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현상)를 넘어
바다(본질)를 보라.
식스존 공부 자체가 뭐냐 하면
‘이것은 내가 아니다.’
‘오온이 내가 아니다’를 말하는 게 식스존이예요.
이 몸뚱아리도 내가 아니다.
생각도 내가 아니다.
느낌도 내가 아니다.
감정도 내가 아니다.
인간관계도 내가 아니다.
이런 것을 공부했어요.
근데 ‘내가 아니다’라고 해놓고
‘내가 아니다’라는 생각을 붙들고 있으면
‘내가 아니다’라는 분별에 떨어져 있잖아요.
--식스존 공부란?
그래서 머리로 아는 게 아니고
헤어졌던 부모님을 오래간만에 다시 보는 것과 같다.
예를 들어
어떤 고아가 어려서 미국에 입양이 됐는데
이제 한국에 어떻게 부모하고 연락이 돼서 공항에 마중 나오기로 했어요.
공항에 딱, 비행기에서 내리는 순간
저기 기다리고 있는 사람 보니까
아이고 저 코랑 눈이랑 생긴 게 바로 알아보겠어.
우리 엄마라는 걸, 우리 아빠라는 걸.
여러분 그때 머리에 굴립니까?
그때 “가만히 있어봐, 저 사람이 지금 나이가 약 70으로 돼 보이는데
내 나이에다가 뭘 어쩌고 저쩌고
그다음에 DNA 조사를 했다는데 뭐가 어쩌고”
이런 생각하고 있어요? 아니면 딱 보면 알아봐요?
그거 같은 거예요.
즉 자기 생명자리는
여러분이 지금 이걸, 이 얘기해도 확연하지 않다는 것은
또 ‘생명자리’하고 생각하고 있어요.
*!
이게 생명자리 아니에요.
살아있는 생명자리가 있기 때문에
이게 다 인식이 가능한 현상들 아닙니까?
바다가 살아있으니까 파도가 치죠.
이게 다
*!
그 파도들 아니에요
보고, 말하고 있고, 차 마시고 있고요.
맛있다 맛없다, 말하고 있고
숨 쉬고 있고
이거라고요.
[이 현상이 아니라
이것을 하게 하는 그거]
그거 내가 하고 있지 않잖아요.
저절로 살려주고 있지
내가 막 살겠다고 숨 쉬고 있습니까?
--중생과 깨달은 이 차이
그러니까 그 자리가, 그 살아있는 자리가 ‘법신’이에요.
우리는 간밤에 꿈도 없는 깊은 잠을 잘 때는
없어졌다고 생각해요.
그거는 내가 있다 없다, 분별하는 거고요.
실제로 뭔가 있기 때문에
나의 정체성이 간밤에도 그대로 함장 돼 있다가
아침이 되면 다시 발현나는 거예요.
다시 나타나잖아요.
어제와 내가 달라졌어요?
똑같은 그 사람 아니에요?
그게 살아있다고요.
내 분별 때문에 그걸 못 알아보는 거예요, 나의 진면목을.
그래서 선가에 이런 말이 있어요.
“중생은 생각과 느낌이 솟으면
강아지처럼 그걸 쫓아가느라고 바쁘고
깨달은 자는 그것이 솟아오면
그것을 일어나게 한 자리를 사자처럼 잡아 물어버린다.”
사자냐? 개냐?
이게 바로 이 순간에 갈리는 거예요.
여러분이 일어나는 거 보고, 줄레줄레 쫓아가면
그거는 개가 되는 겁니다.
그리고 일어나는 그것, 이것의 실체를 보면
그때부터 사자가 되는 거예요.
정신을 한 30초만 차리면 돼요.
30초도 필요 없다, 한 5초만 차리면 돼.
이건 뭐 그렇게 길게 수행할 것도 없어요.
그냥 나한테서 일어나는 거를
그 순간에 알아차리면 되는데 그걸 못하는 거예요.
잠들어 있기 때문에.
이제 ‘공하다’라는 것이
금강경에서는 깨닫기 위해서는 ‘일체개공’을 자꾸 얘기해요.
오온이 개공이다. 일체가 개공이다.
‘약견제상비상’이면
‘만약에 모든 것을 그것이 아닌 상으로 보면’
이게 다 그 말이에요.
이거를 이 상이 아닌 것으로 보면 뭐가 보이겠어요?
이 상을 이 상이 아닌 거로 보면 뭐가 보여요?
‘아이고 팔 아프다’가 보이잖아요.
‘아이고 팔 아프다’가.
그 살아있는 생명의 자리가 움직이고 있잖아요.
이렇게 활동하고 있잖아요, 이렇게.
--멈추고 보라!
‘멈추고 본다’라는 게 굉장히 시시한 것 같지만
이게 대단한 거예요.
무슨 말이냐 하면
얼마 전에 유명한 숭산 스님의 스승이, 향곡 스님이라고 계셨는데
그 스님이 어떻게 깨달았냐면
그분은 화두 참선을 하셨죠.
화두 참선을 몇 년 동안 무지막지하게 되면
마지막에 어떤 단계가 되냐면
모든 상념이나 망념이나 다 끊어지고
그냥 이 화두 하나만이 성성하다가
나중에 화두도 없어지고
어떤 그 의문심, 이 퀘스천마크 하나만 남아요.
모든 게 사라지고 이거 하나만 남는다고요.
그 상태에서 잠자는 것도 아니고
일어난 것도 아니고
사람이 그야말로 비몽사몽 속에서
이거 퀘스천 마크 하나 붙들고
며칠을 씨름하는 거예요.
그 단계가 되면
홀연히 어떤 자극만 주면 딱 깨나게 돼요.
‘이게 살아있는 생명 현상이다’라는
요것에 깨나는 거예요.
그래서 향곡 스님, 그분 깨달은 얘기를 제가 책에서 봤는데
그 단계에 들어갔는데, 일주일이 지나도록 안 터지는 거예요.
--현상을 넘어 본질을 보고 아는 자리
그러니까 이 사람이
처마에 기대서 거의 송장처럼 멍하니 있는데
비가 오니까 빗물이 처마로 쫙 떨어지잖아요.
근데 그것도 모르고 그냥 계속 이러고 있는 거예요.
그러다가 똥이 마렵다든가 오줌이 마렵다든가
어쨌든 마려운 현상은 일어나니까
그러니까 어딘가 화장실을 가야 된다는
이렇게 움직이는 순간에 자기 손을 본 거예요.
이렇게 몸이 움직이면 손이 이렇게 따라오잖아요, 자연히.
자기 손 보고 탁 소식이 온 거예요.
손을 봤을까요?
‘손을 보고 깨달았다’ 이렇게 그 책에 나와 있는데
손을 보고 깨달은 게 아니에요, 여러분.
손을 보고 깨달은 게 아니라
손이 움직이는 것을 보고 깨달은 거죠.
그러니까 여러분 자신이에요, 이게 바로.
여러분의 몸이 아니고
몸을 움직이게 하는 그것
여러분의 눈이 아니고 눈을 통해 보는 그것
소리가 아니고 소리를 통해서 소리를 느끼고 아는 그것
그게 지금 여러분이잖아요.
여러분이 제 얘기 잘 알아듣고 계시잖아요.
그거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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