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즉문즉설(2009)

즉문즉설_법륜스님(제62회) 두 며느리를 화해시키려면

Buddhastudy 2011. 1. 19.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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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 좋은 방법. 내버려 두세요. 저거들끼리 싸우니까 놔 두는 게 제일 좋습니다. 왜 놔두라 그러냐? 저거들끼리 싸우는걸 가만히 놔두면, 내가 거기에 관여를 안 하면 큰며느리는 큰며느리 대로 나하고는 관계가 괜찮죠? 작은 며느리는 작은 며느리 대로 나하고는 관계가 괜찮죠? 그러니까 내버려 두면 나도 괜찮고. 큰며느리하고 관계도 괜찮고, 작은 며느리하고 관계도 괜찮아요.

 

그런데 이 둘이 싸우는 거를 내가 보기 싫어서 큰 며느리 보고는 큰 게 참으라 그러고. 작은 며느리 보고는 작은 게 참으라고 관여를 하면, 큰 며느리 섭섭하죠? 나하고 관계가 나빠지죠. 또 작은며느리도 나하고 관계가 나빠지죠. 그러면 둘만 관계가 나쁜 게 이익이에요? 셋이 다 나쁜 게 이익이에요? 그러니까 내버려 두라는 이유는. 무슨 말인지 이해하시겠어요? 나한테 이익 되고 손해 안되니까 상관 마라. 이런 뜻이 아니에요. 그런 뜻으로 말하는 게 아니에요.

 

, 여기의 핵심은 두 며느리가 싸우는 것이 좋다 나쁘다가 아니라. 그 두 며느리가 싸우는 것은 수행적 관점에서 내 입장에서 볼 때는 경계입니다. 아시겠어요? 경계는 좋은 것도 없고 나쁜 것도 없다고 그랬죠? 제법이 공하기 때문에. 그러니까 그 두 며느리가 싸우는 것을 편안하게 볼 수 있는 마음. 이게 수행이에요. 그런데 이분은 지금 둘이 싸우는 것을 보면서 마음이 불편해요? 편안해요? 불편하지. 불편하니까 둘을 미워한다 이거요.

 

그러니까 큰 며느리 보고 얘기 할때도 작은 며느리 보고 얘기 할 때는 나무란다 이거요. 그러니까 나무라는데 좋아할 사람이 누가 있어요? 그러니까 다시 또 싸우게 되요. 나하고도. 그러니까 나까지도 그 경계에 빨려 들어가서 나도 괴로워 지고. 나하고 그 사람 관계도 나빠지고, 둘의 문제도 아무 도움이 안되고. 오히려 큰며느리는 저 아우 때문에 어머니하고 나하고도 관계가 나빠졌다. 이게 아우책임이다. 이렇게 생각하니까 아우가 더 미워질 거고.

 

또 아우는 또 형님 때문에. 시어머니하고 자기는 원래는 관계가 괜찮았는데 형님 때문에 나빠졌다. 이렇게 생각하니까 더 미워하게 되요. 그러니까 불에다 기름을 붓는 격이다 이 말이오. 그래서 지금 해야 할 기도는 둘이 싸우는 거를 앉아서 편안하게 구경할 수 있는 마음이 있어야 된다. 거기에 동요가 안 되야 된다. ~ 젊은 애들이 어리석어서 싸우구나. 아이고, 나도 옛날에 저랬지. 그게 이해가 되야 되.

 

갈등하는 이유. 큰 거는 작은 게 먼저 사과해라. 작은 건 또 큰 게 또 어떻게 해라. 그게 이해가 되죠? 그죠? 이해가 되야 되. 그래서 가능하면 싸울 때는 자리를 피하는 게 좋습니다. ? 보면 끌려드니까. 어디 이것들이 내 보는 데서 싸우나. 이러지 말고. 그냥 핫바지 방귀뀌듯이 설 나가버려. 밖으로. 아무 소리도 하지 말고. 밖으로 나가 한참 있다 들어오는 거요? 그러고 거기에 대해서 언급을 하지마. 이제 싸움 끝났니? 이리 묻지도 마라 이 말이오. 모른 척 하는 게 제일 좋다. 그래 설 나갔다가 들어오고.

 

이렇게 내가 거기에 아무렇지도 않아야 된다. 이게 공부다. 이 기도를 먼저 하셔야 되. 둘이 싸움을 말리는 기도를 먼저 하지 말고. 이게 쉬워요 안 쉬워요? 안 쉽지. 말이 쉽지. 절대 안 쉬워요. 특히 어른 앞에서 젊은 사람이 싸우면 내 자존심 상하잖아 그죠? 이게 나를 얼마나 무시하나. 이것들이. 감히 내 앞에서. 이런 생각이 든단 말이오. 이때 내 자존심을 내려 놔야 되요. 싸우는 사람들 눈에는 어른 애가 보입니까? 안보입니까? 안보여. 눈에 뵈는 게 없는 사람들이오.

 

그러기 때문에 이 때는 어른으로 내가 안보이기 때문에 없는 게 제일 나아요. 그래서 슥~ 나갔다가. 그런데 그 둘이 싸우는 거에 대해서 수행을 하면 아무렇지도 않아지는 단계에 이르러야 된다. 지금은 내 공부가 중심이지 이 둘을 고치려고 하지 마라. 그렇게 내 공부를 자꾸 해서 100일을 하든, 200일을 하든 수행을 해서. 둘이 싸우는 것도 애들 싸우듯이 편안하게 볼 수 있다. 어른 앞에서라도 내 자존심도 거론 안되고 이렇게 되면. 그 다음에 얘기 해 줄 수 있어요. 나는 괜찮은데 너희 싸워도 상관없는데. 너희끼리 싸우니까 너희 마음이 불편하지 않느냐? 이 말이야. 싸우고 나면 어떻게? 마음이 편해? 한 번 물어 보는 거요.

 

이러면서 하면 이게 뭐랄까? 두 사람의 싸움을 말릴 수 있는 뭐가 생긴다? 능력이 내가 생겨요. 거기에 대해서 반론을 제기해도 내가 아무렇지도 않게 되거든요. 어머니는 동생이 저런데 쳐다보고만 내버려 둬요? 뭐 이렇게 덤빌 거 아니요 그죠? 그걸 나무라야지 말이에요. 이러고 덤비면. 이게 어디 까부나. 이렇게 하면 안 된단 말이오. 그럴 때 웃으면서 말릴 수 있어야 실제로도 말려진다. 두 가지 길입니다.

 

내가 수행을 해서 첫째, 싸워도 아무렇지도 않는 경지로 간다. 그게 되기 전까지는 절대 말하지 마라. 그러면 나는 자기들이 어떻게 하든 나는 편안하죠? 나만 편한 게 아니라 그것이 그 사람들에게도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 나까지 그 싸움에 안 말려 든다. 두 번째, 이렇게 편안하게 된 뒤에는 내가 불편해서가 아니라. 그 사람들을 위해서 약간씩 조언을 해 준다. 그러면 효과도 있다. 효과도 있다. 이래저래 다 이익이다 이 말이오. 그렇게 되도록 정진을 해야 되요.

 

그래서 수행이 뭔지는 이해하시겠어요? 남을 논하는게 수행이 아니에요. 그 둘이 안 싸우도록 해 주는 게 공부가 아니고. 여러분들이 기도할 때 부처님 저 둘이 안 싸우게 좀 해주세요. 이렇게 기도하지 않습니까? 그러지 말고, 부처님 저 둘이 싸우더라도 내가 아무렇지도 않게 볼 수 있는 힘을 나에게 주십시오. 달라 그래도 이렇게 해야 되. 그래서 만약에 염불을 한다면 둘이 싸우는걸 봐도 어때요? 나무아미타불. 나무관세음보살.

 

중국영화 보면 그런 거 못 보셨어요? 절에 불이 났다. 누가 죽었다. 이러니까 조실 스님이 뭐고 합디까? 아미타불. 이러잖아. 뭐 무슨 일이? 이리 안 하잖습니까? 누가 쳐들어 왔다 그래도 아미타불. 우리 지금 그리 안 되요. 그렇게 되도록 염불을 그렇게 해야 된다. 그게 염불수행의 공부란 말이오. 그렇게 하면 여기 그런 공덕으로 이 기도를 죽 하시면 내가 둘이를 어떻게 말리려 안 해도 저절로 집안이 편안해 진다. 어머니가 편안하게 웃으면서 구경하고 있으면 두 사람이 싸우다가 꼬리를 내려요. 그런데 어머니까지 거기 끼어들어가지고 이거 나무랐다가 저거 나무랐다가 이러면 싸움이 점점점점 커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