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목적이 이끄는 삶에 대해서 말씀드려 보겠습니다.
저번에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의 얘기를 잠깐 드렸는데요
빅터 프랭클은 이 죽음의 수용소에서 수용되어 있으면서
동료들이 이런 절망적인 상황에서 심리가 어떻게 변해가는지를 관찰했습니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이런 어떤 압도적인 현실, 아주 절망적인 문제에 부딪히면
첫 번째 반응이 부정한다는 것이지 않습니까?
“그럴 리가 없을 거야”
“뭐가 잘못 된 걸거야”
“곧 바로 잡힐거야”
이런 생각을 한다는 거죠.
그럴 리가 없다.
그러다가 하루가 이틀이 되고, 한달이 되고, 상황이 변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지?”
그러면서 굉장히 분노 반응을 일으키는 것이죠.
그렇게 해서 저항하고 분노하는 단계가 두 번째고요
하지만 수용소에서 그 상황이 전혀 변하지 않고 점점 더 악화되어 가면서
사람들은 화내어 봤자 소용없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일체의 감정반응을 정지하게 됩니다.
반응을 안하는 거죠.
하지만 그 반응은 어느 순간에
굉장히 폭발적인 폭력적인 방법으로 방식으로 표출되기도 하는
굉장히 감정적으로 나쁜 상태로 빠져듭니다.
또 다르게 이야기하면
현재 일어난 상황에 대해서 감정 반응을 안 한다는 것은
이 사람은 이미 자기 삶에서 현재를 지웠다는 것이죠.
그러다가 두 번째 감정 반응다음의 단계가 계획이 없는 단계가 됩니다.
이것은 계획이라고 하는 것은 내일에 대한 것인데
즉, 미래가 없어진다는 뜻이죠.
그래서 이 사람은 현재와 미래까지 지워지게 됩니다.
그러면서 그것이 상호작용이 없는 단계로 나아가게 됩니다.
실제로 서로 대화도, 적극적의 생활 의욕도 없어지는 단계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자아와 인격의 총체적인 붕괴, 이렇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빅터 프랭클은 동료들이 이렇게 되는 것을 너무나 많이 본 것이죠.
자기네들이 동료들 간에 서로 기도한 내용이 이런 거였다고 합니다.
“어느 날 갑자기 침대에서 더 이상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주십시오.”
그러니까 유대인 수용소니까 일어나서 노동할 생각이 없다면
그냥 바로 가스실로 가는 것이거든요.
그래서 삶을 놓치 않도록, 포기하지 않도록 해주십시오라고 기도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빅터 프랭클은 가장 문제가 되는 단계가
계획 없음의 단계다,
내일이 없다고 생각하는 순간 사람은 놓아버리더라,
이렇게 생각을 하게 됩니다.
본인도 이 과정에서 당연히 이 과정을 밟았을 텐데
어느 순간에 빅터 프랭클은 그때 빨래하는 역할을 맡아서 빨래하는 일을 하고 있었는데
그 주머니에서 하나의 결정적인 문장을 발견하게 되는 거죠.
“내 마음과 몸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라.”
이런 문장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때 절망적인 삶 속에서 프랑클은 하나의 전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아, 그렇구나. 내 삶의 목적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다.
그리고 내 삶의 목표는 하나님을 사랑하기 위해서 사람들을 도와야 하겠다.
나의 이 지식과 경험을 가지고 어려움에 처한 심리적으로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도와야 겠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프랑클은 수용소의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이전의 계획 없음이 아니라 계획이 있는 상태가 되는 겁니다.
그래서 이 계획이 생기니까 내가 가져야 할 것들
지식, 경험, 뭐 이런 것들,
자격, 내가 가져야 할 것들, 건강, 소유가 필요해지고,
내가 어떻게 일을 해결해 갈까 하는 스타일, 사람들과 접촉하는 스타일도 만들어지고
나는 누구인가하는 정체성도 해결이 되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빅터 프랭클은 새로운 일과를 생성해냅니다.
아까 상호작용이 없다고 했잖아요, 절망에 빠진 사람은.
그런데 리액션, 세상에 대해서 소극적으로는 대응도 하고
적극적으로는 사람들과 교섭도 하는
이런 새로운 일과를 만들어냅니다.
빅터 프랭클은 많은 사람들이 절망에 빠지면 아무것도 안 하는데
이 사람은 하루에 한 컵 정도 배급되는 물을 가지고 반은 마시고 반은 면도를 합니다.
면도기가 없으니까 깨진 유리 조각을 주워서 얼굴에 피가 나더라도
매일매일 면도를 했습니다.
이것은 극한 상황에서 정말로 실천하기 어려운 일이죠.
이런 계획, 목적과 목표가 없다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던 거죠.
그리고 이 사람은 목표가 사람을 돕는 거니까
이 동료들이 절망에 빠져서 계획 없음, 상호작용 없음
그리고 마지막에 일어나지 않는, 아침에
이런 상태에 빠지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서 동료들을 돕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새로운 일과를 만들어낸 것이죠.
그리고 그것을 가지고 시간을 견뎌냅니다.
그래서 그런 역풍, 수용소의 삶이라고 하는
자기 인생에서 가장 모진 역풍에도 불구하고
자신은 자신의 돛을 달고 나아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 프랭클이 그런면에서 보면
수용소에 수용된 상황은 내가 어떻게 해결할 수 없었지만
내가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내가 이 상황에서 어떻게 반응할지는
온전히 나의 것이고
그것은 아무도 건드릴 수 없는 것인데
그럼 그것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인가?
그것은 내 삶의 목적, 목표가 분명한 데서 나오는 것이다.
이렇게 얘기를 한 것이죠.
그래서 우리는 문제에 부딪히면
그 문제의 심각성에 따라서 부정분노 감정 계획없음, 총체적 붕괴로
이렇게 그 문제에 끌려갈 게 아니라
중간단계, 내 삶의 목적은 무엇인가? 나는 무엇을 목표로 하고 있는가 하는 부분만
잘 성찰해서 우리가 잡아챌 수 있다면
나는 나의 새로운 일과를 생성해서
그런 역풍에도 돛을 달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이렇게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오늘은 빅터 프랭클의 수용소의 삶에 대해서
삶을 가지고 목적이 이끄는 삶에 대해서 말씀드려 봤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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