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즉문즉설(2009)
부처님의 팔만 사천법문은 다 중생의 번뇌 따라 설해진겁니다. 중생의 번뇌가 없다면 부처님의 지혜로운 법문도 없었을 겁니다. 오늘 우리가 경전을 읽는다는 것은, 그 중생의 번뇌 따라, 그 번뇌를 소멸하는 부처님의 지혜로운 법문을 우리가 읽고, 우리도 우리의 번뇌를 제거하고자 하는 겁니다. 그러나 이제 부처님의 법이 설해진 그 당시에 세상살이와, 오늘 우리가 사는 이 세상살이가 다르다 보니까, 그때의 질문만 가지고는 오늘 우리들의 삶의 문제를 푸는데, 여러분들이 현실적으로 적응하는데 어려움이 있다.
그래서 우리는 경전을 읽고 저희들이 그것을 오늘에 맞게 해석해 주는 이런 법문을 하게 됩니다. 그것도 부족하다. 내 생활에 직결되지 않는다. 그래서 이번에 마련된 자리는 그냥 여러분들께서 느끼는 어려움을 괴로움을 단도직입적으로 얘기를 하십시오.
그것이 무엇이든. 그러면 거기에 따라서 제가 아는 데로 얘기를 하겠습니다. 제가 어떻게 얘기하든, 그 얘기들은 다 부처님의 정법에 근거해서 여러분께 말씀을 드릴 겁니다. 교리라든지 불교용어를 가능하면 쓰지 않고, 일상적인 용어로 저도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그러나 그 배경에는 부처님께서 보리수 나무아래서 깨달으신 緣起法연기법. 그리고 諸行無常제행무상, 諸法無我제법무아, 涅槃寂靜열반적정이라고 하는 三法印삼법인. 苦集滅道고집멸도의 四聖諦사성제. 여덟 가지 바른길인 八正道팔정도. 그리고 대승에서 제법이 空공 하다고 하는 여러분들이 늘 반야 심경을 독송하죠? 色卽是空색즉시공 空卽是色공즉시색이다 하는 그런 空공사상. 또, 대승 수행자들이 가야 할 보살의 길, 여섯 가지 바라밀. 육바라밀. 이런 사상에 실천적인 가르침에 근거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그러니까 쉽게 가볍게 애기하지만은 뿌리는 부처님의 가르침에 근거하고 있다. 그러나 육바라밀이 어떻고, 사정제가 어떻고. 이렇게 애기하면 여러분들이 조금 어렵게 느껴집니다. 그래서 가능하면 그런 용어를 쓰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필요하다면 제가 그런 사상적 근거를 때로는 설명을 해 드리기도 하겠습니다//
언니에 대한 집착이 결국은 조카와 형부를 미워하거나 외면하게 되죠. 죽은 사람에 대한 집착은 죽은 사람에게 아무 도움이 안되고, 살은 사람에 대한 외면과 미움은 살은 사람에게도 아무런 도움이 안되고, 도리어 괴로움이 됩니다. 자~ 우리가 전통적으로 얘기해서, 어떤 분이 돌아가셨습니다. 부모나 자식이라고 합시다. 그런데 계속 애닯게 부른다. 그러면 그는 갈 수가 없죠. 갈 수가 없는데. 아~ 그는 돌아 올 수가 없잖아 그죠? 돌아 올 수 없는데 계속 부른다. 그럼 어떻게 합니까? 떠나지도 못하고 오지도 못하고. 그럼 뭐가 됩니까? 무주구혼이 됩니다. 그러니까 떠날 사람은 떠나가게 해야 환생을 하던, 극락에 가던 갈 거 아니에요. 그죠? 그런데 계속 잡으면 그 영혼에게도 큰 고통이죠.
그래서 다시 돌아온다면 어떻게 되겠어요? 나에게 오거나 내 가까이 있는 사람에게 오게 되면, 소위 말해서 귀신 들린 증상이 나타나겠죠. 그럼 큰 병이잖아 그죠? 그러니까 이것은 그에게 아무 도움이 안 되는 정도를 넘어서서 큰 괴로움이 되고, 그것은 더 나아가서 나에게 재앙을 자초하게 된다. 그런데 왜 이렇게 나느냐? 이건 쥐가 쥐약을 먹듯이, 물고기가 낚싯밥을 물듯이, 알지 못하기 때문에 몰라서 이런 거요. 그러니까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 보냈다. 또는 부모님을, 또는 자식을. 그렇다 하더라도 이미 돌아가셨으면 어떻게 해야 됩니까? 안녕히 가십시오. 해야 됩니다. 그것이 첫째 그 분에게 좋고, 두 번째 누구에게 좋다? 나에게 좋아요. 어떻게 하라고요? 안녕히 계십시오. 그래서 뭐라 그래요? 왕생극락 하옵소서. 이러잖아. 그래서 좋은 곳으로 잘 가셨다. 왕생극락 하옵소서. 안녕히 가십시오. 이렇게. 어떻게 됐든. 안녕히 가세요. 이렇게. 탁 놔 줘야 됩니다.
그러면 언니는 탁 놔주고. 언니를 위해서 언니가 제일 걱정하고 싹 못 가는 게 누구 때문에 못 갑니까? 자식하고 형부 때문에 못 가죠. 그죠? 그러면 안녕히 가십시오 하고 내가 놔 줄 뿐만 아니라, 갈 수 있도록 내가 도와 줘야 되겠죠. 그게 뭐에요? 언니 내가 형부하고 조카들 잘 돌봐 줄 테니까 걱정 말고 안녕히 가십시오. 이렇게 해야 되겠지. 그게 언니를 가장 위하는 길이다 이 말이오. 그런데 이 분은 거꾸로 하고 있어. 가는 사람 못 가게 잡고. 있는 사람은, 미워한다는 건 뭐에요? 미워한다는 건 죽으라는 얘기 아니에요. 그죠? 거꾸로 하고 있다. 이러면 또 새로운 재앙을 자초하게 됩니다.
자 이건 제가 우리가 하는 통상적인 얘기고. 법에 의한 문제는 부처님께서 어떻게 가르쳤나 잘 한 번 들어보세요. 부처님께서 어떤 마을에 걸식을 하러 갔더니. 조그마한 어린아이가 혼자서 울고 있어요. 그래서 얘야 왜 그러냐? 했더니, 저희 아버지 때문에 그렇다는 거요. 아버지가 어쨌는데 그러니까. 할머니가 돌아가셨는데 아버지가 너무너무 슬퍼해가지고, 할머니 무덤가에 가서 움막을 치고, 3년을 거기서 꼼짝도 안하고 있다는 거요. 그래서 집안이 다 무너지게 생겼다는 거요. 아무리 얘기를 해도 안 된다는 거요.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그래.
그러니까 부처님이 이 어린아이에게 귀에다 대고 뭐라뭐라 했어요. 그런 아이 얼굴이 환하게 밝아 지더니 알았어요 하고 갔어요. 얼마 있으니까. 그 동네에서 아무게 집 애가 미쳤다. 이런 소문이 들렸어요. 왜 그러냐 했더니 이 아이가 소꼴을 한 움큼 베어가지고는 죽은 소한테 가서 인도에는 소고기 안 먹으니까 소가 길에 죽어 있지 않습니까? 그죠? 죽은 소한테 가서 소야 먹어라. 소야 먹어라. =, =. 많은 사람들이 죽은 소가 어떻게 풀을 먹느냐? 못 먹는다. 그래도 계속 소야 먹어라. =, =, 그러니까. 아이고 아무게 집 아이가 미쳤다. 이렇게 소문이 났어. 이 소문이 무덤가에 있는 이 아이 아버지한테 전해졌어요.
그 상주가 듣고는 너무 기가 막히는 거요. 그래서 정말인가 하고 와 봤더니, 정말 자기 아들이 죽은 소 앞에서 소꼴을 쥐고, 소야 먹어라, 소야 먹어라, =, =. 그래서 화를 벌컥 내면서 ‘이놈아! 네가 아무리 그렇게 한다고 죽은 소가 어떻게 소꼴을 먹을 수가 있느냐? 이 바보 같은 놈아.’ 막 야단을 쳤어. 그러니까 이 어린 아이가 이렇게 아버지를 둘러 보면서, ‘그러면 아버지는 왜 그래요?’ 이랬어요. 그때 아버지가 탁! 깨쳤어요. 이게 단마, 불법으로 중생을 구제하는 겁니다. 뭐 극락 가느니, 이런 얘기가 아니고. 사실 이게 다 우리 마음의 번뇌입니다.
그러니까 제가 두 가지 얘기를 했어요. 하나는 우리가 통상적으로 우리들이 갖고 있는 신앙체계에 견주어 봐서도 지금 하고 있는 일은 어리석은 일이다. 그러니 돌아가신 언니는 기꺼이 보내 드리고, 집착을 놓고. 남아있는 형부와 조카들은 잘 돌봐야 한다. 두 번째 부다담마. 부처님의 정법에서 볼 때는 이것은 잘못된 집착일 뿐이다. 이것은 나에게도 조카들에게도 언니에게도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 마치 돌아가신 어머니에게 효도한다고 무덤가에 있으므로 해서, 가정을 파탄시킨 사람처럼 어리석은 짓이다. 그러니 그런 생각에서 벗어나셔서 정신을 차리시기 바랍니다. 그럼 오늘 여기까지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