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항상 저 나무들 뿌리하고 싹 얘기를 하죠.
그런데 우리가 지금 누구나가 다 나무 싹과 뿌리가 있듯이
그렇게 본래 그냥 그렇게 달려 있단 말입니다.
그런데 그걸 모르니까
“네 뿌리는 바로 네 주인공이다.” 이렇게 얘기하는 겁니다.
그리고 우리가 쉽게 가르치기 위해서
이 일체 우주 전체를 한데 쌓아봤자
이 콩 알갱이 하나로도 할 수 있고
요런 데로 하나도 할 수 있고
한 사발로도 할 수 있고
한 주먹으로도 할 수 있고
아주 없이도 할 수 있단 얘깁니다.
그 모두를 하나로다가 이렇게 했을 때
그 콩 하나를 갖다 짊어지니까
세상에 짊어질 수도 없고 무겁더라.
그런데 그거를 어떡하면 빨리 해소를 시킬 수 있나.
그래서 그냥 무조건 관하라고 그런 겁니다.
진짜로 믿는다면
믿는 것만치 없어질 거고
믿지 못하고 뭐를 얻으려고만 한다면
그것이 없어지지 않고
어떻게 해서 자기 정성에 의해서 그것이 조금 나을 뿐이지
그것이 없어지거나 그런 것이 없다는 얘깁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지금 현재만 살려고 그러지 말고
세세생생을 살기 위해서
자유인으로 살기 위해서
그걸 벗어버려야 된다.
지금 짊어진 콩 한 알갱이를 산더미 같은 산이라고 그런다면
산 하나를 짊어지고 다니는데
‘그 무거운 거를 그냥 다 놔라’ 이 소린데
진짜 믿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진짜 자기 그, 주인공이라는 자기 자불을
진짜 믿어야만 꼭 하는데
믿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이겁니다.
근데 우리가 믿는다 하는 거는
우리가 보면 알죠.
눈 뜨고 보고 귀를 뜨고 듣고 이렇게 하는데
우리가 그렇게 형성시켜서 이끌어 나갈 수 있게 만든 자가 누구냐는 얘깁니다.
그럼 자기의 종자의 근본 아니겠습니까.
자기 종자라는 근본인데
그 근본으로 인해서 자기가 생겼다면
그 근본에다가 다 놔야죠.
진짜로 믿고 놔야죠.
그리고 하는 것도 먹는 것도 뭐 일상생활 하는 거, 똥 누는 거,
뭐 일거수일투족이 다
그놈 때문에 움죽거리게 되는 거니까요.
그러니까 ‘산이 하나다’ 해도 되고
‘콩 한 알갱이다’ 하는데
그 콩 한 알갱이가 짊어져도 짊어질 수가 없으리만큼 무겁다 이 소립니다.
근데 그거 하나를 없애려고 한다면
진짜로 믿고
무조건 가난하든 돈이 있든 없든, 밥을 굶든 먹든,
굶지 않게 해주는 것도 너고
살리는 것도 너고
길을 걷게 하는 것도 너고
이게 모두가 믿는 게 그냥, 그냥 그리로 다라야죠, 다. 다죠.
자기 모습이 자기가 아니니까요.
그러니까 부처님 머리 위에 상투를 이렇게 하나 해 놨다고도 보고
또 때로는 부처님을 여기다 새겨 놓기도 하고
때로는 여기다 금으로다 이렇게 지금도 해놨지만
그렇게 해 놓은 것은
바로 그게 크고 좋아서가 아니라
그 뜻으로 볼 때는 텅텅 빈 모습이다.
텅텅 빈 모습인데 무엇이 있겠느냐.
그런데도 갖추어가지고 계시다.
텅텅 비고 없기 때문에 갖추어가지고 있는 거지
뭐가 있다고 생각을 한다면 갖추어가지고 있을 수가 없죠.
오장 육부가 다 있다면
갖추어가지고 있을 수가 없어요.
그러니까 우리가
내 손도 빈 손, 부처님 손도 빈 손, 부처님 발도 빈 발, 부처님 몸도 빈 몸, 나도 빈 몸,
빈 몸이니까 빈 마음
함도 없이 하고 가는구나 하고
그저 이 모두를 알 양으로 애를 쓰지 말고
모두가 공했다는 거
우리가 공해서 함이 없이 하고
지금 생활을 하고 간다는 거.
그러니까 모두가 수억겁 전년서부터 둘이 아니게끔 돼 있다는 거
인과로써 인연으로써….
그러니까 모두 그 뜻만 대략 알면
그냥 믿고 가도 된다 이겁니다.
왜 부처님께서
바보를 가르쳐도 모르고 가르쳐도 모르니까
빗자루를 하나 줬단 말입니다.
“너는 이 빗자루 하나 가지고 항상 쓸고 털고 그래라.” 하구요.
거기서 터득을 한 거예요.
그래서 우리는 수없이 안다 하더라도 안 거는 다 놔야 한다.
아는 것을 다 놓지 않는다면
그 아는 것 때문에 길고 짧고, 이론이 이렇고 저렇고,
이론이 많아서 오히려 갈 길을 더디게 만든다. 이런 소리죠.
그러니까 일거수일투족 버리라는 게 아니에요.
하되 함이 없이 해라.
공 했으니까 너는 함이 없이 하는 거다.
왜, 테레비에 영화로 이렇게 그림이 나오죠.
그림이 나와서 별짓 다 하죠.
집에서 한 사람이 앉아서 보니까
자기가 그렇게 별짓 다 하고 있거든요.
그렇게 볼 수 있다면 어떻게 생각하시겠어요?
저거는 내 환상이 저렇게 하고 있고
나는 그냥 여기 앉아서 그걸 보고 있다.
그렇게 환상이 온통 다 하고 살 듯 이렇게 하고 살아요.
그런데 우리가 거짓이 아닌 것처럼 그렇게 돼 있죠.
그렇기 때문에 사람이 죽거나 뭐 어디 다치거나 그런다면
어우 그냥 야단나죠.
그러나 죽어도 고만 살아도 고만
이런 것이 다 무심하게 돌아가죠.
알게 되면 이 얼음판을 걸어와도 아주 편안하게 걸어올 겁니다.
그래 어느 사람이 강을 건너는데, 아주 얼음이 얼었는데
그 고기들을 잡느라고 모두 얼음을 꺼놓은 자리가 모두 큰 게 있어.
뭐 잘못 걸으면 풍덩 빠져서 그냥 모두 야단들이 나니까
잘 걸어오는데
스님네들 둘은 하나도 거침없이 그냥 고개도 돌리지 않고 그냥 오거든요.
그래 옆에서 오는 사람들은
모두 두리번두리번 거리고
간이 콩만 해서 모두 오는데
다 건너와서
“스님, 스님!” 물었어요.
“스님네들은 이 강을 건너오시는데 겁이 나시지 않으십니까?” 하고 물으니까
“나는 이 강을 건너온 새도 없는데 어떻게 겁이 나겠소.” 하더랍니다.
그거와 같이 우리가 지금 살아나가도 사는 게 아니면서도
‘아니다’ 이러는 걸 알면
그냥 삶이 없이 사는 거죠, 그냥.
그래서 내가 그러는 겁니다.
관해서 놓으면 환상이 생겨서
내 몸에 환상이 들어서
모두 병 문제가 일어나는 것을
그 환상이 둘이 아니게끔 딱…,
왜 그런 것도 있죠.
이 한 모습에 한 모습이 딱 들어가서 하나가 된다구요.
그런 거 보죠?
그런 거 보시면 아시듯이
그렇게 수천 개가 들어가도
그거는 들어가고 나간 사이가 없다는 얘기죠.
그렇기 때문에 그 병은 그대로 낫는다.
자기 몸을 자기가 죽일 리가 없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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