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상락아정의 자기를 발견하면
현상계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워지는 거예요.
이 과정을 맹자의 입장에서 한번 이야기를 해본다면
왜냐하면 우리가 이해하기 쉬워서.
맹자 사상의 핵심은
그 방심이라는 말이에요.
방심,
“방심한다” 그 말이 있죠.
그 방심이에요.
방심이 맹자 사상의 핵심이에요.
맹자가 볼 때
보통 사람들 참 희한하다.
자기 집에 닭 한 마리만 없어져도 동네방네 뒤져서 닭 찾으러 돌아다니는데
아니 자기 마음을 잃어버리고 찾을 생각을 안 한다 이거예요.
이때 마음은 의식이잖아요.
그러니까 제일 신기한 거는 뭐냐 하면
사람마다 의식이 이렇게 있는데
이 의식을 무의식 상태로 살아가는 것.
이거 이해되세요?
의식이 의식으로서 자각 상태
자각 혹은 각성
각성은 술에서 깬다는 말이잖아요.
성_ 술 주
술에서 깬다는 말이거든요.
이 술에서 깬 상태로 의식이
자기가 의식이라는 것을
무명 상태에서 깬 상태로 살아가는 것이
의식 상태라면
일반인들은 무의식 상태로 살아간다.
그래서 거의 루틴하게 살아요.
하루 24시간을 거의 일상적인 생각, 감정의 거의 휩쓸려서 살아요.
그러니까 자기가 의식이라는 걸 놓치는 거죠.
그래서 의식을 놓쳤다, 이거를 방심이라고 해요.
그래서 하여튼 맹자 말은
사람들이 자기 집에 닭 한 마리만 없어져도
그렇게 난리를 피우는데
자기 의식을 잃어 먹고도 찾을 줄을 모른다.
그래서 무명 상태를 방심이라고 부른 거예요.
이해되죠?
[무명], [방심]
요즘 말로 하면 [무의식] 상태예요.
의식이 잠든 상태
그러니까 무명, 방심, 무의식
이게 지금 일반인들의 정신 상태다.
표준적인, 노멀한 사람들의 보통 정신상태다.
이 말 이해되시나요?
그래서 맹자는 뭐라고 했냐 하면
“잃어버린 방심을 구하라.”
그래서 求放心이 맹자 사상이에요.
방심을 구하라.
집 나간 방심을 다시 집으로 찾아오기
그래서 소위 말하는 [마음챙김] 또 [현재에 깨어 있기]
이런 게 전부 [구방심]을 이야기하는 거예요.
이 말 이해되셨나요?
구방심의 결과로 어떻게 되는가?
得心이 되겠죠.
찾아온다, 의식을 찾아온다.
득심,
일반인들이 방심인데
구방심을, 집 나간 마음을 구, 구해서
득심, 마음을 찾아온다.
이 말도 무슨 말인지 아시겠죠?
득심이다.
그럼 득심을 하게 되면
그다음에는 뭐라고 부르냐 하면
[수심], 마음이 집 나가지 않도록 단속해서 지킨다.
지킬 수, 수심.
지금 방심 상태인 것을
구심을 해서
득심을 해서
수심을 해서.
이 수심이 수행에 해당되는 거예요.
그러면 이게 일반 마음공부라면
불교에서는
그러니까 이거는 뭐냐 하면
본질에 집착하는 거예요.
수심의 내용은 뭐냐?
수심의 내용은 본질에 대한 집착이에요.
그래서 고요하게 있으려고 해요.
많은 사람들이.
명상의 목적이 뭐냐?
고요하게 있으려고 해.
그것도 이해는 돼요.
생각에 시달리니까.
생각 감정에 워낙 시달리니까 고요하게 있으려고 해요.
‘수심이 목적이다’
이거는 어느 정도 설득력이 있어요.
선에서도 이걸 해야 돼요.
근데 이게 끝이 아니에요, 문제는.
먼저 집 나간 마음을, 의식을 한번
“이게 의식이구나” 알아채고
그리고 그 의식을 계속 깨어 있으려고 하는 것까지는
이해가 되죠, 자연스러운 흐름이죠.
그런데 문제는
수심도 수심의 마음에 메이는 거예요.
그래서 이게 어떤 상태냐 하면
현상이 싫어서 본질을 찾았는데
본질을 찾은 다음에는
현상으로 안 돌아오고 본질에 집착하고 있는 상태
이것도 아직까지 마음은 자유롭지 못해, 이해되나요?
그래서 이 수심 상태는 뭐냐 하면
계속 생각하고 싸워.
이해돼요?
그래서 수많은 분이 저한테 하는 질문이
“어떻게 하면 생각이 없는 상태를 유지할 수 있습니까?”라는 질문이에요.
그 말 이해됐나요?
이렇게 해야 돼요. 처음에는, 해야 돼.
근데 답이 뭐냐 하면
“어떻게 하면 생각 없는 상태를 유지할 수 있습니까?”에 대한 질문에 대한 답은
여기까지가 일반 공부라면
선은 뭐냐 하면, 선의 본령은
要放心이에요.
이건 뭐냐 하면
다시 그 마음을 풀어버려라, 이거예요.
집 나간 마음을 데려왔잖아요.
집 안 나가게 자꾸 단속하잖아요.
근데 이것이 이렇게 되면 죽을 때까지 이래야 돼.
다시 말하면 죽을 때까지 생각하고 싸워야 돼.
근데 의식이 익어진 사람은
의식이 익은, 수심이 된 사람은
다음에 요방심
다시 말하면 본질에도 집착을 놓아버려야 돼요.
요방심
다시 마음을 놓는 것을 해야 한다.
요방심 뜻은 아시겠습니까?
그러니까 이게 백척간두에서 진일보라는 거예요.
그러니까 보통 사람들은
“아, 이게 의식이구나”
또 “아, 이게 법이구나” “이게 진리구나” 하고 알게 된 사람은
거기에 강력한 집착을 하게 돼요.
그러면 그 집착 뒤에는 에고가 붙어 있어요? 없어요?
에고는 생존 전략이
현상에 집착하게 하다가
“말 안 듣네. 본질에 가네.”
그러면 우리로 하여금 또 본질에 집착하게 만들어.
그러면 본질에 집착해서 법이 있으면 아도 있어요.
법상이 있으면 아상도 같이 있어.
이게 지금 에고의 전략이에요.
그러니까 법은 알고 확실한데
마음은 뭔가가 매여 있어
아직까지 의식이 확 안 드러나고
의식 뒤에 고리가 있어서
에고가 숨어서 다 이렇게 붙어 있는 상태.
그래서 이게 안 편해요.
그래서 끊임없이 뭘 해야 돼.
이걸 유지하려고 해야 돼.
지키려고 해야 돼.
안 놓치려고 하는 거예요.
거기에 대해서 불교는 이 선불교의 깨달음
이게 깨달음이에요.
일반 명상하고 다른 점이에요.
의식을 내가 “이게 의식이구나” 하고 하는 순간은
의식에 매여버린
왜냐하면 “이게 의식이구나” 하는 것이 에고니까.
법을 놓아야 더 이상 에고가 붙어 있을 데가 없다.
이거를 백척간두에서 허공으로 진일보한다 이래요.
무의, 의지할 데가 없는 무의진인
진짜 사람이 되려면
법한테도 의지하면 안 돼.
법한테 의지하면 법한테 매어버려요. 희한하죠?
여러분 금강경에서 이 이야기를 계속하는 거예요.
금강경의 요지가 이거예요.
그래서 강을 건넜으면 뗏목을 내려놓아라.
법이라는 것도 뗏목이다.
그리고 무유정법, 법을 정해놓지 말라.
무유정법, 금강경에서 이런 말 계속 나오거든요.
정할 정, 법을 정해두지 말라.
무유정법
그리고 응무소주 이생기심
마땅히 집착하지 말고 마음을 내라.
여러분 보세요.
매 순간순간 마음을 낸다는 말은
현상이 일어난다는 뜻이에요.
맞아요?
아까 법은 법의 자리에 있기 때문에
세간상은 언제나 지금 일어나고 있어요.
오케이?
그러면 이것이 영원히 새롭게 일어나고 있는 것이
지금 자연이죠.
그래서 마음을 풀어버려야 돼.
마음을 진리라고 ‘이게 진리다’ 해버리면
이 자연하고 충돌하는 거예요.
그래서 마지막에 공부는 다 놓아버려야 돼.
놓으면
응무소주 이생기심의 해석이
놓기 전에는 “마땅히 집착하지 말고 그 마음을 내라”가 되는데
놓아버리면 어떻게 되느냐?
“마땅히 집착하지 않고 이 순간에도 마음이 이미 일어나고 있다.”
그러니까 흐름 따라 그냥 사는 거예요.
그래서 이 말은 무슨 말이냐 하면
현재에 깨어 있으려고 하는 사람한테는
“야야, 이미 현재에 깨어 있다.”
지금 따라옵니까?
이 법이 법의 자리에 있기 때문에 세간상은 언제나 일어난다.
이 말을 언제나 일어나는 이것을
내가 또 자각하려고 하는 것이 옥상옥이다 이거야.
그게 부자유다 이거예요.
그러니까 놓아버려서
여방심을, 마음을 이게 진리라고 잡지 말고
놓아버려서 이 순간에도 새롭게 일어나고 있는 이 현상에
그냥 타고 사는 거지.
이거를 내가 이렇게 쥐고 있으면
요 자유로운 지금 이 순간 찰나의 자유를
마음껏 누리지 못한다는 거예요.
따라 해보세요.
/마음 우리 공부의 핵심은
마음을 어디에도 뺏기지 않는 것이다.
진리에 뺏기면 진리에 구속된다./
그러니까 처음에는 진리를 추구해야 돼요.
이 과정을 거쳐야 돼.
근데 마지막에는 진리를 놓아야 돼요.
그래야 자유로워져요.
절벽에 매달린 손을 놓는다.
현애살수
현, 매달릴 현에
절벽 애, 절벽에 매달린 손을
살, 놓는다.
현애살수
야부도천의 이 말이
시에서 나오는 구절이에요.
현애살수
“절벽에 매달린 그 손을 놓아라.”
그리고 나오는 게 대장부예요.
“그게 대장부다.”
그러니까 지금 맹자식으로 말하면
일반인들은 방심인데
맹자가 구방심, 집 나간 마음을 찾아라.
그래서 그 마음을 얻게 되면 지켜라.
이게 맹자 사상이에요.
우리가 볼 때 맹자는
인간의 도리를 잘하는 쪽으로는 거의 높은 경지야.
근데 우리는 인간으로서도 벗어났어요.
여러분, 의식은 인간입니까? 아닙니까?
인간을 넘어서잖아요.
그래야 생사를 넘어서는 거예요.
이거는 생사 안에서 최고 잘 사는 법
그러니까 맹자는
생사 안에서 잘 사는 법을 가르쳤어요, 공자 맹자는.
이게 유교예요.
근데 지금 우리가 아는 선불교는
그것도 매여 있는 거
우리가 유교를 겪어봐서 알잖아요.
유교는 주일무적이라고 해서 하나를 잡아서 움직이지 않는다.
여기 수심,
이게 유교의 아주 정수예요.
주일무적, 하나를 잡아서 움직이지 않는다.
이게 주자학, 사상이에요. 주자 사상
그러니까 하나를 명분을 잡아서
특히 유교 주자학은 명분을 잡는 거예요.
그러니까 모든 당파 싸움은 명분 싸움이에요.
이해되세요?
이게 유교의 한계예요.
그러면 불교에서는 그 명분 때문에 우리가 메인다.
그 명분을 자기한테 하면 어떻게 돼요?
“나는 선비가 되어야 해.”
“나는 뭐가 되어야 돼” 하고
자기한테 주는 명분 있잖아요.
그 명분이 평생 자기를 부자유스럽게 하는 거예요.
그 명분 중에 하나가 부처예요.
불자한테는 부처가 명분이에요.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여라.
이게 요방심
그러니까 명분을 놓으라는 거예요.
모든 사람은 자기 이상에 속아.
명분의 다른 이름이 이상이에요.
그러니까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명분을 만나면 명분을 죽이고
이상을 만나면 이상을 죽여라.
이게 요방심
그 마음을 놓아버려라.
그러면 놓아버리면 어떻게 되는가?
원래 마음은 이렇게 흐르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상선약수라고 하는
노자..에 막 나오네.
이런 말들을 알아두면
우리가 그 깊은 이치를
공부가 될수록 터득하게 되잖아요.
최고의 선은 물과 같다
흐른다, 이거예요.
육조단경의 전체 내용이
흐른다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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