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다시 돌아왔습니다. 죽음 이후 지난주에 이어서 죽음 이후의 세계를 과연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는가? 의 주제를 가지고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지난주에 전통적인 종교에서 말했던 죽음관을 말씀을 드렸죠? 그래서 우리 인류들은 서양의 계몽주의 혹은 과학이 발전하기 이전까지는 대체로 죽음 뒤에 생을 긍정을 했다. 이렇게 말씀을 드렸습니다. 자~ 계몽주의가 도대체 어떤 거길래 죽음관의 형성에 있어서 사정이 달라지게 됐는가? 이런 문제가 되겠습니다. 계몽주의의 특징은 역시 이성 만능주의가 되겠죠.
인간이 가진 능력 가운데에서 이성을 가장 귀중하게 생각을 하고, 이성만이 인간의 강력한 무기다. 이렇게 얘기를 합니다. 이거는 이제 당시까지 종교, 기독교죠. 기독교에서 이성을 무시하고 믿음만 강조한다고 하거나 이런 데에 대한 반동으로 볼 수가 있습니다. 재미난 게요. 이성을 중시하게 되니까 자연스럽게 종교에 대한 경멸이 들어갑니다. 계몽주의자들을 보면요. 볼테르 같은 사람들, 기독교에 대한 경멸이 대답합니다. 이 사람은 뭐라고 그런고 하니. 기독교는 앞으로 바이블은 몇십 년 혹은 일이백 년 뒤에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얘기합니다.
왜 그런고하니 인간의 이성이 이렇게 발전하게 됐는데 이제 더 이상 그런 인간의 이성을 무시하는 종교를 미신 같은 종교를 믿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라고 예언을 합니다. 그런데 예언이 틀렸죠. 기독교가 그렇게 간단한 종교는 아닙니다. 기독교도 나름 계속해서 발전을 해 왔습니다. 끊임없는 변모를 해 왔기 때문에 그렇게 볼테르의 얘기처럼 한 기회에 가지는 않았습니다. 재미난 거를 말씀 드리면요, 이런 거 얘기할 때마다 저만 재밌는 거 아닌가? 그런 의구심이 노파심이 들기도 합니다만. 당시에 서양의 계몽주의자들이요, 볼테르, 꽁트, 이런 사람들은 의외로 가장 앞선 종교를 유교라고 쳤다는 사실입니다. 아주 의외였죠?
서양지식인들이 19세기, 18세기. 서양지식인들이 유교를 최고의 종교로 쳤다. 자세한 데까지는 가지 않겠습니다마는 인격자로서의 신보다는 유교처럼 말이죠. 이, (이 기)할 때 리죠. 리죠. principle. 그런 이치로서의 원리로서의 절대 어떤 존재가 훨씬 더 앞선 종교에서 말하는 거다. 이렇게 얘기를 합니다. 어떻든 계몽주의들은 인류는 현재 진화의 정점에 서 있다. 이렇게 얘기를 하고. 정말 웃겼던 거는요. 이것도 저 혼자만 웃기는 거 같은데. 뉴턴이나 이런 사람들 나오지 않았습니까?
이 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했는고 하니, 자연법칙을 거의 다 깨달았다고 생각을 합니다. 이제 인류의 찬연한 이성을 가지고 자연법칙, 우주의 법칙을 완전히 깨달았다고 생각을 합니다. 이게 고전물리학이죠. 그때 두 가지 정도 문제만 풀리지 않았습니다. 복사열의, 좀 전문적입니다만, 두 가지 문제가 풀리지 않았는데. 이 문제에서부터 고전물리학이 붕괴되면서 양자역학이 나타나게 되고, 현대물리학이 나타나게 되고, 인류는 새로운 물리학 천문학을 바탕으로 해서 자연, 우주에 대한 완전히 새로운 이해를 하게 됩니다.
좌우간 지금, 그런데 그 문제에 관해서는요. 이런 서양에서 새로운 이론이 나올 때마다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적성의 이론이라든가. 많죠. 상대성 이론이다. 이런 앞선 이론이 나올 때마다 서양에서 기독교는 항상 각축을, 서로 다툼을 하게 되고. 서로 자기만 맞다는 그런 주장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많이 깨집니다. 네. 그러나 불교는 전혀 그런 문제가 없었죠. 오히려 더 비슷한 꼭 같은 건 아니겠습니다만, 비슷한 이야기들이 많이 나오게 됩니다. 이 문제는 다른 선생님이 불교와 과학 얘기 할 때 말씀해 주실 거로 생각이 됩니다. 다시 우리 주제로 돌아가기로 하겠습니다.
자~ 그런데 이 계몽주의. 이것은 뭐 서양에서만 있었기 때문에 전 인류에게 파급되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큰 영향력은 끼치지 못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바로 과학입니다. 바로 과학은 계몽주의에, 혹은 과학이나 수학은 계몽주의의 적자죠. 그런데 이 과학은 발전되면서 전 지구상을 지구를 덮게 됩니다. 그래서 이 과학적인 생각. 이런 것들이 영향은 인류 가운데에서 받지 않는 사람은 별로 없는 그런 형국이 됩니다. 이 바로 과학의 유행 때문에 인류는 인류사 처음으로 죽음 뒤의 세계를 부정하게 됩니다.
자~ 여기서 우리가 과학적이란 말, 그 단어. 무엇을 뜻한다고 생각하십니까? 굉장히 과학적이다. 비과학적이다. 이렇게 얘기를 합니다. 네. 우리는 과학을 통해서 우리 인류는 정말 많은 미신이라든가, 무지에서 해방이 됐습니다. 그것은 사실입니다. 의학이 발전하고 이러면서 말이죠. 그런데 그러다 보니까 이 과학은 우상화가 됩니다. 종교와 같은 그런 우상화가 돼서 과학이 넘어가서는 안 될, 넘봐서는 안 될 그런 영역을 침범을 하게 됩니다. 전 이것을 과학의 오만이라고 이야기를 합니다만. 지금 제 주위에도 그런 과학자들, 과학을 전문으로 하는 전공으로 하는 그런 교수들이 많이 있습니다.
물론 제가 이렇게 얘기한다고 그 사람들이 듣는 건 아닙니다. 계속 과학적이라는 얘기를 하는데. 자~ 이때 과학적이라는 게 무슨 뜻이냐? 과학적이라는 거는요. 같은 조건에서 실험을 하면 어디서 하든지, 언제 하든지, 누가 하든지. 같은 결과가 나오면 그것을 우리는 과학적이라고 그럽니다. 그래서 보편적이라고 그러는 거죠. 누가 실험하든지. 어디서 하든지. 어떻게 하든지. 같은 조건이라면 항상 같은 결과가 나오는 것. 이것을 보고 과학적이라고 합니다. 정말로 중요한 그 훌륭한 과학정신이죠.
그런데 문제는 이렇게 실험할 수 없는 영역에 대해서도 그럼 실험할 수가 없으면 그것은 모르겠다라고 얘기하면 됩니다. 그런데 과학자들은, 일부의 과학자입니다만 그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렇게 얘기를 합니다. 죽음 문제, 죽음 뒤의 문제가 그렇죠. 죽음 뒤의 사후생이 존재하느냐? 존재하지 않느냐? 이런 문제는 어떤 조건으로 실험할 수가 없는 문제입니다. 그래서 정말 양심적인 과학자라면 아~ 사후생 문제는 우리가 거론할 문제, 부분이 아니다. 그렇게 얘기하면 됩니다. 그러나 보통은 그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없기 때문에 존재하지 않는다. 이렇게 얘기해버립니다. 이거는 아니란 얘기죠.
거기다가 인간에게는 과학적인 그런 영역만 있는 것이 아니죠. 자~ 과학이라는 건 뭡니까? 무정물의 세계에 대해서 탐구하는 겁니다. 영어로 얘기할 땐 it. 아이, 티. 해서 it. 그냥 외부의 존재하는 여러 가지. 그냥 자연물에 대한 탐구입니다. 그런데 인간은 어떻습니까? 인간은 육체를 가지고 있으니까 it입니다. 물질이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에게는 의식이 있죠. I, 나. 제가 말씀드렸죠. 의식. 이 차원은 과학적인 차원이 아닙니다. 물질적인 차원이 아닙니다.
그다음에 인간에게는 무엇이 있습니까? We. 우리. 나만 있는 것이 아니고 다른 사람이 있고. 그 사람과 나는 우리를 형성하게 되고, 우리 사이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납니까? 이해라는 일이 벌어지고 있죠. 그러니까 나라는 데에서 주체, subject가 나오게 되고, 그다음에 우리 사이에서는 간주간적이라는 말을 쓰게 되죠. Intersubjectivity. 이렇게 얘기를 합니다. 조금 어려워졌는지 모르겠는데요. 이런 영역이 있는데 이 영역을 사후생에 관한 것들은 바로 이런 영역이거든요. 생명, 또 나의 주체성이 계속되는 여부. 또 상대방과의 서로 이해되는 그런 부분. 그런 영역인데. 그것을 과학으로 전부 설명한다는 것. 이게 오만이고 오류라는 것입니다.
거기다가 우리 인간에게는 종교에서 말하는 초의식. Trans-consciousness 라고 했죠? 깨달은 그런 영역. 그쪽. 영적인 영역이라고 그럴까요? 그런 부분도 또 있습니다. 이걸 절대로 무시할 수 없는 거죠. 인간은 바로 이 초 영역으로, 갈 수 있기 때문에, 또 가야만 하는 그런 존재라고 제가 말씀드렸죠. 이런 데까지 과학이 와서 ‘감 내놔라 대추 내놔라’ 이러면, 그건 아니라는 그런 말씀입니다. 과학자들 가운데서도 이런 얘기를 합니다. 모든 인간 활동, 그러니까 특히 제가 지금 말씀드렸던 사고, 의식. 이런 것도 생화학적인 작용에 불과하다. 그런 얘기를 합니다.
모든 것은 생화학적인 작용으로 환원될 수 있다. 이런 얘기죠. 그런데 과연 그런 게 사실일까? 아닐까요? 과학 하는 사람들하고 얘기를 하면 참 답답한 걸 많이 느낍니다. 어떤 얘기를 하던 간에 그것도 모두 인간 대뇌에서 나오는 뉴런과 뉴런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화학작용. 단백질이 오가고. 어떤 물질이 오가면서 나오는 거다. 인간이 기뻐하고 슬퍼하는 이런 모든 것들이. 요새 통섭이라는 개념이 나오는데, 바로 제가 알기로는 이런 식으로 생물학적인, 사회 생물적인 것으로 모두 환원시키는 작업입니다. 그런데 이런 작업에는 오류가 있습니다. 이걸 우리가 범주의 오류라고 말씀드렸는데.
아까도 말씀드린 것처럼 과학이 상관해서는 안 될 분야를 상관하는 것. 이것을 범주의 오류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조금 어려운 얘기가 될 수 있을지 모르겠는데요. 자~ 모든 인간의 의식 활동이 생화학적인 작용으로 환원이 된다면, 그걸 연장시키면 모든 주장은 모든 statement, 언명은 생화학적인 작용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래서 모든 사고도 역시 생화학적인 거다. 여기서 무슨 문제가 발생되느냐? 생화학적인 그런 물질차원에서는 진실하다. 거짓이다. 이런 게 없습니다.
가령 전자를 이야기할 때 진실한 전자, 혹은 거짓전자. 이런 게 없죠. 전자는 전자일 뿐이죠. 마찬가집니다. 만일에 모든 인간 활동이 생화학적인 작용으로 환원될 수 있다는 생각은, 이거는 진실도 아니고 거짓도 아니고, 그저 하나의 statement, 언명에 불과한 겁니다. 따라서 이게 진실,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냥 그런 겁니다. 그래서 이걸 가지고 이게 사실이라고 내세운다는 것은 스스로의 논리의 오류에 빠지게 되는 겁니다. 중요한 문제인데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이 점을 관고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시간이 많이 지나갔는데 제가 좀 어려운 얘기를 많이 한 거 같습니다. 그런데 일상생활을 하다가 보면 이런 식의 비교 해서는 안 될 것들을 비교하면서 서로 다투는 이런 꼴들을 많이 봐서 조금 자세하게 말씀드려 봤습니다. 어떻든 과학은 죽음에 대해서는 말하지 말아야 된다. 이렇게 말씀드릴 수가 있겠고. 말을 하고 싶으면 좀 더 공부를 하든지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자~ 이런 죽음에 대한 태도가 팽배해 있는데 심지어는 제가 만났던 어떤 기독교 신자는 자기는 사후생을 믿지 않는다. 이렇게 얘기를 합니다. 보면은 그런 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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