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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32 : 십상시 장양의 노여움

Buddhastudy 2024. 2. 22. 20:08

 

 

영제 사후, 소제의 시대로 접어들어

군권 장악은 대장군 하진에게 모두 집중되면서

하진은 오랜 세월 동안 환관들과 대립각을 세워온

사대부들의 환관 숙청 바램을 모른 채 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계획이 틀어질 경우 십상시가

정치적인 압력을 가하여 자신을 죽일 것이라는 생각에

우유부단한 태도를 보이고 있습니다.

 

그러던 중, 원소가 전국에 있는 명장들과 군벌들을

낙양 근처로 불러들여, 대규모 병력으로 하여금

환관들을 말소시킬 수 있는 명분을 만들자고 제안했고

하진은 원소의 제안에 적극 찬성하였습니다.

 

주목받는 이들로는 이미 서량의 난을 제압한 후

조정으로부터 군대를 반납하라는 명을 어기고

장안에서 추이를 관망하고 있던 동탁과

무예와 용맹이 뛰어난 병사들을 이끄는

무맹도위 정원이 주둔하고 있었습니다.

 

무맹은 무예와 용맹이 뛰어난 병사들을 지칭하는 말로

정원이 이끄는 부대는 정예병으로 알려져 있었는데

정원은 사람됨이 거칠고 치밀하진 않았지만

무용을 갖추어 말타기와 활쏘기에 능했으며

명을 받으면 어려운 일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관리가 된 후에도 위급한 일이 발생하면

도적을 추격할 때 늘 선두에 서며, 무공으로 명성을 떨쳤습니다.

 

하진은 동탁을 낙양 근처로 불러들이려 했는데

이에, 측근이었던 정태가 동탁의 성정이

포악하다는 것을 내세워 반대하였고

황건적의 난 시절, 동탁과 같은 중랑장 직책에 있었던

노식 또한, 동탁의 충정이 그리 탐탁지 않다고 여겨

하진이 동탁을 불러들이는 일에 대해 반대했습니다.

 

하지만, 하진은 주변의 반대를 무시하며

결국 동탁에게 조서를 보냈고

정원은 집금오에 임명해 낙양으로 불러들였습니다.

 

조명을 받은 또 다른 인물은 동군태수 교모가 있었는데

그는 채널 내 재생목록 삼국지 3편 교현의 조카로

교모 또한 군사를 이끌고 낙양 앞에 도착하였습니다.

 

하진의 부름을 받은 전국 각지의 장수들은

지방에서 군대들을 이끌어 환관을 모조리 없애고

나라를 구해야겠다는 일념으로 수도로 향했습니다.

 

조서를 받자마자 즉시 진군을 시작한 동탁은

조정에 표문을 올려 자신의 뜻을 전했는데, 그 내용은

자신이 지방 곳곳을 살펴본 결과

천하에 일어나는 혼란의 원인은 모두

장양을 비롯한 십상시로부터 비롯된 것을 알았기에

지금 당장은 고혈을 짜내는 고통이 따라올 수 있으나

환관을 모두 토벌하는 것만이

혼탁한 세상을 구할 수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맹폭하기로 소문난 동탁의 상서 내용이 널리 퍼지자

환관들은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져

어떻게든 동탁의 입성을 막고자, 무양군과 하묘를 설득했는데

하묘는 최근 들어 십상시와 가까워진 상태라

이복형인 하진에게 찾아가 뜻을 물러달라고 청했습니다.

 

과거, 하씨 가문이 백정에서 벗어나 궁궐에 자리를 잡을 때

환관들이 없었다면, 부귀영화를 누릴 수 없었을테니

다시 한번 심사숙고하여 환관들과 더불어

잘 지내면 모두가 좋을 것이라는 뜻을 전했습니다.

 

하묘와 함께 하태후마저 하진을 설득하고 나서자

하진은 환관들을 척살하려는 계획을

선뜻 실행하기가 어려워졌습니다.

 

하진이 전전긍긍하면서 일을 진행시키지 못하고 있으니

이러한 하진의 우유부단함이 답답했던 원소는

마치, 하진이 작성한 양 조서를 위조하여

각 지방에 있는 환관의 친족 출신을 모두 잡아들이도록 명했습니다.

 

한편, 환관의 세상이 모두 무너져 내릴 것 같이

궁궐의 분위기는 무거워지고 환관들의 입지가 점점 좁아지자

이제는 그간 참고만 있었던

십상시의 수장 장양이 노여움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장양에게는 양아들이 있었는데, 양아들의 아내

, 장양의 며느리가 하태후의 여동생이었습니다.

 

장양은 며느리를 찾아가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리며

이 늙은이가 궁궐에서 쫓겨나게 생겼는데

, 한 번만이라도 태후와 폐하를 모실 수 있다면

죽어도 여한이 없겠다고 읍소했습니다.

 

장양의 며느리는 이를 언니 하태후에게 전달하였고

십상시에게 감동받은 하태후는

앞으로도 자신 곁에 있어 달라는 명을 내렸습니다.

 

며칠 후인 825. 이날은 영제가 죽고

소제가 새로운 황제가 된 지

100일이 지났을 무렵이었습니다.

 

하태후는 자신의 어머니 무양군으로부터

하진이 권력을 독차지할 것에 대해, 의심을 품고 있었고

최근에는 십상시가 자신을 지켜줄 것이라 생각했기에

더욱 장양과 각별해진 상태였습니다.

 

장양과 십상시는 태후를 설득해

하진을 불러내는 조서를 꾸몄는데

그 내용은 태후가 이전부터 하진에게 말했던

기존 환관들이 맡고 있는 업무가 너무 많으니

이를 다른 부서로 넘기면서

환관들의 권력을 줄이자는 의견이었습니다.

 

하진은 여동생인 태후의 의논이라 철썩같이 믿고

아무 의심 없이 가덕전 안으로 들어갔는데

갑자기, 들어왔던 문이 닫히면서

매복해 있던 환관들과 무사들이 하진을 포박하였고

장양 앞에 꿇어 앉혔습니다.

 

 

 

장양은 하진을 앞에 두고

영제가 살아있던 시절, 황제가 하태후를 원망했을 때

우리가 아니었다면 누가 뒤를 봐줬겠냐고 꾸짖고서는

그 자리에서 하진을 죽여 버렸습니다.

 

하진을 죽인 장양과 십상시를 비롯한 환관들은

얼른 조서를 위조하여

이제까지 환관들에게 뇌물을 충실하게 바쳐온

번릉과 허상을 각각 사례교위와 하남윤으로 임명했습니다.

 

이윽고, 문서를 맡아보던 관직인 상서가

환관으로부터 조서를 받고 보니

번릉과 허상의 임명이 의심스러워

이 건은 대장군 하진과 의논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환관은 하진의 머리를 던지며

하진이 모반을 일으켜, 처형되었다고 전했습니다.

 

상서는 하진이 임명했던 사람으로

급박한 상황을 눈치채고 몰래 아랫사람을 밖으로 보내

하진의 충직한 부하였던 오광에게 이 사실을 알렸습니다.

 

오광은 즉시 휘하 군사들과

원술의 휘하 군사 200명을 포함해 궁을 공격하려 했지만

궁문이 굳게 닫혀 들어갈 수가 없었습니다.

 

하진이 피살된 당일, 오광과 원술이

궁 안에 진입하지 못한 채, 시간이 흘러 밤이 되자

원술은 환관들을 위협하기 위해

남궁의 청쇄문에 불을 지르는 등 하진의 피살 이후

가장 먼저 무력행사를 동원한 인물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상황을 두고, 원술이

평소 원소와 사이가 무척 나빴기 때문에

앞으로 다가올 원소의 입지에 대한 견제라고도 볼 수 있으나

원술은 당시 황실 근위대의 지휘 책임자였기 때문에

우선은 자기가 맡은 일을 수행했다고 해석되기도 합니다.

 

오광과 원술이 환관에 적대적인 모습을 보이자

장양과 무리들은 태후에게 달려가

대장군 하진의 잔병들이 반란을 일으켰다며

태후와 어린 황제, 그리고

유협인 진류왕을 데리고 도망쳤습니다.

 

 

오늘은 삼국지 32번째 시간으로

하진과 원소가 환관들을 압박하던 도중

하진이 십상시에게 죽임을 당하는 내용까지 정리해 보았습니다.

 

삼국지 시리즈는 채널 내 재생목록을 통해 볼 수 있으며

그럼 끝까지 시청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평안한 하루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