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은 모든 생각의 기원인 동시에
모든 육체적 과정을 일으키는 기원이다.
마음에 해로운 변화가 일어나면
몸에 질병으로 나타난다.
변화는 마음의 차원에서 일어나고
우리는 마음을 통해 완전한 건강에 이르게 된다.
완전한 건강은 실재이다.
존재의 차원에서 우리는
새로운 실재를 창조하는 데 필요한 힘을 가지고 있다.
우리의 자각이 그 원천으로 돌아가기만 하면
삶의 문제는 사라진다.
그리고 사실 [문제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깨달음이 찾아오고,
그 깨달음에서 치유가 있는 신성한 세계가 생겨난다.
하지만 현대의학은 몸과 마음을 완전히 다른 영역으로 치부해 왔다.
마음은 일종의 유령이고
몸은 일종의 기계였다.
우리가 진지한 마음으로 육체를 생각할 때
사람들은 그것이 완전한 유체라는 사실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
하버드 출신의 세계적으로 유명한 영성 철학자이자
대체의학의 권위자인 디팩 초프라는
이와 같은 지식의 안내서로 <마음의 기적>이라는 책을 내놓았다.
오늘은 몸과 마음의 연결고리를 탐구하고
진정한 웰빙을 추구하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책,
<마음의 기적>에 대해 이야기해 보겠다.
--건강한 질병도 마음에서 시작된다
고혈압, 심장질환, 암, 만성, 피로, 우울증 등의 질환이 발생하는 이유는
정신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환자에게 극심한 고통을 주는 궤양성 대장염의 경우
충동적이거나 집착이 심한 사람들이 걸리기 쉬우며
성적 장애는 대체로 상대방을 얼마나 만족시켰는지를
지나치게 걱정하는 사람들에게 찾아온다.
모든 질병은 내면에 존재하는 지성의 흐름이 방해받을 때 발생한다.
지성은 단지 머리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지성은 세포보다 작은 차원은 물론
중추신경계의 차원에서도 자신을 표현할 수 있다.
유전자, 항체, 호르몬, 뉴론 등은 모두 지성의 표현이다.
우리는 지성의 표현을 찾아낼 수는 있을지언정 지성 자체를 볼 수는 없다.
지성은 그 자신을 표현하는 하나하나의 차원에 스며들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우리 안의 모든 곳에 있고 자연 속에 보편적으로 존재한다.
지성은 마음이며 그 영역은 온 우주를 포함한다.
또한 건강한 사람이 그렇지 못한 사람보다 더 행복하다는 것은 너무나 분명하다.
행복은 대부분의 시간을 행복한 생각을 하면서 보낸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면 행복한 느낌이 뇌에서 생화학적 변화를 일으켜
몸의 생리에 심오하고 유익한 영향을 미친다.
반면에 슬픔과 걱정, 우울한 생각은
뇌 안에서 몸의 생리에 해로운 영향을 미치는 화학작용을 일으킨다.
생각은 우리의 의식적인 통제 아래 놓여 있기에
뇌의 화학작용 역시 매우 쉽게 통제할 수 있음이 분명하다.
최근 이루어진 한 연구 결과는
플라시보 효과가 실제로 가능함을 보여준다.
출혈성 궤양으로 고통받는 환자들에게
치료에 매우 효과적인 약이라고 하면서 가짜 약을 주었다.
그 약을 먹은 환자 가운데 70퍼센트가 넘는 사람들이 즉시 출혈을 멈추었다.
반면 아직 실험 중이어서 효과가 입증되지 않았다고 말하며
약을 투여한 집단에서는
단지 25퍼센트의 환자만이 출혈을 멈추었다.
생각은 이와 같이 놀라운 치유력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치유력이 발휘되기 위해서는
생각을 순수하게 간직하고 진실하게 믿어야 한다.
치료에 힘을 가진 생각이
신경전달물질에 오랜 기간 영향을 미칠수록
신경전달물질이 뇌 기능에 미치는 영향도 그만큼 커지기 때문이다.
사고 패턴과 마음 상태가 그렇게 중요하다면
우리는 건강을 위해 그것을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답하려면
우리는 먼저 생각이 무엇인지
마음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이해해야 한다.
--마음과 의식, 지성은 모든 곳에 퍼져 있다.
우리는 주위의 모든 곳에서 생각의 표현들을 볼 수 있다.
당신이 살고 있는 집, 자동차, 컴퓨터, 음식을 먹는 일도
단지 생각의 표현일 뿐이다.
대다수의 생각은
당신이 모르는 사람에게서 온 것이다.
인간의 마음은 이 모든 생각들을 자연스럽게 공급하고 수용할 수 있다.
즉 인간의 [마음은 창조적인 지성의 저장소다.]
그 안에서 창조적인 생각이 잘 조직될 때
쉽고 자연스러운 행동이 이어지고
그를 통해 우리는 책이나 물건, 건강한 육체 같은 외부적인 표현들을 얻는다.
우리는 의식으로부터 사물을 창조하는 것을 항상 경험하고 있다.
예를 들어
내가 화가라고 가정해 보자.
지적인 충동이 내 의식, 곧 마음으로부터 흘러나올 때
그것이 적절히 조직된다면
곧바로 행동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제 나는 붓과 물감을 가져와서 조직적인 방식으로 물감을 섞기 시작한다.
그러면 내 생각은 새로운 것, 곧 그림을 창조할 것이다.
다시 말해 생각은 지능을 갖고 있다.
현대 과학은 지성을 갖지 않은 생명체는 없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렇다면 자연의 무생물은 어떨까?
돌 조각을 하나 가져와 깨뜨리고, 가루로 만들고
그것을 원자로 분쇄하고, 원자를 다시 소립자로 산산이 부순다면
무엇을 볼 수 있을까?
아마도 조직을 보게 될 것이다.
양성자와 전자, 그리고 또 다른 입자들이
조직적인 방식으로 정렬되어 있는 모습을 말이다.
쪼개지고 분쇄되어 가루가 되기 이전부터
그것들은 이미 그러한 지식을 지니고 있었다.
질서가 분명하고 자동적이며 이른바 지능적인 지식을 말이다.
이처럼 무생물 또한 자연의 계획 속에서
자신만의 지식을 다양하게 표현하고 있다.
우주의 모든 것들은 하나의 지식과 어떤 의식으로부터 솟아난다.
이 개념은 우주에서 분명하게 실재하는 유일한 것은
지식이라고 우리에게 말하고 있다.
이 지식은 의식 속에 존재하며
이것과 비교할 때 물질세계의 나머지 것들은 실재적이지 않다.
사실 물질적인 존재는 사물의 질서 속에서
분명한 자신만의 실재를 갖고 있다.
하지만 그 근원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그들은 단지 하나의 중요한 실재, 곧 지식의 표현일 뿐이다.
대서양 한가운데를 날고 있는 철새 역시
자신을 안내하는 지성의 충동을 갖고 있다.
그것이 계절의 변화에 따라 새를 이동하게 만든다.
자연의 모든 것들은
풍요로운 우주 속에서 온갖 종류의 충동과 생각을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런 시각으로 우리의 몸을 바라본다면
자연에서 펼쳐지는 것과 같은
무한한 지성이 작용하는 것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습관적으로 지성은 단지
뇌 안에만 존재한다고 여겨왔고,
그것을 좁은 의미의 지적인 능력과 동일시해왔다.
하지만 새로운 시각을 가지면
우리 몸의 모든 세포와 장기에서 작용하는 지성을 발견할 수 있다.
결국 마음과 의식, 지성은
우주의 모든 곳에 퍼져 있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진화의 목적은 무엇일까?
진화는 당신이 달라지거나
더 많은 지식을 얻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지식은 처음부터 완전한 전체였다.
하나의 세포에 저장된 정보에서 출발하는 순간부터
지식은 끝이 없었다.
물질세계에 초점을 맞추는 과학의 설명을 따른다면
진화는 근본적으로 원시 생명체가
지구상의 식물과 동물 같은 종으로
자신의 발전을 끝마칠 때까지 기어오르는 일종의 사다리처럼 보인다.
진화는 생명의 본성이다.
저명한 의사이자 과학자인 조나스 소크 박사는
인간 진화의 목적이
[가장 지혜로운 자의 생존에 있다]고 말한다.
성장은 단지 존재의 본질일 뿐이다.
지혜가 생존의 기준이라면 도대체 지혜란 무엇일까?
인도의 고전적인 정의를 참고하면
[지혜로운 자는 실재를 아는 자이다.]
다시 말해 지혜란
[삶을 전체적으로 아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완전한 건강과 행복에 깊은 관심을 갖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완전한 건강과 행복은
몸과 마음에서 펼쳐지는 무한한 지성을 이해하는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자연스럽고 발전적인 목표다.
의식의 모든 단계에는 그것과 일치하는 생리적 상태가 있다.
예를 들어
당신이 적대적인 생각을 갖고 있다면
그것은 당신의 표정과 기분, 사회적인 행동과 육체적인 느낌에 반영된다.
당신이 초조함을 느끼고 불안해하면
당신의 위장에선 과다한 산이 분비되고
당신의 핏속으로 많은 양의 아드레날린이 흐르게 되어
그 결과 당신은 위궤양과 고혈압에 걸릴 수 있다.
관찰력이 뛰어난 사람이라면
누군가의 생각을 읽는 것은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우리 몸의 세포들은
순간의 생각을 매우 정확하게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는 그중 매우 작은 부분만을 의식적으로 통제할 수 있다.
이는 우리가 올바른 방향에서
자아를 지배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한다.
예로부터 사람들은 자아에 대한 지배를 [깨달음]이라 불렀다.
깨달음은
정신생리학적 연관성을 통제할 수 있는 상태에 오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높은 차원으로 진화한 마음은
일시적인 질병에 희생당하지 않는다.
그 단계에서는 마음이 생각을 지배할 수 있고
그를 통해 완전한 건강과 행복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확장과 진화의 가능성 안에서
자아를 지배하는 우리의 자연스러운 능력은
하나의 방향으로 나아간다.
그 방향은 완전한 건강과 행복으로 통한다.
소크 박사가 가장 지혜로운 자가 생존한다고 말한 의미는 바로 이것이다.
어떤 방해도 하지 않고
정신생리학적 연관성이
우리 자신을 위해 스스로 작용하도록 놓아둘 만큼 지혜로워질 때
우리의 마음은 더욱 빨리 우리에게 완전한 건강을 안겨줄 것이다.
--자아에 대한 깨달음에 도전하라
스스로를 바라보는 시각이 자신의 모습을 만든다.
시각을 변화시킬 수만 있다면
우리는 사실 모든 관념을 변화시킬 수 있다.
그리하여 삶, 노화, 죽음을 비롯한 모든 실제를 바꿀 수 있다.
이 모든 실제를 만든 것은
우리의 관념이기 때문이다.
지금 당신의 몸을 구성하는 소립자는
몇 년 전 당신의 몸에 있었던 소립자와 다르다.
오래된 세포가 새로운 세포로, 오래된 물질이 새로운 물질로
끊임없이 교체되기 때문에
당신의 몸은 영원히 재배열되고 있다.
당신이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당신의 의식 속에서 점차 성장한다.
부정적인 상황이나 감정에 주의를 기울인다면
그런 것들만 성장할 것이다.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거나, 퇴직할 나이가 되거나
혹은 가족 중에 누군가가 갑자기 사망한다면
우울증이나 병에 걸리기 쉽다.
목표에 대한 과도한 집착과 집중력은
장기적으로는 그들을 위험에 빠뜨릴 수도 있다.
왜냐하면 의식을 좁은 길로만 달리게 하기 때문이다.
가장 높은 상태의 집중력은 오히려 목표를 초월한다.
이 상태에서는 주변 상황에 흥분하거나 일상적인 문제로 동요하지 않는다.
이들이 뿜어내는 평온함은 지혜와 매우 가까이 있다.
건강을 창조하는 데 진정한 토대가 되는 이것은
다름 아닌 [자아에 대한 깨달음]이다.
권력과 돈의 위력은
자기 자신을 아는 데서 발휘되는 힘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이 힘은 사람으로 하여금 늘 긍정적인 자세를 갖게 하는데
일부러 노력하지 않아도 삶이 그런 마음을 가져다 줄 것이다.
이는 오직 자아에 대해 깨달을 때만 가능하다.
우리가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것은 결코 성장하지 않는다.
관심이 적절한 조화를 이룰 때,
즉, 흥분하지 않고 애쓰지 않은 채로 관심을 쏟을 때
자아에 대한 깨달음은 그냥 생겨난다.
그것은 뇌가 끊임없이 몸으로 건강을 전달할 수 있는 경로를 열어준다.
우리 내면에 부정적인 것들과 싸우는 일이 부질없음을
미리 알고 있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는 현재에 집중을 해야 한다.
과거는 이미 흘러갔고, 미래는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가 과거를 생각한다는 것은
과거의 일을 지금 똑같이 만들고 있는 것이며
미래를 걱정한다는 것은
걱정을 미리 만들고 있는 행위인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현재에 집중]해서 현재에 행복을 추구해야 한다.
현재에 집중하게 되면
시간에 지배당하지 않고 살 수 있으며
그렇게 되면 미래는 행복한 일들로 가득할 수 있게 된다.
--마음이 진정한 실재를 만든다
우리에게 가장 실재적인 것은 우리 자신이다.
어떤 사물이 자신의 존재를 뚜렷하게 드러낼수록
우리는 그것이 분명히 실재한다는 걸 더욱 쉽게 인정한다.
과학자들은 대체로 감각으로 쉽게 인지할 수 없는 것들을
존재하지 않는다고 간주한다.
하지만 과학은 오랜 시도 끝에
감각이 느낄 수 있는 영역 안으로 많은 것을 가져다 놓았다.
무선통신 덕분에
우리는 우주 공간에서 들려오는 작은 소리도 엿들을 수 있다.
무선통신이 없었다면
우리는 이런 소리를 전혀 몰랐을 뿐만 아니라
그런 소리는 없다고 당당하게 말했을 것이다.
여기서 분명한 것은
우리는 자신의 인식에 따라서 실재를 만들어 낸다는 것이다.
우리는 여러 감각을 이용해서 실재를 판단하며
우리의 감각이 선택한 모든 것은 마음으로 전달된다.
실재는 궁극적인 감각인 마음속에서 형성된다.
즉 마음이 실재를 만드는 것이며
마음은 세계의 창조적인 원천이다.
따라서 당신과 나는 세계의 원천이다.
저기에서 무언가를 창조하기 위해 먼저 해야 할 일은
저기에 어떤 실재가 존재하는 것에 동의하는 것이다.
그리고 나면 우리 사이의 합의가 실재를 형성할 것이다.
우리가 함께 실재를 형성하기로 동의하면
당신과 나는 집단의식을 만든다.
우리의 집단의식은 우리가 피상적으로 바꿀 수 있는 의견보다
훨씬 깊은 차원에 있으면서
실재가 존재한다는 것에 동의한다.
우리는 늙고 병들고 무기력해진다.
왜냐하면 그런 것들이 삶의 실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것은 우리가 받아들인 생각에 살아있는 표현이다.
그것을 더 나은 것으로 변화시키고 싶다면
먼저 집단의식을 바꾸는 법을 배워야 한다.
역사가 충분히 보여주고 있듯이
우리가 가진 선의만으로는 실제를 변화시킬 수 없다.
마음속에 좋은 생각을 가지는 것은 반드시 필요하지만
그것이 집단의식 속에 잘못된 생각들을 물리칠 때까지는
당당한 실재가 되지 못한다.
우리가 집단 이식을 통해 무언가를 보여줄 때까지
회의주의자들은 그것이 실재하지 않는다고 여길 것이다.
감각으로 느낄 수 있는 것만이 실재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자아에 이르는 명상의 기술
대부분의 사람들은 명상이
육체의 이완이나 마음의 평화와 관련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런 것도 가치가 있겠지만
명상의 목적은 더 높고 영적인 것에 있다.
성각자들이 명상과 엄격한 수행을 실천한 것은
자신의 진정한 자아를 발견하기 위함이었다.
그들이 이루려는 목적은 휴식이 아니라 [깨달음]이었다.
몸과 마음은 경험을 하지만 [경험하는 자는 아니다].
어쨌든 경험을 하고 있는 사람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사람이 진정한 당신이다.
그 당신이 시간의 제약을 받는 모든 경험 속에서
시간을 초월한 본질이고
생각을 생각하는 자이고
몸과 마음의 생기를 주는 자다.
그런 당신은 다름 아닌 영혼이다.
현대 과학은 어떤 생각이나 의도가 나타나자마자
그것을 분리하여 추적할 수 있다.
하지만 세상의 어떤 과학적인 도구도
생각의 진정한 기원에 대해 밝힐 수 없다.
본질적인 당신은 에너지나 물질 속에서 찾을 수 없다.
넓은 의미에서 인간 존재는 세 가지 뚜렷한 차원에서 이해될 수 있다.
-첫 번째 차원은 물질과 에너지로 구성된 [물질적인 몸]이다.
-두 번째 차원은 미묘한 몸으로 불리는 것으로
여기에는 [마음과 지능, 에고]가 포함된다.
-세 번째 차원은 [정신과 영혼]이며,
이것들은 인과체라고 불린다.
명상을 통해 우리는 자신의 자각을
첫 번째 차원의 내면적 혼돈 상태로부터
영혼과 정신을 의미하는
침묵과 고요한 의식의 상태로 끌어올릴 수 있다.
수행과 집중을 통해
우리는 거대한 지식과 이해로 가는 길로 들어설 수 있다.
당신에게는 무한한 의식을 가질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그것이 바로 당신의 진정한 모습이다.
이런 능력을 펼치는 것은
사실 전체성의 기억으로 돌아가는 과정이고
당신 삶의 모든 측면을 치유하는 과정이다.
명상 수행은 여러 가지 형태를 띨 수 있으며
일부 높은 수준의 명상은 [만트라]를 이용한다.
만트라는 태초의 소리로써
우리의 마음이 일상적인 정신적 활동에서 벗어나
침묵의 차원을 자극하는 데 이용될 수 있다.
보통 만트라는
적절한 위치에 있는 스승이 선택해서 제자에게 개인적으로 가르쳐준다.
매일 일정한 시간 동안 명상하면
내면의 자아와 의미 있는 접촉을 할 수 있다.
그것은 당신에게 있는 무한한 내면의 지성이고
아울러 우주의 지혜가 반영된 것이다.
내면의 지혜를 신뢰한다면
당신의 능력으로 이루지 못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
'체인지그라운드(2024)'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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