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즉문즉설(2013)

[즉문즉설] 제344회 업장소멸

Buddhastudy 2013. 4. 7. 05:03

출처 YouTube

 

.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는 우리가 분석적으로 보면 3가지로 이렇게 모양이 나누어집니다. 첫째가 물질이에요. 물질, 돌이나 흙이나 공기나 뭐 이런 물질이죠. 물질이라는 것은 미세한 그 분자들, 더 적게는 원자들, 이런 것들이 결합이 돼서 만들어 진거다. 그런데 그 결합이 아무렇게나 돼 있는 거 같은데 그 내부를 들여다보면 그것대로 질서가 있어요. 분자와 분자사이에 맺는 각도도 있고, 육각형이 되기도 하고 그 안에 다 질서가 있어요. 그 물질마다 그 서로 이렇게 결합을 하는 내부의 그 구조가 다 다릅니다.

 

현재까지는 거기에도 어떤 설계도가 있어서 그런 식으로 결합을 하느냐? 이런 거는 밝혀지지 않았어요. 어쨌든 그게 물질의 특성입니다. 물질마다 결합하는 방식이 다르다 이 말이오. 그 다음에 그 다음단계가 생명인데. 이 생명은 그런 물질이 다시 결합을 하는데. 지금까지 물질은 예를 든다면 동일한 결합방식만 가지고 있어요. 한 바께스의 물이나, 한 컵의 물이나. 한 방울의 물이나, 그게 똑같은 결합방식의 양의 확대에 불과하다 이 말이오.

 

그런데 그 물질들이 마치 우리가 설계도를 그리듯이 어떤 그 설계도에 따라가지고 그게 결합을 해있는 상태가 우리가 말하는 생명이다, 생물이라고 말하는 거요. 그러니까 모든 우리가 말하는 생물이라는 거는 그것이 물질하고 비교 했을 때 물질로 이루어져있다는 데는 어때요? 똑같습니다. 아무 차이가 없는데. 차이는 뭐냐 하면 이쪽은 그냥 물질의 단순한 결합이라면 이쪽은 어떤 고도의 설계도에 따른 결합이다. 이렇게 볼 수 있어요.

 

비유를 들어서 말한다면 자동차는 부속이 한 2만 개 되는데. 자동차 부속 이만 개를 바구니에 담아 놨다. 이건 물질이고. 그거를 설계도에 따라서 조립해 놨다. 이건 생명이에요. 자동차는 생명에다 비유를 해서 말한다면. 그러니까 물질의 관점에서 보면 두 개가 똑같아요. 무게도 같고, 개수도 같고 다 똑같은데. 이것은 단순이 그냥 담아져 있고, 요거는 어떤 설계도에 따라서 결합이 되면 이쪽은 다른 작용이 나타난다. 이쪽과 똑같은 물질로는 똑같은데. 그 작용이 달리 나타난다. 이 말이오.

 

다시 말하면 누르면 소리가 난다든지. 시동을 걸면 움직인다든지, 창문이 열린다든지 이런 작용이 나타나는 거요. 그러니까 오늘 날 생물들은 그게 분석적으로 그 부속으로 분석해서 보면 물질과 똑같은데. 이것이 일반 물질과는 다른 이런 이 소위 신진대사작용을 하고 있다. 그런 차원, 생물이라고 하는 차원에서는 작은 아메바나 인간이나 그런 설계도에 의해서 잘 조립된, 그래서 그 어떤 작용이 나타난다 하는 데는 근본적으로 동일 선상에 있습니다.

 

그리고 생물로서의 인간이 육체의 생물로서의 인간 존재는 예를 들면 침팬지하고 비교한다면 이 유전정보가 99%가 같습니다. 약간의 차이만 있는 거요. 그러면 두 사람사이에 비교하면 어떠냐? 99.99%가 같아요. 우리가 볼 때는 이게 둘이 생긴 게 완전히 다르고, 다 다르다. 이러지만은 거의 같은 거요. 약간의 차이가 지금 우리가 볼 때 얼굴모양이 다르다든지, 눈모양이 다르다든지, 피부빛깔이 다르다든지. 머리모양이 다르다든지. 이런 걸로 나타나죠. 돌하고 비교해 보면 사람들이 똑같죠. 개하고 비교해도 똑같다고 말 할 수 있잖아요 그죠?

 

그런데 이 생명체는 이렇게 생물로서의 인간은 그 설계도가 어떠냐에 따라서 이렇게 결정이 되는 거요. 그게 유전자라는 거요. 지금 그 유전정보가 다 밝혀졌죠. 이론적으로 말한다면 그 설계도에 따라서 물질을 갖고 조립하면 나 같은 사람이 하나 만들어진다. 이렇게 말할 수가 있어요. 이론 적으로 말하면. 지금은 그 정보를 겨우 게놈이라 그래 다 밝혀졌지만은. 아주 일부분에서는 그거를 결합시킬 수 있지만은 우리몸 전체를 결합시킨다 하는 것은 아직 기술적으로는 불가능합니다. 아직.

 

그러면 이 생명하고 우리가 말하는 그냥 생물적 존재로서의 인간하고 우리가 오늘 말하는 이 정신적인 존재로서의 인간하고는 또 작용이 이거 물질과 생물처럼 또 다르다. 아기가 하나 태어났는데 생물로서는 그냥 아기죠. 그런데 이 아기를 사람이 사는데서 키우면 사람처럼 되고, 늑대가 사는데서 키우며 늑대처럼 되고, 돼지가 사는데서 키우면 돼지처럼 되고, 한국에서 키우며 한국 사람이 되고, 일본에서 키우면 일본사람이 되고, 미국에서 키우면 미국사람이 되요.

 

똑같은 물질인데 어떤 설계도에 따라서 결합하느냐에 따라서 원숭이가 되고 사람이 되고 아메바가 되는 것처럼. 똑같은 사람인데 어디서 키우느냐에 따라서 이게 완전히 모양은 이렇게, 생물로서의 모양은 이 유전자가 똑같은데. 그 사람의 인간성은 완전히 달라져요. 그럼 이건 뭐냐? 이거는 우리의 뇌에 어떤 정보가 들어가느냐에 따라서 달리 나온다 이거야. 개 우리에서 그냥, 낳자마자 개 우리에서 키우면 개처럼 행동하는 거요. 모양은 사람처럼 생겼는데 개처럼 행동하니까. 사람이 개 흉내 낸다고 말해야 될까? 개는 개인데 생기기를 사람처럼 생겼다고 말하는 게 옳을까?

 

이게 생물적인 인간을 기준으로 두면 사람, 사람종이에요. 그러나 우리가 말하는 인간의 어떤 정신적인 측면에서 인간으로 볼 때는 이거는 인간적 요소가 거의 없습니다. 개인데 생기기를 뭐같이 생겼다? 사람같이 생겼다. 이렇게 볼 수 있어요. 유전적으로 볼 때는 사람인데. 우리가 정신적으로 볼 때는 사람의 요소가 없어요. 그럼 업이라고 말할 때 우리가 말하는 것, 오늘 날 우리가 인간의 고통이다. 뭐다. 이렇게 얘기할 때 인간은 물질로 돼 있죠. 그렇다고 인간을 물질이라 안 그러잖아요.

 

인간은 생명이죠. 생물이죠. 그렇다고 인간을 생물로서의 인간을 말하는 게 아니오. 오늘 우리가 인간이 괴롭다, 어떻다, 어떻다, 하는 인간적인 문제는 다 무슨 문제다? 정신적인 문제다. 그러기 때문에 이 우리가 보통 말하는 업이라고 하는 것은 이 유전자적인 얘기를 말하는 게 아니라. 여기 뇌에 어떤 정보가 입력됐느냐? 그 정보가 입력되는 데로 행동을 한단 말이오. 어릴 때부터 오직 알라, 알라, 알라해서 알라를 위해서 목숨을 바치도록 정보가 주입이 되면 그렇게 그냥 행동해 버리는 거요. 그 우리가 기독교인 보면 야~ 저 사람들 왜 저렇게 생각할까? 하는데 그건 정보가 그렇게 주입이 되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거요.

 

컴퓨터에 뭘 누르면 똑같은 컴퓨터를 하드웨어가 똑같은 586이든 팬텀이든 사다놔도 거기다가 어떤 정보를 입력시키느냐에 따라서 이쪽은 두드리면 이런 게 나오고, 저쪽은 두드리면 이런 게 나오잖아. 아무것도 입력 안 시키면 아무것도 안 나오잖아. 그것처럼 어떤 정보가 여기에 들어왔느냐에 따라서 달라진다 이 말이오. 업이라고 하는 것은 이 유입된 정보에 의해서 나타나는 거요. 그런데 그 초기에 가장 초기에 유입되는 정보가 대부분 어디로부터 들어와요? 어머니로부터 들어와요. 90%.

 

그러니까 업이라고 할 때는 대부분 다 남자여자를 불문하고 누굴 닮느냐? 심성의 기본 업은 엄마를 닮아요. 그 다음에 아버지도 있으니까 아버지도 좀 닮고, 학교 가서 배우니까 그것도 좀 닮고 하는데. 그거는 행동양식이라든지 이런 것들은 나중에 나이 들어서 배워진 거는 사회의 영향을 받아요. 그러나 가장 기본적인, 거의 동물의 인간 종이 유전자에 의해서 인간종이 되듯이, 그의 심성의 가장 기초는 엄마 품에 안겨 있기 때문에 거기로부터 닮는다 이 말이오. 그리고 거의 가정에서 닮죠. 엄마를 넘어선다면 거의 가정에서 배운 데로 닮는다.

 

그리고 어릴 때부터 종으로 키우면 이게 뭐가 됩니까? 종이 되고, 이걸 왕자로 키우면 뭐가 되고? 왕자가 되는 거요. 브라만으로 키우면 브라만이 되고, 요즘은 그런 게 없다고 키우니까 없어지고 이런 거요. 한국 사람의 키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생물학적인 게 아니에요. 엄마아빠가 일본에 건너가서 귀화해서 일본사람이 되도 그 자식은 엄마아빠의 이 정보 속에 한국 사람의 정보가 들어있으니까 거기서 키워졌기 때문에 일본에 살아도 한국말을 몰라도 그건 한국적 심성이 있는 거요.

 

애를 낳자마자 여기서 낳아 일본 집에다 넣어버리고 아무도 관계안하면 그거는 일본사람이 되지 한국 사람의 기질은 0.1%도 없는 거요. 그러니까 업은 나는 그러면 또 누구한테서 받았어요. 부모로부터 받겠지. 또 그 전에 부모는 또 그 부모로부터 받고, 그 부모는 또 그 부모로부터 받을 거 아니겠어요. 그죠? 마치 육체가 유전자를 받아 내려가듯이 이 정보도 그렇게 받아 내려간단 말이오. 그래서 그것은 육체로 내려가는 이 혈통과 거의 그 정신적인 업도 거의 동일하니까 사람은 옛날 사람들은 이거를 어디에 있다? 핏속에 들어있다. 유전자속에 들어있다. 혈통 속에 들어있다. 이렇게 말했단 말이에요.

 

그런데 내가 만약에 낳자마자 갓난아기를 내가 데리고 키우면 그 아이의 모든 유전정보는 나로부터 나오기 때문에 그는 내 자식하고 똑같단 말이오. 내가 낳았냐? 안 낳았냐? 이건 생물학적인 문제인데. 그건 중요한 게 사실 아니에요. 여러분들의 자식이 여러분들을 닮은 거는 생물학적인 것만 여러분들의 유전정보에 관계된 혈통이지. 그 인간성은 키운 사람을 닮는다. 그러니까 인간사회에서 말하는 생모라는 것은 하등 중요한 게 아니에요. 생부라는 것도. 그 생모 생부와 키우는 사람이 일치하기 때문에 중요한 거지.

 

그런데 이게 두 살이나, 세 살까지 키우다가 딴 데 보내면 이거는 그 혈통을 굉장히 따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부부가 애기를 낳아서 사는데, 부부가 어떻게 살아가느냐? 하는 게 고대로 애기에게 정보가 들어간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애기보고 저게 누구 닮았노? 이런 얘기는 하면 안 된다. 그런데 그 애기가 생긴 거도 가끔 보면 아버지보다는 할아버지를 더 닮을 때가 있죠? 그건 유전정보가 흘러 내려오니까 그러는 거요. 그런 것처럼 이 심성도, 심성도 직계 아버지 어머니보다도 할머니 할아버지 쪽의 어느 누구를 더 닮은 그런 심성이 있죠?

 

그거는 우성 열성이라 해서 생물학적으로도 그게 할아버지로부터 와서 아버지 대에 오는데 아버지 대에서 그게 안타나고 다시 어디서 나타난다? 손자 대에 나타나는 것처럼. 이 심성도 이렇게 계승이 돼서 내려오는데. 내가 부모로부터 받았는데 내가 이 사회적인 환경이 다르고 이렇게 하다보면 이게 나한테서 그 분야가 잘 안 드러나지만은 내재되 있다가 내 자식한테서 그 부분이 특별히 또 들어날 때가 있다.

 

~ 이렇게 해서 여러분들이 말하는 업이라는 건 습관입니다. 습관이라는 것은 행위의 습관, 말의 습관, 지금 우리가 다 한국말 하는 거는 다 말의 습관입니다. 아시겠어요? 웃는 모습도 습관입니다. 세수하고 양치질 하는 거, 이거 다 배우고 하는 거예요. 이게 다 습관에 속합니다. 이게 다 업에 속합니다. 그러니까 업이라고 하는 건 좋다 나쁘다는 개념이 원래 없습니다. 업은 그냥 습관이에요. 그런데 그 업이 이 양치질하는 습관이 어떠냐에 따라서 이빨을 더 상하게 하는 게 있고, 이빨을 좋게 하는 게 있을 때 우리가 말할 때 상하게 하는 게 뭐란다? 나쁜 습관이다. 좋게 하면? 좋은 습관이다. 이런 말이 있을 뿐이란 말이오.

 

업 그 자체는 좋고 나쁜 게 아니라 그냥 하나의 업이에요. 그걸 우리가 보고 건강을 해치거나, 인간관계를 해치거나 이럴 때 뭐라고 한다? 나쁜 업이다. 나쁜 습관이다. 이렇게 말하는 거요. 그래 그 나쁜 습관이라는 것도 다른 환경에 가면 평가가 달라 질 수도 있죠. 여기서는 이 사람들이 나쁜 습관이라고 했는데 저쪽에 가니까 좋은 습관으로 평가 될 수도 있잖아요. 그러기 때문에 업은, 업 그 자체는 본질적으로 좋다 나쁘다고는 할 수가 없는 거다.

 

그러나 시간과 공간이 제한된 점에서는 거기 사람들의 가치관에 따라서 그 업이 뭐다? 좋다. 나쁘다. 이렇게 평가 될 수가 있고. 그 제한 된 공간에서 살 때는 나쁜 업을 갖고 살면 거기서 괴로움이 생기죠. 그러니까 그건 어때요? 고쳐야 되겠죠. 습관을 바꿔야 된다 이 말이오. 내가 만약에 농촌에서 산다면 아침 일찍 일어나서 저녁에 늦게 자는 게 좋죠. 도회지에 산다면 저녁 8시만 되도 계속 졸면 우리 정토회 같으면 저녁 법문시간에 가 가지고 앉아서 계속 졸면 나쁜 습관이 되잖아요. 그죠? 초저녁에 조는 습관이 나쁘게 평가가 된단 말이에요.

 

그러나 농촌에서 살고, 이렇게 밤에 법문 들을 일이 없는 조건에서는 법문을 들어도 낮에만 듣는다면 그 습관은 나쁜 습관이 아니죠. 그럼 또 도회지에서는 다 아침에 7시에 일어나는 상황에서 7시에 일어나는 것은 늦게 일어나는 게 아니잖아요. 그러나 농촌에서는 해 뜨면 여러분 무조건 해뜨기 전에 일어나니까. 4시나 5시에 일어나야 되는데, 7시까지 자면 해가 중천에 뜬단 말이에요. 그럼 나쁜 습관이 된단 말이오. 잠버릇이 나쁘다 이렇게 된단 말이오. 습관 자체는 나쁘다 좋다 할 수가 없어. 그게 따져보면.

 

그러나 그것이 어떤 상황이냐에 따라서는 사람들은 그것을 좋은 습과, 나쁜 습관 이렇게 말을 한다 이거요. 그러니 업은 무조건 고쳐야 된다. 없애야 된다. 이렇게 말하면 안 돼요. 그냥 그건 습관이다. 오늘 날 우리가 인간이 된 것도 습관이 그렇게 되었다. 한마디로 말하면 배워서 그렇게 됐다. 모방을 해서 그렇게 됐다. 습관이라고, 나쁘게 말하면 습관이라고 하지마는 좋게 말하면 또 뭐다? 교육되어서 그리 된 거고, 본받아서 그렇게 된 거고, 배워서 그렇게 된 거요. 유전자에 그렇게 하라고 써놔서 이렇게 된 게 아니에요. 양치질을 요렇게 하라. 요런 말을 하라고 유전자에 기록 돼 있는 게 아니라. 유전자는 이렇게 생긴 것에 대한 기록만 있지.

 

이건 다 태어나서 엄마가 하는 거를 보고 따라 배워서 그렇다. 똥오줌을 가리는 것도 엄마 아빠가 하는걸 보고 따라서 그렇게 가르쳐서 따라서 그렇게 된 거지. 애가 낳자마자 똥오줌 가리는 게 아니잖아요. 개도 그거 자꾸 훈련시키면 따라 합니까? 안합니까? 하죠. 그런데 인간은 어떤 행위양식이 하등동물일수록 생물적 특성이 더 좌우되고, 후천적으로 배우는 게 적습니다. 그런데 고등동물로 올라올수록. 즉 인간에게 오면 어떠냐? 생물적 유전자에서 행위양식이 정해진 것 보다는 태어나서 이 유전정보에 의해서 이 행위양식이, 유전정보가 태어나서 이 학습에 의해서 이 행위양식이 결정되는 게 훨씬 더 많아요.

 

오늘 날 인간사회에서 문화가 다르고, 언어가 다르고, 종교가 다르고, 생각이 다르고, 관습이 다르고 하는 건 이건 다 태어난 뒤에 정신적인 문제지. 이거는 피 문제가 아니에요. 유전자 문제가 아니다. 그런데 이게 자기가 결국은 그 피를 받은 집에서 어릴 때 자라기 때문에. 이건 유전자와 정신적인 정보가 지금까지 살은 인간에게는 거의 일치하고 있어요. 그래서 우리는 그거를 이제까지 피 속에 있는 걸로 생각했고, 유전자라고 생각했다 이거야.

 

그런데 지금 여기서 애가 태어나자마자 보통 3, 4살까지 살다가 외국에 입양을 시키기 때문에. 거기 가서 말도 배우고, 음식도 바꾸고, 다 바꿔도 걔는 한국적인 요소가 남아서 이걸 그리워한단 말이오. 그러나 애를 낳자마자 열흘이내로 만약에 외국에 보내버렸다 그러면 그럼 피부빛깔만 노랄 뿐이고 생물학적으로만 이렇게 생겼지. 그건 한국에 대한 그리움이라든지 그런 건 눈곱만큼도 없습니다. 그런 요소. //

 

그래서 우리가 역사 속에서는 낳자마자 이게 늑대가 애를 물고 가가지고 늑대우리에서 인도에서 그런 일이 있었죠? 키워진 애는 10몇 살에 사람들이 발견해서 집에 데리고 와도, 10년을 키워도 말을 150개 단어밖에 모르고 끝까지 늑대같이 행동하다 죽었답니다. 그런데 엄마 품에서 34살까지 자라다가 애를 잃어버렸어. 그래서 숲속에서 늑대하고 같이 살았는데 이거는 늑대하고 틀린단 말이오. 늑대나 짐승 같은 행동을 많이 하기는 해도 절대 짐승은 안 된다. 그게 우리가 영화에 나오는 뭐다? 타잔 아니오. 타잔.

 

그러니까 이 기본심성, 인간성이라고 하는 기본 심성은 낳아서 3살 때까지 형성이 되요. 가장 중요해요. 그때는 이 바깥에서 눈으로 보고, 듣고 한 정보가 두 번, 세 번 반복해 배워서 기억하는 게 아니고. 노란 물감에다 흰 종이 넣으면 노랗게 되고, 빨강물감에다 넣으면 빨갛게 되듯이 그냥 각인 되요. 각인이. 그리고 그거는 한 번 각인이 되면 이게 잘 안 바꿔요. 우린 지금 잊어버리기도 하고 또 바뀌기도 하는데. 그래서 그건 잘 안 바뀌는 거예요. 초기에. 백지상태에 들어오는 거라.

 

그래서 나이가 들어서 영어 배우는 거는 한국말로 생각해서 그걸 영어로 바꾸지만은 어릴 때 배운 우리말은 생각을 해서 하는 게 아니잖아. 그냥 나오지. 그래서 제가 3살 때까지 애기를 낳거든 3살 때까지는 엄마가 키워라. 어쨌든 자기가 좋든 나쁘든 지 닮는 게 낫잖아. 그죠? 그런데 지금 사람들 사는 꼬라지로 볼 때는 사실 닮을 가치가 별로 없이 사는 사람이 많아. 그러니까 안 닮는 게 좋다는 거요. 업을 끊으려면 안 닮는 게 좋다. 첫째.

 

그리고 두 번째는 낳으려거든 3살 때까지는 키워라. 그런데 요즘 젊은 여자들 낳아가지고 버려버리고 지는 직장에 나가고 그건 아기인권을 무시하는 거요. 그 아이가 말 못한다고 그 아이가 가져야할 기본 인권을 무시하는 거다 이거요. 그런 여자는 사실은 인권적으로 말하면 패 죽여도 괜찮아. 독하게 말하면. 그는 자기 권리를 위해서 자기 자식의 권리를 죽여 버리는 거나 똑같은 거요. 지 불편하다고 지 뱃속에 있는 애 죽여 버리는 것처럼.

 

그 다음에는 교육이에요. 그 다음에는 내가 얘기할 필요가 없어. 그 다음 거는 3살 이후 거는 다 알아요? 몰라요? 알아. 자기도 기억할 수도 있고, 여러분들도 다 세상에서 가르치니까 다 알아. 3살 이전 거는 본인이 다 몰라. 나도 모르고 여러분도 각자가 다 몰라. ? 인간이 그 심성이 결정이 되고 그걸 기초로 해 기억이라는 게 생긴단 말이오. 그러니까 그 전은 기억할 수가 없어. 그게 기억의 주체이기 때문에. 그것이 판단의 주체이기 때문에.

 

아무리 여러분들이 머리가 좋아도 3살 이하를 기억할 수 있다. 이거는 극히 드물어요. 1살 때 기억한다. 엄마 뱃속에 나올 때 내가 봤다. 이런 애가 어디 있어? 그래서 다 그대로 닮는 거요. 예를 들면 오늘날 암이다 하면 암이 유전이냐? 처음에 유전이다. 부모가 암 걸리고, 자식이 암 걸리고 유전이 됐는데. 다시 보니까 유전이 아니다. 유전이 아니다 했다가 요즘은 또 뭐라 그래요? 유전은 아니지만 유전인자의 그 암세포가 이래 있는 거는 아니지만은. 암이 걸릴 어떤 체질이 있다. 이렇게 말하거든요.

 

그런데 내가 보기에는 그런 현상은 맞는 얘기인데 원인은 안 맞아요. 암이 걸릴 체질이 있다. 또는 유전자라고 할 만한 요인은 있습니다. 그건 무얼 받아서 그래요? 정신적인 영향, 지금 말하는 업이죠. 신경을 가지고 민감하게 많이 쓰는 사람이 주로 위암에 많이 걸리잖아요. 그럼 자식은 거의 엄마가 그러면 엄마를 닮습니다. 예를 든다면 우리 어머니가 위암으로 돌아가셨는데 우리 집 형제들은 위암 걸릴 확률이 굉장히 높습니다. 6명인데 내가 보기에 아마 2~ 3명은 위암 걸릴 거요. 왜 그럴까?

 

이 사고체계가 거의 비슷하기 때문에. 성격이 다 그렇다. 이 말이오. 성격이. 그러니까 육체적인 유전자는 아니지만은 거의 육체적인 유전자라고 바깥에서 볼 때는 그렇게 볼 만큼 이 정신적인 영향이 크잖아. 우리가 신경을 쓰면 위가 소화가 안 되고 이러잖아요. 육체라는 건 정신의 영향을 받는 거니까. 음식 먹는 습관도 다 집안의 부모를 닮습니까? 안습니까? 짜게 먹는 거 이것도 닮죠? 폭식 하는 것도 많이 닮죠? 집안 분위기가 팍팍팍 먹으면 다 닮는 거고, 집안 분위기가 짜면 짠 음식을 먹는 거고, 집안 분위기가 매우면 어릴 때 매운 음식을 먹게 되는 거고. 다 거기서 닮아오는 거란 말이오.

 

그런데 이거는 거의 잘 안 고쳐져요. 이 지금 여러분들이 배운 거는 고치기가 가능한데. 늦게 배운 것일수록 고치기가 가능하고, 어릴 때든, 3살 이하 거는 거의 죽을 때까지 고치기가 불가능 하다고 봐야 되요. 그래서 옛날부터 뭐라고 그래요? 3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 천성은 뭐다? 못 고친다. 이게 거의 천성에 준한다 이 말이오. 저건 천성이고 천성은 못 고친다. 또는 그걸 전생이라고 표현하는 거요.

 

그럼 그거는 누구로부터? 아버지로부터 부모로부터 왔고, 그 부모는 그 부모로부터, 그 부모는 그 부모로부터, 이게 우리가 따라 올라가면 우리 민족은 다 이런 언어를 쓰고 하는 건 5천년까지 올라가겠죠? 그죠? 그 위에 가면 또 더 올라가겠지. 그래서 우리가 한 인간 속에 들어있는 정신을 분석하면 인류역사를 다 알 수 있어요. 마치 한사람의 한 세포의 유전자를 분석하면 전 인간의 모습을 알 수 있는 것처럼. 그래서 이 무당 굿할 때도 다 나타나잖아요.

 

보살님이 돌아가셨다. 그런데 나중에 아들이 아프다. 그럼 무당 데려다 굿을 하니까. 무당 입에서 우리 법사님과 똑같은 얼굴 표정을 짓고 똑같은 말을 하면서 막~ 애를 나무란단 말이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평가합니까? ~ 어머니가 영매, 무당을 통해 나타났다. 이렇게 되기 쉽잖아요. 그죠? 지금까지는 그렇게 설명을 했단 말이오. 그런데 그게 아니에요. 그 자식 속에 어머니의 영상이, 정보가 다 있어요? 없어요? 다 있어. 그게 무당이 읽어서 나온단 말이오. 컴퓨터에 있는 정보를 꺼내 보듯이.

 

그게 다 잠재 돼 있는데. 이 인식체계에는 안 올라오는데. 잠재 돼 있는데 무당이라는 최면상태란 말이오. 최면이라는 것은 의식이 쉬어 버리고 잠재의식으로 들어가는 거 아니오. 그 잠재의식에서 정보가 이전 된단 말이오. 요즘 컴퓨터에서 딴 데 있는 컴퓨터를 정보를 빼올 수 있어요? 없어요? 거기 가서 컴퓨터 디스켓 빼와야 빼옵니까? 그냥 막~ 빼옵니까? 해킹이라는 게 막 빼오잖아. 그냥. 그런 것처럼 정보가 이쪽으로 이동돼서 나타난단 말이오. 그럼 이 사람이 그렇게 할 때 이 사람은 자기의 의식이 있는 상태에서 하는 게 아니라 최면상태에서 하는 거요. 무당이 깨면 무슨 말인지 모른단 말이오.

 

그러니 여러분들이 이렇게 내려 온 거니까. 옛날에 한 사람이 출가를 하면 집안의 업이 소멸된다. 이런 말이 왜 그럴까? 한 사람이 중이 된다. 이 말은 한 사람의 수행자가 나타나면, 즉 이 업을 내가 업을 바꿔버리면 내 밑에는 딱 변하는 거요. **사람, ~ 되풀이 되는 거요. 이게. 다생겁래로 윤회전생 하는 거란 말이오. 그러니까 자기가 수행하는 게 첫째는 자신의 인생을 위해서, 두 번째는 그것이 바로 자식에게 물려주는 최고의 복이라고 말할 수 있단 말이오. 재물을 물려주고 뭘 물려주고 그게 중요한 게 아니란 말이오.

 

집안에 단명한 사람이 있을 때 한 사람이 출가하면 그 명을 잇는다. 이런 말은 그냥 머리 깎고 중만 된다고 된다. 이런 뜻이 아니라. 거기에 바로 한 사람의 수행자, 그 단명보에 그렇게 단명 될 수밖에 없는 그 업이 있단 말이오. 그걸 변화 시켰기 때문에 그게 다 주위에 영향을 주는 거란 말이오. 그러면 우리가 거울에 낀 때를 닦듯이. 거울이라고 하는 맑은 곳에 때가 끼고 그걸 열심히 닦으면 없어진다. 이런 것들을, 이런 식으로 이걸 이해하는, 이렇게 이해하고 열심히 노력하는 게 뭐냐? 이게 점수라는 거요. 그러면 돈오라는 건 뭐냐? 때라는 게 본래 없다는 생각이오. 때가 있어서 때를 닦는다가 아니라, 때라고 할 게 본래 없는 줄을 깨쳐버리면 닦을 것도 없어지는 거요.

 

어제 어떤 보살님이 이런 질문을 했어요. 자기는 딸 때문에 괴롭다. 왜 딸이 어쨌는데? 딸이 아침에 지금 대학생인데. 9시까지 학교를 가야 되는데 집에서 늘 820분이나 되서 나간다는 거요. 그러면 가는데 한 시간 더 걸리는데 맨 날 지각한다는 거요. 아무리 일찍 나가라 그래도 안 된다는 거요. 그런데 밥을 730분에 아버지가 7시에 나가니까 밥을 7시에 다 먹여 내 보내는데. 이게 방에 들어 가가지고 그렇게 82030분까지 그렇게 한 시간 반을 꾸무작 되는 거요.

 

뭐하느냐 들어가 보면 이 옷 꺼내 입었다가, 저 옷 꺼내 입었다가, 화장을 이랬다가 저랬다가. 야단치면 일찍 나갔다가 또 저 아래 갔다가 도로와가지고 또 옷 꺼내 갈아입고 또 내려가고. 어떤 때는 10분 즘 버스 정류장까지 갔다가 도로 와가지고 옷 갈아입고 또 나간다는 거요. 보고 있으면 숨이 뒤뷔진다는 거요. 그래서 안 보려고 안 보려고 이 하는 짓을 안 보려고 천일기도 시간을 거기 맞춰가지고 방에 가서 자기는 한 시간 기도하고 나오는데. 나오면 아직도 안가고 있다는 거요. 이게 성격이 까탈스럽다. 딸이 성격이 너무 너무 까탈스럽다는 거요. 어릴 때부터도 그랬고. 까탈스러운데 이걸 어이하면 좋냐는 거요?

 

그럼 이거를 어떻게 고칠 거냐? 이걸 어떻게 고칠 거냐는 관점에서는 이걸 고치려면 노력도 많이 필요하고 시간도 많이 필요하겠죠. 그죠? 이걸 어떻게 연구를 해서 고칠 거냐? 이런 관점에서 이게 문제가 있으니까 고쳐야 된다는 관점이 하나 있어. 그럼 아까처럼 거울에 때 닦는 거요. 스님이 얘기를 딱 들었을 때는 내가 그랬어. 애가 연애를 하고 있다. 지금. 그 하는 행동을 봐서. 남자가 있어서 연애를 하든지. 안 그러면 지금 꼬리를 쳐서 하나를 낚을라고 하든지. 아무튼 지금 이런 상태인데.

 

이 상대편이 있다면 상대편이 이 아이에게 좀 버겁다. 그러니까 그 남자가 이 애를 따라오는 게 아니라 이 여자가 지금 그 남자를 어떻게든지 잘 보이려고 하는데. 그런 게 이미 그 행위 양식에서 나타나는 거 아니요. 그런데 그게 지금 엄마가 결정해야 될 일인데. 공부가 중요하냐? 지금 연애가 중요하냐? 그 앞에 어떤 분이 질문을 했어. 딸이 34인데 시집도 못가고 어이하면 좋냐? 이런 질문을 했는데. 이게 지 짝을 못 찾아 가지고 엄마가 붙여줄려는 게 힘들까? 이 붙어 있는 걸 띄는 게 힘들까? 어느 게 힘들 거 같애? 붙여 주는 게 훨씬 힘들어요.

 

그러니까 자식은 지 짝을 지가 알아서 못 찾는 거 골치덤배기에요. 거 대학 아니라 대학원을 나와도 이건 부모로서 골치잖아. 그런데 이건 지가 알아가지고 지금 하고 있으니까 공부가 뭐 중요한 거요? 내가 볼 때는. 그러니까 엄마로서는 이걸 응원하는 마음을 내야 돼. 응원하는 마음을. ~ 이거 좀 서포트를 좀 해 주자 이거야. 그러니까 앉아서 기도하고 쓸데없이 방석 닯히고, 무릎 닯히고, 용쓰고 하는 시간에 밖에 가서 파출부를 하든, 청소를 해서 벌어 옷이나 한 벌 사주는 게 낫다 이거야. 그러면 자기 속도 안 썩고 부모하고 자식관계도 좋아지고.

 

그러니까 이 본질을 제대로 딱 보면 이거 자체가 문제가 아니에요. 그럼 문제가 아니면 해결할 게 없잖아. 이게 돈오란 말이오. 그러니까 있는 건 사실이에요. 어떤 업이 있는 건 사실인데. 그거를 닦아서 없애야 될 것도 있어. 고쳐야 된다할 때 닦아서 없애야 돼. 그러나 우리가 다른 각도에서 보면 그게 문제가 안 될 경우도 있어. 그게 뭐요? 한 생각 바꾸는 거요. 한 각 탁 바꿔버리면 문제가 안 돼. 남편이 바람을 피웠다? 니가 그럴 수가 있느냐? 이 차원에서는 그건 고치려면 힘이 엄청나게 들어. 그런데 그 참 신기하다. 내가 잘한다고 했는데 그 참 인간 모르겠네. 거기서부터 그 남편을 연구를 합니다.

 

인간이 도대체 어떻게 되면 저런 행동이 나올 수 있을까? 잘못됐다가 아니라 연구를 딱 하기 시작하면 이거는 아무 고민거리가 아니라 굉장히 중요한 연구 과제가 된단 말이오. 그게 그 상황이 나한테 괴로움이 안 돼. 연구과제가 되죠. 그러면 인간을 이해하는 아주 이게 화두가 돼서. 도대체 인간이라는 게 뭔지를 자기는 이제까지 단순하게 생각을 했는데. 뭐 내가 좋아하면 지도 좋아하고, 내가 도와주면 지도 도와주고. 이렇게 가볍게 생각했는데. 그 참 이상하다. 사람 평소에 나쁜 것도 아닌데. 어떻게 저럴까?

 

이래서 연구를 해보면 사람이 내가 잘해주는 게 그 사람에게 반드시 좋은 게 아니다. 이런 걸 발견할 수도 있죠. 나는 잘해준다고 했는데 그 사람한테는 집착, 뭐요? 속박이고, 괴로움이 될 수도 있고. 그런 내 자신의 어떤 그 내식의 어떤 것이 깨뜨려지는. ~ 이게 저 사람에게 내가 생각했던 거 하고, 저 사람이 받아들이는 거 하고, 내가 보는 나하고, 저 사람이 보는 나하고 틀리구나. 이런 걸 안다는 거는 자기를 좀 알아가는 거죠. 그건 나를 아는 거고 이 계기를 통해서.

 

그 다음에 문제는 사람들도 연구를 해보면 어때요? 사람이 여러분도 마찬가지요. 여러분도 스님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러면 남편이 싫어서 스님을 좋아는 게 그게 아니잖아. 남자로서 남편은 문제가 없는데. 뭔가 그것만 갖고 인생의 만족이 되는 건 아니잖아. 여러분들은 뭔가 스승 같은 역할을 해 줄 사람도 있고, 부모 같은 역할을 해 줄 사람도 있고, 남자 같은 역할을 해 줄 사람도 있고. 뭐 하인 같은 역할을 해 줄 사람도 있어야 돼. 뭐 말하면 심부름 탁탁 해 줄 그런 남자도 필요하고.

 

또 좀 이렇게 남자같이 이성적인 그런 사람도 필요하고, 아버지같이 포근한 사람도 필요하고, 스승같이 나를 좀 야단도 치고 바로잡을 그런 사람도 필요한데. 내가 원하는 게 남편한테 다 안구해지잖아. 다 안구해지니까 따로 구하러 다닌단 말이오. 스승 같고 아버지 같은 남자인데, 이게 뭐라 이성적으로 남자친구 같은 남자가 안 될 때는 바람을 피우게 되는 거요. 아시겠어요? 뭔가 좀 가슴에 찡한 그런 맛이 없다 이거야. 사람은 좋은데. 그래서 남이 볼 때는 어때요? 아이고 그 남자 얼마나 좋냐? 사람이 참 부드럽고, 어쩌고 이러는데 본인은 그 여자가 그 남자만 갖고 만족을 못하니까 여자가 욕을 억수로 얻어먹죠. 그런데 그 사람의 요구는 뭔가 딴 게 또 있기 때문에 그래요.

 

그런 것처럼 남자들도 마찬가지요. 엄마 같은 거를 요구하는 것도 있고, 하녀 같은 것을 요구하는 것도 있고, 아주 섹시한 여자 같은걸 요구하는 것도 있고, 요구가 여러 개 있는데. 그 중에 뭐가 하나 부족한 거요. 그 연구를 해보면 그런 걸 발견하게 돼. ~ 이게 부족해서 저 분이, 저 사람이 저런 거구나. 남이 볼 때는 다 괜찮은 여자라도 그 남자에게는 뭔가 어릴 때, 자랄 때, 성장과정에서 어느 분야가 결핍된 게 있어서 그걸 지금 만족이 부인한테 안 된다. 가정을 파괴 했다든지, 여자가 싫다든지 이런 게 아니고. 가정도 아끼고 다 하는데 뭔가 내부가 안 되기 때문에 밖으로 찾는단 말이오.

 

그러면 이제 내가 그걸 알아서 아~ 이런 것도 역할을 해 줘야 되겠구나. 이렇게 하면 문제가 풀리죠. 그런데 내가 아이고 내가 기생이가? 그 짓은 죽어도 못하겠다든지. 아이고~ 그 조그마한 애면 내가 엄마처럼 다스리지. 다 큰 남자를 애처럼 내가 돌봐 주냐? 나 그건 싫다. 이러면 안녕히 계십시오. 하고 끝내버리면 되지. 그 남자가 문제가 아니라 내가 그 요구에 어떻게 대응할 수 있느냐? 없느냐? 이게 문제란 말이오. 여기 오는 사람이 실무자인데 정토 그 애가 문제가 아니라 정토회가 그런 사람을 수용할 수 까지 있느냐? 없느냐? 그건 우리의 선택이란 말이오. 그 사람이 문제가 아니란 말이오. 이런 것까지는 여기서는 도저히 수용을 할 수 없다하면 안 된다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우리는 이것을 이런 걸 알아야. 그래서 고치려면 힘이 좀 들어. 그러니까 여기서 선택이 있단 말이오. 그 여자를 꼭 아내를 고치겠다. 이러면 그건 안 된다. 고칠 필요가 없다가 아니에요. 고치려면 누가 자기를 고칠라 그러겠어요. 고치려면 남이 그 사람을 고치려면 거기는 갈등관계가 필요하다. 그 갈등관계의 기간을 내가 이미 딱 집착하고 시작을 해야 된단 말이오. 좋은 일을 하려고 했는데 싸움만 됐다. 이런 얘기 할 필요가 없어.

 

고치려면 갈등관계가 필요하다. 갈등관계의 일정한 기간을 이겨낼 계획을 세우고 그건 내가 감수하겠다. 이렇게 마음을 먹어야 된다. 그리고 그게 요고 고치려고 하다가 지금 있는 괴로움보다 더 큰 괴로움이 생기면 그건 잘못된 거 손실 아니오. 그럴 때는 어때요? 있는 대로 그냥 놔두는 거요. 문제가 없는 줄을 알아버리면 단박에 다 해결이 됩니다. 그래서 천년동안 어두웠던 동굴이 불을 켜면 천년동안 밝아지는 게 아니고 단박에 밝아지는 것과 같다.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