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실천적불교사상

법륜스님_ 세상을 보는 바른 눈 3, 인류 문명의 발전과 “새로운 문명”

Buddhastudy 2022. 3. 24. 19:01

 

 

문명은 효율성과 공익성을 겸비해야

발전하고 진화한다

 

그런데 인류문명은 현재 위기에 처해있다

새로운 문명은 무엇인가

어떤 삶의 태도가 새로운 문명으로 나아가는 것인가//

 

 

 

인류 문명이 발전할 때 보면

어떤 것이 계승이 되느냐, 전파가 되느냐?

 

문명이 전파가 돼.

문명이라는 것은 새로운 것을 하나 발견하면 그게 전파력을 가져요.

그때 첫째 조건이 효율성입니다.

 

그냥 땅에서 고구마를 캐서 흙 묻은 채로 먹다가

누가 물에 떨어뜨려서 흙이 씻겨서 먹으니까 굉장히 먹기가 좋아.

그래서 처음에는 자연스럽게 떨어져서 생긴 아이디어였지만

이제는 가져가서 씻어 먹으니까 좋으니까

옆에도 이렇게 보고 어때요?

따라 할까 안 할까? 따라 해요.

이건 일부 원숭이에도 이런 현상이 일어납니다.

 

누가 과일 따는데 그냥 늘 따다가

막대기 갖고 따는 걸 누가 하나 해서 효율적이니까

딴 사람도 보고 어때요?

? 나도 그렇게 하면 되겠다.”

 

따라 배우기에요.

여러분의 지금 학습이라는 게 다 따라 배우기 하는 거예요.

효율적이라는 거요, 그게.

 

그러면 효율적이면 다 전파력이 있느냐?

, 우리가 10명이 산에 과일 따러 갔어, 나물 캐러 갔어.

다 칼을 가져갈 거 아니오.

 

그런데 한 애가 잠깐 자기 나물 뜯으러 간 빈자리에

남의 것을 살짝 훔쳤어요.

효율적이요? 효율적이 아니오?

굉장히 효율적이에요.

효율적인 걸 발견했어.

 

그런데 요게 옆에 사람도 따라 배울 수가 있죠.

, 그거 효율적이다해서 따라 배울 수 있는데

이것은 그 구성원들이 다 따라 배울 수가 있나? 없나? 없어요.

그럼 전체가 손해나요.

 

이런 것은 발견이 되어도 전파력이 없어요.

그래서 공익성이 있어야 합니다.

 

문명의 성격은 2가지

효율성, 공익성

 

그래서 사람이 무인도에 가서 3명이 모여서 살든, 5명이 모여 살면

자연스럽게 태어난 사람들은

자연적 그 안에 공유될 수 있는 것은

효율성과 공익성이에요.

 

원시공동체, 원시사회에서는

이렇게 그 공동체 구성안에서 남을 해치는 게

그 안에 문명으로 자리 잡을 수가 없어요.

 

그런데 인류 역사에서는

지금 남을 해치는 게 우리의 문명 속에 있어요.

훔치는 것도 있고, 뺏는 것도 있고, 죽이는 것도 있고 많이 있잖아요.

이거 왜 생길까?

왜 생겨났을까?

 

그런데 우리 공동체 안에서 이 열린 공동체라고 그래요.

다 서로 보고 있는 공동체.

이 열린 공동체에서는 훔치는 것은 공익성, 효율성이 없어요.

공익성 없으면 효율성도 없는데.

 

그런데 이 사람이 저 10리밖에 있는 다른 공동체에 가서 훔쳐 왔어.

우리 구성원 전체에게 이익이에요.

나한테만 이익이 아니라 우리 전체에 이익이요.

 

그럼 옆에 사람이 본받아

, 다음에 갈 때 나도 가자,”해서 여러 명이 따라갔어.

뺏어오거나 훔쳐 오는 게 하나의 문명으로 자리 잡을 수 있어요.

다 이익이기 때문에.

 

그래서 이것은 다른 것과의 사이에서 일어나는데

그러면 저쪽에도 결국은 처음에는 모르고 있다가

나중에는 안 뺏기려고 그러니까 갈등이 생기겠죠.

그러면 전쟁이 나겠죠.

그래서 이에는 이, 눈에는 눈, 이렇게 보복을 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이 집단이 초기에

그런 뺏어와서 효율성을 높여서

딴 사람들은 토끼 잡는데 쓰는 무기를 사람 잡는데 쓴다든지

이렇게 해서 개발을 해서

그 부족하고 전쟁해서 이겼다.

 

이겨서 그 부족을 합했는데

평등하게 합했으면 이 문화는 없어져야 하겠죠.

그런데 하부로 노예계급으로 배치를 한 거요.

 

그러면 같은 공동체인데, 같은 사회인데

이거는 2개의 서로 다른 공동체에요.

지배계급의 윤리 가치관하고

피지배계급의 윤리 가치관이 같을까 다를까? 달라요.

 

이것을 따라 배우면 안 되니까 막아요, 못 따라 배우게.

그게 뭐예요? 신분.

신분으로 정해서 너희는 이래야 한다.

다른 가치관을 심는 거요.

 

신분의 핵심은

아버지가 누구냐? 하는 혈통의 문제에요.

그래서 계급이 발생하고 착취라는 게 나오는 거요.

 

이게 공동체 안에서 성립할 수 없는데

이게 어떻게 한 공동체 안에서 설립했는가?

한 공동체라고 하지만

여기에는 차별, 서로 다른 폐쇄, 배타적인 그런 관계를

, 장막을 쳐놓고 하는 거요.

 

그래서 윤리가, 가치관이 같이 적용이 안 되고

따로 적용되는 거요.

저 사람은 해도 되는데 나는 하면 안 되는 게 있는 거요.

 

남자 여러 여럿 데리고 살아도 되는데

여자는 여러 남자 데리고 살면 안 되는 거요.

그러니까 성적차별을 하거나, 인종차별을 하거나, 종족차별을 하거나.

 

남자라고 여자하고 차이가 뭐 있노? 이래서

여러분들이 지금 인식이 바뀌면서 열려지죠.

열려지면 윤리를 같이 적용해야 해요? 달리 적용해야 해요?

같이 적용해야 해요.

 

그러니까 지금 현대 사회라는 건 뭐냐?

크기는 커졌지만, 열려진 사회, 정보가 통제가 안 되고

따로 적용이 안 되고 자꾸 열려지니까

이제는 지배계급이 특수한 사람들이

숨겨놓고 저희끼리 적용하고 저긴 따로 적용하던 게

자꾸 알려지는 거요.

 

뭔가 보편성을 안 가지고

특수성의 논리를 내세워서 따로 적용하잖아요.

그래서 이렇게 비효율적이다.

 

이 공익성이라는 것은

인류가 발전하는데 중요한 겁니다.

이해하셨어요?

그게 나 자신을 행복하게 만드는 길이에요.

 

그래서 여러분들이 살아가는데, 여러분들은 자기의 이익을 위해서

자유롭게 노력할 권리가 있지만

공익을 해칠 권리는 없다.

가까이는 타인의 이익을 해칠 권리는 없다. 이 얘기에요.

 

/개인의 이익을 위해서

자유롭게 노력할 권리가 있지만/

 

이게 유지가 되어 주면 서로 경쟁하면서도

그 범위 안에서 경쟁하면

경쟁이 활력이 되고

전체 서로에게 이익이 되는데

이걸 넘어서 버리면, 파괴가 되는 쪽으로 간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왜 나하고 싶은 거 못하게 하나? 자유민주주의 아니냐?”

이렇게만 얘기하는데, 그렇지가 않다.

이게 존재의 본질에서부터 오는 거요.

 

그런데 이 인간끼리만 지금까지 이렇게 생각했는데

그래서 자연에 대해서

나무를 베든지, 흙을 파든지, 강둑을 막든지

이것은 인간에게만 보면 이익이었잖아.

 

그런데 지금은 이것이 마치

내 이익주의가 타인의 이익을 해쳐서

전체 공동체를 파괴하듯이

인간의 이익 추구가 자연을 파괴하는 게

결국은 내 삶의 토대를 파괴하므로 해서

인간에게 큰 손실을 가져 온 게 지금 뭐다?

환경문제다.

 

그래서 이제는 인간윤리

옛날에는 인간 사이의 어떤 공동체의 인간윤리만 갖고 되었는데

지금은 인간윤리는 환경윤리를 토대로 해야 해요.

 

그러면 과거의 환경적인 문제의식 없이 성립했던 윤리는

전부 수정이 되어야 해요.

 

과거의 종교라는 건 대부분 다 인간윤리에 중심을 둔 것이기 때문에

도덕이나 이것도

지금 이게 대폭 수정이 되어야 해요.

 

그래서 이제 우리는 지구 공동체,

이 지구 공동체라는 말 속에는 공동체 구성원에

나무도 들어가고 다른 생물도 들어간다, 이렇게 되는 거요.

 

인류 공동체라는 속에는

아프리카 사람도 들어가고, 저 인도 사람도 들어가고, 다른 사람도 들어간다, 이렇게 되는 거고.

민족 공동체 안에는 북한 사람도 들어가는 거고.

 

우리 대한민국 공동체 안에는

경상도 사람만이 아니라 전라도 사람도 들어오는 거고.

 

지금 현대 사회의 3가지 큰 위험, 위험 요소가 뭐냐?

첫째, 자아상실

둘째, 인류 공동체 붕괴

셋째, 자연환경 파괴

 

지구 공동체를 파괴하고 있고

인류 공동체가 붕괴하고 있고

자아가 상실되고 있다.

 

새로운 문명은

자아를 회복하고

인류 공동체성을 회복하고

자연환경을 보존해 내야 한다.

 

, 그래서 앞으로 여러분들이

어떤 문명적인, 문명의 발전, 진화, 이런 용어를 쓰려면

효율성만 갖고 안되고

효율성이 반드시 뭘 같이 겸해줘야 한다?

공익성을 겸해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