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올라정견

(피올라 정견)[정견특강] #11. 내 자유의 한계는 어디까지 일까?

Buddhastudy 2025. 6. 5. 20:13

 

우리의 자유가 어디까지인지 탐구하며, 우리가 무언가를 받아들이거나 거부할 때 발생하는 내면의 한계에 대해 설명합니다 [00:06].

  • 자유의 한계: 우리가 무언가 또는 누군가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은 곧 우리의 자유가 그 지점까지라는 의미입니다 [00:13]. 이는 우리가 붙잡고 있는 기준과 법칙들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00:29].
  • 에고의 변명: 그럴듯한 이유나 변명들은 사실 에고(ego)의 변명일 뿐이며 [00:36], 무심하게 받아들일 수 없다면 해당 대상이나 경계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입니다 [00:43].
  • 분별과 걸림: 선악이나 깨끗함과 더러움을 분별하지 않고 바보같이 당하라는 말이 아니라, 분별하더라도 그것들이 본래 공하다는 것을 알아 걸림이 없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00:50].
  • 자연과의 비교: 자연은 허용과 받아들임에 한계가 없지만, 인간만이 한계를 가지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01:11]. 마음속에 한계가 사라지면 겉으로는 거부하더라도 이미 자유로운 상태라고 설명합니다 [01:24].
  • 내 편과 네 편: 세상은 '일해야 한다'는 기준을 세워 혼란을 초래하며 [01:30], 그 결과 자기 옳음 속에 '내 편'과 '네 편'이 갈라져 서로 싸우게 된다고 말합니다 [01:38].
  • 진정한 자유: 허용하거나 거부함에 '나'라는 주체가 없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으며, 이는 자연이 보여주는 섭리와 다를 바 없다고 합니다 [01:45]. 진정한 자유는 허용과 거부에 아무런 흔적을 남기지 않습니다 [02:13].
  • 본성: 평생 살면서 마음에 걸리는 것이 몇 개 있다는 것은 나머지 것들에서는 자유로웠다는 증거이며 [02:20], 본래 자유함이 우리의 본성이기 때문이라고 결론짓습니다 [02:30].

 

내가 수용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한계가

곧 내 자유로움의 한계입니다.

무언가 혹은 누구를 받아들일 수 없다면

곧 내 자유는 거기까지란 뜻입니다.

 

우리가 무언가 혹은 누구를 받아들일 수 없거나 힘든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요?

그것은 결국 내가 붙잡거나 걸려 있는

기준과 법칙들 때문입니다.

 

어떤 그럴듯한 이유나 변명들은

사실 다 에고의 변명거리일 뿐입니다.

무심하게 받아들일 수 없다면

그 대상 경계에서 자유로운 게 아닙니다.

 

선악이나 깨끗하고 더러움을 분별치 말고

바보같이 당하란 말은 아닙니다.

다만 분별해도

그것들이 본래 공한 것을 알아, 걸림이 없으면 됩니다.

 

내가 없으면

부끄럽거나 용기가 부족할 일도 없이

그냥 하면 됩니다.

자연은 허용과 받아들임에 한계가 없는데

인간만이 한계가 있습니다.

 

자연은 무엇을 거부함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음속에 한계가 사라지면

겉으론 거부한다 해도 이미 자유합니다.

 

세상은 이래야 한다를 세워 난리법석치지만

그 결과 아상과 법상을 만듭니다.

그 결과로 자기의 옮음 속에

내 편과 네 편이 갈라져 서로 싸우게 됩니다.

 

허용하고 받아들이거나 거부함에

내가 없다면

무엇이 문제가 되겠습니까?

그것은 자연이 보여주는 섭리와 하등 다를 바가 없게 됩니다.

그러므로 받아들이거나 거부할 땐

내 한계 때문에 그러한지를 먼저 돌아보세요.

 

그것 때문이라면

한 번 도전해 보시고

아니라면 무심하게 지나가세요.

 

진정한 자유는

허용과 거부에 아무런 흔적을 남기지 않습니다.

 

평생 살면서 마음에 걸리는 것들이

몇 개 있다는 건

나머지 것들에선 다 자유로웠다는 반증입니다.

본래자유함이 우리의 본성이기에 그렇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