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즉문즉설(2009)

즉문즉설_법륜스님(제54회) 불안정한 성장과정

Buddhastudy 2011. 1. 7.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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꺼내기 어려우신 얘기를 이렇게 대중들 있는 앞에서 얘기를 꺼냈다. 이렇게 꺼낸 것 자체가 상당히 치유가 됐다는 이야기 입니다. 깨달음 장도 다녀오시고, 그 동안 기도도 하셨기 때문에 이런 어려운 얘기를 이렇게 꺼낼 수가 있었지.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이런 얘기를 꺼내 놓을 수도 없겠죠. 설령 꺼내 놓는다 하더라도 스님하고 일대일로 아무도 못 듣게 꺼내 놓으려고 하겠죠. 그런데 이렇게 대중 앞에서도 꺼내 놓을 수 있다는 것은 이것이 나에게 더 이상 큰 장애는 아니다. 이거 자체가 이미 극복이 됐다. 어느 정도. 이런 것을 반증해요.

 

그러니까 첫 번째는 오늘 이렇게 질문 하신 것 자체가 나아가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서는 낙관적으로 희망적으로 생각하시고요. 그러나 이제 과거의 상처가 남아있기 때문에. 오늘 이렇게 질문 하셨다고 해서 이것이 싹 사라지지는 않습니다. 꾸준히 치유를 해 나가셔야 되는데. 육체에도 상처를 입게 되면 상흔이 남지 않습니까? 그것처럼 마음에도 이 상처를 입게 되면 그 상흔이 남습니다.

 

내가 어릴 때 누군가가 싸우는, 특히 엄마 아빠가 피를 흘리면서 싸우는 그런 것은 어린아이에게 굉장히 큰 상처입니다. 남이 싸우고, 피를 흘리는 걸 봐도 어릴 때 큰 충격인데. 그것이 제 엄마 아빠가 그렇게 싸운 거라면 늘 지워 지지 않고 영상에 남는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누가 싸우는걸 보면 그때 놀란 그 감정이 마치 상처를 건드리면 아프듯이 깜짝 놀라게 된다 이 말이오. 그것이 늘 지금 이렇게 나타나는 거요. 그러니까 민감하게 반응하죠.

 

딴 사람은 별거 아닌데. 나는 영화를 보다가도, 그런 꿈을 꾸다가도, 길가다가 그런 싸움을 보다가도, 깜짝 깜짝 놀라게 되고 민감하게 반응하게 된다. 그래서 여기서 내가 상처가 있다 이것을 자각해야 되요. 그 다음에 두 번째, 어릴 때 성추행을 당했다. 그것도 마찬가지에요. 그것도 큰 그때 상처를 입었단 말이오. 지금도 그 상처가 항상 남아서 작동을 하는 거요. 심리적으로. 특히 내가 성추행을 당한 그런 어떤 행위가 지금 남편이 부부관계에서 했다.

 

그러면 그때에 성추행을 당하든 것처럼 격렬하게 반응을 하는 거요. 그럼 남편이 볼 때는 이 여자가 갑자기 미쳤죠. 자다가 갑자기 발작을 하는 거 같단 말이오. 이렇게 되니까 부부관계도 늘 그게 장애 요소로 등장하게 된다. 부부관계가 자연스럽지가 못하고, 늘 내가 긴장하게 되고, 민감하게 반응하게 되고. 그러니까 남편도 그런 아내가 편안하지가 못하다는 거요. 결혼생활에도 큰 장애가 되죠. 그러면 이 심리적인 상태에서 이미 지나가 버린 일이잖아요. 지금 누가 나를 성추행 하는 것도 아니고, 지금 엄마 아빠가 싸우는 것도 아니란 말이오. 마음의 영상. 흔적이 남아서 이게 현재의 내 삶을 자꾸 장애를 일으키는 원인이 되고 있다.

 

그래서 수행이라는것은 과거의 상처를 치유하는 겁니다. 이미 지나가 버린 일이지 않습니까? 그죠? 그러니까 늘 그런 민감한 반응이 일어날 때 어~ 내 까르마, 내 업식이라 그래요. 마음에 입은 상처, 이미 습관적으로 반응하는 것. 무의식에 쌓여 있는 것. 이게 업식이에요. ~ 내 업식이 작동하는거구나. 작용하는거구나. 이렇게 내가 늘 알아차리고, 거기에 휘둘리면 안 된다.

 

민감하게 반응하는 거는 내가 민감하게 반응하고 싶어서 반응하는 게 아니라, 나도 모르게 반응을 하지마는. 금방 그것을 알아차리고, ~ 내가 또 내 업식에 휘둘리구나. 이렇게 알아차리고 내려놓고, 알아차리고 내려놓고. 이런 것을 일단 반복할 수 밖에 없다. 명상 수련을 할 때는 그런 무의식의 세계가 표면의식으로 올라와서 수련 중에 막 그때 경험이 재현이 됩니다. 그러면서 힘들어하다가 넘어가게 되면 좀 많이 청소가 되는 거고.

 

또 내가 어른이 돼서 이렇게 보니까는 부부라는 거는 싸울 수도 있는 일이지. 감정이 격해지면 몸 부딪침까지 일어 날 수 있는 일 아닙니까? 그죠? 그러니까 그때 엄마 아빠는 내 어릴 때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지만은 내가 커서 보니까 그게 좋은 건 아니지만은 그럴 수도 있겠다. ? 어린아이가 보면 엄마아빠는 큰 뭐든지 다 아는 사람 같지만은. 내가 어른이 되 보니까 엄마아빠라는 게 별거 아니지? 애랑 똑 같은 감정을 갖고 티격태격하는 수준 아니에요 그죠?

 

그러니까 그 엄마 아빠에 대한 이해. 절을 하면서, 엄마 아빠 제가 참 엄마 아빠를 이해를 못했습니다. 내가 이제 엄마아빠 나이가 되 보니까 그럴 수도 있겠네. 이렇게 이해가 됩니다. 두 분이 참 어렵게 사시면서 자기 감정을 못 다스려서 그런 일이 벌어진 건데. 저는 그게 너무너무 충격을 많이 받았습니다. 죄송합니다. 이렇게 엄마아빠에 참회를 하게 되면 내 속에 있는 상처가 치유가 된다는 것.

 

성추행 같은 것도 그게 상처가 되서 남아있으니까 그게 고지. 사실은 누군가가 내 가슴을 만지든 뭐 어떻게 했다 해서 지금 무슨 상처가 있는 거는 아니잖아 그죠? 마음의 상처가 남아 있는 거란 말이오. 그러니까 아무 일도 없었다. 아무 일도 아니다. 그게 무슨 큰 문제다가 아니라. 아무 일도 아니다. 아무 일도 없었다. 내가 놀랐구나. 내가 자다가 나쁜 꿈을 꾸고 놀라서 깨보면 어때요? 아무 일도 없었잖습니까? 그죠?

 

그러니까 한 밤에 나쁜 꿈을 꾼 것과 같다. 실제로는 아무 일도 없었다. 생각 속에서만 그게 큰 충격이었지. 실제는 아무 일도 아니다. 내 몸이라는 것은 더러 울래야 더러울 수가 없고. 깨끗 할래야 깨끗해 질 수가 없는 몸입니다. 이 몸은 공하죠. 더할래야 덜 할 수가 없고, 덜래야 덜 수가 없는 몸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내가 아무런 피해를 입지 않았다. 다만 놀랐을 뿐이다. 실제로는 아무런 이상도 없다. 이것을 내가 깊이 깨쳐야 되. 그렇게 해서 과거의 상처를 먼저 치유를 하셔야 됩니다. 그러면 현재 덜 민감하게 반응 하죠.

 

첫째는 이런 이치를 먼저 확연히 알고. 그래도 무의식의 세계에서 나도 모르게 상황이 벌어지면 이게 무의식 세계에서 작동하기 때문에 그 때 내 남은 상처다, 까르마다. 금방 알아차리고 그 감정에 빠지지 말 것. 그리고 근원적으로 제법이 공한 줄을, 이 몸이 공한 줄을 알아서 본래 상처 입을 바가 없다는 것을 늘 자각을 해야 됩니다. 본래 상처 입을 바가 없다는 거. 이 몸이 추행을 당한 적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된다 이 말이야.

 

누군가가 나를 추행 할래야 할 수가 없습니다. 나는 지금 추행 당했다 이 생각을 하고 있으니까 추행을 당한 거지. 나는 추행을 당한 적이 없다. 추행을 할래야 이 몸은 할 수가 없는 거요. 그런 공한 이치를 늘 세기는 게 필요하다. 전자는 엄마아빠한테 참회기도를 하고, 엄마아빠에 대한 고마움, 나를 낳고 키워주시고. 그런 고마움을 자꾸 생각하면 그런 영상이 약해지고 나중에 지워지고, 후자는 이 몸이 본래 성추행 당한 적이 없다는 거. 이 몸은 더럽혀 질래야 더럽혀 질 수가 없다는 거. 그것을 늘 다시 새기고, 다시 새기고 하면 그런 마음의 상처로부터 벗어 날 수가 있습니다. 그렇게 꾸준히 정진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