 깨달으려면
철저하게 무아가 돼서
모든 것이 있는, 본래 그대로 있는
완전히 비고
무의미한 그 자리를 철저하게 봐야 돼요, 우선은.
그래야 확철대오가 되는 거야.
그런데 여러분이 양자물리학하고
현대 그 뉴튼의 일반 물질세계에 대한 역학을 다루는 물리학은
서로 전혀 달라요.
일치가 안 돼.
이게 현재 과학자들의 고민거리야.
분명히 양자미시물리학의 세계에 있어서 이런 법칙인데
이 현상 세계에서의 물리법칙은 전혀 다르거든.
이 두 개를 공통된 법칙을 자꾸 사람들은 찾아내려고 들어요.
근데 거기에는 비결을 알아야 돼.
뭐냐 하면
요건 요 차원이고, 요건 요 차원인 거예요.
그래서 이 차원을 다루는 법칙과
이차원을 다루는 법칙이 다를 수밖에 없는 거예요.
근데 이걸 모르고
자꾸 둘을 한 차원에 있는 거라고 생각하고
공통 법칙을 찾겠다 그러면
영원히 못 찾아요.
[모든 차원에서는
그 차원 나름대로의 법칙이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 말은 무슨 말이냐면
깨달음은 비유하자면
[3차원에서 3차원의 홀로그램성, 환상성을 깨닫고
4차원을 보는 것인데, 4차원으로 들어가는 것]인데
4차원에 들어가 보면
4차원의 법칙과 3차원의 법칙이 따로 놀고 있다는 걸 알게 돼요.
--4차원 3차원 법칙?
즉 여러분은 이런 거 의아심을 많이 낼 거예요.
육조혜능이 ‘선도 아니고 악도 아닐 때
너는 어떤 자리에 있는가?’
이런 선문답을 던진다든가.
불교는 선악을 강조하는 이런 그 철학이 아니에요.
보다 더 근원적인 얘기를 하고 있는 거야.
그런데 3차원 세계에서는 분명히 우리 사는 세계에서는
선은 권장되고 악은 기피되야 될 그 하나의 사상이잖아요.
그러면 만약 3차원 세계에서
‘선함도 무의미하고 악함도 무의미하니까
그냥 마음대로 살자’
이러면 되겠어요? 안 되겠어요?
그러니까 두 세계를 규율하는 그 법이 다른 거예요.
그러니까 이런 것을 여러분들이 깨달음을 얻더라도
생각에 떨어지지 않으면
3차원, 4차원에 동시에 설 수가 있는데
마치 동전의 앞면처럼 동시에 중도가 되는데
이걸 자꾸 생각에 떨어지면
이것과 이것이 서로 모순되는 일이 자꾸 생기는 거예요.
‘도대체 어쩌라는 거야?’ 이런 말이 나온다고요.
--깨달음을 대하는 자세
그래서 우리가 깨달음에 있어서도
철저하게 그 [자기를 무아로 만드는 정견법을 계속해야] 되지만
동시에 이 세상을 사는 것도
[열심히 충실하게 자기 도리와 본분에 맞는 일]을
또 그대로 해나가야 되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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