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상대를 손해 보게 하면
내일 나에게 손해가 돌아온다
우리의 존재는 협력에서 나오고
서로 손을 잡아서 나오는 것인데
그 손을 놓으면 공동체는 깨진다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경제활동을
어떻게 경제를 바라봐야 할까//
원시사회에서 각자 자기가 노력해서 먹고 살아요.
새나 토끼나 이런 것처럼.
그럴 때는 자기노력 여하에 따라서 먹을 것이 많기도 하고 적기도 해요.
/먹을 것을 만드는 행위를 경제라고 하면
그때의 경제는 생산적 개념만 있어요/
그런데 각자 사냥을 하는 것보다
둘이나 셋이 협력을 해서 사냥을 하니까
생산물이 늘어났어요.
그러니까 협력을 하면 효율적이에요.
내가 혼자서 하루 종일 노력해서 토끼 한 마리를 잡는데
둘이서 협력하면 3마리를 잡을 수 있다.
그러면 이게 효율적이에요.
협력하는 게 효율적이다.
서로에게 이익이다. 이럴 때 공동체에요.
효율적이면 서로에게 이익이니까.
그런데 이익만 있는 게 아니에요.
3마리 잡았다. 확실히 늘어났어요.
집에 갈 때, 어떻게 가져갈 거냐?
나한테 제일 좋은 건 몇 마리 가져가는 거다?
3마리 다 가져가는 거요.
가져가는 방법이
내가 3마리 가져갈 수도 있고, 2마리 가져갈 수도 있고, 1마리 가져갈 수도 있고, 0마리 가져갈 수도 있어요.
3마리 가져가고 싶다.
그런데 3마리 가져가면 오늘은 나한테 이익이에요.
그런데 한 마리도 못 가져가는 상대편 입장에서는 내일부터는 협력할 필요가 없어지니까
협력이 깨져요.
그러니까 공동체가 해체된다.
서로에게 이익을 공유하는 것이 깨지니까
다시 한 마리로 돌아가니까
길게 보면 나한테 손해에요.
단기적으로는 상태한테 손해이고, 내일까지 생각하면 나한테도 손해다.
왜 그러냐?
공동체가 깨지니까.
/우리의 존재가 협력에서 나온건데
그 손을 놓게 되니까, 공동체가 깨진다./
이렇게 /타인의 이익을 해치고 자기의 이익도 해치는 바보같은 짓을 뭐라고 한다?
이게 탐욕이에요./
3마리 가져가겠다는 건 사람이 다 욕망이 있으니까
“그럴 수 있겠다” 이렇게 생각해야 해요? 바보 같은 짓이에요?
바보 같은 짓이에요.
멈춰야 해요.
2마리 가져가고 싶다
그러면 상대가 1마리 가져가요.
상대한테 손해를 끼친 건 아니죠.
그런데 상대는 기분이 나빠요.
내가 1마리 가져가고 상대가 2마리 가지면
손해난 것은 아닌데 기분이 나빠요.
/한 마리 갖는 것이 공동체를 유지하는 마지막 한계/에요.
기분은 나쁘지만 공동체를 깨지는 않아요.
손해난 것은 아니니까.
어떤 때는 기분이 나쁘면 이익 보고도 깰 때가 있어요.
여기서 1마리와 2마리 사이, 이게 현실이에요.
/공동체를 유지하는 가운데
다시 내가 이익을 더 가져가고 싶은 것의 현실적인 타협은
1마리와 2마리 사이에요/
/만약에 1마리도 못 가져간다
이게 기분나쁜 문제가 아니라
나의 생존권이 위협받기 때문에
내일부터 같이 협력 안하겠죠.
역시 깨지는 거요/
그러면 1마리도 못 가져가면서 계속 같이 협력한다?
그럼 이건 뭐예요?
바보예요.
이게 착취당하는 거요.
착취당했다, 할 때의 기준이
쟤는 1.8마리 가져가고 나는 1.2마리 가져가는 건 착취가 아닙니다.
내가 1마리 이하를 가져갈 때 착취가 되는 거요.
내가 나도 1마리 가져야지 하는 것을
“야, 임마, 불교신자가 욕망을 버려야지 임마‘
그러면 안 돼요.
이거는 기본적 욕구에요.
자, 그런데서 우리가 1마리를 갖는 것은 보장해줘야 할 이이고
2마리 이상 갖는 것은 강제로 못 갖도록 제도적으로 조처를 해줘야 해요.
이게 제도적으로 이걸 마련해야 한다.
신자유주의에서 3마리가 갖는 사람이 생긴가
제도적으로 이걸 막아야 한다.
이게 경제민주화, 법적으로 보장을 해서 제도적으로 법제화 시켜야 한다.
조그마한 동네에 대형 할인마트 만들어서 골목상권을 붕괴하는 것을
이것을 자유경쟁으로 볼 거냐?
이것을 공동체 붕괴의 측면에서 볼 거냐?
이건 견해가 다는 거요.
공동체 붕괴의 요소가 있다하면 못하게 막아야 한다.
내가 이익을 추구할 수 있는 권리는 있는데, 2마리를 넘어서면 안 돼요.
내가 욕망을 절제해야 하지만, 한 마리까지는 나에게도 권리가 있다.
/분배, 분배를 어떻게 할 거냐?/
이게 경제의 핵심이에요.
협력해서 어떻게 해서 토끼를 더 잡을 거냐?
이게 골치 아픈 게 아니고
이걸 어떻게 나눌 거냐?
1.5마리씩 딱 나누면 이상이죠.
탁상 공론하면 1.5마리가 이상이죠.
그런데 1.5마리가 딱 이상이 아니에요.
왜? 보디사트바, 보살끼리 모이면 1.5마리가 정상일지 몰라도 현실에서는.
노력해서 똑같이 나눈다하면 사냥할 때 열심히 안 하겠죠.
그래서 결국은 2마리도 못 잡고 1마리 잡혀요.
둘이서 서로 안 해서.
열심히 뛰나 안 뛰나 그냥 반반씩 나누니까.
그러니까 여기에 이상은 1.5마리이지만
이 더 많이 잡도록 하는 효율도 높이고,
그렇다고 분배를 잘못하면 1마리 이하 갖게 되면 일할 의욕이 사라져버리기 때문에
이러면 다시 공동체가 깨지니까 역시 효율이 떨어지는 거요.
이 효율을 높이기 위해서는 협력을 해야 하는
즉 생산을 위한 협력해야 하는 것만 아니라 분배를 어떻게 적절히 할 거냐?
이건 굉장히 중요한 거요.
그래서 경쟁의 핵심은
생산과 분배, 2가지를 다 생각해야 하는데
우리 사회는 경제하면, 생산만 생각하는 거요.
생산이 커지면 떡고물이 떨어진다 이거요.
많이 잡으면 네가 가져갈 게 늘어난다.
그런데 그런 측면도 있어요.
파이가 커지면 나눠 먹을게 많다.
그런데 그건 주로 생산만 얘기하는 사람들이오.
요즘 우리 사회가 좀 저성장이기 하지만 그래서 3% 성장해요? 안 해요?
해요.
그런데 개인에게 물어보면 수입이 늘어나요? 안 늘어나요?
안 늘어나.
지금 자영업자들은 수입이 계속 줄어요.
그래서 사회적 계층별을 조사하면 한쪽엔 주는데 한쪽에는 20% 30% 늘어나는 데도 있어요.
앞으로 마이너스 성장을 해도 늘어나는 데가 있겠죠.
플러스 성장을 해도 줄어드는 데가 있고.
이건 뭐요?
분배 문제에요.
이 분배 문제가
즉, 양극화가 심해지면 아까 얘기했지만
착취당한 계층은 생존권이 위협받겠지만
착취당하는 것은 아니라 하더라도 배 아픈 사람들이 너무 많은 거요.
그러니까 행복하지 않아.
30년 전에 배고플 때나 지금 배부를 때나
행복도를 조사하면 별로 늘어났다고 볼 수가 없어요.
자, 그런데서 오늘날 우리가
/사회적인 문제를 전체적으로 보고
사람이 행복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가야지
그걸 전부 개인적인 문제로만 돌려버리면 안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이번 강의 주제는
사회적인 문제에요? 개인적인 문제에요?
개인 문제에요.
사회적인 것까지 고려한
결국 내 개인이 어떻게 하겠냐?
그런데서 우리들의 이익 추구권
열심히 혼자서 노력해서 한 마리 잡던 거 2마리 잡는 이런 노력도 필요하지만
둘이 협력을 하게 되면
오히려 노력을 적게 하고도 더 효율이 생길 거 아니오.
이럴 때 항상 뒤따르는 문제는 분배 문제에요.
생산효율을 위해서는 협력하는 게 효과적인데
분배 문제에서는 싸워야 돼. 경쟁을 해야 하니까.
그래서 경쟁이 지나쳐서 감정이 상하면 협력이 깨져버려요.
그 경쟁, 즉 내가 이익을 얻기 위해서
이익을 추구할 권리는 누구나 다 있는데
그 이익 추구권이 무한대로 갈 수 없다, 이 말이오.
그거는 타인의 이익을 해치지 않는 범위, 전체 이익을 해치지 않는 범위라는 한계 안에서
자기 이익 추구를 해야 한다.
우리가 마약 같은 거 팔고 이런 거 팔고
이런 것은
개인의 이익 추구권이 있음도 불구하고
그것은 전체 이익을 해치기 때문에 안된다.
그래서 양심적이라는 것은
바로 공익을 해치지 않는 범위 안에서의 사익을 추구하는 사람을 보고
양심적이다, 이렇게 말하고
공익을 훼손하면서까지 이익을 추구하는 사람을
탐욕스럽다, 탐욕스러운 인간이다.
사탄 인간이다 이렇게 말하는 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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