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체, 누구나 이름은 알고 있지만
쉽게 접근하기는 힘든 철학자입니다.
저도 언젠가 관심을 갖고 있다가
니체의 책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펼쳐봤다가 놀란 적이 있죠.
몇 문장 읽어 봤지만, 도저히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어서
이 철학자는 함부로 접근하면 안 되겠구나 하며
한동안 잊고 지냈습니다.
그러다 이 책을 우연히 접하게 되었습니다.
서울대 박찬국 교수님의 ‘초인수업’이라는 책입니다.
일단 제목이 눈길을 끌었죠.
‘수업’이라고 하니까 좀 더 쉽게 개념 정리를 해줄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 느낌은 적중했죠.
‘초인수업’은 니체의 무거운 철학을 아주 쉽게 풀어냅니다.
그중 가장 인상적인 일곱 가지 주제를 소개합니다.
안락한 삶을 추구하는 인간을 경멸한다.
“인간은 짧게 그리고 험난하게 살더라도
자신의 힘,
다시 말해 자신의 생명력이 고양되었음을 느끼고 싶어하는 존재다”
니체의 인간관입니다.
인간이 추구하는 것은 단순히 오랫동안,
편안히 사는 것이 아니라
힘의 고양과 증대라는 것이죠.
니체는 자신과 싸우면서 스스로를 극복하고
안일함을 추구하려는 성향과 투쟁하면서
자신에 대해서 승리하라고 말합니다.
니체는 또 이렇게 말합니다.
“사는 것이 힘들다고 느껴질 때
세상을 원망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의 의지와 생명력이 약해진 것은 아닌지를 돌아봐야 한다”
니체는 고양되고 충만한 상태에 있는 인간을
‘초인’이라고 이름 붙이고 이렇게 표현합니다.
“이런 상태에 있는 인간은 사물의 변형시켜서
마침내 사물들은 그의 힘을 반영하게 되고
그의 완전성을 반영하게 된다”
저는 이 구절에서 스티브 잡스가 문득 떠올랐습니다.
애플이라는 브랜드와 아이폰이라는 제품이
이 구절의 예시로 가장 적절해 보였기 때문이죠.
행복에 대한 정의도 패기 넘칩니다.
“진정한 의미에서의 행복한 인간은
고난과 고통이 없기를 바라지 않고
그런 것들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정신적인 평정과 충일함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이다”
이 대목은 외부 환경과 상관없이
내면의 평정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스토아 철학과도 많이 닮아 있습니다.
2. 의미를 찾지 않을 때 의미있는 삶이 된다.
아이들이 한창 놀이에 빠져 있는 모습을 보면
그 자체가 더 없는 행복이고 천국의 실현이죠.
그런 아이들에게 놀이의 의미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놀이에 빠져있는 자체로 이미 완전한 겁니다.
이렇게 아이처럼 인생이
하나의 재미있는 놀이로 여겨지는 사람은
‘이 놀이를 계속해야 하는지’를 묻지 않습니다.
그저 삶이라는 놀이에 빠져서 그것을 즐길 뿐이죠.
매 순간 충만한 기쁨을 느끼면서 경쾌하게 사는 것,
매 순간 자체가 이미 충만한 의미를 갖고 있기에
그 순간의 충일함을 즐기면서 사는 것
그것이 바로 니체가 말하는
‘아이의 정신으로 사는 것’입니다.
3. 순간은 영원만큼 소중하다
‘영원회귀’라는 말, 들어본 적 있으신가요?
‘초인’과 더불어 니체의 유명한 사상이죠.
영원회귀는 말 그대로 ‘모든 것이
영원히 돌아온다’라는 뜻이죠.
풀어 말하면 지금 현재의 삶이 영원히 되풀이되더라도
이 삶을 긍정할 수 있을 것인가?
같은 선택을 반복할 것인가? 하는
꽤나 부담스러운 질문을 던집니다.
영원히 되풀이될 이 순간을 긍정하기 위해서
지금 나의 선택과 행동이
그만큼 의미 있고 중요하다는 것이죠.
결국 찰나의 순간순간이
영원의 무게를 지닐 만큼 소중한 겁니다.
이 순간을 긍정하며 충만하게 살아야할 이유인 것이죠.
4. 당신의 적을 경외하라.
니체는 그리스도교가 인간의 자연스러운 본능인
성욕, 소유욕, 지배욕 등을 악으로 단죄하고
막으려고만 한다고 비판합니다.
그런 본능은 인간의 본질적인 욕망이기 때문에
이를 막는 것은 삶 자체를 부정하는 것과 다름없다는 것이죠.
니체는 이런 욕망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승화시켜야지
제거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합니다.
오히려 이런 욕망을 제거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숭고한 사람으로 보기보단
자신의 욕망을 적절히 통제할 수 없는
연약한 인간으로 취급하죠.
그래서 경쟁에 대해서도 이렇게 얘기합니다.
“투쟁과 경쟁은 불가피하고
그것이 불가피한 이상
어떤 형태의 투쟁과 경쟁이 바람직한지를 생각하면서
그것을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5. 당신을 위한 신은 어디에도 없다.
예수는 자신을 죽이려는 사람들을 사랑하면서 죽었습니다.
예수가 인류에게 남긴 것은
특정한 교리나 종교가 아니라 이러한 삶의 모습 자체죠.
진짜 예수를 따르는 신자라면
그런 그의 모습을 본받고 실천하는 모습을 보여야 마땅합니다.
그런데 현대의 기독교는 믿음과 헌금을 강요하며
다른 종교와 사상을 수용하지 못하는
편협한 광신도 집단이 돼가고 있죠.
한 발 더 나아가서, 니체는
이런 원수까지 사랑하는 예수의 정신이
‘허약하고 병적인 생리상태에서 비롯된 것’
‘현실적인 자극과 고통을 피해 내면의 평화로 도피’한 것으로 봅니다.
니체는 종교의 불필요함을 이렇게 단언합니다.
“아직 유아기적인 수준의 정신 상태에 있을 때
인류는 환상을 만들어
그것에 의존할 필요가 있었지만
이제는 더 이상 그러한 것들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성장했다.”
종교가 늘어놓는 순진한 신화, 날조된 기적,
현실을 부정하고 내세를 강조하는 교리에 현혹되지 말고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라고 말합니다.
“앞으로의 철학은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현실 자체에 입각하는 것이어야 한다”
-프리드리히 니체
6. 신념은 삶을 짓누르는 짐이다.
신념을 갖고 살아야 한다고 흔히들 얘기하지만
니체는 그릇된 신념의 폐해를 이렇게 경계합니다.
“독단적인 이념(혹은 신앙)을 확신하는 사람은
자신은 그것이 진리이기 때문에 믿는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그 이념이 자신의 삶에 확고한 의미와 방향을 부여하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믿는다”
결국 사람들은 그것이 진실이라서 믿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의미있기 때문에 믿는다는 겁니다.
하지만 이렇게 자신들만 옳다고 여기는 신념 때문에
이념 간 종교 간 갈등이 인류 역사에
얼마나 많은 피바람을 일으켰는지
반성할 필요가 있는 것이죠.
자신의 신념이 그릇된 것은 아닌지
꼭 거기에 얽매일 필요가 있는지
수시로 스스로를 되돌아봐야 합니다.
7. 죽음은 삶의 끝이 아니라 절정이다.
죽음에 관한 생각 역시 평범하지 않습니다.
니체는 이상적인 죽음을 다음과 같이 표현합니다.
“더 이상 긍지를 갖고 살 수 없을 때 당상하게 죽는 것
자발적으로 선택한 죽음
자식들과 다른 사람들이 보는 가운데
명료한 의식을 갖고 기뻐하면서 적시에 이루어지는 죽음
그리하여 떠나는 자가 아직 살아 있는 동안에 작별을 고하는 것이 가능한 죽음
또한 생전에 성취한 것과 원했던 것에 대한 진정한 평가와 삶에 대한 총결산이 가능한 죽음”
그리고 곧바로 스코트 니어링의 마지막 순간을 묘사하는 단락이 이어집니다.
스코트 니어링은 100세 생일을 앞두고
스스로 음식을 끊고 아내가 지켜보는 가운데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잃지 않으면서
당당한 죽음을 맞이합니다.
스스로 선택하는 평화롭고 아름다운 죽음의 전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니체 사상의 전반을 살펴보니까
거침없이 강직하고
때론 지나치다 싶은 독설이 너무 날카롭게 들리기도 합니다.
힐링이 대세인 요즘 같은 시대에
니체의 철학은 불편하게 들리기도 하죠.
하지만 달달한 힐링만으로 버티기에는 삶이 만만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비상식과 부조리가 판치는 시대에는
오히려 이런 강인하고 패기 넘치는 철학도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나를 죽이지 않는 것은
나를 더욱 강하게 만든다”
-프리드리히 니체
편안한 힐링과 안락한 삶이라는 네모에
안주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 네모를
깨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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