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평생 동안 이렇게 향락만 누리다가 죽은 이 과보로 결국에는 지옥에 태어났습니다. 그 지옥 중의 하나가 이런 화탕지옥 이었습니다. 이 화탕지옥은 밑으로 빠지는 데 300년이 걸리고 다시 떠오르는 데 가라앉는 데만 3만 년, 다시 떠오르는 데 3만 년이 걸린다고 합니다. 그 세월 동안 펄펄 끓는 쇳물에서 고통받다가 6만 년이 걸려서 나올 때 하나의 게송을 읊게 되면, 그때 잠시만이라도 고통을 벗어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사람들이 네 명의 젊은이가 나올 때마다 그 게송을 읊기 위해서 첫 마디를 내뱉지만, 그 게송을 미처 다 읊지 못하고, 한마디만 내뱉는 순간에 다시 펄펄 끓는 쇳물에 빠져들기 때문에, 그 게송의 첫마디만 읊고 다시 빠져서, 결국은 잠시 쉬지도 못하고 다시 그 고통을 받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 게송의 원래 뜻을 부처님께서 다시 무슨 게송을 읊으려고 했는지를 설명을 해줍니다. 두_라는 말은 재산을 시주하거나 나누어 주지 않고 악행을 일삼으며 세월을 보냈다. 우리가 가진 재산으로 해탈을 구하지 않았다. 사_펄펄 끓는 화탕지옥에서 6만 년을 보냈는데 언제 이 고통의 끝이 오려나. 나_라는 말은 너와 내가 저지른 악행의 과보는 끝이 없다. 언제 끝이 나려나. 소_여기서 벗어나 다시 사람으로 태어난다면 보시도 많이 하고 계를 지키며 선행을 하리라. 이런 뜻이었습니다. 그래서 부처님께 이 법문을 들은 빠세나디왕은 흠칫 놀랬습니다.
아~ 내가 저지른 악행의 과보가 이렇게 크구나. 내가 이렇게 큰 또 악행을 저지를 뻔했구나. 나도 나중에 죽어서 저런 소지옥에 태어나서 저렇게 오랜 세월 고통을 받을 뻔했구나. 이렇게 생각하고 이 빠세나디왕이 남의 유부녀를 탐하는 그 마음을 순식간에 버렸다고 그럽니다. 그래서 이 일화가 소지옥에 관련된 일화로서 아주 유명한 일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욕계악처, 욕계악처라고 하는 그중에서 특히나 이 지옥이라고 하는 것은 이렇게 우리에게 많은 고통을 주고, 많은 괴로움을 겪게 하는 곳이기 때문에, 여기에는 많은 사람들이 두려움을 내고, 적어도 이런 곳에는 태어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이고 살아가야 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다음에 지옥과 거의 흡사한 정도로 고통을 받는 곳이 아귀라는 곳입니다. 우리가 보통 아귀라는 말은 많이 들어봤을 겁니다. 우리가 밥을 정신없이 먹는 사람보고 아귀같이 먹는다. 이런 말을 보통 하죠. 이 아귀라고 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항상 굶주리고 항상 목이 말라서 고통 받는 존재를 아귀라고 합니다. 뭐 이런 말씀을 아마 좀 들어 봤을 겁니다. 몸은 엄청나게 큰데 목은 바늘구멍 만해서 음식을 삼킬 수도 없고, 또 물을 마실 수도 없이 고통을 받는 거죠. 항상 배는 고프고, 항상 목은 마른 데, 마실 수도 없고, 먹을 수도 없는 이런 존재를 우리가 아귀라고 합니다.
그래서 아귀의 존재들도 실제로 우리가 살아가는 삶에 있어서 굉장히 고통받는 존재들입니다. 지옥중생 못지않게 고통을 받는 존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아귀라고 하는 이 존재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이렇게 아주 고통받는 존재들도 있지만, 또 굉장히 폭이 넓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보통 죽은 친척들 조상들을 위해서 제사를 지내고 하는데, 보통 그런 죽은 조상들, 이런 한국에선 천도재. 그러니까 우리가 죽은 사람들을 위해서 천도재를 지내고 그러죠. 그런 천도재를 지내는 것과 관련 있는 존재가 바로 이런 아귀중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아귀들은 죽어서 먹을 것을 찾기 위해서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항상 배가 고프기 때문에 먹을 것을 찾고, 항상 물을 찾고 있지만 먹지를 못합니다. 그런데 유일하게 이 아귀들이 먹을 수 있고 마실 수 있는 것이 사람들이 공덕을 짓고 어떤 복을 짓고 나서 그 공덕을 회향을 해 주면, 다시 말하면 내가 지은 공덕을 그 아귀라는 존재들에게 돌려준다면, 그 공덕을 받아서 먹을 순 있습니다. 그래서 예를 들어서 우리가 어떤 가난한 사람을 위해서 보시를 한다거나 또는 절에 가서 스님들께 공양을 올린 다음에, 그 공양 올린 이 공덕을 내가 오늘 지은 이 공덕이 나의 옛날에 과거의 친척이었던 그런 아귀들에게 전해지기를, 이 아귀들이 나의 이 공덕을 받기를, 이렇게 만약에 회향을 해준다면, 이 아귀들이 그 공덕을 받아서 음식을 먹을 수도 있고 물을 마실 수도 있습니다.
이 일화에 관한 아주 유명한 일화가 빈비사라왕에 관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빈비사라왕의 친척 중에서 아주 먼 친척이었죠. 오랜 전생에. 그 친척 중에서 아귀로 태어난 존재가 있었습니다. 친척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귀가 오랜 세월 동안 고통을 받다가 그 석가모니 부처님시대에 다시 또 아귀로 있으면서 빈비사라왕이 잠을 자는데 계속 괴롭혔습니다. 아주 흉측한 모습을 하고 나타나고, 여러 가지 아주 보기 흉측한 모습으로 나타나서 괴롭혔습니다. 그래서 빈비사라왕이 잠을 못 자고, 항상 고통을 받다가 도저히 안되겠다해서 부처님께 와서 그 상황을 말씀을 드렸습니다. 내가 이러이러한 고통을 받고 있는데, 부처님이시여 이걸 어떻게 했으면 좋겠습니까? 라고 물으니까.
이때 부처님께서 물어봅니다. 아~ 왕이시여. 당신이 공덕을 짓고 나서 친척들에게 회향을 해 준적이 있느냐? 아니 없습니다. 그러면 스님들을 모시고 공양을 대접한 다음에 그 공덕을 회향을 해 주십시오. 그 지금 왕을 괴롭히는 그 사람들은 아주 오랜 전생에 죽은 당신의 친척들입니다. 이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그래서 빈비사라왕이 부처님께서 시키는 데로 부처님과 스님들께 공양을 한 다음에 이 공덕이 이 부처님께 올린 이 공덕이 그 나의 먼 친척이었던 이 아귀들에게 회향되기를. 이렇게 회향을 해 줍니다. 그렇게 회양을 해주고 나니까 그 아귀들이 그 회향된 음식을 아주 배불리 먹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 아귀들은 항상 고통받고 배고픔 때문에 고통받고, 목마름 때문에 고통을 받지만, 여러분들이 만약에 공덕을 짓고 나서, 그 공덕을 아귀들에게 회향을 해 준다면, 그 아귀들은 그 음식을 먹을 수도 있고 마실 수도 있다고 그러고요. 그래서 우리가 일반적으로 보면 우리의 친척이나 조상들이 돌아가셨을 때, 그 죽고 난 친척들이나 가까운 사람이 죽었을 때, 그분들을 이해서 천도재를 지내주고 이렇게 합니다. 그 이유 증에 하나가 그 죽은 존재들이 행여나, 혹시나 이런 아귀로 태어난 경우는 우리가 천도재를 지내주면서 음식을 차리고, 그 음식을 그분들에게 회향을 해 주게 되면 그 존재들이 그 음식을 먹을 수도 있고 마실 수도 있습니다. 그런 이유가 있고요.
그 죽은 사람이 이익이 직접적으로 됐기 때문입니다. 설사 아귀로 태어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천도재를 만약에 우리가 지낸다면, 그 존재들이 직접적으로 도움을 받지는 못하지만, 살아있는 가족들이 또 절에 와서 보시를 하는 그런 공덕을 짓게 되는 의미도 있고, 또 그런 천도재를 통해서 이런 성인들의 가르침을 접하게 됨으로써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는 이익도 있습니다. 그래서 사실은 천도재를 지내주는 것이 직접적으로 이익이 되는 존재는 부처님 말씀에 따르면 이 아귀로 태어난 존재들만 직접적인 이익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이 이런 제사를 지내 줌으로써 살아있는 존재들에게도 이익이 있고, 또 죽은 존재가 만약에 아귀로 태어났다면 그분들에게 큰 이익이 있기 때문에, 천도재 지내는 것을 무조건 배척할 것은 아니라고 생각을 합니다. 하지만 나중에 여러분들이 업에 관해서 공부를 하시겠지만 단지 천도재를 지내줌으로써 우리가 해탈을 할 수 있고, 또 극락세계에 갈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은 다소 무리가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여러분들이 평소에 삶을 살 때 항상 좋은 일을 많이 행하고 선을 행하고 악행을 하지 않고 이렇게 살았을 때, 우리가 좋은 세상에 태어날 수 있는 것이지. 내가 죽고 나서 후손들이 나에게 천도재를 지내준다고 해서 좋은 세상에 태어나고 훌륭한 곳에 태어나고 이렇게 된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점은 여러분들이 좀 주의 깊게 생각해야 될 부분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어찌 됐든 간에 우리가 천도재를 지내는 것과 특히 관련이 많은 존재가 바로 이 아귀라고 하는 존재입니다. 그다음에 세 번째는 바로 축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축생은 제가 구태여 설명을 드리지 않아도 축생의 세계라는 거는 어떤 거라는 걸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나는 짐승도 있고, 또 걸어가는 짐승, 수많은 존재들이 있습니다. 이런 존재들은 항상 자기가. 이 동물의 세계는 약육강식의 세상입니다. 그래서 그 언제 잡아먹힐지 모르고, 언제 먹이가 될 줄 모르는 이런 위험함이 있기 때문에, 항상 불안한 삶을 살게 됩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이 예를 들어서 고기를 먹고 싶어서 고기를 잡습니다. 우리가 먹이용으로. 또 생선을 잡아서 산채로 비늘을 벗길 수도 있습니다. 이런 고통을 당하는 건 동물로 태어났기 때문에 그렇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축생의 삶도 어떤 면에서는 많은 고통이 있는, 행복한 존재라고 말할 수 없는, 그런 존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가장 극심한 고통을 겪는 존재는 지옥 중생이라고 할 수 있고요. 그다음이 아귀, 그다음 축생. 그리고 또 마지막으로 한 가지는 아수라라고 있습니다. 아수라라는 것은 자세하게 설명 드리지는 않겠습니다. 이 아수라는 일종에 아귀중생에 포함되는 개념으로 이해를 할 수 있기 때문에, 구태여 따로 분류를 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부처님께서는 가끔 여섯 종류로 이야기하지 않고, 다섯 종류로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 아수라는 아주 고통을 받는 그런 존재도 있을뿐더러, 또 천신들 중에 아주 공덕이 너무 약해서 복락을 많이 누리지 못하고, 낮에는 복락을 누리지만 밤이 되면은 또 고통 받는 이런 존재들도 있습니다. 그래서 아수라는 글자 그대로의 뜻은 광채가 없는 존재다. 이런 뜻입니다. 원래 나중에 다음 시간에 제가 설명을 드리겠지만, 천상계에 존재하는 존재들은, 천상계에 사는 존재들은 몸에서 광채가 납니다. 그런데 이 아수라라고 하는 존재는 천상계의 일부이기도 하지만 몸에서 광채가 없습니다. 그만큼 공덕이 약해서 그렇다는 거죠. 그래서 아수라는 일부는 천상계 존재이기도 하고 일부는 또 아귀에 포함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따로 아수라라는 그런 존재를 구태여 구분하지 않아도 우리가 충분히 설명이 가능하기 때문에 그냥 아수라를 제외하고 악처를 지옥 아귀 축생, 이 세 가지로 설명하기도 하고요, 구태여 설명을 하자면 아수라도 포함시킬 수가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윤회를 할 때, 만약에 우리가 악업을 많이 짓고 나쁜 짓을 많이 했을 때 태어나는 곳이 지옥아귀축생 수라 이렇게 아수라. 이렇게 네 가지로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 사는 윤회하는 세상을 이야기할 때 처음에는 좀 좋은 세상을 이야기를 해야 되는데, 처음에는 상당히 좀 고통스럽고 별로 기분 좋지 않은 세상을 먼저 말씀드렸습니다. 하지만 다음 시간부터는 우리가 좀 더 행복이 많은 존재들, 그리고 더 많은 기쁨과 복락이 있는 존재들에 대해서 알아보기로 하겠습니다.
어떻게 보면 오늘 이야기한 이런 이야기들은 불자가 아닌 분들이 들으면 다소 황당하게 느낄 수도 있고, 과연 그런 곳이 있을까? 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세상들에 대해서는 그냥 여러분들이 아~ 불교에서 바라보는 우주관이 저런 것이구나. 이렇게 이해를 하시고요. 실제로 이것이 있고 없고의 문제라기보다 우리가 이러한 업을 지으면, 이런 나쁜 행위를 하면 그것에 의해서 아주 극심한 고통이 있는 그런 세상에서 살아갈 수 있다. 이런 견책. 그리고 이런 채찍으로서 이해를 하시고, 우리가 그런 나쁜 행위를 해서 이렇게 항상 고통이 가득한 이런 세상에는 절대 태어나선 안 되겠다, 라고 하는 그런 마음을 일으키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으면 충분하다고 생각을 합니다.
짧은 시간이라서 이 지옥이나 아귀축생수라에 대해서 충분히 설명을 드리진 못했습니다. 자세한 것은 불교 서적이나 이런 데를 보면 여러분들이 충분히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기 때문에 간단하게 욕계에서 우리가 살아가는 감각적 욕망이 주로 있는 이 세상인 욕계에 있는, 고통이 주로 가득한 세상을 먼저 알아봤습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고요, 다음 시간에는 우리에게 좀 더 행복이 가득하고 많은 복락이 존재하는 그런 욕계선처와 색계, 무색계, 이 세상에 대해서 다음에 알아보기로 하고요. 다음 시간에는 욕계선처에 대해서 다시 설명을 드리기로 하겠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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