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년, 영제가 세상을 떠난 뒤,
소제가 후한의 13대 황제로 즉위하면서
새로운 황제의 시대로 접어들자
궁궐 내 권력 중심의 기류는 기존 십상시 무리들에서
하태후의 오빠인 하진 중심으로 바뀌어 갔습니다.
건석은 환관의 세상이 완전히 끝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소제를 폐하고 동시에 하진도 함께 처리하여
다시 왕을 내세우자고 십상시를 설득했지만
십상시는 쿠데타 계획이 무모하다 판단하였고
되려, 건석의 역모를 하진에게 일러바치면서
건석은 죽음을 맞이하였습니다.
이제, 조정은 하진의 천하가 된 듯 하였으나
환관들은 우선은 자신들이 살기 위해 건석을 버리면서도
한편으로는 하진을 견제하기 위해 머리를 굴렸습니다.
소제의 어머니 하태후와 맞서기 위해서는
환관들은 기존 영제의 모친인 동태후와
그의 조카 동중을 중심으로
뜻이 같은 편을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군대와 관련된 권한이 하진에게 모두 집중된 마당에
나라를 통치하는 정사의 권한을 두고서는
하태후 측과 동태후 측이 경쟁하는 형태를 보였습니다.
즉, 새로 등극한 황제가 아직은 어린 나이였기에
누가 대리청정을 할 것인가를 두고
정치에 오랜 경험을 바탕으로 한 집안 어른 동태후인지
아니면, 황제의 친모라는 자격을 내세우는 하태후인지
서로 대립각을 세웠던 겁니다.
동태후는 며느리인 하태후가 자신에게 예의도 갖추지 않고
공격적인 태도로 날을 세우는 것을 보며
과거 하태후가 유협의 모친 왕미인을 독살했는 일을 상기시켰고
계속 욕심을 부리면, 조카 동중을 시켜
하진의 목을 베겠다고 엄포를 놓았습니다.
시어머니의 협박으로 화가 난 하태후는
이를 곧바로 하진에게 알렸는데
하진은 늙은 노인네가 막말을 쏟아내는 것을 그대로 볼 수만은 없다며
동태후에 관한 대응을 즉각 행동으로 옮겼습니다.
하진은 궁궐 내 권력자들을 동원하여
대장군과 삼공이 공동으로 표문을 올렸고
표문에는 동태후가 예로부터 쌓아 올린 비리가 많아
이제 자리에서 물러나게 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겨있었습니다.
하진이 진행한 일은 황제로부터 윤허를 받아야 했지만
아직 어린 황제의 윤허라는 것은 그저, 형식에 불과하였고
미리 준비한 병력을 데리고
일사천리로 동중을 잡아 처형하였으며
다음날, 동태후도 죽은 채로 발견되었습니다.
하태후와 동태후 사이의 갈등은 얼마 가지도 않아
하씨 집안의 뜻대로 동중과 동태후가 제거되자
궁궐 분위기의 변화를 몸소 체험하던 원소는
하진에게, 이참에 한나라 근본 해악인
환관들까지 완전히 일소하자고 설득했습니다.
하지만, 하진은 원소와 생각을 같이하면서도
동시에 환관 세력을 모두 없애는데 있어서는
다소 주춤거리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하진은 천민 출신인지라 그 시대에 누구도 이룰 수 없었던
궁궐 내 대장군의 자리를 차지하는 데 있어
환관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불가능했기 때문에
자신을 밀어주었던 환관들을 완전히 숙청하는 데는
그리 쉬운 결정을 내리지 못했습니다.
또한, 20년 전 영제가 즉위하던 시절에
명문가 출신의 지식과 능력을 갖추었다는 두무와 진번이
환관 숙청을 시도했지만
이들마저도 환관들의 계략으로 역풍에 시달리며
되려 당고의 금을 겪으면서, 모조리 처형당한 역사가 있었기 때문에
환관에 대해서만큼은 함부로 건드리고 싶지 않았던 겁니다.
원소의 빠른 환관 숙청에 대한 건의에도 불구하고
하진은 결정을 내리지 않은 채,
동생인 하태후와 환관 제거 계획에 대해 논의했습니다.
하태후는 하진의 말을 듣고서 계획을 반대하였는데
이유인즉슨, 아직 30대도 안 된 젊은 나이의 여자가
나라일을 논하는 데 있어
그 상대가 환관이 아닌, 일반 남성들을 계속해서 마주하기에는
고대 사회 기준에서는 상당히 부담스러운 일이었습니다.
궁궐에서 지내는 하진의 가족들로는
무양군과 2명의 동생 하태후, 하묘가 있었습니다.
백정 출신의 하진은 가족 관계가 다소 복잡했는데
무양군은 원래 주씨의 아내로 아들인 주묘를 낳았다가
후에 하진의 아버지에게 재가하면서
아들인 주묘가 성을 바꾸며 하묘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진의 아버지와 무양군 사이에 하태후를 낳게 되어
하진과 하태후는 아버지가 동일한 관계
하묘와 하태후는 어머니가 동일한 관계로
하진과 하묘 사이에는 실질적으로는 접점이 없는 사이였습니다.
하태후가 낙양에 입성하고 환관들의 눈에 들어
영제의 곁에 있으면서, 10여 년이 흐른 후
이제는 정사를 논하는 자리에 위치하게 되자
하묘와 무양군은 자신들이야말로 하태후와 진정한 혈연관계인데
하진이 권력의 중심에 놓여있다는 현실이 불만스러웠습니다.
하묘 또한 하진과 마찬가지로 천민 출신으로
여동생이 영제와 가깝게 지내던 시절
천민에서 벗어나 하남윤으로 재직하였습니다.
형양(滎陽)에서 도적들이 출몰하여 마을을 어지럽힐 때
하묘가 이를 평정하면서 거기장군으로 승진하여
동생 하태후와 하진의 그늘 아래
조정 내 2인자 자리를 차지했음에도
하진의 1인자 자리를 탐탁지 않게 여겼습니다.
하묘는 친모인 무양군을 찾아가
하진을 견제하고, 여차하면 몰아내기 위해서는
기존 정치 실력자들인 십상시와 손을 잡아야 한다고 설득하였고
이런 하묘의 움직임에, 장양을 비롯한 십상시는
이 길이 다시 한번, 자신들의 세상을 만들 수 있는 기회라 여겨
무양군에게 물량 공세로 뇌물을 갖다 바쳤습니다.
하태후의 친모인 무양군은
아들의 설득과 십상시의 뇌물로 직접 몸을 움직여
딸을 찾아가 하진에 대한 의심을 키웠는데
내용인즉슨, 하진이 환관을 모두 죽이고 나면
자신이 권력을 독점할 것이 분명하다는 이야기로
하태후 또한, 어머니의 말을 듣고서 하진을 경계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묘와 무양군, 하태후가 십상시와 결탁하는 동안
하진은 여전히 원소로부터 환관 제거를
서둘러야 한다는 재촉을 받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진은 계획이 실패할 경우
환관 무리들이 분명 자신을 먼저 죽일 것이라는 생각에
계속해서 우유부단한 모습을 보이자
원소가 다음 안을 내놓았습니다.
원소는 지금의 새로운 황제 시대에서는
하진의 권세가 하늘을 찌르고 있다는 것을
하태후에게 직접 보여주기 위해
전국에 있는 명장들과 호걸들을 낙양 근처로 불러들여
대규모 병력들로 하여금 당연히 환관들을
척살해야 한다는 분위기를 조성하자고 제안했습니다.
하진은 원소가 제안한 전국 곳곳의 병력을
자신의 주변에 두는 것에 대해, 적극 찬성하였습니다.
하지만, 이때 진림이 나서 원소의 의견에 반대하였는데
진림은 수많은 군사가 한꺼번에 모이면 되려
더 힘이 쎈 자가 낙양을 차지할 욕심을 낼 것이라 간언했습니다.
하진은 진림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고
이를 지켜보던 조조는 진림처럼 직접 나서진 않았지만
환관 세력 무리를 치기 위해
전국의 군벌을 모으고자 하는 하진과 원소의 생각에는
부작용이 따라올 것이라 짐작했습니다.
오늘은 삼국지 31번째 시간으로
영제가 죽은 뒤, 하태후와 동태후의 대립,
원소가 환관을 숙청하기 위해
하진을 설득하는 이야기로 정리해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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