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모든 문화권에는
우주의 기원에 해단 자기들만의 신화가 있습니다.
이들 신화의 공통점은 온 세상이 초월적 존재에 의해
무에서부터 만들어졌다는 창조 신화라는 점입니다.
이러한 창조 신화는 기독교의 창조론과도 연결됩니다.
이게 비해 불교나 힌두교의 우주관은 영원불멸설입니다.
이 세상이 탄생이나 사멸 없이 영원히 계속되며
원래부터 그 자리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창조론과 영원불멸설은 서로 대립적이긴 하지만
역사 속에서 치열한 공방을 벌인 적은 없습니다.
엉뚱하게도 이와 비슷한 대립적 우주론이 과학계에서 공방을 벌인 적은 있습니다.
우주가 무에서 대폭발과 함께 시작되었다는 빅뱅 이론과
우주는 시작도 끝도 없으며 원래부터 그곳에 존재한다는 정상상태이론이
20세기 중반에 맞붙은 것입니다.
20년 가까이 이어진 공방은
빅뱅 이론의 승리로 막을 내렸습니다.
그 뒤로도 빅뱅 이론은 근거 없는 상상이나 가설에 불과하다는 소리를 듣곤 합니다.
근거,
실제로 빅뱅을 직접적으로 입증하는 방법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어떤 사건을 추정하는 데는 반드시 그 사건 현장을 직접 촬영한 CCTV가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연속적으로 등장하는 정황 증거들이 추정내용과 꾸준히 일치한다면
우리는 그 사건을 합리적인 사실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네, 오늘은 빅뱅 이론의 간추린 역사와 정황 증거들을 한번 알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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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가 대폭발에서 시작한 것이라고 맨 처음 주장한 사람은
아이러니하게도 한 가톨릭 신부였습니다.
1927년 벨기에의 성직자 조르주 르메트르는
기체를 압축하면 온도가 올라간다는 열역학 법칙을 바탕으로
탄생 초기의 우주를 엄청난 고온 상태로 추정했습니다.
초고온, 초고밀도의 원시 원자 상태의 우주라면
갑자기 폭발을 일으켜 팽창할 수 있다고 본 것입니다.
1920년대까지만 해도 우주는 움직이지 않고 정적이라고 믿던 때였습니다.
당시 최고의 물리학자인 아인슈타인과 에딩턴조차
우주의 불변성을 굳게 믿었습니다.
그런 시대에 한 성직자가 주장한 우주 팽창설은 뜬금없는 유머로 취급받기 쉬웠습니다.
하지만 그 유머는 어라 지나지 않아 진담으로 바뀝니다.
르메르트의 주장 이후 단 2년 만에
에드윈 허블이 우주의 팽창을 의미하는 별들의 적색편이를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허블의 관측은 르메르트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증거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이후 빅뱅 이론의 첫 번째 정황증거라 채택됩니다.
빅뱅의 두 번째 증거는 우주 대부분을 차지하는 원소, 수소와 헬륨입니다.
태양을 비롯한 우주의 별들은 수소를 연소해서 헬륨을 생산해 내고 있습니다.
우리 태양만 해도 매초 7억 톤의 수소를 헬륨으로 전환하고 있습니다.
언뜻 엄청난 양으로 보이지만
별들이 연소하고 생산해 내는 수소와 헬륨은
우주에 존재하는 수소와 헬륨보다 극히 미미한 수준입니다.
그렇다면 정황상, 이런 추측을 할 수 있습니다.
전 우주의 수소와 헬륨은 별이 태어나기 이전부터 존재했을 것이며
별의 핵융합과 비교도 안 되는 큰 에너지에 의해 만들어졌다.
이 추측을 바탕으로 조지 가모브와 랄프 앨퍼는
대폭발 당시의 핵융합 과정을 물리학적으로 증명하는 빅뱅 이론을 발표합니다.
그들이 계산한 빅뱅 초기의 수소와 헬륨 생성 비율은 9:1이었습니다.
이는 현재 우주에서 측정한 수소와 헬륨의 비율과 정확히 일치하는 값입니다.
가머브와 앨퍼의 핵융합 이론과 그에 따른 관측 결과는
허블의 적색변이 측정 이후
빅뱅 이론을 뒷받침하는 중요한 증거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지금까지의 증거들이 알리바이나 통신기록처럼 다소 빈약해 보이는 정황증거였다면
3번째 증거는 지문이나 DNA 검출처럼 강력한 현장 증거가 됩니다.
백뱅 이론을 발효한 가모브와 앨퍼는
우주를 창조할 만큼의 대폭발이라면 분명 그 잠재인 복사에너지가 우주공간에 흩어져 있을 것이라고 예측했습니다.
그 복사에너지를 발견할 수 있다면
빅뱅 이론은 더 이상 가설이 아닌 관측 가능한 이론이 되는 것입니다.
빅뱅의 세 번째 증거인 우주배경복사가 어떤 것인지 한번 알아보겠습니다.
반짝이는 별들로 가득찬 우주는 한편으로 타임머신과 같습니다.
10만 광년 떨어진 은하를 보는 것은 10만년 전의 과거를 보는 것과 같고
100억 광년 떨어진 퀘이사를 보는 것은 100억년 전의 초기 우주를 보는 것과 같습니다.
그렇다면 만약 이보다 더 멀리 떨어진 곳을 찾을 수 있다면
백뱅의 순간도 볼 수 있지 않을까요?
이에 대한 현재까지 답은
빅뱅의 순간은 볼 수 없지만, 빅뱅으로부터 38만 년이 지난 모습은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입니다.
38만년 이후만 볼 수 있는 이유는
그때부터 우주가 관측 가능한 투명한 상태가 되었고
그 이전은 불투명한 상태였기 때문입니다.
과연 빅뱅 이후 38만 년이 지난 현장 상황은 어떠했을까요?
물질은 온도에 따라 4가지 상태로 존재합니다.
온도가 가장 낮은 상태는 얼음처럼 원자와 분자가 단단하게 결합되어 있는 고체입니다.
여기서 온도가 높아지면 입자의 결합이 느슨해진 액체 상태가 됩니다.
그 위의 단계는 원자나 분자 사이에 아무런 결합이 없는 기체 상태입니다.
기체 상태에서는 빛이 자유롭게 통과할 수 있습니다.
물질의 4번째 상태는 플라스마입니다.
플라스마는 온도가 너무 높아 원자핵이 전자를 잡아둘 수 없습니다.
물질은 원자핵과 전자가 결합하지 않는 혼합물이 됩니다.
뜨거운 창조의 순간은 분명 혼탁한 플라스마 상태였을 겁니다.
플라스마를 이루는 입자들 때문에 빛이 계속 산란하면서
우주는 안개처럼 불투명하던 때였습니다.
팽창하던 우주가 점점 식어가면서
플라스마가 기체 상태로 바뀌는 시점이 찾아왔습니다.
절대온도가 3000캘빈으로 낮아지자
플라스마 안개가 사라지고 빛은 자유롭게 투명한 우주를 비행할 수 있었습니다.
빛의 방출이 시작된 이 시점이 빅뱅이후 38만 년 정도 뒤였습니다.
이때의 빛은 눈으로 볼 수 있는 가시광선이었습니다.
하지만 우주가 팽창하면서 빛의 파장도 늘어나자
지금 이 빛은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이크로파 형태의 복사에너지가 되었습니다.
빅뱅이 일어났다면 이 우주 배경 복사가 우주공간 전체에 골고루 흩어져 있을 것입니다.
가모브가 빅뱅 이론을 발표했던 1948년에는 관측기술이 부족해
우주배경복사는 예측 수준으로만 존재했습니다.
빅뱅 이론의 역사에서 가장 흥미로운 점은
이론 물리학자들이 먼저 가설을 세우면 얼마 지나지 않아 관측 결과가 뒤따라준다는 것입니다.
1962년 천문학자 팬지어스와 윌슨이 우연히 그러나 최초로 우주배경복사를 발견합니다.
빅뱅의 이론은 이제 관측 가능한 이론이 되었습니다.
정상상태의 이론을 뒤로하고, 우주론의 대표모델로 인정받은 것입니다.
빅뱅 이론을 입증하려는 노력은 무의미해졌습니다.
이제 필요한 것은 더 많고 더 정확한 관측데이터뿐입니다.
1989년 우주배경복사를 우주공간에서 관측하기 위해 코비 위성이 발사됩니다.
코비 위성이 보내온 데이터는 1965년의 관측자료를 정확히 보완하고
1948년의 가모브의 빅뱅이론을 확실하게 입증하는 것이었습니다.
2003년에는 고성능 장비가 탑재된 WMAP 위성이 발사되었습니다.
WMAP이 보내온 초정밀 데이터는
현재 빅뱅 이론의 궁극적인 증거이자 인류의 위대한 발견으로 평가받습니다.
우주의 나이가 137억 년으로 오차범위 2억 년 이내 수준에서 정밀히 계산되었고
암흑 물질과 암흑 에너지 분포까지 포함하는 놀라운 데이터가 확보된 것입니다.
지금까지 얻어진 관측데이터는 너무 방대해서
이론물리학자들이 따라가기 벅찰 정도라고 합니다.
현재 우주론은 상상과 추론이 난무하던 불확실성의 시대를 지나
정확한 관측자료를 토대로 한 확실성의 세계로 옮겨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초끈이론과 M이론과 같은 새로운 이론들이
우주의 기원에 대한 남은 의문을 해소해주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이론들이 맞는다면 우주는 오래전 2종교(영원불멸설의 불교, 창조론의 기독교)의 우주관을 통합한 형태가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우주는 영원불멸한 바닷속에서 천지창조가 이루어진 것이다.
시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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