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의 삶에 만족하며 편안해지고 난 뒤부터는 살 만해져 배가 부른 것인지 간절함이 잘 안 일어납니다.
괴로움 없이 원하는 것이 있다면 이것이 간절한 것인가요?
스님께서 말씀해 주시는 간절함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꼭 간절해야 하는 건 아니에요.
간절할 아무런 이유가 없어요.
간절할 때는 두 가지 경우에 간절해진다.
1. 내가 위급한 상황에 처했을 때
누구나 다 간절해지죠, 저절로. 매달리게 돼요. 신에게.
“부처님 살려주세요, 하느님 살려주세요” 하든지
절을 열심히 하든지.
위기에 처하면 누구나 다 간절해 진다.
간절해지기 때문에 집중력이 생기는 거예요.
그래서 파워가 생긴다. 파워가. 힘이 생긴다 이런 얘기에요.
평상시 같으면 하루에 천배 못할 거를 매일 천 배할 수도 있고
평상시 같으면 백 배도 못하는데 삼천 배도 할 수 있고. 간절해지면
왜 그럴까?
정신이 딱 집중이 되면 파워가 생기는 거요.
무협지 같은데 보거나 수련하는 사람들 보면 굉장히 정신을 집중하니까 어때요?
굉장한 파워가 생기잖아 그죠?
그런 것처럼,
그런데 그렇게 일부러 연습 안해도
다급해지면 누구나 다 간절해지고
간절해지면 그런 집중이 생기고
집중이 생기면 파워가 생긴다.
이건 저절로 돼요.
그 간절하려고 노력할 필요가 없어.
“나 간절하고 싶다” 이러면 재앙이 닥칩니다.
좋은 거 아니잖아.
왜냐하면 재앙이 닥치면 저절로 간절해지니까.
2. 원을 세웠을 때
재앙이 없는데도 위기에 처하지 않는데도 간절한 경우는 언제냐?
원이 있으면 간절해져요.
당장 내가 어떤 재앙에 처한 건 아니지만,
우리나라가 꼭 통일이 되었으면 좋겠다.
한반도에 전쟁이 없었으면 좋겠다.
굶어 죽는 사람이 없었으면 좋겠다.
이렇게 원이 생기면, 저절로 간절함이 생긴다.
이 좋은 법을 꼭 한 사람이라도 더 전해줬으면 좋겠다.
이런 원, 원이 생기면 간절함이 생긴다.
그런데 대부분 사람이 자기만 편하면 되지, 세상이 어떻든 관심이 없으니까
급하면 자기가 괴로우면 간절했다가
괴로운 문제가 딱 끝나면 그냥 없어져 버리죠.
그러니까 이건 어쨌든 위기를 극복했으니까 좋은 일이에요.
그러나 거기서 한 발 더 가려면 원이 있어야 해요. 원이.
꼭 있어야 하는 건 아닌데, 원이 있으면 간절해진다.
스님은 이 좋은 법을 한 사람이라도 더 전파했으면 좋겠다든지
“아, 우리나라에 다시는 전쟁이 없었으면 좋겠다“
전쟁이 나서 사람들 죽어가는 거 비참하잖아요.
또 우리나라가 늘 발해멸망 이후 천 년 이상 동아시아에 반도에 치우친 약소국으로 지내왔잖아요.
그런데 우리나라가 좀 나가잖아 그죠?
이러니까 통일이 되면 더 발전할 수 있으니까
”아, 천년 만에 온 기회다.
천년 만에 온 기회를 잘 살렸으면 좋겠다.“
원이라는 건 꼭 이루어져야 하는 건 아니에요.
될 수도 있고 안 될 수도 있는 거니까.
원이 있으면 간절함이 생기게 된다.
지금 편안하니까 그냥 지내시면 되고
위기에 처하면 간절해지고
편안해지면 또 그냥 지내면 되고.
위기에 처했을 때 간절함은 이미 재앙을 받고 해결하는 과정이고
원을 세운 간절함은 예방하는 거예요.
미리, 앞에.
하나는 빚을 지고 갚는 거고
하나는 복을 지어서 빚는 갚는 게 아니고 복을 짓는 행위이고
그러니까 좀 차이가 있어요.
간절함에는 두 종류가 있다.
이런 얘기에요.
그래서 위기에 처해서 간절한 것은 중생의 간절함이고
원을 세워서 간절한 것은 보살의 수행자의 간절함이다.
이렇게 볼 수가 있어요.
그러니까 편안하면 됐어.
그러나 원을 세우면.
그런데 원을 세운다고 간절해 지는 건 아니에요.
”통일 되어야지“ 해도 되면 그만, 안 되면 그만,
”내 살기 바쁜데 내가 거기까지 신경쓰나“ 마음에서 그렇게 생각하면 간절 안해지고
그래서 이거는 앞에 간절함은 내 문제 해결이고
뒤에 간절함은 나와 일체중생의 좀 더 나은 세상을 위한 문제해결이다.
이렇게 볼 수 있어요.
부처님 법 만나서 괴로움 많이 없어졌다 그랬잖아.
지금 이런 좋은 법을 친구들이나 가까운 사람에게
‘정토불교대학 다녀라’ 하면 너무 길고
종교를 전달하는 거 같으니까
어디? 행복학교에 하는 거는 종교도 없고 의식도 없고 또 한 달짜리고 쉽잖아, 그죠?
내가 딴 건 못해도 행복학교에 많이 사람들을 보내야 하겠다.
그래서 하루에 매일 생각나는 대로 전화한다든지.
안 그러면 행복학교의 영상들을 매일 한 사람에게 보내준다든지.
안 그러면 스님의 즉문즉설을 하나씩 아는 사람한테 보내준다든지.
원이 생기면 하나도 안 부끄러워.
원이 없으면
”이 사람이 어떻게 생각할까? 보내주면 뭐라고 그럴까?“
이렇게 걱정이 되는 거요.
원이 생기면 그런 걱정이 딱 없어져 버려요.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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