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답한 게 복을 꿔 자꾸.
씨앗 뿌리고, 밭 갈고, 잡초 뽑고, 거름 주고 하는 것은 복이 아니고
그거 다 하고 난 뒤에 열매가 딱 생기는 것만 복이라고 보냐 이거에요.
그 열매라 하는 것만 복으로 여기니까
그 열매가 달려있는 것만 보다 보니까
누구 열매는 많이 달린 것 같고, 내 열매는 적게 달려서
‘왜 나는 열매가 적으냐?’를 가지고
“왜 나는 복이 없지? 왜 나는 복이 적은거야?” 라고 말을 하는 거거든요.
그러나 사실, 그 앞의 과정이 없을 수 없다는 거죠.
우리가 그 앞의 과정없이 만약에
그냥 얻어질 수 있는 것이 있다면
이 세상이 아마 굉장히 잘못된 세상일 겁니다.
그러면 돌을 심었는데 돌을 밭에 넣었는데 자고 일어나니까
거기 호박에 맺었어요.
세상 이치가 그런다면 우리가 무엇을 하겠습니까?
그렇다면 이 세상에 수많은 가르침인 종교와 부처님 가르침이 나올 수 없죠.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야기할 때 돌 심어서 호박나는 일이라면
당신이 수행을 어떻게 하셨을 것이며
선한 원인이 바로 선한 결과라는 말을 어떻게 하셨겠습니까?
복이라고 하는 것은 마이너스가 없죠.
42장경의 앞의 말씀에도
도를 누군가에게 행하고 실천하는 것 자체를 칭찬하고 찬탄한다 할 때 복이 생길 것이다라고 했을 때
그러면 그 사람의 복을 뺏어 오는 것이 아니다.
횃불처럼 횃불에 불을 옮기더라도 그 불은 사라지지 않는 것과 같다라는 것처럼
진정한 선한 행위,
농부가 열심히 밭을 갈고 잡초를 뽑는 행위
그 행위라고 하는 것에 의해서 얻어지는 결과물이 훨씬 아름답고 또 그것을 바라보는 마음이 풍요롭지
돌 심었는데 어느 날 호박이 갑자기 주렁주렁 열렸다고 하는 것을 좋아하면 안 된다는 거죠.
그건 정말 우리 삶 속에 있어서 내가 노력하거나 무엇인가를 했을 때
되지 않는 정말 잘못된 세상으로 가는 거거든요.
그 마이너스 복을 대출하는 방법, 복을 당겨쓰는 방법은
지금 빨리 좋은 생각하는 것.
그리고 내가 좋은 행위를 하는 것
그러면 이런 말 하실 거에요.
그리고 나면은 했는데, 내가 오늘 정말 열심히 해서 청소 잘하고 다 했는데
누가 와서 ‘왜 했냐’고 야단 친다
그럼 나는 복짓겠다고 했는데, 복은 어디 갔습니까?
복은요, 따로 있겠죠.
이미 복은 그분이 이 청소를 하면서 즐거운 마음을 냈고,
내가 그것을 통해서 의미 부여한 삶에서 이미 복이 왔고요
또 그리고 누군가 그것에서 알아주지 못한다는 것은
사실 복을 받느냐 안 받느냐와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그건 단순히 지혜가 없는 자의 이야기일 뿐이죠.
그리고 내가 오늘 이렇게 닦아 놓은 것의 그 열매가
지금 내가 바로 이 자리에서는 나올 수 없지만
나의 삶 속에서 어느 동산에 꽃을 피울 수 있는 겁니다.
꼭 오늘 머리 위에 내린 비가
내 눈앞에 있는 꽃을 피운 것만의 의미가 아니고
지금은 여기가 보이지 않더라도
어쩌면 더 중요한 곳에서 꽃은 이미 피어있을 거라는 거죠.
단지 제가 그걸 못본다는 생각을 가져서
미리 복당겨 쓰는 것,
지금 여러분들이 지금이라도 자꾸 좋게 생각하는 것
누군가 나를 좀 싫어하더라도
“아이고, 내가 마음에서 그걸 조금 덜어버리려고
욕하지 아니하려고 하는 마음을 내는 것.
그게 저는 이미 복을 짓고 있고
그게 복이라고 저는 생각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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