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자기 말이 좋아져요. 말. 말 품위가 좋아집니다. 나중에 하나하나씩 전부 설명의 말씀을 드리겠지만,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 그 자체는 엄청난 파괴와 엄청난 위력을 가지고 있어요. 동시에. 자기 굴레를 자기가 만드는 것은 자기 생각에서 출발하죠. 자기 말이 자기를 구속하고 있죠. 부자 되는 구속도 자기가 만들고요, 가난한 구석도 자기가 만들거든요. 그러니까 그런 차이를 좀 볼 수가 있습니다. 그걸 보고 우리는 자성불에 대한 아미타불에 대한 것을 좀 공부하게 되고 수행하게 꼭 육자대명으로 달아놔 있거든요. 나무아미타불, 이렇게 붙이셔야 돼.
나무라고 하는 말은 귀의한다는 뜻입니다. 철저하게 귀의하셔야 되요. 부처님 앞에 절하고 예경하잖아요. 엎드려 절하는 것은 곧 자기 자신에게 귀의하는 것이지 누구 대신에게 주는 거 아닙니다. 그래서 보면은 아미타불이라고 하는 말은 딱 두 가지로 정리해 놨습니다. 하나는 무량광이라고 돼 있죠. 그다음에 너무 간단해요. 그냥 쉽게 표현하면 무량광 무량수입니다. 아미타불 부처님. 이렇게 나무아미타불을 어디에 써서 붙여져 있거나 어디에 있잖아요. 그러면 나무아미타불 이런 것이 있으시면은 무량광 무량수라고 바로 생각하셔야 되요. 이건 한량없는 복이라고 보시면 되고요. 이건 부처님의 복과 지혜가 똑같은 말입니다.
이 말은 무슨 얘기냐 하면 부처님의 지혜거든요. 무량광은 한량없는 복이라고 말하고, 무량수는 한량없는 지혜라고 표현하시면 됩니다. 무량수 무량광. 그러면 보십시다. 여기서 편안한 마음상태로 우리가 결정적으로 하는 말은 대원입니다. 결정은 대원입니다. 결정이 대원을 이루어지게 자기를 불러줘요. 그러면 쫓아가면 됩니다. 내가 사람이면은 뭘 쫓아야 되요? 복과 지혜를 쫓아야 되고, 무량광을 쫒아야 되고, 광명을 쫓아야 되고, 영원을 쫓아야 되요. 이것은 사람이 사는 우리가 사는 재운도 그렇고요, 먹고 사는 재운도 그렇고요. 그다음에 뭐가 쫓아다녀요. 우리가 쓰고 먹고 사는, 운성이라는 게 있잖아요. 사람이 살아가는 운이라는 게 있죠. 그다음에 우리가 가지고 있는 존재라는 것이 있습니다.
또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목숨을 가지고 사는 생명이라는 것, 우리가 모든 관계에서 인간,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얘기하죠. 이런 관계를 전부 들여다볼 때 어떻게 결정해줘요? 편안한 상태로 결정해 줘요? 편안한 마음으로. 그러면 지금 상태가 내가 편안한 상태로 안된데도 결정될 수가 있잖아요. 화가 나면 이놈 죽여야지. 이런 말 생기잖아요. 쫓아가서 갚아야지. 이런 생각 드시지 그지? 이 반은 절대 그런 분들이 없으신 거 같애. 표정이 전혀 그런 분들이 안 계신 거 같애. 아주 억울한 일 당하면은 잠을 못 자잖아요. 우리 모두. 나만 그런가봐. 불자님들 전혀 안 그러신가 봐. 그런데 요런 생각은요, 자기가 자기 환경을 자기가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그런 결정을 자기가 스스로 한순간 자기가 해 버린 거에요. 그러면 요걸 바꾸는 과정이거든요. 어디까지? 안심결정이 이루어질 때까지 자기를 바꾼 다음에 결정을 하야 돼.
요게 아미타불 수행 중에 자비명상 중에 하납니다. 요거를 감사명상이라고 표현하기도 하고요, 하나를 바꾸어 가는 거에요. 요럴 때는 나무아미타불을 열 번만 딱~ 부르면 돼. 十念往生십염왕생이라 그랬거든요. 나무아미타불을 열 번만 불러도 극락세계에 난다 그랬거든요. 사바세계에 살아가면서 악지고 억울한 것이 없어진다는 거에요. 그러니까 나무아미타불을 열 번만 부르면 돼요. 관세음보살을 열 번만 부르면 됩니다. 지장보살 아니 요건, 막~ 화내고 부딪친 일이 딱~ 생길 때 재난을 피하는 법이다. 이렇게 봐도 다르지 않습니다. 거꾸로 얘기하면 운명을 좋게 하는 법이라고 봐도 다르지 않습니다. 요즘 현실로 말하면 나의 존재 생활 그 현실을 좋게 하는 방법 중에 하나다.
요즘 말로는 명상이다. 이렇게 표현할 수 있다는 뜻이죠. 그래서 그거를 결정코 자기 복을 봐야지 대다수의 많은 사람들이 자기 복을 헤아리고 자기 복에 베풀어진 복에 대해서 감사할 줄 모르고. 반대적으로 없는 것만 자꾸 헤아리고, 없는 것만 자꾸 얘기하고, 없는 것만 자꾸 말하고, 토대고, 불평을 자꾸 일으키면, 영원불멸하더라도 그렇게 생각하고, 그렇게 말하고, 그렇게 행동하게 되면은 요게(업) 하나하나씩 끊임없이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거에요. 지금 주어져 있는 상황을 새롭게 바꾸고자 해서 불설아미타경에서는 설명하고 계신 거죠. 놀라운 거죠.
석가세존께서는 이걸 뭐라고 표현했냐하면 사람한테는 더러운 사람은 없다는 거에요. 가난한 사람이라고 해도 그걸 더러운 사람이라고 표현할 수 없고, 정말로 더러운 사람은 그 생각이 미혹과 욕심이 있으면 그건 바라문이라도 그거는 더럽고 죄적인 삶을 사는 것이고, 저 노예 취급을 받는 그런 삶을, 그때 당시에, 그런 사람이라도 자기에 응당한 생활을 스스로 만족해 살고, 그것을 공경하고, 삼보에 귀의할 줄 알고, 예경하고, 진리를 추구하는 자는 몸은 더러운지 모르나 그는 정토에 살고 있다. 그랬어요. 그러니까 먹고 사는 문제가 조금 힘들고 억울한 일이 있어도 절대 예토에 산다고 생각하시면 안 되는 거에요. 이게 아미타경의 설법의 요체거든요. 그래서 보면은 이렇게 몇 가지가 정리가 돼 있어요. 뭐라고 정리가 돼 있냐 하면.
이 정토는 그대로 현실 안에 주어져 있다. 이렇게 표현돼 있어요. 다시 한 번 설명하겠습니다. 지금 이 순간, 따라 하세요. 지금 이 순간 이 세계가 곧바로 정토이다. 그런데 다만 정토를 보지 못하는 거에요. 이걸 보고 극락정토가 있다는 뜻입니다. 우리 현실 안에 반드시 극락정토가 있다는 거예요. 그러나 아미타불은요, 현상 속에 계시던 부처님이 아니거든요. 다만 법장비구라고 하는 국왕의 몸으로 세상에 태어나서 발심발원해가지고 일체중생의 다 고통을 걷고 난 다음에야 비로소 부처가 되겠다고 해서 48대 원을 다 원력을 세우시고 나신 분이 아미타부처님이세요. 그 아미타부처님이 뭐라고 표현했냐하면 지옥이나 일체중생의 고통 받는 것은 다 건지고 난 다음에야 비로소 내가 부처가 되겠다. 이렇게 서원을 하셨어요. 그게 법장비구 부처님이죠.
그게 나타난 것이 우리가 뒤쪽에 보면은 無三惡趣願무삼악취원이라고 되어 있죠. 무삼악취원. 33쪽에 있습니다. 제가 부처가 될 적에 그 나라에 지옥과 아귀와 축생의 삼악도가 있다면 저는 차라리 부처가 되지 않겠나이다. 이런 뜻입니다. 그래서 이 말을 여기 보면 오늘 나온 게 뭐죠? 지옥 아귀 축생 아니에요. 이 삼악도를 끌어안고 살지 않는 것이 불자라는 거에요. 얼굴 들어 저 좀 보세요. 꼭 반드시 오늘 아미타불경전을 시작하시면서 선언하셔야 되요. 지옥은 본래 없다. 따라 하겠습니다. 지옥이 본래 없다. 가난은 본래 없다. 축생이란 것은 어리석음이거든요. 어리석음은 본래 없다. 이게 선원이에요.
아미타경이 설법하고 석가세존을 통해서 이 우리한테 2500년 전에 전한 이야기가 지금 거꾸로 지금 오고 있습니다. 如是我聞 一時佛在舍衛國祇樹給孤獨園 與大比丘僧千二百五十人俱 皆是大阿羅漢 衆所知識 長老舍利弗 摩訶目乾連. 여기 까지요. 읽는 것만으로 업장이 없어지는 걸 느껴요. 어째 안 그러신 거 같애. 여기 좀 보세요. 이게 여시아문이거든요. 내가 지금 들었어요. 오늘은 이렇게 시작을 하지만 계속 여시아문을 듣습니다. 여시아문 굉장히 중요한 말이거든요. 내가 지금 이거 들었다는 얘기에요. 들었다는 것은 내가 들여다보고, 내가 들었고, 내가 말했고, 내가 생각했고, 내가 존재를 느꼈고, 내가 생활에 있고, 내가 실제에 있다라는 것을 설명하고 있는 거죠.
여시아문. 내가 지금 들었어요. 이것은 2500년 전에 석가세존이 설법한 내용이 현재에서 듣는 거에요. 제가 그런 매개를 할 뿐이고. 이게 제일 중요한 게 뭐냐 하면 여시라고 하는 말이에요. 지금. 지금 내가 들었어요. 뭘 들었어요? 내 안에는 지옥 아귀 축생이 본래 없다는 거에요. 다만 누가 만들었어요? 요놈(업)이.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 자기도 스스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환경이나 조건이나 자기의 삶 속에서 자기를 기획하고 있는 거에요. 그래서 요게 새로워져야 되요. 요게 새로워지기만 하면 그러니까 제일 중요한 건 뭐에요? 지금 생각이 대원으로 바뀌셔야 되요. 이 대원은 대 긍정이라 그랬죠? 대 긍정은 무엇을 쫓아야 되요? 밝음, 빛으로 쫓으셔야 돼. 그렇죠. 그리고 이 광명은 시간을 초월해서 있어요.
아이고 내가 금생에 요거 하다가 늙고 죽으면 어떻게 하나? 이 생각이 들거든요. 그런 거 아무것도 할 게 없어요. 죽는 순간까지 딱 원을 세우셔가지고 그 원력을 채워 가셔야 되요. 그러면 다른 일도 하나둘씩 하나둘씩 스스로에게 찾아드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이거 보면 일시에. 지금 이 순간에 아까 무엇을 찾았죠? 우리 안에 나무아미타불의 세계가 있다는 거에요. 그게 나무아미타불이에요. 十念십염. 열 번만 부르는 것에도 극락세계의 문이 열린다고 그랬어요. 극락세계는 뭐에요? 따뜻한 거에요. 행복감을 느끼는 거에요. 감사할 줄 아는 거에요. 생활을 고맙게 여기는 거에요. 함께 사는 사람들에게 지극히 감사하는 거에요.
오늘 여기 모은 불자님들에게 지극히 감사하는 거에요. 사랑을 나누는 거에요. 마음속으로. 고맙고 감사함을 스스로에게 나눠드리는 이게 극락세계죠. 이때는요, 두 번 때 이상 생기지 않잖아요. 오늘 이때의 이상이 두 번 생기지 않잖아요. 오늘 안심하셔야 되요. 오늘 안심하셔야 돼. 지금 안심하시라는 거에요. 지금 이때에 지금 안심하라는 거에요. 그리고 나서는 지금 뭘 한다고요? 결정해주셔야되요. 대원력을 가지셔야 되요. 대긍정, 대원력을 지금 갖는 거에요. 그게 일시라는 거에요. 여기 경전에 설명하고 있는 일시는 지금 이 순간을 얘기하지. 요게 자성력이에요.
그러면 오늘부터 생각을 조금만이라도 바꾸세요. 조금만이라도. 미워하는 생각은 이쁜 생각으로 바꾸세요. 원망하는 것은 감사로 바꾸세요. 여시아문. 내가 지금 듣되. 일시에 불, 불은 이때 여기서 말하는 불은 자성불이에요. 자성불이라고 하는 말은 곧바로 지금 내가 내 세계를 창조해내고 있는 것이 지금 부처님이라는 뜻입니다. 요기(불: 자성)에서. 교재 다 있으시죠? 이거 가지고 철저하게 공부합니다. 지금 일심이다. 내가 지금 듣는 이 순간에 뭐가 있어요? 부처님이 계시는 거에요. 이 경전에선 누구라고요? 나무아미타불, 아미타부처님이에요. 그 아미타부처님의 내용에는 법신보신화신의 원동력의 생명체가 그냥 그대로 가득히 계신 분이, 삼신의 부처님이 그냥 그대로 다 계시죠.
그 부처님이세요. 불자님들이 다 부처님이시고, 저희가 다 부처님의 씨앗을 가지고 있는 그런 존재들이죠. 여시아문 일시. 지금 일시에요. 지금 이 순간에 부처님을 만나는 거에요. 지금 이 순간에 깨우치시는 거에요. 지금 이 순간에 내 안에 저 아미타부처님의 세계가 여기 존재해 있다는 거에요. 이거를 오늘 지금 이 순간에 이걸 깨우치지 않고, 이것을 자기 접속하지 않으면은요, 얼마나 억울한 일입니까? 이거 안 되는 일이에요. 금생에 육체도 귀하고, 감정도 귀하고, 자기 기분도 귀하고, 자기 삶도 귀하고, 모든 것이 다 귀한 겁니다. 눈이 열리셔야 되요. 한순간이 한순간이 점, 점, 점, 점으로 연결 되가지고 저 삼악도를 면하지 못하는 거 아시죠?
한순간 한순간이 계속 연결되고 또 연결돼서 지옥아귀축생을 못 면한다는 거 아시죠? 반대로 반대로 가면 어떻게 되죠? 생각을 조금만 바꾸십시다. 어떻게? 이쁘게. 좋게. 사랑스럽게. 전에 법문했던 내용 한번만 더 하겠습니다. 큰 소리로 따라 하겠습니다. 일시에 부처를 만나는 거에요. 부처를 깨우치는 거에요. 이게 자성불입니다. 곧 아미타불부처님을 자성불이라고 표현한다고 그랬죠? 칠판에 설명 들으셨죠? 그러면 깨우치셔야 되요. 나한테 이쁜게 있다는 거에요. 나한테 사랑스러운 것이 있다는 거에요. 나한테 풍요로운 세계가 있다는 거에요. 나한테 복과 지혜가 같이 작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우치는 것이 요게 부처님의 일시에요. 지금.
그런데 여기에서 말하는 때는 뭐죠? 무량광 무량수의 영원한 복과 영원한 지혜의 세계에 때를 만들어 문을 여는 것. 요걸 설명한 거에요. 요게 핵심이에요. 오늘 제목은요, 오늘 수행 공부내용 제목은요, 신구의 삼업을 새롭게 하셔야 되요. 오늘부터. 자기 자신을 절대 늙었다든가, 주름이 생겼다든가, 밉게 생겼다든가. 이런 생각은 자기 자신의 망상이에요. 관념이고 아무 소용없는 짓이에요. 그리고 말을 바꾸셔야 되요. 어떻게 말을 바꿔요? 눈뜨고 나서 거울 보면 ‘아이고 참 이쁘다, 참 잘생겼다.’ 이러면 되지. 더이상 뭐 바랄게 뭐있어요? 시비분별은 자기를 괴롭게 할 뿐이지 실지로 남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시다는 거에요. 중요하죠. 그죠? 신구의 삼업을 다스리는 거에요. 새롭게 하자는 거에요. 새롭게 출발하시면 됩니다. 새롭게 시작하기를 발원합니다. 그동안 참여해 주셔서 진심으로 고맙고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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