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발달이 더딘 아이를 키우고 있습니다.
아이는 많이 움직이고 다람쥐 같이 빠르며 충동적입니다.
지금 열네 살인데 저는 아직도 아이에게서 눈을 못 떼고
늘 아이에게 매달려 있는 상황입니다.
얼마 전 하교 중에 아이가 갑자기 차 문을 열고 몸을 밖으로 내밀어
큰 사고가 날 뻔했습니다.
제가 죽을힘을 다해 아이를 붙잡았고 주변 사람들이 도와주어서
다시 아이를 차에 태워 집으로 데리고 올 수 있었어요.
지금도 ‘그때 아이를 놓쳤더라면 어쩔 뻔 했나?’ 하는 생각이 떠오르면
너무 긴장되고 불안한 마음이 듭니다.
신경과 약을 먹어도 잠들기 어렵고 순간순간 가슴이 마구 뜁니다.
아이를 출산한 후 3년 동안은 제가 키웠고
그다음에는 시어머니께서 낮에 아이를 봐주셨는데
얼마 전 제가 병으로 휴직을 하면서
어머니와 번갈아 아이를 보던 중에 이런 일이 생겼습니다.
생계 때문에 내년에는 다시 직장에 나가야 합니다.
시어머니도 이제 연로하셔서 다 큰 아이를 감당하기가 어렵습니다.
병원에서는 더 이상 아이에게 추가할 약물이 없고
행동을 가르쳐야 한다는데 쉽지가 않네요.
같은 약을 먹고도 아이가 어떤 날은 좀 차분하지만
대부분 충동적 행동을 합니다.
남편과 서로 의지하며 지금까지 잘 버텨왔다고 생각했는데
이 일로 큰 충격을 받아서 불안이 커졌습니다.
아이를 가둬놓을 수도 없고요.
아이를 위해 안 가본 곳, 안 해본 것 없이 다 해봤습니다.
그런데 가는 곳마다 저희 아이 같은 경우는 처음 본다고 얘기합니다.
절에서 하라는 것도 다 하고 기도도 많이 드리고
온 가족이 아이를 위해서 사는데
아이가 아직 위험조차 분간을 못 하니
어떻게 살아야 할지 너무 막막합니다.
스님의 지혜로운 말씀 부탁드립니다.//
의사의 진단이 있었다고 했는데 아이가 장애 등급을 받았습니까?
지체 장애로 판정받았나요?
자폐 증상을 완전히 치료하기는 어렵더라도
자폐아를 전문으로 교육하는 학교나 보호 시설이 있지 않습니까?
질문자가 돌보다가 아이에게 사고가 나는 것보다는
시설에 있는 게 낫지 않을까요?
왜냐하면 아이가 이제 많이 컸으니까요.
아이가 어릴 때는 질문자가 통제할 수 있었겠지만 크면 통제하기가 어렵습니다.
아무리 부모라 하더라도
전문가가 보살피는 게 아이에게 더 낫다고 생각하면
아이와 떨어지는 아픔을 감수하고 전문가에게 맡겨야 합니다.
부모가 아이를 보살피는 게 좋다고 하면
아무리 힘들어도 부모가 맡아서 키워야 되듯이 말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안쓰럽다’가 기준이 되면 안 됩니다.
‘어느 것이 아이에게 더 좋은가’를 기준으로 삼아야 해요.
아이가 벌써 14살이 되었는데 행동 조절하는 훈련을 안 받아 두면
앞으로 그 아이가 어떻게 혼자 살아가겠어요?
아이가 스무 살이 되고 서른 살이 되어도 질문자가 돌볼 수 있을까요?
힘이 달립니다.
그것은 어리석은 생각입니다.
의사 선생님과 전문가의 소견을 받아서
어떻게 하는 게 좋을지 가족과 의논을 해보세요.
아이가 집에 있으면서 자폐아를 전문적으로 훈련시키는 학교를 다닐지
아니면 평일에는 시설에서 보살핌을 받다가
주말에 집에 오는 방식이 나을지 결정해야 합니다.
이 문제는 운다고, 절에 가서 기도한다고 해결되지 않아요.
자폐를 가진 아이도 나름대로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길을 열어줘야 합니다.
질문자가 영원히 아이를 보살필 수는 없잖아요.
어릴 때부터 시설에 들어와 훈련받은 사람들은
사람들과 어울리며 잘 지냅니다.
그런데 집에만 있다가 서른 살, 마흔 살이 되어서
부모가 죽고 아무도 돌볼 사람이 없자
뒤늦게 시설에 들어오는 사람들도 있어요.
그분들은 살면서
인간관계를 맺거나 사회성을 기르는 훈련을 받은 적이 없기 때문에
행동이 굉장히 거친 편이에요.
저는 지적장애인 거주시설 애광원에 사는 분들과
매년 봄, 가을에 나들이를 함께 하고 있습니다.
이번 가을에도 경주로 나들이를 다녀왔어요.
대부분 버스에서 내리면서 반갑게 인사를 하는데
어떤 분은 차에서 내리면서 욕을 하고 몸을 밀치기도 했습니다.
제가 선생님에게 어떤 분인지 물어보니
들어온 지 1년밖에 안 된 분이라고 했습니다.
아직 훈련이 되지 않아서 행동이 거칠다 보니
애광원 선생님들도 보살피기가 매우 힘들다고 했어요.
그래서 어렸을 때부터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훈련을 시켜야 합니다.
훈련이 되어야 아이가 성장할수록 부모도 짐을 덜고
아이도 스스로 인생을 살아갈 수 있는 힘을 키울 수 있습니다.
병이 있는 아이를 돌보려면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훈련을 시켜야지
교회나 절에 가서 빈다고 이 문제가 해결이 될까요?
질문자는 전문가가 아니잖아요.
어린아이는 먹여주고 재워주기만 하면 되지만
아이가 자랄수록 스스로 살아갈 수 있는 힘을 길러줘야 합니다.
그러니까 어리석은 생각 그만하시고 전문가와 상의해서
무엇이 아이의 인생에 도움이 되는지 의논을 해야 합니다.
제일 좋은 방법은 아이가 전문 시설에서 생활하면서 훈련을 받는 거예요.
질문자는 정기적으로 면회를 가고
주말에는 집에 와서 같이 지내면 됩니다.
시설에 보내고 싶지 않으면
집에서 특수 교육을 하는 학교에 다니는 방법도 있습니다.
전문가와 상의해서 어떻게 집에서 등하교를 하면서
아이를 교육시킬 수 있는지를 알아봐야 합니다.
장애를 가진 아이도 행복하게 살 권리가 있고
그 부모도 행복하게 살 권리가 있어요.
질문자처럼 장애를 가진 아이를 키우면
부모는 평생 아이 때문에 큰 짐을 안고 자기 인생을 포기하고 살아야 합니다.
그건 헌신이 아니라 어리석음입니다.
이런 문제는 가족이 전부 책임지기 어렵습니다.
사회와 국가의 도움을 받아야 해요.
사회구성원이 공동으로 이런 사람을 책임지기 위해서
정부에서 운영하는 전문 시설이 존재하는 겁니다.
그러니 아이가 전문 시설에서 훈련과 교육을 받도록 해야 합니다.
평생 아이를 집에서 돌본다면
질문자는 자기 인생을 버리는 것과 같습니다.
설령 질문자가 살아있고
힘이 있는 동안에는 아이를 돌봐줄 수 있겠지만
10년 후, 20년 후를 생각해 보면
질문자의 생각이 어리석은 생각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그래서 계속 더 알아보라고 얘기하는 거예요.
부모가 없는 장애 아동은 국가에서 시설 비용을 책임집니다.
부모가 있다면 부모가 시설 비용의 일부를 책임지도록 되어있어요.
장애의 정도가 심하면
부모가 직접 돌보고 훈련시키기가 어려운 게 현실입니다.
또, 아이가 커 갈수록 힘도 세지고 행동도 거칠어지기 때문에
부모가 돌보며 교육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게 됩니다.
전문가도 아닌 부모가 직장을 다니면서
장애 아동을 키우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습니다.
그러니 전문가와 상담을 해서
훈련을 전문적으로 하는 시설이 있는지 알아보는 게 우선입니다.
경우에 따라 해당 지역 안에서만 인원을 추천받는 시설도 있습니다.
혼자 힘으로 아이를 키우다가
어느 날 집 밖으로 나가 사라질 수도 있습니다.
그런 경우를 모두 대처할 방법이 없어요.
질문자가 걱정한다고 그런 일이 안 일어나는 게 아닙니다.
인생이라는 게 그렇습니다.
건강한 사람도 갑자기 교통사고가 나서 죽을 수 있어요.
건강한 사람도 어느 날 암이 생겨서 죽음을 눈앞에 두게 되잖아요.
그런 모든 경우의 수를 다 걱정을 한다면 세상을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차도 못 타고, 비행기도 못 타고, 심지어 길거리에도 못 나가는 거예요.
뉴스를 보면 갑자기 도로를 달리던 차가
인도로 들어와 사람이 죽는 경우도 있습니다.
어제 미국에서는 누가 총을 쏴서
20명의 무고한 생명이 죽는 일도 있었습니다.
모든 안 좋은 상황을 두려워하면
일상을 살아가는데 어려움이 많습니다.
집이 무너지는 생각이 갑자기 들면 집 안에도 있기 어려운 거예요.
지금 질문자는 불안한 정도가 심해요.
다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 하면 됩니다.
나머지 일들은
기독교 신자라면 하느님의 뜻에 맡겨야 하고
불교 신자라면 인연에 맡겨야 합니다.
전통적으로 말하면 운명에 맡겨야 하는 거예요.
걱정한다고 해서 문제는 해결되지 않습니다.
인생만 낭비하는 거예요.
장애가 있는 아이를 둔 질문자도 행복하게 살 권리가 있습니다.
아이를 위해서 내 인생을 헌신해야만 하는 의무나 법은 없어요.
그러니 전문가와 상담해서
아이를 가장 잘 돌볼 수 있는 방법을 선택하고
질문자는 너무 걱정하지 말아야 합니다.
걱정한다고 개선되는 것도 아니잖아요.
다른 평범한 아이들처럼
아이를 고치겠다는 생각은 이제 하지 말아야 합니다.
아이의 현재 상태에 맞는 삶의 길을 열어줘야 합니다.
주어진 조건에 맞게 스스로 살아갈 수 있는 훈련을 시켜야 해요.
이런 관점을 잡고 아이를 돌보시길 바랍니다.
...
옛날에는 모든 것을 다 가족이 책임졌습니다.
이제 그렇지 않아요.
늙고 병든 부모를 모시는 자녀들도 행복하게 살아야 하잖아요.
사회보장제도가 확대되면서
이제 노인은 요양시설에서 보살핌을 받거나 지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모든 걸 다 자식이 짊어져야 할 이유가 없어요.
또 아이에게 장애가 있거나 병이 있는 경우에도
모든 걸 다 부모가 책임질 수가 없어요.
그러면 부모의 인생이 없어지니까요.
사회보장제도란
국민이 낸 세금으로 취약계층을 공동으로 책임지는 방법입니다.
민간 보험도 원리가 같아요.
교통사고가 났을 때 보험회사가 보험금을 주는 게 아니라
내가 낸 보험료로 돌려받는 것입니다.
사고가 안 나면 다행이고,
사고가 나면 가입자들이 낸 돈을 한 사람이 가져가는 거예요.
누가 해주는 게 아니라 국민인 우리가 하는 거예요.
국민이 세금을 내고, 국민이 혜택을 받는 겁니다.
이렇게 한 개인이 감당하기 어려운 문제를
사회가 공동으로 풀어가고 있어요.
장애인에게 장애인 수당을 지급하거나
노인에게 노령연금을 지급하는 게
다 사회보장제도입니다.
그러니까 혼자서 책임지려 하지 말고
먼저 제도적으로 도움을 받을 수 있는지 알아봐야 해요.
누가 돌보는 게 가장 좋은지는
전문가의 의견을 들어봐야 합니다.
부모가 돌보는 게 제일 낫다면 부모가 책임을 져야 합니다.
그러나 질문자의 경우에는
부모가 밥을 해주는 정도는 할 수 있지만
전문적인 교육과 훈련은 할 수 없어요.
교육과 훈련은 전문가에게 맡기고
일부 비용을 부담하는 것은 해야 합니다.
‘내 자식이니까 내가 돌봐야 한다.’ 이렇게 생각하면
내 인생이 없어집니다.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은
누구나 다 행복하게 살 권리가 있습니다.
그러니 너무 절망에 빠지지 말고
인생을 길고 넓게 보고 행복하게 사시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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