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있으면 외롭고
내적인 공허함을 채우기 위해서
다른 사람을 만나다 보면 계속 흔들림이 있는 것이고요.
인간이 이제 마음에 안정감이 없어집니다.
그러다 보면 남이 안 되면 내가 행복한 그러한 감정들이 있는데
40 이후에 비호감을 줄 수 있는 행동은...
지식 인사이드 구독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철학자 강용수입니다.
고려대학교 철학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있고, 철학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나이 들어서 누구나 겪는 비참한 현실들>
어떤 조사를 보니까
마흔이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모든 나라에서 좀 불행한 시기라고 합니다.
경제적인 어려움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최근에는 물가가 많이 올랐고, 빚 때문에 고생하는 사람들이 많고
또 좋은 일자리가 없어서 고민을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실직, 가난 이런 것들은 인간이 겪는 고통 중에 하나입니다.
두 번째는 마흔이면 노화가 시작되는 나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건강을 잃는 경우도 굉장히 많습니다.
그리고 세 번째로는 인간관계에서 겪는 그러한 갈등들
많은 사람들이 다른 사람과 거리를 두고 혼자 지낸다든가
고독에 빠지는 경우도 많거든요.
공허할 때 다른 사람들을 만납니다.
술 한잔하고 이야기하다 보면 또 상처받는 일이 많습니다.
쇼펜하우어는 고슴도치에 비유를 합니다.
고슴도치는 추우면 얼어죽지 않기 위해서 다른 고슴도치와 함께 합니다.
막상 가까이 가게 되면 가시가 돼서 찌르는 그런 일이 많습니다.
마흔 이후에 비호감을 줄 수 있는 행동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쇼펜하우어 입장에서 본다면
돈 자랑, 집자랑 자식 자랑
남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없는 데 있는 척, 모르는 데 아는 척
그런 허세들이 가장 안 좋은 행동으로 볼 수 있습니다.
<쇼펜하우어가 중년들에게 전하는 냉혹한 인생조언>
--첫 번째는 호감 가는 사람이 되기를 포기해야 됩니다.
호감이라는 것은 다른 사람이 평가하는 겁니다.
세평이라고 그러는데
세평은 흔히 객관적인 평가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평가 내린 사람들은 주관적인 평가를 많이 내립니다.
그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이
우리처럼 좁고, 이기적이고, 편견이 가득 찬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한 사람의 좋은 평가를 받으려고 노력을 많이 합니다마는
그런 것이 얼마나 의미 없는 것인지를 우리가 나중에 깨닫게 됩니다.
타인이 나를 나쁘게 평가하게 되면
그것이 진짜인 것처럼 생각하게 되고요.
그러다 보면 기가 죽게 되고, 위축되고,
‘나는 진짜 보잘 것 없는 사람이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결국은 자존감을 잃게 됩니다.
그래서 좋은 평가를 받으려고 노력할수록
허영심이 될 수 있고, 허세가 될 수 있고, 거짓말도 많이 하게 됩니다.
그러한 속임수로 다른 사람의 마음을 얻기는 어렵다고 볼 수 있습니다.
쇼펜하우어는 자긍심과 자존감을 구분하고 있습니다.
자존감은 남이 인정할 때 생기는 것이고요.
자긍심은 내가 나를 인정할 때 생기는 확신입니다.
두 가지 관계에서 볼 때 자존감은 깨질 수 있습니다.
마흔이라면 한 번쯤은 자존감이 바닥이 되는
그런 경험을 할 필요가 있고요.
자존감에서 자긍심
‘나는 이 정도면 괜찮은데, 왜 세상은 나를 인정하지 못할까’라는 그런 마음에서
자긍심이 생겨납니다.
그런 자긍심을 확장시켜서 자존감으로 만들어야 됩니다.
가령 이런 겁니다.
남에게 평가받을 때
‘자네 일을 이렇게 해서 어떡하겠어’
마음속에 이런 게 생깁니다.
‘이 정도면 괜찮은 것 같은데’
남들이 볼 때는 점수가 너무 낮아요.
‘나 정도면 괜찮지 않느냐’ 하는 게 바로
내적인 확신이고 자기에 대한 확신입니다.
그래서 남에게 잘 보여서
호감을 살려고 하고, 출세하려고 하고, 돈을 벌려고 하는 과정에서
반드시 깨지기 마련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거짓이 많거든요.
진심이 아닌 행동을 통해서
결코 다른 사람의 호감을 받기는 어렵습니다.
--두 번째는 혼자 되는 법을 배우고 즐겨라입니다.
혼자 된다는 거 좀 어렵죠.
그러다 보면 다른 사람을 많이 만나면서
의지하게 되고 어울리게 됩니다.
쇼펜하우어는 인간의 불행이
혼자 될 수 있는 능력이 없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여기서 우리가 오해하는 경우가 있는데요.
쇼펜하우어는 고독의 능력을 중요하게 봤습니다마는
혼자만 지내라는 그런 뜻은 아닙니다.
좀 약간 냉랭한 관계를 가지라는 겁니다.
너무 가까이 가서
자신의 이야기를 다 쏟아놓고
끈끈한 사랑, 끈끈한 우정, 그런 관계보다는
거리를 두면서 적당한 관계를 유지할 필요가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이러한 혼자 있는 힘을 키우기 위해서는
책을 읽는 것이 중요하고
아름다운 풍경을 보거나
좋은 노래를 듣고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자신의 내면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나와 온전히 하나가 될 수 있는 것은
이 세상에 나 하나뿐입니다.
혼자 있는 능력을 키움으로써
타인과 함께할 수 있는 그러한 힘을 키우기도 합니다.
--세 번째, 행복하게 사는 것은 고통을 견디는 것입니다.
인간은 고통이 없기를 바랍니다마는 인생은 고통스럽습니다.
고통은 한편으로는
욕망이 충족이 안 돼서 생기는 고통이 있습니다.
돈이라든가 명예, 권력
이런 것이 없을 때 생기는 고통이 있고요.
다른 한편으로는
그것이 성취되었을 때도 고통이 있습니다.
너무 많은 것을 갖는 경우
만약 돈을 많이 갖게 되면
근심이 생겨나게 되는 것이고요.
많은 사람을 만나게 되면
피곤하게 되고 상처를 받게 되는 일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인생의 고통스러운 게 뭐냐 하면
결핍도 고통스럽고 과잉도 고통스럽기 때문에
쇼펜하우어는 시계추에 비유를 하고 있습니다.
시계추라는 것은 좌우로 왔다갔다하는 운동을 하는데요.
너무 없어도 고통이고
너무 많아도 권태이기 때문에 그것도 하나의 고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두 번째로는 고통은 잘 인지가 됩니다마는
행복은 인지가 안 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예를 들어서
쇼펜하우어가 꼽는 첫 번째 행복은 건강입니다. 신체적인 건강,
두 번째로는 마음의 건강 평온입니다.
근데 사람들은 건강하다는 것이 중요한 걸 알고 있습니다마는
건강을 행복으로 느끼지는 않습니다.
충치를 예를 들면요.
그 하나의 충치가 주는 고통을 우리가 느낍니다마는
건강한 다른 치아의 존재를 모르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충치 때문에 징징거립니다.
아프다고 합니다마는
실제로는 건강한 치아의 존재를 모르고 살아가고요
그와 마찬가지로 인간은 행복했던 일보다는
고통스러운 일을 잘 기억합니다.
지금, 이 순간 우리가 건강하다면
숨을 쉬고 살아있다면 이미 90% 이상은 행복한 겁니다.
그렇지만 인간은 이 짧은 순간의 행복을 못 느끼고
고통만 인지하게 됩니다.
사람들이 인생을 고통스럽다고 생각하는 것은
하나의 착각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이러한 인생의 고통을 없앨 수는 없습니다.
인생에 대한 관점을 바꿔야 됩니다.
고통을 견디는 방법 중에 하나는
[고통이 필요하다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우리가 인생을 바다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항해하는 배가 있습니다.
근데 그 배에는 반드시 균형을 잡아주는 무게추가 필요합니다.
만약 배의 균형을 잡아주는 바닥짐이 없다면 배가 뒤집힐 수 있습니다.
그런 것처럼 우리가 인생을 살아갈 때
너무 마음에 근심이 없다면
그런 배처럼 쉽게 뒤집힐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고통을 통해서 인생의 지혜를 배웁니다.
쾌락은 바깥에서 오는 자극입니다.
그러다 보니까 우리가 다른 사람을 많이 만나게 되고, 맛있는 음식을 먹게 되고
유흥이라든가 즐거움을 찾게 되는데,
그러다 보면 마음의 동요가 오게 됩니다.
마음의 동요가 오게 되면
행복이 지속하지 않고 계속 움직이게 됩니다.
마음의 평온이라는 것은
마치 잔잔한 파도처럼
아니면 조용한 청명한 가을 하늘처럼
흔들림이 없는 상태를 말합니다.
우리가 쾌락을 추구하다 보면 계속 흔들림이 있는 것이고요.
그러다 보면 인간이 마음에 안정감이 없습니다.
오히려 마음의 평온을 찾는다는 것은
고통이 없는 삶을 말합니다.
그래서 쾌락이 있는 삶보다는
고통이 없는 삶을 추구하는 것이
마음의 평온을 위해서 더 중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나이들면서 점점 친구가 사라지는 이유>
친구가 사라지는 이유는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상처를 많이 받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상처를 받는 이유는 뭐냐 하면
비교하는 마음, 시기하는 마음, 질투하는 마음 때문에 그렇습니다.
독일말로 ‘샤덴프로이데(Schadenfreude)’라는 말이 있습니다.
남의 불행이 나의 행복이란 말입니다.
남이 안 되면 내가 행복한 그러한 감정들이 있는데
그런 것들 때문에 점점 친구가 사라진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전해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신과의 영혼이 똑같은 사람,
그런 사람을 찾았는데
결국 찾지 못했습니다.
죽는 순간에 ‘친구는 없다’라고 한탄했다고 전해오고 있습니다.
우리는 내 마음을 완벽하게 알아주는
나와 생각이 똑같은 사람을 찾을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어쩌면 친구가 없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래서 마음이 통하는 친구를 찾는다는 것은
한편으로는 좀 어리석다고 할 수 있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혼자 지내게 되는 것은 자연스럽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혼자 있을 때
우리 자신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내가 어떤 사람인지 들여다보게 되고
자기 성찰을 하게 됩니다.
남의 시선이 아니라
내가 나의 눈으로 나를 들여다볼 때 찾게 되는데요.
남들이 볼 때는 모자랄 것 없을 수도 있습니다.
비루할 수 있고 완벽하지 않을 수 있는데,
내 자신이 나를 들여다볼 때는
부족함이 있습니다마는
내가 의미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내가 이 세상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쇼펜하우어는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이 우주에는 여러 가지 단계가 있습니다.
광물, 돌, 전기 같은 것이 있고요.
그 위에는 식물이 있고 동물이 있고,
그런데 인간이 이 우주에서 가장 개성이 뚜렷한 존재라고 합니다.
내가 욕망하는 것이
이 세상에서 남들과 다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의 존재 의미를 찾는 건 뭐냐 하면
남들과 비교할 때는 의미가 없을 수 있는데,
이 우주에서는 내가 아주 유니크한 존재,
이 세상에서 내가 욕망하는 것은
남들과 다르다는 것을 알 필요가 있습니다.
머리가 좋으면 행복할 것이다라는 그런 생각을 하는데,
거기에 대해서 쇼펜하우어는 여러 가지 입장이 있습니다.
첫째 비사교적인 사람일수록 지능이 높다 라고 볼 수 있는데요.
지능이 높을수록 혼자 즐길 줄 안다는 겁니다.
그래서 여기서 말하는 지성이라는 것은 IQ를 말하는 게 아니라
혼자 즐길 수 있는 어떤 그러한 능력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혼자 자신의 능력으로 지적인 즐거움을 찾는 사람들은
책을 읽고, 클래식을 듣고, 풍경을 바라보고
산책하면서 자신만의 즐거움을 아는 사람들
이것이 남을 만나지 않기 때문에
비사교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지능이 높다고
행복하다고는 볼 수 없다고 쇼펜하우어는 말합니다.
예민할수록 머리가 좋을수록
과거에 대한 기억이 많고 미래에 대한 기대가 많습니다.
그래서 온갖 잡념을 많이 만들어 냅니다.
지능이 높을수록 어쩌면 더 불행해질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사교적인 사람은
자신의 고독으로부터 도망가서 다른 사람과 함께하길 원합니다.
재미있는 시간을 보냅니다마는
결국 상처를 입고 자신으로 되돌아오거든요.
그런 반복을 많이 하게 되는데,
혼자 있는 사람들은 충분히 자신 혼자 자신만의 시간을 갖게 됩니다.
그러면서 자신에 대해서 알게 되고, 통찰하게 되고,
자신에 대한 장점도 알고 단점도 알게 됩니다.
무엇보다도 혼자 책을 읽을 때
사람들은 군주처럼 생각한다고 합니다.
군주라는 것은
다른 사람이 명령하는 게 아니라
자기 스스로 생각하는 능력을 말합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원하는 것인지,
어떻게 행복할 수 있는지를
자기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힘을 키우게 됩니다.
<나이들어서도 좋은 평판을 유지하는 사람들의 특징>
타인으로부터 좋은 평판을 받는 사람들은
남에게 베푸는 사람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쇼펜하우어는 동정심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동정심은 뭐냐 하면
나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고통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작은 고통은 우리의 마음을 닫습니다마는
큰 고통은 우리의 마음을 열어줍니다.
항상 타인도 나와 마찬가지로
큰 고통 속에 있다는 것을 우리가 안다면
도와주고, 베풀고, 자선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라는 철학자는
행복을 스스로 만족하는 것으로 봤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행복을 바깥에서 찾지는 않습니다.
자기 자신에 대한 객관적인 자부심이 필요합니다.
나에 대한 자부심은 이렇게 생겨납니다.
나는 이 세상에서 유일한 존재다
두 번째로는 내가 할 수 있는 능력과 내가 원하는 것을 잘 살펴봐야 합니다.
자기 색깔을 찾는 것은
내가 진짜 원하는 것,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일치시켜야 됩니다.
두 가지가 일치할 때
진짜 행복할 수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시한부 인생을 사는 분들에게 물어봤다고 합니다.
‘다시 태어나면 이런 삶을 살겠느냐?’라고 물어봅니다.
많은 분들은 다시 태어난다면 과거에 살았던 것을 후회하는 겁니다.
그때 후회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이 자기가 진짜 원했던 겁니다.
여행을 좋아했으면 여행, 꽃꽂이라든가. 어학 공부라든가
그리고 능력은 그 뒤에 따라오는 것입니다.
교육이라든가 노력을 통해서 만들 수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내가 진짜 원하는 욕망을 찾고
그것에 대한 능력은 나중에 찾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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