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후 임신한 상태에서 친정엄마가 갑자기 돌아가신 슬픔에다 남편과 사이가 좋지 않았습니다.
지금 아들딸이 30세 29세가 되었습니다.
저의 관심은 항상 아들에게 향해 매일 눈물이 저절로 난다고 합니다.
특히 친오빠를 너무 미워하고 오빠와 자신을 차별한 엄마도 원망합니다.
자기의 감정을 이야기하면 버림받을 것 같았다고도 합니다.//
애가 어릴 때면 자기가 할 일이 많은데
20살 넘은 성인이 되었기 때문에 자기 할 일은 지금 없습니다.
이제 딸의 병은 의사가 진료해서
그에 맞게 치료를 하는 거고요
딸은 의사의 진료에 따라서 치료를 받는 길밖에 없다.
이렇게 볼 수 있습니다.
이제는 크게 도움이 안 됩니다.
그러니까 어릴 때 자기가 심리적으로 불안하거나
이런 것이 아이들의 심리 불안에 영향을 줬고요
또 아들에 대해서 너무 관심을 두다 보니까
딸이 조금 차별을 받는 또는 서운한, 그런 감정들이 쌓였는데
이게 어릴 때 상처를 입은 거는 중간에는 잘 표가 안납니다.
그러다 주로 이제 사춘기 때 한번 드러나고요.
사춘기를 건너뛰면 연애할 때 연애하거나 결혼할 때 나타납니다.
그다음에 이제 그것도 어떻게 넘어가면 갱년기 때 다시 나타나고요.
그러니까 어떤 어려움에 처했을 때 상처 입은 것이 발병을 하거든요.
그러니까 뭐 애가 사춘기 때 친구 잘못 사귀어서 그렇다
뭐 시험에 떨어져서 그렇다
뭐 애인하고 헤어져서 그렇다
이렇게 얘기하는 거는 맞지가 않습니다.
그건 하나의 계기가 된 거고
발병할 요인을 갖고 있었다
그건 대부분 다 발병할 요인은
어릴 때, 제일 근본은 3살 때까지
자아가 형성될 때 어떻게 자아가 형성됐느냐?
그러면 어지간한 외부 환경에 크게 영향을 안 받게 되는 거고요
그때 상처를 입게 되면 외부 환경에 민감한 반응을 하게 된다.
또 그다음에 4살부터 한 12세 살까지, 유치원, 초등학교 시기에 상처받은 것들
이런 것들이 또 나중에 나타납니다.
그래서 뭐 자기가 잘못했다, 어릴 때 엄마로서 잘못했다 하더라도
자기가 뭐 의도적으로 잘못한 것도 아니고
자기도 몰라서 자기 살기 바빠서 그래서 한 거기 때문에
어리석다라고는 할 수 있지만은
뭐 자기가 죄인이다, 이렇게 말할 수는 없다, 이런 얘기에요
“아, 내가 그때 좀 어리석었구나”
어린아이가 어떻게 의식이 형성되고 심성이 형성되는지를 내가 몰라서
그저 뭐 맛있는 거 먹이고 좋은 옷만 입히면 애는 자라는 줄 알았죠.
그거는 동물적인 관점이고
인류적으로는 정신적인 안정을 줘야 되거든요.
그 부분에 내가 좀 부족했구나 어리석었구나
이런 정도의 반성은 필요하지만
내가 잘했다고 할 건 없다는 거예요.
딸이 뭐 원망을 하든 뭘 하든, 뭐 내가 어떻게 하란 말이냐?
이렇게 내 칠 거는 없지만
그렇다고 내가 뭐 죽을죄를 지었다든지, 다 내 탓이라든지
이렇게 얘기할 것은 아니다.
나도 또 그런 불안한 심리를 갖는 것은
우리 어머니로부터 내가 어릴 때 또 그런 환경에서 자라서 형성된 거지
내가 뭐 이루고 싶어서 이런 거는 아니다.
그래서 딸에 대해서 어떤 뭐 죄의식을 가질 필요는 없다, 이런 얘기에요.
인생이 이런 거니까.
...
지금은 약간 우울증이 있는 환자 상태이기 때문에
독립을 얘기할 단계는 아닙니다.
어린아이는 신체에 이상이 없더라도 부모가 보살펴야 하잖아요.
성인이 되면 자기 인생 자기가 살아야 하지만
‘다쳤다, 병이 났다’ 하면 옆에서 누가 간호해야 하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독립이라는 것은 건강할 때의 얘기지
지금 환자 상태인데 뭐 자꾸 독립을 얘기하는 거는
그게 육체적인 질환이면 팔이 부러졌거나 다리가 부러졌거나 하면
환자라는 걸 아는데
정신적인 지금 질환을 앓고 있으니까
상대가 멀쩡하다고 생각하니까 지금 이런 말씀을 하는 것 같거든요.
그러니까 지금은 치료를 요할 때다
치료를 혼자서 직장 생활하면서 치료받을 수 있는 것보다 더 어렵다면
이제 부모님 집에 와서 당분간 있으면서 치료받는 그런 기간이 필요하다
이렇게 말할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치료에 집중할 때고
엄마는 ‘내가 큰 죄를 지었다’ 하는 생각도 하지 말아야 하고
‘내가 너무 힘들다, 왜 자꾸 나한테 이러나’
이렇게 생각했어도 안 된다.
지금 이 아이가 23살 먹은 성인으로서 지금 엄마한테 하는 얘기가 아니고
형식은 그렇지만
어릴 때 이번 그 상처, 어릴 때 얘기를 계속하고 있기 때문에
엄마한테 얘기할 때는 지금 어린아이로서 얘기하고 있거든요.
“아이고 엄마가 그때 몰라서 그랬다 엄마 그래서 힘들어서”
그러니까 어른이 다 돼 가지고 부부 갈등이 생기면
그런 힘든 걸 자꾸 애한테 얘기하는 좋은 게 아니에요.
여러분은 자꾸 애한테 자기 어려운 걸 얘기해서 아이들의 그 동정심을 사서 아이를
자기 편으로 만들려고 그러거든요.
부부 싸움하는데 애를 자기편으로 만들었으면 뭐 해요?
그건 다 아이들에게 나중에 상처가 되는 일이다.
그러니까 그건 내가 어리석어서 잘못한 거니까
그때 내가 뭘 몰라서 그랬다 미안하다 하는 얘기는 필요해요.
죄를 지었다는 건 아니고.
두 번째는 “아이가 어떤 얘기를 하면 지금 언제까지 이걸 들어줘야 하나?”
이 생각이 잘못됐다.
이것은 죽을 때까지 해도 죽을 때까지 들어줘야 하고
또 어느 정도 하다가 마칠 수도 있다.
그러니까 그런 거를 기한을 정해서
언제까지면 들어주고 언제까지면 못 들어준다는 거는
“정말 아이가 힘들구나, 내가 들어줘야 하겠다” 이렇게 생각하는 게 아니라
참고 있다, 참고 있기 때문에 참으니까 언제까지 참아야 되나 이런 얘기가 있거든요.
그러니까 아이가 마음에 상처가 많았구나
이러면서 어떤 얘기를 해도
그래 그래 그래
이렇게 얘기해라, 얘기하라고도 하지 말고
아이가 듣기 싫다고도 하지 말고
아이가 얘기하면 항상 동조를 해주는 동감을 해주는 이런 자세로
언제까지라는 기한을 정하면 안 된다.
굳이 기간을 정한다면 마음의 상처가 어느 정도 치유될 때까지라고 말할 수가 있다,
이런 얘기에요.
...
지금 환자 상태이기 때문에
그러니까 딸을 환자라고 본인이 생각 안 하기 때문에 이런 궁리를 자꾸 하는 거예요.
환자라는 관점을 가져야 하는데
환자가 아니라는 생각을
환자라고 하면서도 우리가 가족 모임을 넷이 다 만나야 하나 안 만나야 하나
이런 건 딸이 정상적인 사람일 때 얘기고
딸이 환자기 때문에
환자에게 나쁜 영향을 주는 건 뭐든지 안 하는 관점을 가지면
이게 어떻게 논의 거리가 됩니까?
딸이 싫다면 딸은 지금 그냥 정상인으로서 싫다가 아니라
정상으로 싫다 그러면
‘오빠를 싫어하면 안 된다’ 이런 설득이 되지만
이거는 환자 상태이기 때문에, 치유를 필요한 환자기 때문에
거기다가 가족이 모이는데 그래도 빠져도 되나?
오빠가 오는데 그래서 되나?
이런 얘기는 환자한테는 맞지 않는 얘기다
그건 벌써 엄마가 늘 자기 생각
“우리 가족이 같이 만나야지” 이게 앞서지
우리 딸이 지금 정신적으로 어려운 환자 상태라는 것을
전혀 고려 안 하는 사고방식을 계속 가지고 있다는 거예요.
이렇게 되면 딸은 계속 상처를 입게 된다.
그러니까 뭐 직장을 다녀야 한다.
결혼해야 한다.
가족이니까 만나야 한다.
형제니까 만나야 한다,
이런 생각을 다 버려야 한다는 거예요
지금 환자니까 제일 중요한 거는 뭐다?
치유다.
병원에 다니면서 치료받는 것
그리고 환자가 비교적 치유에 도움이 되는 어떤 공간을 우리가 마련해 주는 것
이런 관점에서 얘기해야지
지금 뭐 나이가 찼으니까 결혼을 해야 한다든지
이런 소위 세상의 가치관을 갖고 자꾸 딸을 평가하는 것은
엄마가 아직도 자기 생각하고 있다.
딸의 관점에서 사물을 보는 게 아니라
내 관점에서 사물을 보고 있다는 거예요.
이거는 만나야 되나 안 만나야 되나, 이런 생각 자체는 안 해야 돼요.
그런 생각 자체가 이미 딸이 환자고, 지금 치료 중이고
우리는 치료가 잘 될 수 있도록 보호해야 한다.
그 치료 기관에는 윤리고 도덕이고 무슨 욕망이고
무슨 이런 거 다 팽개치고
그저 네가 살아있으면 된다, 네가 건강하면 된다
다른 것은 걱정하지 마라
이런 관점에 딱 서야 치유가 되지
환자를 데리고 계속
다리를 다쳐서 지금 깁스를 해놨는데
“아이고 내일 운동해야 하는데
내일 하루만 바짝 달리고 와서 깁스 다시 하면 안 될까?”
이런 얘기하는 거나 똑같은 얘기다, 어리석은 얘기다.
...
그러니까 환자 상태가 어떻냐를 자기가 살피고
의사가 지금은 직장 갈 형편이 못 됩니다, 이런 평가라면
본인이 아무리 하고 싶다 해도 조금 말려야 되는 거고
의사가 ‘약을 먹고 진료를 받으면 직장 다니는 데는 큰 지장이 없습니다’
그러면 직장을 보내는 거고
본인이 가라가 아니라
본인이 가겠다 그러면 허용하는 거고
다니다가 힘들어서 본인이 오겠다면 또 오라 그러는 거고
그거를 내가 자꾸 지금 계속 질문은
‘내가 어떻게 하느냐?’ 이 생각을 하거든.
이게 어리석다는 거예요.
자기는 그 버릇 끝나기 어려울 것 같아요.
지금 질문을 내가 몇 번 받아보니까.
계속 내가 ‘딸한테 어떻게 해줘야 하나?’
이 생각을 하거든요.
아무 생각도 하지 말고
딸이 가겠다 보내주고, 오겠다면 받고
뭐 가족 모임에 안 가겠다면 ‘그래라’ 그러고
오겠다 그러면 ‘오라’ 그러고
관점을 자기 생각을 내려놔야 한다, 이 얘기에요, 핵심이.
...
딸을 미워하지도 말고 싫어하지도 말고
잘해주려고도 하지 마세요.
옛날에 내가 못 해준 거
그거 자꾸 빚 갚으려고 그런 생각도 하지 말고
기본적으로는 20살이 넘었으면
과거에 내가 어떻게 했던 관계없이
자기 인생 자기가 살아야 하는 거에요.
그러니까 그 자립을 가장 중요시하고
그러나 아픔을 호소할 때는 내가 도움이 된다면 도와주겠다.
그거는 요청하는 정도 선에서만 거절하지 않으면 되지
나서서 하는 것은 성인의 관계에서는 옳지가 않다.
그러면 자립심을 떨어뜨린다
그러면 죽을 때까지 돌봐야 될 이런 문제가 발생한다
그러면 나도 힘들고 자녀는 자녀대로 자기 인생을 못 살아갑니다
여러분들의 아이들에게 너무 내가 헌신해서 너를 키웠다는 걸 강조하면
아이가 자유롭지 못해집니다
엄마는 널 키우면서 참 재밌었다
그래서 너는 엄마나 아빠한테 아무런 부담을 갖지 말고 너희들 인생을 자유롭게 살아라
이렇게 무거운 점을 덜어 줘야 합니다
그래야 아이들이 자기들을 나름대로 꿈을 가지고
출가해서 승리가 되던 신부가 되든 뭐 수녀가 되든 뭐 혼자 살든 뭐 모험을 해보든
자기 인생을 개척하도록 무거짐을 열어 줘야 하는데
엄마를 두고 네가 그래야 되느냐 이래야 되느냐 저래야 되느냐
자꾸 이래 버리면
아이들은 그냥 엄마의 노예 노예밖에 안 된다 이런 얘기에요.
한참 부처님을 생각해 보십시오
부모가 원하는 것은 결혼해서 애까지 있는 남자가 집을 버리고 출가하면
어느 부모가 안 말리겠어요
부모 말 들었으면 위대한 성자가 출현했겠습니까?
그러니까 여러분들 말 잘 듣는 자녀가 되는 것을 원하시면 안 됩니다.
여러분들 말 잘 들으면 여러분들의 노예지, 여러분들이 하수인이지 그게 무슨 자유인입니까
적어도 우리 아들 딸들은 자연인이 되라
이렇게 좀 열어주고 대화를 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리고 과거에 내가 좀 부족한게 있었다면 솔직하게 인정하는게 필요해요
자꾸 이렇게 애한테 하소연하지 말고
“그래 네 말 맞다 엄마가 어리석었다 그때 내가 지혜가 좀 있었으면 안 그랬을 텐데
그때 부족한 걸 그걸 어떡하느냐 미안하다
이러고 끝내야지
그래서 뭐 또 보상을 하겠다 이런 생각을 하지 마라
20살까지 키워준 것만 해도 끝난 거예요
일단은 관계를 끊고
새로 서로 도움이 되면 서로 지원을 하는 이런 관점이리야
부모 자식이 원수가 되지 않고
끝까지 좋은 인연을 맺어 나갈 수가 있다.
'법륜스님 > 즉문즉설(2023)'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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