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법문/일묵스님_윤회와죽음

1. 일묵스님_윤회와 행복한 죽음// 왜곡을 버리고 진실을 보라 (12:03)

Buddhastudy 2012. 4. 8. 20:38

  출처: 유나방송

. 안녕하세요. 저는 일묵스님이라고 합니다. 여러분과 만나게 돼서 기쁘게 생각합니다. 제가 오늘부터 말씀을 드리려고 하는 것은 전체적인 주제는 불교에서 말하는 윤회라는 것과 그 윤회의 과정 속에서 우리가 어떻게 행복한 삶을 살고, 어떻게 하면 행복하게 죽음을 맞이할 수 있느냐? 하는 주제를 가지고 앞으로 여러분을 만나게 될 거 같습니다. 그래서 주제는 윤회와 행복한 죽음이라는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먼저 아마도 모든 살아있는 존재들은 행복을 누구나 다 원할 겁니다. 고통을 원하는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겁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기 나름대로 아~ 이것이 행복한 삶이다. 이것이 나에게는 진정으로 행복한 삶이다, 라고 자기 나름대로 어떤 방향으로 행복을 찾아서 열심히 살아가고 있을 것이라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모든 사람이 다 이렇게 행복을 원하고 행복한 삶을 추구하고 살아감에도 불구하고 왜 우리가 살아가는 이 현실에는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행복하지 못하고 또 고통 받는 사람들이 많이 있을 수밖에 없느냐? 이 부분에 대해서 우리가 한 번쯤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누구나 행복을 원하지만 이런 문제가 발생하는 것은 진정으로 우리가 행복을 원하면서 그 행복한 방향으로 삶을 살고 있는가? 진정으로 우리에게 행복을 주는 방향으로 삶을 살고 있느냐? 아니면은 진정으로 자기가 행복을 원하지만 실제로는 행복을 주지 않고 우리에게 고통을 주는 삶을 살고 있지는 않은가? 이런 부분이 우리에게 본질적인 의문으로 다가온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래서 이 불교에서는 어떻게 하면 이 세상을 사실을 사실 그대로 보느냐? 이 부분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세상의 본질을 어떤 왜곡 됨이 없이, 굴곡 됨이 없이, 그 사실은 사실 그대로 있는 그대로 보는 것, 이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래서 이 행복을 원하면 행복한 길을 가야지 실제로 자기가 행복을 원하면서 행복한 길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행복하지 않은, 또는 고통을 주는 길을 만약에 따라간다면, 우리가 아무리 행복을 원한다 하더라도 실제로 우리가 원하는 행복을 실현하기는 아마 불가능할 거라고 생각 합니다.

 

이거는 마치 뭐와 같으냐 하면 동쪽으로 가기를 원하면서 실제로 자기는 서쪽으로 가는 것과 똑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불교를 공부하고 또 이런 수행을 하고 또 마음공부를 하는 것은 실제로 이 세상에 있는 것들이 그런 사실을 사실 그대로 보는 그런 힘을 기르는 거다. 또는 그런 지혜를 배우는 것이다. 이렇게 말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래서 항상 우리가 보는 세상에 대해서 있는 그대로 보는 이런 힘을 기르는 것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불교에서는 이런 것을 지혜라 이야기를 하는데. 그런 지혜를 닦는 것을 아주 중요한 목표로써 삼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느냐? 처음부터 우리가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기는 좀 어렵습니다. 예를 들어서 우리가 처음 바둑을 배웠을 때 처음부터 자기가 나름대로 생각하는 방향대로 만약에 바둑을 둔다면 대부분의 바둑은 실패를 하게 될 겁니다. 지게 되겠죠. 자기가 아직까지는 어떤 것이 나에게 이익이 되는 것인지, 어떤 것이 나에게 손해가 되는 수인지, 이런 것들을 알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처음 우리가 바둑을 배울 때는 먼저 바둑의 정석이라고 하는 것을 배워서 그것을 익힌 다음에 아~ 우리 나름대로 나중에 그것이 바둑의 정석을 충분히 익히고 나면 그다음에는 자기 나름대로 내 스스로 거기에 맞는 상황에 맞는 적합한 수를 둘 수 있는 그런 힘이 생기게 될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도 인생을 살 때 인생의 문제에서 우리가 어떤 것이 행복한 거고, 어떤 것이 우리에게 진정으로 행복을 주는 것이고, 어떤 것이 우리에게 고통을 주는 것이다. 이런 부분에 대해서 그냥 우리 나름대로 이 진리를 만약에 이해를 한다면 그것은 일반적으로 옳을 수도 있지만 어떤 경우는 그것이 옳지 않을 경우도 있을 겁니다. 그래서 잘못된 인식을 통해서, 전혀 다른 고통스러운 우리에게 고통을 주는 것을 행복이라고 생각을 할 수도 있다는 거죠. 그래서 우리가 인생을 사는데 행복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먼저 이 삶을 살면서 이 삶에서 나름대로 아주 모범적인 삶을 살다간 어떤 성자들의 가르침. 이런 가르침을 통해서 우리가 먼저 지혜를 배울 필요가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예를 들어서 예수님이나 부처님. 그리고 여러 성자들의 가르침에 귀를 기울인다면 우리는 우리가 이전에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들을 배워서 그 가르침에 따라서 우리가 살다 보면 우리 스스로도 이 삶을 판단하고 또 거기에 행복한 길을 가는데 적합한 어떤 삶을 살 수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처음 우리가 이런 세상을 있는 그대로, 또는 왜곡됨이 없이 자기의 어떤 사견, 자기만의 생각이 아니라 객관적으로 봐도 이것은 우리에게 도움이 되는 그런 삶을 살기 위해서는 먼저 성자들, 특히 저는 불자이기 때문에 또 스님으로서 출가를 했기 때문에 특히 부처님의 가르침에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물론 이 방송을 듣는 분들 중에서 불자가 아닌 분들도 계시지만 불교에서는 저렇게 또 세상을 바라보는 구나라고 한번 들어보시고, 또 그것이 여러분들의 삶에 또 도움이 되는 부분도 있으리라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일단 저는 불교에서 바라보는, 그러니까 부처님께서 바라보는 이 세상에 그 있는 그대로의 모습. 이것을 먼저 말씀을 드리고, 그에 따라서 우리가 그 부처님의 말씀을 통해서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어떤 것이 진정으로 우리에게 이익을 주는 것인가? 하는 부분에 대해서 앞으로 공부를 해 볼까 합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가르침을 크게 두 가지로 나누면 첫 번째는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라고 하는 사성제와 두 번째는 연기법이라고 하는 것을 말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이 사성제와 연기법을 통해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의 본질적인 모습, 이 세상이 실제로 어떤 왜곡 됨이 없이 있는 그대로 존재하는 모습에 대해서 저희들에게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그 가르침을 통해서 그 가르침을 배우고 익히면 아~ 이런 것은 우리에게 우리 삶에 진정으로 도움이 되는 것이구나. 이런 것은 진정으로 우리에게 고통을 주는 것이구나. 라고 이해를 하게 된다면 우리 삶에 아주 큰 변화가 일어나게 되고, 또 그를 통해서 우리가 앞으로 어떻게 삶을 살아야 하고, 어떻게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인가? 라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현재 우리가 살아가는 이생에서 주로 국한에서 파악을 많이 합니다. 하지만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면 이생에서 지금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일들은 우리가 지난 과거에 있었던 일들과 전혀 무관하지는 않습니다. 또 지금 이 순간에 일어나는 일들도 나중에 미래에 일들에 전혀 무관하지가 않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보면 현재는 과거에 내가 행했던 일들의 반영, 그 영향을 받아서 일어나는 것이고. 또 현재 내가 행하는 것들은 미래에 일어나는 우리들의 삶에 또 큰 영향을 주게 됩니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이 세상에 대해서 이야기를 할 때 소위 말해서 윤회라고 하는 것을 이야기를 하면서 우리의 삶을 현재 이 시점에서만 보는 것이 아니라, 과거 현재 미래, 이 삼세, 세 가지 시간에 걸쳐서, 현재 일어나는 일은 과거에 또 이러이러한 인연에 의해서 일어나는구나. 또 미래에 일어나는 것은 현재에 또 이러이러한 인연에 의해서 일어난다 하는 것을 큰 안목으로 이렇게 보면서 우리가 현재 그러면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이런 관점에서 주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부분에 대한 이해가 충분히 되지 않으면 우리가 지금 살아가는 세상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일들에 대해서 잘 이해되지 않는 부분들이 많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어떤 사람은 갑자기 아주 부잣집에 태어나서 굉장히 많은 복락을 누리고 행복한 삶을 사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굉장히 힘든 삶을 살게 되고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서 아주 폭력적인 부모님을 만나서 또 어릴 때부터 폭력을 행사당하고, 그러면서 살다가 오래 살지 못하고 죽는 경우도 있습니다. 또 아프리카나 이런 데는 아주 먹을 것이 없어서 굶어서 죽어가는 어린 아이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러면 왜 이런 일이 발생을 할까요? 이 생에 일어나는 이 사실만 가지고는 이런 것들은 참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우연히 발생하는 거라고 보기도, 우연히 어떤 사람은 부잣집에 태어나고, 어떤 사람은 가난한 집에 태어나서 고통 받고, 이러지는 않을 거라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