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감사할 줄 모르죠. 감사할 줄 모르는 게 부모가 온갖 것을 다 바쳐서 애를 키우지만 애가 늘 입은 이만큼 나와서 볼을 이렇게 되어서 뚱~ 해서 부모한테 불만을 갖고 사는 것 보면 철딱서니 없죠. 그런데 오늘 우리 사는 게 다 지금 그런 모습으로 살고 있어요. 부모를 떠나서 버려져보면 부모가 얼마나 고마운 줄을 아는 것처럼, 여러분들이 한국을 떠나서 인도나 아프리카에서 정말 굶주리고 배고프고 헐벗고 살아가는 그런 삶 속에서 며칠 지내면 “와, 참, 내가 한국에 태어난 게 참 다행이다.” 이런 생각이 드는 거요.
그러니까 지금 여러분들이 “괴롭다 괴롭다” 하는 것은 여러분들 개인 심정과 처지에서는 다 힘들겠지만 조금만 눈을 뜨고 보고 그게 괴로워할 만한 일일까? 애처럼 철딱서니 없이 공연히 주둥아리를 쭉 빼서 인상을 쓰고 사는 형국일까? 좀 깊이 점검이 되어야 됩니다. 농부는 쌀이 한 움큼 섞이면 어떻게 합니까? 빗자루로 쓸어서 돌 사이 있는 것 하나하나 줍죠. 그러면 도시에 사는 아들은 뭐라고 그래요? “어머니 그만두세요. 몇 푼 된다고 그것을 쓸고 있어요? 다해야 5백 원도 안 돼요. 5백 원 드릴게.” 이런단 말이오.
그러나 그 농사를 지은 사람은 그 한 톨 한 톨에 자신의 그 여름날의 피땀이 설여 있기 때문에 돈을 환산이 될 수가 없어요. 여기 지금 40대 50대 계시는 우리 거사님들은 다 그래도 시골에서 자라서 대구나 부산이나 서울에서 아마 대학 나왔으니까 이렇게 서울에 살겠죠. 아마 하숙도 다 못하고 자취했겠죠? 서울 사람이 보거나 부자가 보면 참 고생 하죠. 자취한다고 방 하나 얻어서 연탄불 지펴서 밥해먹어 가면서 학교 다니는 것 참 고생이죠.
그러나 시골 부모가 볼 때는 그것도 호화판이란 말이오. 그래서 자취하는 학생 아들 생각해서 서울 한번 나들이 가면 어때요? 고추장 된장 넣고, 상치 뽑고, 무 몇 포기 뽑고, 배추 뽑고, 쌀은 한말 넣고 고속버스 운전사 태워달라면 태워줘요? 안 태워줘요? 안태워주는데 그 돈 몇 백 원 안주려고 사정사정 빌어서 그 밑에다 실어 서울에 와서 내리면 아들이나 딸이 서울에 유학하는 게 고속버스나 직행버스에 마중 나와 보면 자기 어머니가 머리에 잔뜩 이고 나타나면
이렇게 열어보고 든 게 뭐요? 무 5개, 배추 2개, 그럼 아들이 이러죠. “엄마, 이거 뭐 하러 가져와? 이거. 몇 푼 된다고 이것을 가져와요.” 이렇게 말한다. 이거야. 그러나 그 부모는 자식을 생각해서 온갖 정성을 기울여서 들고 온단 말이오. 이게 공덕을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의 차이란 말이오. 그러니까 그 부모의 아픈 가슴이 어떻게 아이에게 표현이 전달이 되겠어요. 다 그러고 자란 사람들이오.
그렇게 자란 사람들이니까 세상물정을 제대로 알리가 없죠. 자기 나름대로 고생했다고 하지만. 그러니 어떻게 아내의 심정을 알 수 있으며, 아내가 되어서 어떻게 남편의 심정을 알겠는가? 그렇게 자기만 쳐다보고 찌지고 볶고 살면서 그 갈등 속에 애들이 낳아서 자라니 어떻게 그게 부모 말을 듣겠어요. 세상이 요 모양, 요 꼬라지 되는 것은 너무 당연한 거요.
오늘날 세상이 이렇게 부정적인면, 부패하고, 청소년이 문제가 생기고, 가정에 불화가 생기고 하는 것은 누가 만들었어요? 우리들이 만들었지. 우리들 떠나서 이렇게 만든 사람이 누가 있어요? 요만한 애 보고 “너 소원이 뭐니?” “예. 공부 잘하는 거요.” “공부 잘해서 뭐하려고 그러니?” “좋은 대학 가야죠.” “아이고 그래? 좋은 대학 가서 뭐하니?” “좋은 직장에 취직해야죠.” “그래. 어떤 게 좋은 직장이니?” “돈 많이 버는 게 좋은 직장이죠.” 그래. 돈 많이 버는 게 좋은 직장이오?
하루에 일어나 똥통 10짐씩 지고 돈 10만원씩 주면 “아이고 돈 많이 벌었다. 재수 좋다.” 이럴까요? 하나도 안 그렇죠. 아침부터 일어나서 등짐지고 10층 건물에 모래나 자갈 갖다 실어 나르고 허리가 쉬도록 일하고 10만원주면 “우와”이럴까요? 안 그렇단 말이오. 그런데 길가다가 10만 원짜리 수표하나 공짜로 주으면 “야, 재수 좋다.” 이러죠. 재수 좋다고 뭐요? 복 받았다. 이 말 아니오? 뭐가 복이오? 똑같은 십만 원을 벌어도 일 안하고 받아야 복이잖아요. 그죠? 일 조금하고 받아야 복이죠? 일을 뼈 빠지게 하고 받으면 복이 아니오.
우리가 바라는 복, 우리가 바라는 좋은 직장 뭐요?
일은 쬐끔하고 돈은 많이 받고,
일은 쉽게 하고 돈은 많이 받고,
시간 조금 하고 돈 많이 받고 그런 거 아니오.
나쁜 직장이 뭐요?
더러운 일 하고, 힘든 일 하고, 위험한 일 하고,
그리고 돈은 쥐꼬리만큼 받는 거. 그게 3D업종 아니오.
그런 것은 서울역 앞에 가서 신문지 깔고 잘 지언정 하기가 싫다 이거 아니오. 그러니까 저 인도사람이나, 방글라데시사람이나, 네팔사람이나 이런 사람들 보고 시키잖아요.
그러니 일은 조금 하고 돈은 많이 벌어야 된다. 이게 좋은 직장이란 말이오. 일은 조금하고 돈은 많이 벌려면 이 세상에 누군가는 어떻게 하는 사람이 있어야 됩니까? 일은 많이 하고 돈은 조금 가져가는 사람이 있어야 가능합니까? 누구나 다 일은 조금만 하고 돈은 많이 가져갈 수 있어요? 그렇게 됩니까? 안 돼요? 내가 일 조금 하고 많이 가져가려하면 누구는 일 많이 하고 조금 가져가는 사람이 있어야 가능하죠.
그러면 그게 솔직하게 말해서 뭐요? 도둑놈 아니오. 그럼 좋은 직장은 뭐요? 도둑놈들의 집합소지? 출세라는 게 뭐요? 우두머리 도둑놈 되는 거 아니오. 정월 초하룻날 부모는 자식보고 “야, 복 받으래이.” “예. 어머니 올해 복 받으세요.” 이러죠. 그게 뭐요? “아이고, 올해 큰 도둑놈 되래이.” “예. 어머니도 올해는 큰 도둑놈 되십시오.” “그래 나도 될게.” 이게 세상 아닙니까? 사주팔자 관상이 좋은 게 뭐요? 도둑놈 관상이죠. 도둑놈 팔자.
이렇게 우리가 지금 그 도둑놈을 향해서 살아간단 말이오. 더 큰 도둑놈. 더 큰 도둑놈. 큰 도둑놈이 뭐요? 일은 어떻게든 적게 하고 수입은 많고. 자기는 봉사 안하고 남 부려먹고, 이게 도둑놈 아니오. 그러니 대통령이라는 것은 어떤 사람이오? 제일 큰 도둑놈이겠지. 그러니까 전두환이나 노태우가 몇 천 억씩 쥐는 거 당연한 거요? 안 당연한 거요? 당연하죠. 여러분들은 욕하지만 저는 욕 안합니다. “스님 딴 것은 욕 잘하는데 왜 이건 욕 안합니까?” 이래. 아, 그거 너무 당연하니까.
바로 우리들의 이상을 우리들의 복을 그가 대변해주고 있잖아요. 우리들의 우상이지 않습니까? 욕하는 사람 뭣 때문에 욕해요? 못되어서 배가 아파서. 그것을 민주화라는 이름으로?
차타고 가다가 얘기했죠. 팔이 딱 부러졌는데, 제 팔은 똑같이 부러졌는데 남의 팔까지 부러지면 재수가 좋고, 자기보다 더 부러지면 더 재수가 좋고, 안 부러지면 난 재수가 없고, 매사에 이렇단 말이오.
아, 참, 그 여자 남편 하나 잘 만났더라. 이게 뭐요? 학교 다닐 때 인물도 못생기고 키도 조그마하고 공부도 못하고, “아이고, 저게 시집이나 갈까?” 이렇게 생각했는데 남편은 키도 크고 얼굴도 멀쩡하니 잘 생겼고, 학벌도 좋고 재산도 있고. 그러니 다 하나같이 “야, 사람 거 팔자 알 수 없더라.” 이러죠. “아, 남편 하나 잘 만났다.” 그런데 그 남편 친구들은 어떨까? “아, 다 공부도 잘하고 인물도 잘생기고 집안도 좋고 다 좋은데 마누라 복 하나는 참 없어. 참 사람 알 수가 없어.” 이렇게 되잖아요. 그죠?
길가다가 여러분들이 재물을 주워서 횡재하면 누구는 그 피땀 흘려 번 재물을 잃어버려서 재앙을 받죠. 딱 붙어있어요. 동전의 양면처럼. 지금 우리가 이렇게 살고 있어요.
그런데 여러분께 닥친 갖가지 불행이 결국은 우리들이 그렇게 만드는 겁니다. 누가 주는 게 아니에요. 만약에 신이 있어서 이런 불행을 준다면 얼마나 억울하고 분통터지겠어요. 다 결국은 그렇게 될 수밖에 없어요.
여러분들이 재수좋은 날은 누군가는 뭐요? 재수가 없는 날이고, 내가 복 받는 날은 누군가는 재앙을 받는 날이 되고. 그러니까 이게 도떼기시장이죠. 노름판하고 똑같죠. 노름판이라는 것은 누가 돈 따면 어때요? 돈이 잃죠. 노름판에 오는 사람이 한사람도 잃으러 오는 사람 있어요? 없어요? 다 따러 온단 말이오. 그러나 결국은 누군가는 따고 누군가는 잃게 되죠. 그런 노름판에서 잃은 사람이 많아요? 따는 사람이 많아요? 잃은 사람이 많죠. 그러니까 이런 세상에서는 재앙을 받는 사람이 많다.
그러니까 도둑질 하지 마라 이 말은 이런 삶의 길을 가지 말라. 이런 삶의 길이 우리 인생에 갖가지 불행을 자처하게 된다. 그러면 이거 해결하려면 어떻게 하면 될까? 거꾸로 하면 될까? 거꾸로.
일은 조금하고 돈 많이 벌겠다.
이게 이 세상에 갖가지 혼란을 초래하고
내 개인에게 갖가지 고통을 가져오죠.
이거 해결하려면
일은 많이 하고 돈은 조금 받겠다.
그저 눈이 두리번 두리번하면서
어떻게 하면 일을 많이 할까?
어이하면 어려운 것을 내가 할까?
위험한 것은 내가 할까?
어이하면 시간 많이 할까?
이런 생각을 자나깨나하고, 돈은 어이하면 적게 받을까? 부처님한테 가서 빌 때도 “아이고 부처님 제발 좀 돈 적게 받게 해주세요. 자꾸 나한테 와서 큰일 났어요. 제발 나한테 좀 안 오게 해주세요.” 이렇게 빌어야 된단 말이오. 그런데 “어떻게 하면 일을 안 할꼬, 어떻게 하면 돈을 얻을꼬.” 요런 생각을 하고 살면서 그것도 지 능력껏 재주껏 속임수 써서 하는 것만 해도 귀여운데, 그게 그런 서로의 정상적인 경쟁, 고것도 싫어서 뒷돈을 이렇게 총장한테 주고 뒷문으로 들어가려고 그러고. 그죠? 돈을 뒤로 쓱 뒤호주머니에 넣어 들어가려고 그러잖아요.
그 다음에 좀 아는 높은 사람한테 잘 빌어서 눈치 봐서 들어가려고 그러죠. 뒷돈 주고 들어가는 게 뭐요? 부패. 이렇게 이렇게 싹싹 빌어서 들어가는 게 뭐요? 부정. 그러니 그런 것은 뭐든지 우리가 말하면 다 해줄 수 있다. 그런 사람 있어야 되겠죠. 거기 요렇게 요렇게 잘하면 뒷돈 좀 주면 해준다. 그게 신이잖아요. 그러니 다 신한테 빌어서 해결하려고 하잖아. 이게 권력자한테 돈 갖다 낼 때는 1억 갖다 뭐야 해결이 되는데, 저기다가 뒷돈 집어넣는 것은 만원만 집어넣어도 될 거다. 이렇게 생각한단 말이오.
부처님한테는 뒤호주머니는 조금만 넣어줘도 해결이 될 거라고 생각하는데 이건 욕심이 더 많은 사람이오. 그러니까 부정부패를 지르는 사람보다도 절에 오거나 교회 가서 비는 사람은 더 부정부패의 심리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다. 일리가 있어요? 아닌가 봐? 기분 나쁘죠? 뭣 때문에 빌어? 비는 게 뭐요? 공무원 하는 이들이지만 어떻게 좀 집어넣어 달라. 우리 남편 능력은 없지만 좀 승진 시켜 달라. 우리 아들 군대 안 가게 좀 빼 달라. 그 얘기 아니오. 딴 얘기 할 게 뭐가 있어요? 그거 말고 여기 와서 할 얘기가 뭐가 있어?
그러면 이런 줄서는 데도 누가 더 끝빨이 있느냐가 있기 때문에 2인자가 누구냐? 3인자가 누구냐? 줄을 잘 서야 되잖아. 그러니까 부처님하고 줄 누가 잘 댔는지 하느님하고 누가 줄을 잘 댔는지 따져야 되죠. 그러니까 늘 이런 부로커는 내가 2인자다 해야 된단 말이오. 안 그러면 사람이 안 온단 말이오. 손님이. 그래서 다 “내가 아들이다.” 이런 말이 나오는 거요. 내가 아들이다 이 말이오. 누구의? 신의 아들이다.
그런데 또 고 밑에 “내가 아들의 아들이다.” 요게 뭐요? 요게 성직자라는 사람 아니오. 남해 보리암이 영험 있는 도량이다. 그게 무슨 얘기요? 그곳에 가서 뒷돈 대면 빨리 된다. 갓바위가 영험 있다. 거기 가서 돈대면 확실하다. 그곳은 두건은 안 봐 주고 한건만 확실히 봐준다더라. 그러니 그거 중간에 역시 브로커가 사기 치는 거 “내가 대통령 아들이다. 6촌 동생 된다.” 하든지 이러게 폼 잡고 다니려면 차도 좋은 것 타고 다녀야 되고, 사무실도 그렇게 해야 되고, 인물도 좀 멀쩡해야 되고 그러죠. 목소리도 뭔가 좀 틀려야 되고.
그러니 이 사기꾼들은 자기 직업을 다 뭐라고 그래요? 성직자다. 중간에 안 떼어 먹는다 이 말이오. 옷도 뭔가 허연 것으로 하든지, 회색을 입든지, 뭔가 이상한 것을 해서. 머리도 깎아서 이렇게 딱해서 누가 봐도 어때요? 아들 같다든지. 손자뻘 되겠다든지, 뭔가 우리하고는 틀린다. 이런 생각이 들어야 속을 거 아니오. 어떻게 생각해요? 좀 심한 말이오?
똑같으면 누가 속겠어. 자기가 직접 하지. 안 그래요? 대행자가 뭐가 필요해? 자기가 직접 딱 줄서면 되지. 이런 게 바로 종교가 타락했다. 정부가 타락했다. 교육이 타락했다. 정치인이 타락했다. 기업가가 타락했다. 이렇게 여러분들은 마치 자기하고 상관없는 것 같이 얘기하는데 그 사람들이 왜 타락해요? 여러분들의 요구를 들어주려고 하다 보니 그렇단 말이오. 여러분들이 헛된 욕심이 있으니까 사기꾼이 있겠지.
자기 꼴도 모르고 검사 부인되거나 판사 부인 되겠다 하니까 “사법연수원에 다닌다.”는 멀쩡한 남자가 나타나고, 그래서 몸도 주고 돈도 주고 이런 일이 생기고. 여러분들이 의사를 좋아하는데 의사를 뭣 때문에 좋아해요? 돈 많이 버니까. 그러니 “의사다” 하는 사기꾼이 나오는 거 아니오. 결혼 사기가 왜 날까? 왜 곗돈 떼어먹는 사기꾼이 생길까? 은행보다 이자를 많이 주죠. 여러분들이 같은 돈에 많이 이자를 받고 싶잖아. 그러니 그런데 갖다 주잖아요.
그러니 내가 누구 돈 사기쳐먹으려면 이자를 많이 줘야 돼? 적게 줘야 돼 많이 줘야 돼. 너무 당연한 거 아니오? 그러니까 그런 중간 브로커끼리 경쟁을 할 때는 싸울 때는 겁나죠. 그죠? 그러니까 싸우는 게 몽둥이 들고 싸우는 난 너무 당연하다고 보고, 그리고 여러분이 절에 가서 판 깰까 봐 절대 판을 안 깹니다. 정치인도 판은 안 깨고 종교인도 싸워서 판은 안 깹니다. 왜? 깡패도 절대로 판은 안 깹니다. 왜 그럴까?
완전히 판을 깨버리면 설자리가 없어지거든요. 자기들 이해가 부딪히면 싸우지만 그게 손님한테 눈치 챌 정도가 되면 어때요? 금방 딱 없었던 일이 되요. 그러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물고차고 싸우니까 “아, 저 사람들 원수 되겠다.” 아닙니다. 다 저녁에는 돌아가서 한잔씩 먹고 어때요? 다 악수하고 그래요. 그래서 깡패도 싸우고 나서 악수하고, 정치인도 저렇게 철천지원수 같이 싸워도 이튿날 보면 당을 저쪽으로 옮기고 이쪽으로 옮기고 이러죠. 이상한 것 같죠? 안 그래요.
이렇게 세상이 이렇게 움직이는 원인이 어디 있다? 다 우리들의 이러한 헛된 생각이 바깥으로 드러나서 둘이 열이 백 명이 모여서 허상화 된 게 이 세상의 구조란 말이오. 거기서 그런 종교가 생기고, 여기서 이런 정치가 생기고 여기에 이런 교육제도가 생긴 거란 말이오. 그런데 여러분들 누구한테 손가락질해요? 그러니 세상이 이런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사시든지, 조금 개선이 되어야 되겠다 생각하면 나부터 어때요? 삶의 길을 조금 바꿔야 된다. 그러고는 다른 해결책이 안 나옵니다.
‘도둑질 하지 말라.’ 하는 것은
이러한 인생의 길이 우리들을 행복하게 할 수가 없다.
어떻게 해야 그러면 행복해 질 수 있느냐?
바로 일은 많이 하려고 그러고, 돈은 적게 받으려고 해라.
생산은 많이 하려고 그러고 소비는 적게 하려고 해라.
그러면 교통정리는 저절로 된다.
서로가 고마운 줄을 알게 된다.
이렇게 일을 많이 하려는 태도를 뭐라고 그러는 줄 알아요? 그것을 이름하여 봉사, 자원봉사. 이런 자원 봉사하는 사람을 불교에서는 뭐라고 그런다? 보디사트바. 이렇게 말해요. 늘 나서서 일을 해주잖아요. 우리는 내고통도 해결을 못해서 “부처님, 이것 좀 해결해주세요.” “부처님, 이것 좀 해결해 주세요. 스님, 이거 어이합니까?” 이러는데, 관세음보살이나 보디사트바는 어때요? 자기일은 놔놓고 맨날 “어디 아프노?” “무슨 일인데?” 이래서 늘 일 찾아다닌단 말이오.
그럼 “내 일 좀 해결해 주십시오.” 하고
갖다 바치는 중생은 죽을 때까지 괴로워 죽는다 그러고
“무슨 일인데?” 찾아다니면서 해결해주는 해결사는
괴롭다는 소리 한 번도 안하잖아.
“해결해 주세요.” 하는 것은 죽을 때까지 종노릇하는 사람이고
해결해 주는 사람은 어른이란 말이오.
그러니까 “뭐 해주세요.” 이게 어린애고,
“왜 그러니?” 이게 어른 아니오.
붓다라는 것은 어른이란 말이오.
중생이란 것은 어린애고.
그 다음에 아, 안하겠다는데 자꾸 어때요? 돈이 왔어. 아, 나를 있게 해 주신 분이라고 식사 대접을 했더니 가시면서 돈을 주고 갔단 말이오. 아시겠어요? “아이고 머리 아프다.”고 그래서 약을 줬는데 거기주고 갔어요. “아이고, 그냥 두세.”요 하니까 “아이고 무슨 말씀을요.” 이러고 또 주고 간단 말이오.
그러니까 자꾸 모요. 싫다는데도. 그러면 다 거둬 바다에 빠뜨려야 될까? 아니겠지. 아, 이거 필요한 사람이 여기도 있고 저기도 있으니까, 필요한 사람에게 줘야 되겠지. 그것을 뭐라고 한다? 보시. 이렇게 말해요. 그러니 보시와 봉사, 즉, 재화를 가지려고 하는 게 아니라 필요한 사람에게 주려하고, 노동을 안 하려는 게 아니라 자발적으로 하려고 한단 말이오.
그러니까 보시와 봉사를 하는 것이 보살이고, 우리가 바로 오늘날 우리 사회가 전부다 이 세상이 혼란스러우니까 모든 사람이 어떤 사람을 원합니까? 타인의 괴로움을 덜어주려고 봉사하는 사람이 사회에서 어때요? 필요 합니까? 안 합니까? 필요하죠. 어려운 사람에게 재화를 조금이라도 나눠주는 사람이 필요합니까? 안 합니까? 필요하죠. 그래서 우리 사회가 다 그런 사람을 훌륭한 사람, 좋은 사람, 우리 사회에 꼭 있어야 할 사람이라고 얘기하잖아요.
여러분도 다 그런 사람 좋다고 그러잖아요. 그런데 왜 그런 사람 좋다면서 자기는 그렇게 되기가 싫을까? 그런 일은 조금 해놓고 많이 했다. 이러죠. 그리고 스님한테 “이거 언제까지 해야 됩니까?” 이래요. 그리고 못된 일은 뭐라고 해요? 많이 해놓고 조금밖에 안했네요. 이런단 말이에요. 그러니 우리가 지금 뒤집어져 있다. 거꾸로 인생을 살고 있다. 그래서 전도몽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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