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근_육조단경

[육조단경37] 이해를 넘어서라 | 힘이 들지 않는다 | 상락아정(常樂我淨)

Buddhastudy 2024. 9. 12. 19:45

 

 

한 인간의 정신을 누가 차지하는가?

기존처럼 아무개가 차지하느냐?

아니면 깨어난 의식이 차지하느냐?의 전쟁이에요.

 

이게 하루아침에 물러나지가 않아요.

에고가 하루아침에 물러나지 않아.

그러다가 이것이 에고가 물러난 게 언제냐?

지금 보는 것이 의식이라는 사실이

그러니까 의식을 발견해도

의식을 발견한 건 에고예요.

여전히 나는 에고예요.

 

나는 에고인 상태에서 의식을 발견해.

그런데 이것이 언제 이 문제가...

그러니까 정신 차릴 때는 의식이 자각되는데

조금만 정신을 놓치면

내가 다시 말하면

의식 상태라면 의식이 자각되는데

무의식 상태라면 옛날처럼 그냥

옛날처럼 또 좋다 나쁘다 하고 분별해 버리는 거예요.

 

그래서 이것이 언제 한번 뒤집어지는가?

지금 보는 것이

내가 보는 게 아니고, 내가 의식을 보는 게 아니고

당나귀가 우물을 보는 게 아니고

실제는 의식이 나를 보고 있다.

본질이 현상을 보고 있다.

본질이 현상을 경험하고 있다.

 

또 다른 말로는

바로 지금 이 순간 내 눈앞에는 의식이

현상이라고 하는 이 꿈을 경험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이게 지금 순간적으로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어떻게 나타났다 사라지느냐 하면

여러분 지금 이렇게 계시죠?

여러분 지금 저한테는 지금 여러분 나타났거든요.

눈만 감으면 사라져버려요.

 

정말 찰나간에 모든 것이 인연 따라 나타났다가 사라지는데

여러분이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저의 의식이라고 하는 이 공간은

의식공간, 저의 의식 공간

이 의식 공간을 조사들은 마음자리라고 불렀어요.

심지, 마음자리.

마음자리니까 번역하면

의식 공간이죠.

 

그러니까 요 마음자리는

지금도 이대로 있는데

마음자리에 인연 따라 여러분이 지금 나타났어요.

 

수업 끝나면

이 의식 공간은 그대로 있는데

여러분은 수업 끝나면 가시고

저는 제 방에 들어가면 제 방이 나타나

그럼, 제가 이 몸뚱이를 비행기에 태우면 비행기가 나타나.

그러면 몇천 킬로 상공에 떠도

여전히 의식 공간은 그대로인데

거기에 이 몸뚱아리를 비행기에 태우면 비행기가 나타나고

저기 다른 나라에 착륙하면 공항이 나타나고

이거는 그대로인데

진여는 그대로인데 생멸은 자꾸 바뀌어요.

 

그래서 다른 나라에 공항이 나타나고

거기서 또 버스를 타면 버스가 나타나고

창가로는 그 다른 나라의 풍경이 펼쳐지고

또 도착하면 거리가 나타나고

호텔에 묵으면 호텔이 나타나고

잠들면 깜깜한.

 

여러분, 잠들어서 깜깜해도

보세요.

이 생명이 몸이 잠들었다고 해서

생명활동 자체가 멈추나요?

멈추면 죽지.

 

그러니까 잠에 들어도 생명은 여전히

자기 작용은 다 하고 있어.

그리고 우리가 이 세계를 인지하는 감각기관은

닫아서 재워야 충전이 돼.

그래 그다음 날 또 잘 살아요.

여러분 하루만 잠 안 자도 다음 날 비실비실...

젊을 때는 안 그랬는데, 요즘은...

 

생명은 깨어 있다.

그래서 피도 돌리고, 호흡도 하고, 다 한다.

그리고 이제 충분히 만땅이 되면

에너지가 좀 충전하면

눈을 뜨게 해서 의식이 돌아오고.

 

순서 보세요.

아무것도 없다가

생명만 있고

6개의 창문을 안이비설신의

6개의 창문을 다 닫아서 충전하고 있다가

이제 충전이 되면

제일 먼저 의식이 먼저 돌아와요.

이걸 닫고 있어도

안이비실선의 할 때 의식이 제일 먼저 돌아와서

그 의식에...

 

하여튼 저 같은 경우는

매일 아침마다 새소리를 들어.

눈 감은 채로 새소리를 들으니까

공간감이 생기고

소리가 지나가서 시간감이 생기고

 

그러니까 아무것도 없다가 의식이 제일 먼저 나타나고

의식 안에 시간 공간이 생기고

그리고 턱 눈을 뜨면

시간 공간의 좌표 속에 하나하나 사물들이 또 나타나는 거예요.

또 그래서 생시라고 하는 꿈깬 세계가 또 펼쳐지는데

어디서 펼쳐지느냐?

그 공간 속에서.

그 의식 공간 속에서.

 

의식 공간은 언제나, 자나 깨나

그러니까 오매

오는 깨고, 매는 잠들고

오매일여

의식이 생명 자체에는 오매일여인데

나타나는 것은 계속 바뀌어 가는 거예요.

 

그러니까 일종의 이 의식 공간이

홀로그램의

그러니까 이런 평면 영화가 아니고

이렇게 입체, 홀로그램 영화 같아.

 

그러니까 홀로그램의 이 스크린 속에

지금 계속 나타나는 현상은

나타났다가 사라지고, 나타났다 사라지고.

 

그리고 사라져서 어디 가느냐?

제가 하루는 진짜 면밀하게 따져봤어요.

사라져서 어디로 갈까? 애들이.

 

결론이 뭐냐 하면

추적을 해보니까 간 곳이 없어.

어디 가서 있지를 않아요, 진짜로.

겨우 희미한 기억으로만 있는데.

 

그래서 제가 알아챈 게 뭐냐 하면

이렇게 또 추적도 해봐야 돼.

저같이 궁금한, 호기심 많은 사람은

아니 지금 어디로 갈까?

여러분이 어디로 가느냐? 이거예요.

 

지금 나타났는데 여러분이 어디로 가실까?

지금 이 순간에 여러분은, 지금 이 모양은

사라지면 영원히 돌아오지 않아요.

 

인생이라는 게 뭐예요?

진짜 일장춘몽이에요.

그러면 이렇게 생각하면 얼마나 비참해요.

제행무상이잖아요.

 

근데 부처님은 놀랍게도 이것도 반전이 있어요.

제행무상인데 상락아정이야.

부처님이 발견한 것은 열반을 발견했어요.

 

무엇이 열반인가?

지금 깨어 있는 이 의식이 열반이에요.

열반이 따로 있는 게 아니고

 

보세요.

이 의식이 무상이에요? 상이에요?

 

현상은 무상한데

무상이라는 말 아시겠어요?

열반, 열반의 사덕, 네 가지 덕

덕이란 말은 힘이란 말이에요. 한자에서 덕은 힘.

도와 덕 할 때

도덕이라는 말 있잖아요. 도덕

도가 본체고 덕은 본체의 작용

도가 본질이고 덕은 현상이에요.

그러니까 덕은 힘이에요, 항상.

 

열반에 네 가지 덕이 있다, 힘이 있다.

의식은 항상 상이에요. 안 변해요. 영원한 현재예요.

맞아요?

그래서 영원한 현재이기 때문에

의식을 아미타불이라고 불러.

아미타_ 영원한 생명

한자로는 무량수,

_ 수명, 목숨 수

무량_ 양이 없는

우리 의식이 상이에요.

안 변해요, 여러분.

지금 이 의식이 변하느냐 이거예요.

 

그러니까 여러분 의식이 안 변한다는 것이

몸은 늙어도 안 늙잖아요.

우리가 안 늙는다니까.

몸은 늙어요. 그렇지만 이거는 이건 안 늙어

상이에요.

 

그리고 몸은 고지만

의식은 락이에요.

고락이 없는 담담한 락, 진짜 락.

고의 반고의 반댓말로서의 락이 아니라

고락의 중도로서, 뛰어넘는 락, 담담한.

 

이거는 뭐가 없어.

그리고 아_ 무아가 아니고.

현상은 무아예요. 아무개는 무아예요.

근데 의식은 항상 자기야, 항상 아예요.

천상천하유아독존할 때 이걸 말하는 거예요.

 

그리고 정은 항상 고요해.

여러분, 의식을

보세요.

의식한테 지금 의식이 있죠?

제 의식은 지금 여기에 꽉 차 있어요.

여러분의 의식도 여기에 꽉 차 있어요, 그죠?

시야 전체가 의식이에요.

 

다시 중요하니까

시야 전체가 의식이다. 이해되죠?

의식이 일종의 인화지예요.

인화지에 이 그림들이 그려져 있는 거예요.

인화지에 지금 이 현상이 지금 그려지는 것이다.

 

그러면 상락아정에서 이 의식을

정이라는 말은 고요하다.

적정이라고 하는

적정할 때 정자예요. 고요하다.

 

보세요.

이 의식에 불을 확 지피면

지금 여기가 제 의식이에요.

제 의식에 불을, 횃불을 탁 들이밀면

이게 뜨거울까요? 안 뜨거울까요?

뜨겁지 않아요.

제가 깜짝 놀랐다니까.

 

찜질방 숯불 앞에 놓고

저 분명히 저게 내 속에 있는데

몸이 나가 아니니까

몸이 나가 아니니까, 의식이 나니까

분명히 저 숯불이 지금 내 속에 있는데 안 뜨거워,

이상하네. 이거.

그리고 욕탕에 딱 들어가니까

분명히 물이 지금 내 몸이 물에 잠겼어요.

근데 의식은 안 젖는 거야.

 

그러니까 물이 들어가도 안 젖지

불에 들어가도 안 타지.

 

여러분 여기다가 페인트칠해도 페인트가 묻을까요?

의식에는 안 묻잖아요.

우리가 아프다고 해도, 몸은 아프다고 해도, 의식이 아플까요?

의식은 안 아파요.

 

근데 몸이 나냐? 의식이 나냐?에서

의식이 나예요.

아니 지금 보는 게

몸은 보여요.

이거 중요하니까 계속 반복합니다.

 

그러니까 아무개는 보여요.

에고는 보여요.

근데 에고를 보는 것은

이건 안 보여.

 

그러니까 이것을 다시 볼 수는 없어요.

그러면 이것의 존재를 어떻게 확인하는가?

이렇게 보이니까

따라 해보세요.

 

보인다는 사실은

보는 것이 있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음미됩니까?

이렇게 깨닫는 거예요.

이렇게 이런 말을 듣고 있다가

그리고 더 직접적인 깨달음은

여기 물질이 있다.

물질만 있는가?

 

있지 않나요? 물질 아닌 게.

호호 법당에, 좋고 좋은 이 법당에

부처가 영험도 있다.

호호법당에 불유영험

부처가 영험이 없다 해서

이렇게 한번 딱 이제 알아채면

부처가 영험이 있어.

 

그 영험이 있어서

부처의 특징은 뭐냐 하면

힘이 안 듭니다.

부처가 하는 일은 힘이 들지 않는다.

지금 여러분이 저 보시는데 힘이 들어요? 안 들어요?

안 들어요.

저절로 되죠.

이거 신기하지 않나요?

저는 가끔 신기해요.

어떻게 보는 게 힘이 안 들지?

 

소리 들리는 게 힘드나요? 안 드나요?

희한하지 않나요?

저절로 들려요.

 

여러분, 지금 엉덩이 감각이 있어요? 없어요?

있죠.

그거 느끼는데 힘들어요?

안 들잖아요.

 

흰 칠판에 컬러풀하게 지금 여러 글씨가 쓰여 있다.

이거 아시죠?

이거 아는데 힘이 들어요? 안 들어요?

힘이 안 들죠.

부처가 하니까 그래요.

 

알고 보면 모든 것을 부처가 해요.

이거 참 진짜 깜짝 포복, 아니 깜짝 놀랄

아니 이때 전율이 살짝 온다니까요.

인생 100, 36500

매일 반복되는 것은

다만 이것이 경험하고 있는 것뿐이다.

 

다시

인생 100, 36,500, 매일매일, 순간순간

다만 본질이 현상을 경험하는 것뿐이다.

이 일의 반복이다.

 

그래서 본질은 언제나 본질로서 여여해요.

이해되세요?

현상에 관계없이 여여해요.

그리고 그 본질이 생명이라서

본질로 안 있고, 본질이 안 있고

순간순간 현상으로 드러나고 있어요.

본질이면서 현상이고

현상이면서 본질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