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TV(휴심정)

[조현TV 휴심정] 문광스님 인터뷰_백발백중 탄허스님 예지, 지구종말은 어떻게 봤을까?

Buddhastudy 2020. 12. 22. 19:00

 

 

 

문광스님은 불교계에서도 한문과 동양학에 두루 밝았던 고승들이 대부분 열반하거나 연만한 상황에서 그들의 맥을 이을 실력파 후학으로 꼽힌다.

 

1971년생으로 한문세대가 아님에도 경북 영천의 유학자의 집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한학을 읽혔고, 연세대 중어중문학과 학사와 대학원 석사, 동국대 선학과과 불교학과 학사, 한국학중앙연구원 박사를 거치며 절차탁마했고, 석사논문으로 원효학술상으로 수상한 한국과 중국 선사들의 유교중화 담론과 박사논문 탄허선사의 사교회통사상을 최근 출간했다.

 

특히 함석헌과 양주동이 동양학을 배울만큼 유불선과 기독교, 주역, 정역까지 통달해 한국전쟁 등 미래를 예언했던 탄허스님에 대해 10여년간 사숙하며 연구했다.

 

책 출간을 계기로 문광스님과 나눈 탄허스님에 대한 이야기를 싣는다.//

 

 

저도 처음에 탄허스님 동양학 특강이라고 하는 CD 2002년에 처음에 들었으니까

19년 이렇게 됐죠.

이 부분을 어떻게 할 거냐.

학위 논문으로 쓰는데, 이 부분을 어떻게 할거냐, 굉장히 문제이지 않습니까?

 

선과 화엄, 그다음에 유불선 기독교까지 회통은 좋은데

이 부분을 어떻게 할 거냐.

그래서 굉장히 문제의식을 가지고 했어요.

 

제가 스님의 모든 강의 테이프 이런 걸 다 들어봤어요.

그런데 스님이 항상 마지막에 가면요,

예를 들면 월정사에서 2개월 동안 하루 6시간씩 강좌를 하셨다.

그러면 맨 마지막에 항상 미래에 대한 말씀을 하세요.

끝을 낼 때, 정역으로 하시더라고요.

 

이거는 내가 연구를 하는 사람이라면 스님의 전모를 밝혀야 한다.

어떤 승가의 스님들은 그걸 하지 마라

그리고 옛날에도 스님 제발 거 하지 마세요.

왜 화엄만 하시지 주역이니 역학이나 미래니 이런 말씀 하시면 곤란합니다. 그러니까

네가 뭘 알고 그런 일을 하냐ㄴ 말이지.

이렇게 하실 정도로

 

선지자, 그다음에 성현이라고 하는 인물들은 다 미래에 대한 획을 그으셨다.

미래의 것이 보였을 때 미래의 것이 좋은 방향으로 갈 수 있는 사람들의 마음가짐을 심어주기 위해서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거다.

 

스님은 예언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아요.

탄허스님에 대한 오해가 예언이라는 말을 쓰면 안 된다는 겁니다.

뭐라고 그러시냐면

나는 노스트라다무스류의 예언가가 아니다.”

항상 하셨던 말씀이 미래의 예지라고 예견이라고 하고

 

나는 취미로 미래학을 하는데, 나의 미래학은 역학적 상수역을 비롯한 역학적 근거에 의해서 한다.

그리고 나는 선정에 들어서 참선을 해서 나오는 그 진공의 마음 상태에서 일어나는 거로 관한다.”

이런 부분, 예지에 대한 형태가 있어요.

 

예를 들면 조금 전에 말씀하셨던

미국하고 베트남하고 전쟁을 하는데 미국이 지고 돌아갈 거다.”

그랬더니 숭산스님이 미국에 계시다 오셔서

스님, 어떻게 미국이, 말도 안 됩니다. 미국이 어떻게 집니까? 그랬더니

미국이 진다고 그러셨다 합니다.

 

몇 년 뒤에 미국이 철수하고 나서 숭산스님이 탄허 스님한테 물어봤죠.

스님 그때 어떻게 알았습니까?“

역학적으로 너무 심플하게 대답하시는 거죠.

미국은 서방이라 태방이고, 금기고, 베트남은 남방인데 리방이고. 불이다. 이거야.

그래서 미국에서 전쟁하면 몰라도 베트남에서 전쟁하면 반드시 불에 녹아버린다.“

이런식으로 역학적으로 얘기하시는 거.

 

예를 들면 6.25 같은 것도 어떻게 하셨냐하면

6.25는 세상의 모든 상을 관한다 그러잖아요.

오대산에 있는데, 벌레들이 나와서 서로 싸워서 죽더라.

그런 상을 보고 아시는 거?

 

박정희 대통령 같은 경우도 얼굴에 쇠가 들어가게 생겼다.

관상을 보고, 상을 보시고

그런 여러 가지 방식으로 미리 관하시는 방식이 있으시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이 부분에 있어서 앞으로 일어날 부분들에 대해서 스님이 말씀해 놓으셨던 낙관적 미래학입니다.

우리 지구의 종말은 없다.

어떤 형태의 지구의 기후변화와 지축의 변화가 어떤 형태가 온다 하더라도

지구는 아직까지 수명이 반밖에 오지 않았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종말과 심판이 아니라

결실과 성숙이다.

지구는 하추교역기다. 여름이 가을되고 있는 중이다.

이때 한번 큰 변화는 일어나겠지.

많은 문제가 일어나고 사람들도 다치고 하겠지만

이건 하나의 과정이다.

 

이거를 알려주기 위해서 그걸 하셨고

스님은 김일구선생의 정역이라든지 모든 부분에 너무 박학하셨고

출가하시기 전에 이미 역학의 대가셨기 때문에

그런 걸 기반으로 해서 하셨다.

 

그러면서 이런 시기에 말법시대에 우리 살아있는 이 사람, 한국뿐만 아니라 온 세계 사람들이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어떤 마음으로 살아야 할 거냐.

참선해라, 라는 말씀

놀라지 마라.

말법시대에 놀라지 마라.

 

예를 들면 지진이 나고 나면 지진으로서 문제가 생기는 거 보다

지진 이후에 여진으로 놀라는 게 사람들이 더 힘들답니다.

 

이런 식의 앞으로 변역이 오면 뉴스에 뭐가 나오면 불안 공포 초조

이게 문제니까

 

우리 반야심경에 있듯이

반야바라밀다에 의지하면 무슨 일이 생기느냐?

무유공포라고 그러잖아요.

마음을 자꾸 공으로 돌려야 공포가 없어지니까

 

탄허스님이 미래에 대해 말씀하시다가

이제는 참선해야 한다.

말세는 참선하지 않으면 내 마음 단도리 하기가 어렵다.“

 

이 말씀이 결론이었지,

미래에 대한 어떤 얘기는 우리가 어느 정도 대책을 세우고

그다음에 어떻게 단도리해서 앞으로 어떤 시대를 우리가 맞이해야 하는지에 대한 말씀을 해주셔서

핵심은 동양의 심성학을 가지고 마음 수련을 하고 있어라.

 

이 번에 어떤 일이 있더라도 이번 생도 한 생에 불과하다.

다음 생이 또 있다.

윤회한다.

지구는 사라지지 않는다.

이게 핵심이었습니다.

 

...

 

낙관적 미래학이다, 저는 이렇게 봅니다.

 

...

 

괴질이 온다는 얘기는 우리 불교 경전, 대방등대집경, 경전에도 나와 있습니다.

말법시대에. 그동안 만나지 못했던 질병을 만난다. 이런 얘기는 많이 있고,

 

그다음에 기후변화, 지질의 변화, 지진이나 해일, 이런 거

그런 어떤 기상의 이변 같은 것들이 말법시대에 오게 된다는 이런 말은

이미 탄허스님 이전의 경전들에도 있고요

 

이런 부분들에 대해 이렇게 보시더라고요.

지금까지는 복희팔괘는 천도의 변화, 그다음에 하늘의 이법이 실현되는 형태였고

문왕팔괘의 시대, 지금까지 문왕팔괘의 시대거든요.

문왕팔괘의 시대는 4인역이다, 천지인 중에 인역이다.

 

성인이 오셔서 어떻게 살아야 할까를

우리 세상에 알려주는 그런 부분들의 역학이다.

 

그다음에 앞으로 정역의 시대는 지학이다.

땅지, 지학, 천지인해서

이제는 지질에 변화가 온다. 땅에 변화가 온다.

그런 부분을 우리가 인식을 해야 한다.

이런 말씀하셨거든요.

 

그러면서 말법시대가 오면서 성현들이 계셨던 시대에 비해서

우리 인간들이 근본성품을 잘 발현하지 못하게 되면서

사람들끼리의 어떤 조화롭게 살고 서로 교역하고 이런 부분들이 좀 안 되게 될 때

어떤 노자도덕경에 보면 천지불인이라 그러거든요.

 

하늘과 땅은 인자하지 않다는 겁니다.

태풍 불 때는 아주 무섭죠.

이런 식의 오는 형태가 되어서 태풍이 오는 게 우리에게는 무섭지만

그렇게 해서 웅덩이에 고인 물을 다 없애서

모기도 없어지고 맑아지고 새로운 바람도 불고 하듯이

우주 이법의 균형과 조화를 위해서 어쩔 수 없는 과정으로 본다는 거죠.

그게 지역의 시대, 땅의 역학의 시대가 온다.

 

그래서 말하자면

지금 이것이 포스트 코로나 시대가 어떠하냐? 라고 하는 거는

다시 한번 우리 전세계 인간들이 다시 우리 삶을 한번 돌아봐야 한다.

 

물질로 추구해서 끊임없이 달리고 있는 이 욕망의 전차를

정거장에서 쉬고 돌아봐야 할 것은 우리 마음이고

우리가 살아온 진정한 마음의 행복과 여유 이런 걸 돌아볼 수 있는

그런 시대가 안 된 거냐.

 

좀 솔직히 말해서 포스트 코로나 때문에 우리가 지금 미세먼지는 없는 거 아닙니까?

모든 공장을 돌려서 이윤을 추구하기 위해서만 달려온 것이 아니냐는 것이죠.

이런 부분의 성찰의 계기도 되는 자연스러운 그런 시대를 맞이하고 있는 거 아닌가.

그런 생각이 좀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