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면 계를 어떻게 해석할거냐? 계라고 그랬죠. 우선 계라 그러면 여러분 느끼기에 고리타분한, 그죠? 고리타분한 소리한다. 계율 같은 이런 게 복잡해서 불교가 오히려 안 된다. 어떻게 생각할 수 있다. 그래서 계를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어떻게 접근해야 되는지.
자, 오계 가운데서 삿된 소견을 갖지 마라. 이것이 맨 끝에 있는 거란 말이오. 이게 나중에 뭐로 바뀌냐 하면 술 먹지 말라. 이렇게 바뀌었어요. 자, 그럼 술 먹지 마라하면 “에이고, 이제까지 스님께서 옳으니 그르니 깨끗하니 더럽니 이런 거 다 공하다고 팽개쳐서 다 부셔놓고, 새로 가치관을 쌓는다고 겨우 한다는 소리가 ‘술 먹지 말라.’ 너무 나 고압적이고 되도 않는 소리. 그런 것을 가치라고 내 놓느냐, 우리가 이렇게 생각할 수 있다.
그래서 우리기 이것을 잘 살펴봐야 되는 게 첫 번째 술! 할 때 술이 뭘 상징합니까? 술하면 술 먹지 말라할 때 술이 뭘 상징할 거 같아요? 술, 취한다? 취하면 정신이 맑아져요? 흐리멍텅해져요? 흐리멍텅해지지. 그럼 깨달음이 길로 가는 것은 흐리멍텅해지는 길이에요? 맑은 길이에요?
그런데 술하면 흐리멍텅하다. 그거보다 더 직설적으로 표현하면 술하면 중독성이죠. 중독성입니다. 중독성이 있다는 것은 거기에 뭔가 중독이 되면 내가 주인이 된다? 내가 종이 된다? 내가 종이 되는 거요. 중독성이라는 개념이 그런 거죠. 내가 통제가 안 되고, 거기에 오히려 매여서 거기에 끌려다는 게 그게 중독이란 말이오.
그러니까 술에 중독이 들면 술 시키는 대로 하잖아요 그죠? 위가 빵꾸가 났는데도 술이 뭐라고 그래요? "더 먹어." “알았습니다.” 그러면 목숨 걸고 먹잖아 그죠? “마누라 때려버려.” “알았습니다.” “길가는 여자들 껴안아 버려.” “알았습니다.” 술 먹으면 온갖 짓 다 하잖아. 왜 그럴까? 술이 시키는 대로 해서 그래요. 술이 주인이 되어버렸단 말이오. 중독성이다 이거야.
그런데 중독이 된다. 그러면 그것 없으면 못 살고, 그거 시키는 대로 따라하고, 모든 세상의 가치기준이 그것이 시키는 대로 하느냐? 안하느냐? 그 만족을 누리느냐 못 누리느냐가 모든 가치기준이 되어버리는 이게 중독이라고 그래요. 그런데 중독되는 것이 술만 있습니까? 아니죠. 다른 것도 있죠. 담배도 있고, 아편도 있고, 히로뽕도 있고, 마리화나도 있고 많이 있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술이 뭘 상징하느냐? 중독을 상징한다. 아, 중독성 물질이 있다. 술, 담배, 마리화나. 중독성 물질이 있다. 그럼 중독성 물질만 있습니까? 아니죠. 중독성인 나도 있죠. 술 먹을 때 누가 와서 가자 그러면 안 가죠. 노름에 중독이 들면 노름할 때 마누라가 찾아오면 승질내고 그러죠.
그런데 연속극에 빠져서 “아,” 이러고 있을 때, 누가 전화하거나 누가 뭐라고 그러면 신경질 내죠? 중독이 되어 있다. 중독성에는 정신적인 어떤 중독성이 있고, 물질적인 중독성이 있고, 이게 겹치기도 하는데 정신적인 중독성을 우리가 보통 서양말로 뭐라고 그래요? 옐로우문화라 그러죠. 중독되는 섹스, 만화, 잡지, 무협지. 애들 무협지에 빠지면 정신없잖아. 그죠? 이런 게 있단 말이오.
그러니 ‘술을 먹지 말라.’는 말은 ‘중독성에서 벗어 나거라.’ 이 말이에요. 중독성 물질을 섭취하지 말라는 얘기도 중독성 문화를 즐기지 마라. 문화나 정신적인 것이든, 물질적인 것이든 중독되지 마라. 이 말이오. 그 말은 딱 정신 차리고 깨어있어라. 그러면 왜 ‘술 먹지 마라.’ ‘담배 피우지 마라.’ ‘히로뽕 맞지 마라.’ ‘마리화나 피우지 마라.’ ‘무슨 영화보지 마라.’ 그러면 이렇게 종목을 다 정해놓지, 왜 안정해 놨을까?
지난번에도 말씀드렸지만, 남방불교에 가면 스님들이 쪽 앉아서 큰스님 작은 스님 할 것 없이 다 담배 피운다고 그랬죠. 담배 왜 피우니? 비구 250계나 되는데, 담배 피우지 말란 말이 없어요. 왜? 그 당시에 담배가 없었으니까. 하물며 히로뽕은 더 없겠죠. 히로뽕이란 말은 계율에 없어.
그러니 자기는 “계율을 250계나 지키는데도 무슨 소리 하느냐?” 이렇게 될 거 아니야. 거기 없으니까. 그러니 우리가 문자에 매이면 이런 결과가 나온다. 그러니 그 당시에 왜 술만 이렇게 되었을까? 부처님 계시는 그 당시에 역사적인 역사성을 이해하면, 그 당시의 문화를 보면 조금만 벌써 옛날 사람만 되면 술 먹고, 기생하고 놀고, 즐기고 이래요. 요즘 애들하고 똑같아. 그 당시에도. 그게 완전히 유행병처럼 이렇게 번졌어요.
그래서 30명의 기생 데리고 놀다가 기생이 귀금속 다 가지고 도망가 버려서 기생 찾아 헤매다가 숲에 있는 부처님 만나 “여기 여자 하나 도망가는 거 못 봤냐?” 처님께서 “왜 그러냐?” 해서 “ㄴ여 ㄴ이 우리 물건 다 가져 갔다고 눈을 부라리고.” 왜? 술 먹고 자는데 다 가져 가버렸단 말이오.
그래서 부처님이 뭐라고 그랬는줄 알아요? “그래, 내가 한번 물어보자. 한번 물어보고 대답하면 가르쳐주겠다.” “뭔데?” “잃어버린 자기 자신을 찾는 게 중요해요? 잃어버린 여인을 찾는 게 중요해요?” 전부다 “그거야 잃어버린 자기 자신을 찾는 게 중요하죠.” “그럼 여기 앉아라.” 이래서 법문이 시작되었거든요.
그러니 이게 잃어버린 보물을 찾는 것이 중요한 것은 아는데, 잃어버린 자기 자신은 잃어 버린지 모르고 산단 말이오. 그 당시에 그렇기 때문에 지금도 알코올 중독문제가 사회적으로 문제가 됩니까? 안됩니까? 되죠. 미국같은데서는, 인디언들은 중독이 되어 멸종위기에 있어. 에스키모들 하고. 돈 공짜로 주니까 직장 안다녀도 돈 받고 하니까, 어떻겠어요? 할 일 없으니 술 먹는 것 밖에 더 있겠어요. 그죠? 술 먹고 다 알코올 중독 걸렸어. 그래서 다 멸종하죠. 멸종시키는 방법도 여러 가지요. 총 쏴서 죽이는 게 아니오.
다 그것을 극복해야 되는데 그게 극복이 안 된단 말이오. 중독이 되어서. 우리 사회에서 지금 음주운전 문제가 됩니까? 안 됩니까? 되죠. 안 고쳐지잖아. 지금도 사회에 많은 문제점을 갖고 있죠. 집집마다 부인들 보면 남편 술 먹고 행패 피우고 이래서 집안마다 문제점이 많죠. 요즘 그래도 술 문화 많이 좋아졌죠. 다 문제란 말이오.
요즘 부처님께서 한국에 왔으면 무슨 얘기 했을까? 한국에 와서 술 얘기했을 것 같아. 러시아에 갔으면 술 얘기는 틀림없을 거고, 미국에 갔으면 술하고 아마 마약 얘기 했을 거요. 부처님 그 당시에는 가장 심각한 게 뭐 였다? 술이었어요. 그 다음에 춤추고 놀고 빠지는 것이기 때문에 10계 안에는 반드시 가무 이게 들어있단 말이오.
잘못 해석하면 “아니, 부처님이 예술을 부정해도 되나?” 이렇게 생각할 수가 있는데, 그게 바로 부패의 한 종류였단 말이오. 제정신 없이 노는 게. 그러니까 그것을 이해해야 돼. 아, 그러니까 술이라고 하는 것은 다른 수많은 것은 안 들고 왜 술만 들었을까? 그 당시에 그게 가장 큰 문제였기 때문에 그렇다. 그럼 뭘 상징할까? 아, 이것은 중독성을 상징하는 거다.
그럼 중독성에는 물질적인 것도 있고 정신적인 게 있다. 그러면 오늘 우리 사회에서 이것을 ‘술 먹지 마라.’ 할 때는 어떤 문제가 해당이 될까? 싹 둘려보면 알 수 있게죠. 소위 말해서 불건전한 문화 이것을 즐기지 마라 이 말이죠.
그러면 왜 말라고 그랬을까요? 말라. 제가 술을 요만큼 먹었어요. 하도 옆에서 먹으라고 그래서 이만큼 먹었어요. 계율을 어겼어요? 안 어겼어요? 안 어겼어? 왜? 조금 먹었다고?
요 만큼 먹으면 어겼어요? 안 어겼어요? 한 모금 먹어서 안 어겼으면 두 모금 먹었으면 어겼을까? 안 어겼을까? 안 어겼지. 두 모금 먹어서 안 어겼으면 세모금은? 네모금은 한잔되니까 네모금은? 안 어겼죠. 그러면 두 잔은? 그럼 열 잔은? 그럼 열병은? 안 어겼다. 이러면 곤드레 만드레가 된 사람도 안 어겼다가 됩니다. 또 술 먹은 사람 실제로 자기 취했다는 사람 봤어요? “아, 내가 취했던가?” 이 사람은 덜 취한 사람이죠. “나보고 취했다고?” 이러면 벌써 취한 사람이죠. 취한 사람 절대 취했다고 안 그래요.
그러니 한 모금 먹어서 안 어겼다면 이 사람은 결국 아주 면밀하게 분석해보면 100모금 먹어도 안 어긴 거고, 무슨 짓을 해도 안 어긴 거죠. 그런데 만약에 어겼다면? 어겼죠 뭐. 아무튼 조금이라도 먹었으니까. 그러면 25도짜리 소주였는데, 그럼 10도짜리 포도주는요? 아, 그것도 어겼죠. 그럼 5도짜리 맥주는요? 그것도 어겼죠. 그럼 2도짜리 동동주는요? 아, 그것도 어겼죠. 그럼 1도짜리 송주는? 송차. 송차. 전통차중에 송차 있죠. 그게 차인데 뭐.
아, 그러면 어기고 안 어기고는 1도하고 2도 차이네. 그러면 1.5도는? 어겼죠. 그럼 1.4도는 어겼죠. 그럼 1.6도는? 1도는 안 어겼죠. 아, 그럼 1도하고 1.1도 사이에 어기고 안 어기고가 있나? 이렇게 자꾸 내려가 보면 1도도 어겼네. 0.1도는? 그것도 어겼네요. 그럼... 그러니까 안 어겼다 그러면 다 어긴 거고, 어겼다 그러면 우리 모두가 다 어긴 게 된다. 그럼 어이하란 얘기요.
그러니 우리가 간단하게 “너 계율 어겼다. 너 술 먹어서 나쁘다.” 이렇게 따지고 보면 이거 하나도 결정하기가 어렵죠. 그러니 우리가 어겼다하면 어긴 거고 안 어겼다하면 안 어긴 게 되고 이런 게 아니란 말이오. 그럼 정말은 뭘까? 어떻게 하는 게 어기는 거고 어떻게 하는 게 안 어기게 하는 걸까?
이게 금방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먹으면 어겼고 안 먹으면 안 어겼지 뭐, 대답이 얼마나 간단합니까? 그런데 사실은 정신을 차리고 분석하면 어겼다고 안 어겼다고 결정내기가 이렇게 어려운 거요. 이런 데서 우리가 찾아봐야 돼. 길을. 어떤 게 어긴 거고 어떤 게 안 어긴 건가.
그래서 부처님께서 ‘술을 먹지 말라.’ 하더라. ‘술을 먹되 취하지 말라.’ 이러면 어디쯤이 취한 거고 어디쯤이 안 취한 거요. 그러니까 단정적 표현 ‘하지 말라’하는 표현을 쓴 거요. 그럼
‘술을 먹지 말라.’ 했으니까
술은 입에도 되면 안 되겠네요.
이렇게 생각한다면 여러분들은 한쪽에 치우치는 거다.
술을 먹지 말라했으니
조금 먹어도 되겠네.
이렇게 생각해도 한쪽에 치우치는 거다.
먹어도 된다. 하면 한쪽에 치우치는 거고,
먹으면 안 된다 해도 한쪽에 치우치는 거다.
그러니 술은 공하다 하는 것은 존재의 본질이고 술은 공하죠. 술은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아니에요. 그런데 왜 술을 먹지마라 할 게 뭐 있어?
그래요. 이거 물 한잔 먹듯이 물을 먹어서 갈증을 면하듯이 갈증이 있을 때 맥주 한잔 먹으면 갈증 해소 되고 정신 상태나 몸에 털끝만큼도 아무런 감각이 없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 술 먹은 사람이오? 안 먹은 사람이오? 안 먹은 사람이겠지. 그러면 술은 문제가 아니오. 그럼 결국은 중독성, 취함 그게 문제죠.
그러니까 우리가 말하는 기준과 다른 기준을 적용해야 된다. 나중에 자세히 설명하겠지만 예를 들어서 “기분이 억수로 나쁘다. 한잔 먹자.” 이래서 한잔 먹은 거 하고, 친구 생일파티에 갔더니 건배 들자 해서 건배 들었을 때 하고, 어떤 게 더 중독성에 가까울까? 혼자서 몰래 먹은 게. 그것은 계율을 안 어긴 게 아닐까? 몰래 먹었으니까. 이렇게 먹는 것, 괴로우니까 술로서 문제를 풀려고 한 그 사고방식이나,,, 그것은 계율을 명백하게 어긴 겁니다.
여러분들이 담배 피우는 게 뭐 큰일이겠어요. 그런데 술 담배 5년 10년 습관들여진 그것도 건강이 나쁜지 알면서 먹고 있는다 그러면, 그 정도 습관도 자기가 조절을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다생겁래로서 쌓아온 모든 업장을 버리고 해탈하겠다. 부처되겠다. 이게 가능성 있는 얘기요? 없는 얘기요? 없는 얘기요.
그러니 술 담배가 무슨 특별히 죄가 있어 문제 삼는 게 아니다. 그런데 커피는 어떨까? 야, 절에까지 와서 찬장을 다 뒤지면서 커피 없느냐고, “난 커피를 아침에 한잔 안마시면 머리가 안 돌아간다.”고 교포들 중에 이런 사람 많습니다. 미국에 사는 사람. 일단 아침에 일어나면 커피를 한잔 먹어야 잠도 깨고 머리가 돌아가지, 커피를 안 먹으면 손이 떨리고 안 돼요. 알코올중독하고 똑같은 증상 가진 사람 많습니다.
그러면 이 사람도 중독성이겠어요? 아니겠어요? 중독성이죠. 그럼 커피는 서양 거니까 중독성이고 차 안마시면 머리 안 돌아가는 사람 어떨까? 차 문화, 이것은 아주 고상한 문화죠. 그래요. 커피는 나쁘니까 그런 거고, 외국 거라 그런 거고. 그러니
무엇이든지 습관성이 있고,
습관성이 나중에 통제가 안 될 정도로 되면 중독성이 되고,
그것이 나중에 자기 속에 자리 잡으면 업장이 되는 거요.
그러면 우리가 지금 살아가는 게
다 업장에 끌려서 살아간단 말이오.
여러분들이 다 업을 자기인 줄 알고
거기에 끌려서 살아가는데,
자기가 지금 업장에 끌려서 살아가는 줄 모르죠.
여러분들 지금 술하고 담배 이런 데만 중독된 줄 알아요? 거기는 중독 된 사람도 있고 안 된 사람도 있으니까 그래도 얘기가 좋습니다. 여기 쫙 다 중독된 게 있는데 뭘까? 돈. 다 중독이 되어 있어요. 얼마나 중독이 되었으면 ‘돈이 우리 인생의 주인이다.’ 이런 주의가 하나 나왔죠. 그게 뭐다? 자본주의다. 자본이 주인이오. 이념사상, 이게 자본주의요. 딴 게 아니고. 그러니까 다른 것은 중요한 가치가 아닙니다. 그러니까 모든데서 얼마짜리냐? 잘됐냐는 기준도 ‘돈 벌리느냐?’ 이 말이잖아요. 그거 다 우리 지금 중독이 되어있단 말이오.
그런데도 지금 중독된 줄 잘 모르죠. 왜? 다 되어 있으니까. 나만 그런 게 아니라 다른 사람이 다 되어 있으니 세상이 본래 이런 줄 알잖아요. 그런데 우리가 부처님을 생각해보면 돈에 중독이 된 거 같아? 안 된 거 같아? 안 된 것 같죠. 말씀하시는 거나 사람 대하는 거 볼 때 그게 별 기준이 안 된단 말이오. 길이 다르단 말이오. 그런데 우리는 거기에 딱 기준이 되어있어요.
잘사는 기준도 그거죠, 사랑의 기준도 돈이죠. 좋은 아빠, 좋은 엄마, 좋은 부모의 기준도 돈이잖아. 그죠? 지금 우리나라 대통령이 정치 잘한다. 못 한다의 기준도 뭐요? 돈이오. 그러니까 김대중 대통령이 몇 십 년 동안 민주화 운동 한다 해놓고 지금 하는 짓은 뭐한다? 돈 문제만 해결하려고 날뛰잖아. 다른 사람 다 좋게 생각하지 모르지만 제가 볼 때는 한번 간 사람이다. 이렇게 생각해요.
국민의 가치기준은 경제만 회복되면 마치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처럼 그렇게 몰고 간단 말이오. 그런데 우리의 행복은 그런 방식이 아닌, 본인이 이제까지 닦아오고 쌓아왔던 그런 민족문제나 인권문제나 평화문제나 이런 것 갖고도 우리 국민에게 얼마나 큰 희망을 줄 수 있는데, 다 돈에 중독된 사람들의 비유를 맞추려니 자기도 같이 물이 드는 거죠.
우리가 돈에 얼마나 물들었는지 알아요? 술 한 잔 받아주면 술에 중독되어 투표 다 해주죠. 돈봉투 좀 주면 대통령도 찍어주죠. 돈만 많으면 어때요? 어떤 남자도 좋죠. 자기 남편이 돈만 벌 수 있다면 “여보, 월남전 갔다 오세요.” 죽어도 좋다 이거야. 돈만 벌 수 있다면 “사우디도 갔다 오세요.” 그런데 부모는 그렇게 합니까? 안합니까? 안하죠.
아직도 부모자식 간에는 자식은 부모를 몰라도 부모는 자식을 돈을 기준으로 두고 안 보죠. 자식이 돈 벌러 월남간다하면 찬성할까? 안할까? 안 해요. 그런데 마누라는 대 찬성이오. 지금 남편들이 실직해 있을 때, 그동안에는 남편이 있어도 참고 살았죠. 왜? 돈 때문에. 그런데 이제 “돈도 못 버는 주제에” 잔소리 하다가는 이제 큰일 납니다. “돈도 못 버는 주제에 이게.” 이러면서. 다 돈 없으면 힘을 못 써요.
그러니까 얼마나 부모도 늙으면 여러분들이 믿을 건 뭐밖에 없다? 돈. 확실하죠. 자식, 못 믿습니다. 마누라는 남편을 믿을 수 있어요? 없어요? 못 믿어. 언제 무슨 일이 일어날지. 그러니 일단은 부부도 다 돈을 따로 좀 가지고 있어야죠. 자식한테 다 주면 되요? 안 돼요? 안 되지. 돈을 좀 꾹 쥐고 있어야 돼.
이런 얘기도 있어요. 하도 자식이 부모를 박대해서, 재산 다 넘겨줘 버리고 아무것도 없어서 고생했어. 그러니까 누가 조언을 해주더라는 거요. 신문지에다 종이를 뭉쳐서 보따리에 딱 싸서 늘 베고 자고, 자식이 탁 오면 집어넣고 그렇게 하라고. 돈 봉투 이렇게 묶어서 자식이 오면 재빨리 숨기고, 베고 자고, 절대 안보여 주고. 그러니 며칠 지나 보면 태도가 달라지더라. 대우가 아주 극진해지더라.
그래서 아버지가 죽고 뭘 숨겨놨나, 죽고 나서 제일 먼저 열어봤더니 신문지 뭉치라는 거요. 이런 얘기가 나오는 세상이오. 이게 돈이 주인이죠. 확실히 돈이 주인이죠. 절에도 다 돈이 주인이오. 큰 신도의 기준이 뭐요? 돈 많이 가져오면 큰 신도요. 그러니까 돈이 필요 없다. 이 얘기하고는 틀립니다.
그러니까 돈은 필요 없는 거다. 그런 얘기 하는 게 아니라, 술이 필요 없다 이런 얘기 하는 게 아니에요. 거기에 이미 중독이 되어서 모든 다른 어떤 사물을 보는 눈이 망가져 있는 상태다. 그런 것들이 우리가 다 같이 중독이 되어 있으면 안보인단 말이오. 그러니 부처님 가르침을 어떤 데는 들으면, 우리가 중독된 눈으로 보면 “아이고, 이래서 어떻게 살라는 얘기야?” 이런 생각이 들어요.
그런데 정신을 조금만 차리고 가만히 들어보면 그분의 얘기가 옳은 것 같아. 저는 그래요. 저도 진짜 부처님 에이, 이랬는데, 이런 저런 고난을 겪고, 이런 저런 고통을 겪고, 나이 들고 여러분들이 죽을병 다 겪어보면, 부처님 말이 맞다. 그래서 늙으면 옛날 이조시대도 다 어디로 돌아온다고 그랬어? 불교로 돌아온다 이러죠. 그래서 늙은 사람이 믿는 종교가 아니라, 정말 일생에서 관조를 해보면 “아, 부처님 말씀이 맞구나.” 해서 그런 얘기가 나오는 거요.
일단 계율에 대해서 자세한 것은 다음에 계속 하기로 하고요, 자, 불해. 한 번 더 읽겠습니다.
『사람의 생각은 어디로나 갈 수 있다.
그러나 어디로 가든 자기보다 더 소중한 것은 찾아볼 수 없다.
그와 같이 다른 사람에게도 자기는 더없이 소중하다.
그러기에 자기의 소중함을 아는 사람은 다른 사람을 해쳐서는 안 된다.』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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