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은 동쪽에서 뜨고 서쪽으로 지며
하늘에 떠 있는 다양한 별들도 마찬가지로
하루, 한 달, 일 년을 주기로 동일하게 움직인다.
이러한 별자리의 움직임을 통해
기후를 예측하고, 나라의 풍흉을 점치기도 하며
'신의 섭리'인 하늘의 움직임을 경이롭게 설명해 내는 데 성공한다.
이 이야기는 기원후 150년경
최초로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예측하며
천체의 놀랍고도 경이로운 움직임을 담은 학문 〈Almagest〉를 편찬해 낸 인물인
프톨레마이오스의 패러다임이
시대를 장악하고 있었던 때의 이야기입니다.
하늘의 움직임을 누구보다 정확하게 예측하려고 시도했던 그는
총 1권부터 13권까지의 방대한 양의 복잡한 내용으로
천체의 움직임을 상세히 기록하며 설명해 놓았죠.
그의 이론은 모든 세상이 신의 피조물인
지구를 중심으로 움직인다는 성서에서 그 근거를 얻을 수 있는 주장을 펼쳤고
당시는 크리스트교가 서양 전반에 걸쳐
가장 압도적인 영향력을 미치고 있었던 시대였기 때문에
〈Almagest〉라는 단어의 뜻에서 알 수 있듯 (가장 완벽한 것)
그 누구도 이런 절대적 권위에 대해 반박하지 못하고
무려 약 1500년 동안 불변의 진리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오늘날 '천동설'이라 불리는 이 이론은
대부분의 천문학적 현상을 설명할 수 있었으나
설명할 수 없었던 3가지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었는데
-먼저 금성의 상 변화를 설명해 낼 수 없다는 점
-다음으로 행성들의 궤도 운동의 속도가 다른 이유를 설명해 낼 수 없다는 점
-마지막으로 13권의 분량으로 너무나 복잡하고 난해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이러한 문제점들을 깔끔하게 해결할 뿐만 아니라
기존에 설명했던 체계보다 훨씬 쉽고 직관적인 방법으로 천체의 움직임을 설명할 수 있는
새로운 설명 체계가 등장하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갈릴레오 갈릴레이의 '지동설'로서
하늘이 움직이는 것이 아닌 실제로는 땅이 움직이고 있고
천체의 움직임은 땅의 움직임을 통해 보이는 상대적인 움직임이다.
라는 주장을 펼치게 되죠.
이 주장이 처음 제시되었을 때 많은 사람들은
갈릴레이의 과학자로서의 명성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설명 체계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으며
결국 갈릴레이는 이단 취급을 받게 되며 법정에 서게 됩니다.
그러나 이러한 갈릴레이의 지동설을
앞선 천동설보다 합리적이고 논리적이라고 생각하게 된
새로운 세대의 과학자 집단의 무리는 자연적으로 증가하게 되었고
기존의 패러다임인 천동설의 사고관을 가진 과학자들은
세월의 흐름에 따라 자연스레 사라지게 되면서
시대는 낡은 패러다임을 버리고 새로운 패러다임인
지동설을 받아들이게 됩니다.
여러분,
저는 지금 천동설과 지동설을 이야기하려고
이 이야기를 꺼낸 것이 아닙니다.
무려 1,500년 동안 모든 사람들에게 의심의 여지 없이
받아들여졌던 설명 체계가
알고 보니 거짓이었다는 사실을 이야기하고 있는 겁니다.
그렇다면 역으로 지금 현재
의심의 여지 없이 믿고 있는 설명 체계 또한
알고 보면 거짓일 수도 있다는 이야기가 아닐까요?
과학사에서 이러한 일은 종종 일어납니다.
질량을 가진 물체는 서로를 끌어당긴다는
만유인력의 법칙에서 알 수 있는
우리가 지금 이 지구에 서 있을 수 있게 만들어주는 힘인 중력이
사실은 3차원 공간과 1차원 시간의
독립적인 얽힘에 의해 만들어지는
시공간의 왜곡에 의한 현상이었다는 사실
절대적인 줄로만 알았던 시간을 의심함으로서 밝혀지게 된
갈릴레이의 상대성 이론의 패러다임을 완벽하게 박살내 버린
아인슈타인의 특수 상대성 이론
이쯤 되면 슬슬 드는 합리적인 의심
'지금 이 순간 우리가 아무런 의심 없이 진라라고 믿고 있는 과학적 사실들이
과연 정말 그렇다고 할 수 있는 것들 뿐일까?
그렇다면 지금까지 밝혀진 과학 이론이
사실은 잘못된 것일 수도 있다는 뜻이 아닐까?'
이러한 과학사를 분석하고 연구한
미국의 과학사 연구학자인 토머스 쿤은
그의 저서인 〈과학혁명의 구조〉에서
과학이 어떠한 방법으로 진보하는지를 설명합니다.
쿤에 따르면 과학이란 그 시대를 이루고 있는 과학자 구성원들 사이에서
자연 현상을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게 조직된 하나의 '패러다임'
쉽게 말해서 하나의 '유행'과 같은 것이며
이러한 '패러다임'은
세상을 설명하는 데 사용되는 도구로서 사용될 뿐
현재 패러다임으로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이 등장하게 될 경우
언제든지 과학혁명을 통해 낡은 패러다임이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교체될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동안 사람들에게 의심의 여지 없이 절대적인
진리로만 받아들여졌던 과학이
과학사의 흐름을 통해 순식간에 대체되는
이러한 과학혁명을 통해
그 진리로서의 속성을 잃게 됨과 동시에
언제든지 예전보다 더 합리적인 방법이 등장할 경우
기존의 틀이 교체될 수도 있다는 '가변성'을 가지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께서 지금 알고 계신 과학이
학교에서 배우고, 대학에서 배우고, 삶을 통해 접하고 있는
바로 그 과학이
정말로 세상을 절대적 진리라는 기준틀에서
설명하는 것이 아닐 수도 있지 않을까? 라는 이러한 생각은
어떻게 보면 과학이란 학문을 공부하는 것에 대해서
허무함과 박탈감을 느끼게 할 수도 있겠지만
그러나 반대로 생각해 보면
현재 우리가 배우고 있는 이러한 과학적 사실들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대에서
가장 정확하고 가장 합리적인 방법으로
이 세상을 설명하는 하나의 '설명 체계'이기 때문에
그렇게 허탈에 하실 필요도 우울해하실 필요도 없습니다.
다만 언제나 우리가 배우고 있는 이러한 과학적 사실들에
'정말 그럴까?'라는 (합리적인) 의문을 품어야 한다는 것이
과학혁명을 주장했던 쿤이 우리에게 전달하고자 했던 메시지가 아니었을까요?
과학사에서 역사적으로 기록된 천재적인 발견들에는
언제나 기존의 틀을 깨고 나오는
창의적인 발상으로부터 시작되었으니까요.
토머스 쿤은 우리에게 그걸 말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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