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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툰] 인공 원소 합성의 비밀

Buddhastudy 2022. 10. 13. 19:17

 

 

 

영화 아이언맨의 주인공 토니 스타크는 가슴에 아크 원자로를 단 채 살아갑니다.

아크 원자로는 아이언맨의 에너지원이면서 토니 스타크의 심장을 지켜주는 방패입니다.

 

그런데 이 방패가 토니 스타크를 죽이는 독이 되기도 합니다.

아크 원자로의 핵융합을 촉진시키려면 팔라듐이라는 물질이 필요한데

이 팔라듐의 독성으로 인해 토니 스타크가 서서히 죽어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팔라듐을 대체할 물질을 찾지 못하면

토니 스타크는 빌런들을 만나기도 전에 죽은 목숨입니다.

 

영화적 설정은 이렇지만 현실에서는 팔라듐이 핵융합의 촉매제도 아니고

독성물질도 아닙니다.

원자번호 46번 팔라듐은

은을 대신하는 장신구로 쓰이거나

차량의 매연 저감 장치에 쓰이는 원소입니다.

 

팔라듐은 또한 수소를 흡수하고 저장하는 능력이 매우 뛰어납니다.

아마 이런 수소 저장 능력 때문에

수소 핵융합의 촉매제로 쓰인다는 설정이 나온 것 같습니다.

 

어쨌든 영화에서는 그렇다니까

토니 스타크가 살려면 팔라듐을 대체할 물질을 찾거나 아니면 만들어내야 합니다.

 

절망적인 상황이지만 마블의 수퍼히어로 쯤이라면

이 세상에 없는 물질도 어떻게든 만들어내겠죠.

 

토니 스타크는 아빠의 영상 편지에서 힌트를 얻어 신물질 제조법을 알아냅니다.

스타크는 자택 지하에 입자 충돌기를 만들어 주기율표에도 없는 새로운 원소를 생성하는데 성공합니다.

토니 스타크는 다시 살아났고 아이언맨은 더욱 강해졌습니다.

 

, 토니 스타크라는 캐릭터는 정말 다양한 매력의 소유자입니다,

그중에서 뭐든 뚝딱하고 만들어내는 엔지니어로서 매력이 참 멋있어 보입니다.

 

그런데 영화에서처럼 주기율표에도 없는 새로운 원소를 만드는 게 가능한 일일까요?

수퍼히어로 영화이다 보니 이런 장면이 가상의 설정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인공 원소 합성은 가능합니다.

아니 가능한지 꽤 오래되었습니다.

 

1940년 에드윈 맥밀런은 토니 스타크보다 먼저 새로운 원소를 만든 사람이었습니다 .

미국의 화학자 에드윈 맥밀런은

사이클로트론이라는 입자 가속기를 이용해

우라늄 원자에 고에너지 중성자 빔을 쏘는 실험을 하고 있었습니다.

 

1940년은 85번 원자 아스타틴이 발견되면서

자연에서 생성된 원소 92개가 모두 확인된 해입니다.

 

빅뱅에서 생성된 수소와 헬륨부터

초신성 폭발에서 탄생한 우라늄까지

자연에서 생성된 모든 원소가 주기율표에 채워진 것입니다.

 

이제 남은 도전은 주기율표에 남은 빈칸을 채우는 것입니다.

양자역학에 따라 주기율표는 전자껍질 일곱 개를 나타내는 7개의 주기

그리고 바깥 껍질에 위치한 전자의 수에 따라 18개의 족으로 구성됩니다.

 

그래서 주기율표를 채울 수 있는 원소는 모두 118개가 나옵니다.

그중 92개는 자연 원소이고, 나머지 26개는 인공적으로 합성 가능하다고 보는 원소입니다.

 

에드윈 맥밀런은 이 26개의 원소 중 첫 번째 원소를 만들어내면서

인공원소 합성의 첫발을 내디뎠습니다.

그렇다면 원소 합성 과정을 한번 알아보겠습니다.

 

 

---원소 합성 과정

원자핵은 구조적으로 불안정합니다.

양성자끼리는 서로를 밀어내는 힘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양성자들을 한데 묶으려면 중성자가 필요합니다.

원자 번호가 커질수록 양성자 수가 증가하고

그에 따라 양성자를 붙잡아 두려면 중성자 수도 늘어나야 합니다.

그런데 양성자의 반발력은 계속 증가하는데 비해 중성자의 접착력은 무한하지 않습니다.

이 때문에 원자 번호 80번대 후반에 도달하면

원자핵이 불안정해지면서 붕괴될 수 있습니다.

 

핵이 붕괴되는 방식은 다양합니다.

먼저 핵이 두 개로 쪼개지는 알파 붕괴가 있습니다.

두 개로 쪼개진다고 하지만 사실 무거운 핵에서 작은 알파입자가 방출되는 형식입니다.

알파입자는 양성자 2개와 중성자 2개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는 헬륨의 원자핵 구성과 똑같습니다.

 

알파입자 즉 헬륨 원자핵이 방출되면

뒤에 남은 원자핵은 양성자 2개를 잃으면서 원자 번호 두 칸 뒤의 원소로 바뀝니다.

 

알파 붕괴가 비교적 무거운 원자핵에서 일어나는 반면

베타 붕괴는 어떠한 원자핵에서도 일어날 수 있습니다.

 

베타 붕괴는 중성자 하나가 양성자로 바뀌면서 전자 하나를 방출하는 현상입니다.

중성자를 더 많이 가진 원자일수록 베타 붕괴가 일어날 확률이 높지만

사실상 모든 원자가 잠재적인 베타붕괴 대상입니다.

 

이러한 핵붕괴 과정을 유도하고 제어할 수 있다면 원소를 만들어내는 게 가능합니다.

예를 들어 특정 원자핵에 베타 붕괴를 유도하면 양성자 하나가 더 많아지게 되고

알파입자를 쏘면 양성자 2개가 더 많아지게 됩니다.

이런 방법으로 원소를 합성하는 실험은 20세기 초부터 시작되었습니다.

 

1919년 어니스트 러더포드는

붕괴하는 라듐에서 알파입자가 나온다는 사실을 알아내고

그 알파입자를 질소 원자에 쏘았습니다.

질소는 수소핵을 방출하면서 산소로 바뀌었습니다.

이는 원소가 다른 원소로 바뀔 수 있다는 사실이 처음으로 확인된 순간입니다.

하지만 무거운 원자핵에는 이 방법이 통하지 않았습니다.

 

무거운 원자핵은 플러스 전하를 많이 갖고 있기 때문에

역시 플러스 전하로 된 알파 입자를 거세게 밀어낼 뿐입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선 돌진하는 입자가

원자핵의 반발력보다 더 높은 에너지를 가져야 합니다.

입자는 고속으로 움직일 때 높은 에너지를 얻습니다.

만약 입자를 고속으로 가속시켜 무거운 원자핵과 충돌시킨다면

양성자와 중성자가 새롭게 구성되지 않을까요?

 

1929년에 미국 버클리 대학교의 어니스트 로런스는

전기장을 이용해 입자를 고속으로 가속시키는 입자 가속기를 발명했습니다.

사이클로트론으로 불린 이 입자가속기로

중수소핵을 몰리브데넘에 쏘아서 테크네튬을 추출하는데 성공했습니다.

 

1932년에는 리튬핵에 양성자를 충돌시켜 헬륨햑을 분리해내는데 성공했습니다.

다시 8년 후에는 무거운 비스무트 원자핵에 알파입자를 충돌시켜 아스타틴을 추출해냈습니다.

 

양성자나 알파입자 대신 중성자를 충돌시켜 원소를 만드는 방법도 있습니다.

중성자는 플러스나 마이너스 전하를 띠지 않기 때문에

양성자보다 더 쉽게 핵 안으로 침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중성자를 흡수한다고 원자핵의 화학적 성질이 바뀌진 않습니다.

원자핵의 화학적 성질이 바뀌려면 양성자 수가 늘거나 줄여야 합니다.

중성자 수만 변하면 동위원소가 될 뿐입니다.

 

그런데 중성자를 흡수한 원자핵에서 베타 붕괴가 일어난다면

양성자 수가 바뀔 수 있습니다.

1940년에 에드윈 맥밀런이 한 실험도

바로 이 베타 붕괴를 이용해 최초의 인공 원소를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합성 실험

에드윈 맥밀런은 우라늄 원자핵에 중성자 빔을 쏘아

중성자가 양성자로 바뀌는 베타 붕괴를 유도했습니다.

베타붕괴 과정은 이렇습니다.

 

우라늄-238은 양성자 92개와 중성자 146개를 가진 원자입니다.

우라늄-238이 중성자 하나를 흡수하면 우라늄-239가 됩니다.

우라늄-239가 붕괴하는 반감기는 23분입니다.

 

그렇다면 우라늄-239 한 무리가 있을 때

그 절반이 23분 뒤에 중성자 하나가 양성자로 바뀝니다.

혹은 우라늄-239 하나가 절반의 확률로 23분 뒤에 중성자

하나가 양성자로 바뀝니다.

 

어떤 경우든 우라늄에서 양성자 수가 하나 더 많은 초우라늄 원소가 생겼습니다.

맥밀런은 이 초우라늄 원소에 넵투늄이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92번 우라늄이 천왕성에서 이름을 땄기 때문에

93번은 해왕성에서 이름을 딴 것입니다.

 

나중에 확인된 사실이지만 넵투늄은 완전 인공적인 원소가 아니라

천연의 우라늄 광물 속에서 아주 미량으로 잠깐 동안 존재하긴 합니다.

 

그래도 맥밀런의 실험으로 인류는 인공원소 합성의 시작을 알렸습니다.

그렇다면 완전히 인공적인 원소를 더 합성해 낼 수 있을까요?

 

1941년 미국의 물리학자 글렌 시보그는

우라늄 원자핵에 이번에는 중수소를 충돌시켰습니다.

이 충돌로 넵투늄 동위원소가 생성되고

넵투늄은 다시 베타 붕괴를 일으켜 양성자 94개를 가진 원소로 바뀌었습니다.

 

양성자 94, 138억 년 우주의 역사에서

양성자 94개를 가진 원소가 존재한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그런 일이 지구에서 일어난 것입니다.

시보그는 이 원소에 플루토늄이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우라누스, 넵튠, 플루토로 이어지는 행성 이름 시리즈가 완성되었습니다.

 

플루토늄의 존재는 학계에 곧바로 보고되지 않았습니다.

2차 세계대전이 벌어지던 당시에는 핵무기로 사용될 수 있는 원소라면

무조건 국가 기밀로 분류되었기 때문입니다.

 

플루토늄은 끝내 핵폭탄으로 제조되어 194589일에 나가사키에 투하되었습니다.

그로부터 6일 뒤에 일본은 항복을 발표했습니다.

 

플루토늄 합성에 대한 논문은 1946년에야 학계에 보고되었습니다.

전쟁이 끝난 뒤에도 글랜 시보그는 계속해서 아메리슘, 퀴륨, 버클륨을 합성했습니다.

새로운 원자핵이 만들어지면 거기에 다시 입자를 쏘는 방식으로 인공원소 합성 작업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습니다.

 

1950년에는 퀴륨에 알파 입자를 쏘아 캘리포늄을 만들고

1952년에는 베타 붕괴를 유도해 아인슈타인늄과 페르뮴을 만들었습니다.

95번과 96번 원소에 탄소를 쏘아 101번과 102번 원소를 만들었습니다.

98번에는 붕소를 쏘아 103번을 만들었습니다.

104번 원소는 94번에 네온을 쏘아 만든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2000년대 초까지 모두 22개의 인공원소가 합성되었습니다.

이제 주기율표에 남은 빈칸은 단 4개 뿐입니다.

이 빈칸이 채워진 것은 비교적 최근 일입니다.

 

201611월 국제 순수응용 화학연합은

니호늄, 모스코븀, 테네신, 오가네손이 합성되었다고 발표했습니다.

마침내 7주기 18, 118개의 칸이 모두 채워졌습니다.

 

 

인공원소 합성이 어쩌면 무의미한 장난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대다수의 인공원소는 쓸모가 많습니다.

 

우리들의 집에도 대부분 95번 원소 아메리슘이 있습니다.

아메리슘은 알파입자를 끊임없이 방출하는 원소입니다.

그 알파입자가 수신기를 향해 날아가 회로를 작동시키는데

만약 연기나 먼지가 수신기 틈새를 막으면

알파입자 흐름이 막히면서 경보음이 울립니다.

이것이 바로 화재 경보기에 작동 원리입니다.

 

 

---다음 도전

2500여년 전 고대 그리스인들은

이 세상에서 가장 작고 가장 본질적인 물질

즉 원소라고 생각되는 물질은 단 4개 뿐이라고 믿었습니다.

 

근대에 들어 원소는 곧 원자임이 밝혀졌습니다.

지금은 118개의 원자까지 확인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인류는 더 멀리 나아갈 수 있을까요?

118번 오가네손의 등장으로 일곱 번째 전자껍질이 꽉 채워졌습니다.

그런데 다시 8번째 혹은 9번째 전자껍질을 가진 원소가 탄생할까요?

 

이는 확신하기 어렵습니다.

글랜 시보그는 126번 원소에 도착해야 주기율표가 멈춘다고 예상했습니다.

126번이 매직 넘버이며 그 뒤로 넘어가면 양성자의 반발력이 너무 커서

중성자의 접착력이 무의미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를 증명할 수있는 방법은 오직 실험뿐입니다.

무엇이 가능한지 끊임없이 확인하는 것, 그것이 또한 과학의 핵심입니다.

토니 스타크가 만든 원소는 이름이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분명 8번째 전자껍질을 가진 원소일 겁니다.

토니 스타크의 8주기 원소가 현실에서 재현될 날이 오기를 기대해 봅니다.

 

 

---원소 이야기

, 오늘 이야기는 책 <원소 이야기>를 참고해서 만들었습니다.

<원소 이야기>는 제목처럼 원소의 발견과 탄생에 얽힌 이야기들을 재미있게 엮은 책입니다.

원소를 이해하려면 화학뿐만 아니라 입자물리학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도 뒤따라야 하는데 이 책은 화학, 물리학, 양자역학을 마치 원소 합성처럼 잘 섞어서 풀어냅니다.

 

바야흐로 과학도 기본 교양으로 인정받는 시대입니다.

그런데 기본이라는 말에 걸맞지 않게

과학은 어느 정도 진입장벽이 느껴지는 게 사실입니다.

 

그래서 장벽을 낮춰주는 과학책, 쉽게 설명하는 과학책은

교양 쌓기에 도움이 됩니다.

<원소 이야기>는 두껍지 않은 분량으로

기본적인 화학 지식을 빠르게 업그레이드 시켜주는 책입니다.

많은 분께 추천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