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으로 헤아리면 곧 맞지 않게 된다./
이건 굉장히 중요한 말이에요.
왜냐하면 생각은 반드시 이분법에 떨어져요.
생각의 특성이에요.
생각 자체는 개념으로 구성되어 있어서
언어는
하나에서 부분을 잘라낸 것을 언어라고 해요.
즉 바나나, 장미, 자동차, 비행기
전부 다 잘라낸 거잖아요.
생각은 언어로 하거든요.
언어의 구조 자체가 이분법적으로 구성되어 있어요.
‘바나나’와‘ 바나나 아닌 것’을 구분하기 위해서
바나나란 말이 생겼어.
이해되죠?
그래서 생각으로 들어가면 대의를 놓친다.
대의는 하나인 절대
생각으로 들어가면 소이
이 현상계의 분별밖에 알 수 없으니까.
본질에서 나온 시를 가져오라고 했잖아요.
근데 생각하면
현상에서 나온 것밖에 나오지 않는다.
생각으로 헤아리면 맞지 않게 된다.
그런데 보세요.
이런 말 들으면 가슴이 뜨끔한 거야.
내가 할 줄 아는 것은
100% 생각할 줄만 알지
생각 없이 있어 본 적이 별로 없죠? 솔직히.
깨어서 생각 없이 있어 본 적은 별로 없다.
잠시 생각 없이 있더라도
그걸 못 참고 생각을 일으켜 버리고 마네.
생각과 생각의 틈이 있겠죠.
맞아요?
생각과 생각의 틈을
생각의 입장에서는 생각이 얼어붙는다고 해요.
아이스라고 불러.
그러니까 이 아이스를 경험하는 게
생각의 틈을 넓혀가는 방법이에요.
그러면 우리한테는 생각의 힘이 강해서
생각이 구르는 힘이 강해요.
느끼세요?
자기 머릿속에 생각이 너무 많이 해서 열나고 있어.
번뇌라고 해요.
우리 머리가 계속 생각하면 머리가 뜨거워진다고요.
그게 고통이라고요.
그러니까 아이스, 머리를 식혀야 돼.
여러분의 인생이 편해지려면
머리가 뜨거우면 불편하죠.
그 머리를 식혀야 되잖아요.
머리 식히는 방법은
아이스.
아이스가 뭔가?
잠시만 경험합시다.
왜 아이스가 중요하냐?
생활에서 여러분 실천하세요, 틈날 때마다.
생각의 틈을 만든다.
생각의 틈이 길어지면
생각에 브레이크가 걸린다.
이게 행복의 비결이에요.
그래서 생각의 틈을 만드는 게 아이스다
아이스는 무엇인가?
이렇게 대화를 하다가
지금 우리 수업도 대화죠.
대화하다가 잠시 멈추는 거예요.
제가 지금, 생활 중에서
참선하는 법을 가르쳐 드리고 있어요.
그래서 가급적이면 일상에서 바쁘지만
차 한잔을 놓고, 천천히 차를 음미하면서
대화를 끊고 있는 것.
대화는 자동적으로 끊어져요.
근데 그때 너무 섣불리 대화를 메꾸려고 하지 마세요.
이 이분법의 습관에 의하면
우리가 선악과를 따먹어서
이분법의 습관에 의하면
대화가 끊어지는 것이 가장 어색해요.
이분법의 주체가 에고잖아요.
에고 입장에서는 대화가 끊어지는 게 가장 어색해요.
그래서 빨리 이걸 메꾸려고 해요.
그러니까 우리는 지금 그 에고의 힘을 빼야 하니까
틈틈이 틈틈이 차 한 잔 놓고
모든 걸 멈추는 거예요.
멈춘다.
저는 일상에서 가장 쉽게 대화가 끊어지는 게
이 생각이 가장 쉽게
어디를 가다가 어쩔 수 없이 멈춰야 될 때가
가장 많이 일어나는 게 어디냐 하면
버스 정류장
“버스 5분 남았습니다.” 나오잖아요.
그 5분 동안 멈추는 거예요.
근데 그 멈출 때 굉장한 현존이 일어나요.
어차피 버스 온다는 그게 없을 때는
“언제 버스 오나” 하고 계속 신경을 버스 오는 쪽으로 썼는데
어차피 5분 동안 안 오잖아요.
그러면 서 있든, 의자에 앉아 있든
그 5분을 정말 멈추는 거죠.
그때 강력한 실존의, 현존의 느낌이 강력해요.
그러니까 그때는 의식은 뚜렷하고
생각은 못 붙고.
그런 시간을 틈틈이 가진다.
그래서 일부러 그런 시간을 가지기 위해서 차를 마신다.
차의 목적은 참선이다.
차 마시는 일의 목적은 참선이다.
참선은 생각과 생각 사이의 틈, 아이스
이거를 자주 가지는 것
그래서 생각이 점점점점 약해지는 것
생각이 약해져야 생각에 속지 않아요.
생각은 도깨비예요.
도깨비의 힘을 빼려면
상대 하면 도깨비는 상대할수록 힘이 세져요.
근데 도깨비의 힘을 빼는 방법은
상대하지 않는 거예요.
상대하지 않고 한 발 더 나아가면
도깨비의 급소가 있어요.
도깨비는 실제 하는 거예요? 아니면 내 생각이 맞는 거예요?
생각하게 만들었죠.
그래서 도깨비한테 급소가 뭐냐 하면
“너가 사실이냐?”라는 질문이에요.
모든 게 마찬가지예요.
한 생각에 속고 있어요. 지금.
모든 문제가 한 생각에 속아서 생긴 문제들이에요.
그 생각을 돌아보는 게 힘이에요.
그 힘이 어디서 나오는가?
생각과 거리를 두고 봐야지 그 힘이 나와요.
이해되나요?
생각과 떡이 되어 있으면
생각 따라가 버려요.
힘이 없어.
생각하고 떨어져야 돼요.
생각하고 떨어지는 건 뭐냐?
생각을 보는 거예요.
보세요. 생각을 보면
생각은 현상이고
생각을 보는 것은 본질이죠.
그럼 생각을 보면
본질의 힘이 강화돼.
이해되세요?
그러다가 본질의 자리가 확보가 돼요.
그러면 생각이 일어날 때마다
본질의 자리에서 생각을 보게 돼.
그러면 그 자리에서 보는 모든 생각은
그냥 생멸하는 인연 따라 뜬구름하고 똑같아요.
여러분, 뜬구름 때문에, 지나가는 바람 때문에 걱정 안 하죠.
바람이 쌀쌀하다고 걱정 안 하죠.
옷 하나 더 입으면 되잖아요.
근데 생각에는 왜 그리 걱정을 많이 해요?
생각이나 구름이나 같은 거예요.
아니 실체가 같은 거라고.
근데 구름은 상관 안 하면서
생각은 어찌 그리 많이, 하여튼 관여하는지 몰라.
객관적으로 떨어져서 보기
이게 힘이에요.
평생 생각으로만 했어.
그러니까 생각으로 하지 않기 위해서는
일상에서 아이스를 하세요.
어떻게 하는가?
그냥 멈추는 거예요.
동작 그만!
차렷!
동작 그만!
대화하다가도 끊어지는 상태에서
섣불리 그걸 메우려고 하지 마세요.
일반인들은 스몰 토킹이에요.
아이스가 오면 못 참고 스몰 토킹으로 이걸 확 틀어버려요.
그거 하지 말고
거기서 견디는 거예요.
그게 수행이에요.
아주 중요한 수행이에요.
이거는 언제나 할 수 있죠.
버스 타고 가다가
자기 생각을 한번
돌아가고 있거든, 한번 좀 쉬어보는 거
쉰다, 생각을 쉰다.
그러니까 자기한테 아이스를 자꾸 만들어야 돼요.
아이스가 확보되어야
생각을 보게 되고
생각에서 빠져나오게 되고
생각에 속지 않게 되고.
아이스의 자리가
알고 보면
처음에는 아이스가 어색해요.
근데 아이스가 당연해지면
그곳이 극락정토예요.
정확하게
생각 없는 그 상태가 극락정토예요.
그게 천국이에요.
하늘나라.
영어에 애니메이션이 만화영화를 말해요.
만화영화, 애니메이션
애니메이션은 아니마가 돌아간다는 뜻이에요.
아니마가 이 의식이에요.
그림인데 그림을 이렇게 돌려서
애니메이션이 아니마를 그림에 넣으면
아연, 살아있는 공간처럼 이렇게 확 살아난다 이거예요.
그러면 인간이 있는 한은
아니마, 의식이 있어요.
그러면 여기에 딱 들어오면
여기가 아연활기가 구석구석이,
내 눈길 가는 곳마다 내 의식이 쫙 살아나서
여기가 신령스러운 공간이 되는 느낌이 있어요. 실제로.
생각에 한눈만 팔지 않는다면
내가 가는 곳마다 아연활기를 띠는
살아있는 공간으로 변한다 이거예요.
내가 없으면 죽은 공간이고
내가 있으면 사는 공간이 된다.
이해되세요?
기준이 나예요.
근데 그 나가
내 몸이냐? 내 의식이냐? 예요.
의식이죠.
내 의식이 우주를 살아있는 공간으로 만들어내는 것
우주를 살리는 것
그러니까 이게 참, 생명이라고 하는 말이
내 의식이 생명이에요.
여러분 진짜 의식은 순수의식이에요.
순수의식은 꿈 밖에서 꿈을 꾸는 자지
꿈속에 나타난 그 어떤 느낌이나 체험이 아니에요.
모든 느낌이나 체험은
꿈속에 나타난 현상이에요.
저는 할 수 없이
서로 간에 소통을 해야 되니까
의식이라는 말을 써요.
그렇지만 제가 쓰는 의식하고
여러분이 받아들이는 의식은 또 달라.
그래서 저는
좋은 강사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하면
“제가 말하는 의식에 속지 마세요.
제가 말하는 의식을 버려야 됩니다.”
지금 조사나 부처나 신이 전부 다 개념들이니까.
그래서 결국에는 이런 말을 하죠.
손가락입니다.
의식이라는 말도 손가락이고
본질이라는 것도 손가락이고
어떤 체험도 수행하다가 생기는 체험도 손가락이고
이것도 손가락, 저것도 손가락, 다 손가락이다.
그러면 손가락이 가리키는 건 뭐예요?
달이잖아요.
그러니까 달을 봐야지
달은 못 보고 손가락만 보고 있으면
영원히 달을 못 본다.
그러니까 정말 바른 가르침은
그것을 천신만고 끝에 경험한 어떤 깨달음
그거를 버려야 된다.
끝까지 버리는 거예요.
그래서 하나도 없어야
하나도 없다는 기준이 뭐냐?
잠에 푹 들었을 때 정말 없는 것,
그게 매일 밤 우리한테 정답을 가르쳐주고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여러분께서 내가 ‘이건가 보다’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면 지금 지금은 자지는 않죠?
맞아요?
자지는 않지, 깨어는 있죠.
근데 내가 의식이다, 본질이다, 부처다, 신이다.
이거를 내가 쥐고 있지 않으면
그걸 쥐고 있지 않으면 어떻게 돼요?
이게 맞나 안 맞나 이런 걸 쥐고 있지 않으면
지금 깨어 있어요.
뭔가를 쥐고 있지 않아요
그럼 어떻게 돼요?
이 세계가 나누어집니까? 안 나누어집니까?
안 나누어지잖아요.
그러니까 다 놓아야 하나가 되는데
나도 모르게 이 이분법에, 분별심에 의해서
뭔가를 “남은 몰라, 나만 알아” 하는 경지
그거를 쥐고 이걸 딱 이렇게 있다, ‘에헴’하고 있다.
그게 바로 우리를 끝내 이분법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게 만드는
그게 핵심 고리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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