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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분상식 세계사] 바레인 10분 완벽정리

Buddhastudy 2022. 10. 6. 19:09

 

 

 

1. 소개

바레인 왕국(Kingdom of Bahrain)은 아라비아 반도와 카타르 사이의

페르시아만에 위치한 도서국가로

수도는 마나마(Manama)입니다.

 

바레인의 국기는 과거에는 빨강으로만 된 국기였는데

1820년 하얀색 좁은 띠가 추가되었고

그 후에 톱니모양으로 수정되면서 2002년 현재 국기에 이르렀습니다.

빨간색은 피와 자유를

하얀색은 바레인의 순결과 평화를 상징합니다.

하얀 띠의 5개의 톱니 개수는

이슬람교의 5개 기둥인 신앙고백, 기도, 자선, 단식, 메카 순례를 나타냅니다.

 

서쪽으로 사우디아라비아, 남쪽으로는 카타르와 접하고 있는 바레인은

바레인섬과 주위의 크고 작은 33개의 섬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총 국토면적은 약 760로 세계 187위이며

중동지역에서 가장 작고, 유일한 섬나라입니다.

 

바레인은 2020년 기준으로 약 170만명의 인구가 살고 있으며

인구수로 세계 151위이며

이는 충청북도의 인구보다 좀 더 많은 수준입니다.

 

바레인의 1년 총 GDP2019년 기준 약 382억 달러.

이는 세계 96위로

비슷한 GDP 수준의 국가로는 카메룬과 튀니지가 있습니다.

 

바레인의 종족 구성은 바레인인 46%, 기타 아랍인이 45%이며

기타아시아인, 아프리카인, 유럽인 등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공용어로는 아랍어와 영어를 함께 사용하고 있으며

이슬람교가 국교로서

총 인구의 과반수 이상이 이슬람교를 믿고 있고

수니파가 24%, 시아파가 46%를 차지합니다.

 

 

 

2. 역사

바레인은 대륙과 대양을 연결하는 중계지인 페르시아만에 위치하고 있어

고대시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유력한 중계무역지로 번성했습니다.

 

특히 고대 페르시아만 지역에 존재했던 딜문의 중심지였다가

후에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건국한 바빌로니아의 통치를 받았습니다.

 

3세기에는 사산조 페르시아에 정복되었다가

7세기 이후에는 무슬림 아랍의 통치를 받기도 했습니다.

 

1521, 인도양으로 향하던 포르투갈이 이 지역을 발견하고 영향력을 끼쳤으나

얼마 가지 않아 페르시아에 주도권을 빼앗겼습니다.

 

1783년 아라비아반도에서 이주한 할리파(Al-Khalifa)가문이

페르시아 세력을 축출하고 왕국의 기반을 마련했습니다.

칼리파 가문은 바레인과 카타르를 공동 통치하였는데

특히 1869년부터 63년간 이사 이븐 알리 알 칼리파가

하킴(Hakim)으로 집권했던 시기, 큰 성장을 이루었습니다.

하지만 칼리파 가문은 점점 거세지는 페르시아의 압력에 맞서기 위해

19세기에는 영국과 손을 잡았습니다.

 

영국은 바레인에 대한 광범위한 지배권을 획득하였고

결국 바레인은 1892년 협정을 통해 영국의 보호령이 되었습니다.

 

1932년 석유의 생산이 시작되면서 본격적인 근대화가 시작되었으며

2차 대전을 거치면서 바레인에도 독립을 향한 분위기가 생겨났습니다.

1968년 영국 주둔군의 철수가 결정되고

1970년 개최된 UN안전보장이사회에서 바레인의 독립에 대한 결의안이 채택되었습니다.

 

이듬해인 1971년 바레인은

아미르(Amir)가 통치하는 바레인국이라는 이름의 토후국으로 독립했습니다.

 

1970~80년대, 석유 가격이 치솟아 오르면서 독립을 맞은 바레인도 급성장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1990년대, 외부의 위협과 국내에서 일어난 봉기로 인해 어려운 시기를 보내기도 하였고

38년 동안 바레인을 통치했던

이븐 살만 알-칼리파(Isa Bin Salman Al Khalifa) 아미르가 1999년 사망하였습니다.

그 후로 바레인 방위군 총사령관이었던 왕세자 하마드 (Hamad Bin Isa Al-Khalifa)가 국왕으로 즉위해

강력한 통치권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국왕으로 취임한 하마드 빈 이사 알 칼리파는

2002년 헌법을 제정해 입헌군주국이 되었고

국호도 바레인 왕국으로 바꾸었습니다.

 

 

3. 정치 & 경제

2002년에 제정된 헌법에 따라 바레인은 입헌군주국이긴 하나

헌법에 규정된 군주의 권한이 매우 크기 때문에

실질적으로는 전제군주국과 다르지 않습니다.

 

바레인의 의회는 양원제로 각각 40명의 의원과 수상이 있습니다.

하지만 수상과 각부의 장관을 비롯하여

상원 40명의 의원은 모두 국왕이 임명하고

하원 40명의 의원만 국민이 직접선거를 통해 선출합니다.

 

특히 바레인은 국왕과 왕실에 대한 비판을 금지하며

언론, 미디어, 인터넷에 대한 엄격한 검열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과거 페르시아 지배의 영향으로 주민의 70%가 시아파인데 비해

왕실과 사회지도층 대부분은 수니파이기 때문에

다른 아랍군주제 국가들에 비해 정치가 불안정한 편입니다.

 

공산주의와 이라크 등 외부로부터의 위협에 대처하기 위해

친서방노선을 견지해오고 있으며

특히 미국과의 긴밀한 통상 및 군사적인 협력관계를 유지하고 있어

중동지역에서는 최대 규모의 미국 해군기지가 바레인에 있습니다.

 

바레인의 경제는 1인당 GDP2019년 기준 25천달러

세계 3~40위권 내외로 매우 높은 수준입니다.

 

중동에서도 매우 작은 섬나라이며 인구도 적은 편이지만

석유와 천연가스와 같은 에너지자원이 풍부한 편입니다.

 

바레인은 페르시아만에서 최초로 석유를 발견한 국가이며

특히 20184, 800억 배럴 가량이 묻혀있는

역사상 최대유전이 발견되면서 한 번에 자원부국으로 떠올랐습니다.

 

뿐만 아니라 바레인은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알루미늄 제련소를 보유하고 있어

연간 25만톤이 넘는 알루미늄을 생산하고 있습니다.

 

바레인은 개방적인 사회분위기로 관광업이 발달하여

호텔 및 관광지역에서는 종교적으로 금하고 있는

술과 돼지고기 등을 자유롭게 판매하거나 먹을 수 있습니다.

 

또한 바레인은 정부의 규제완화와 시장개방 정책에 힘입어

중동지역의 금융 허브로 발전하였습니다.

 

수도 마나마에는

BFH(Bahrain Financial Harbour)와 바레인 세계무역센터를 중심으로

400여개의 외국계 금융회사들이 존재하며

금융관련사업이 국내 총생산의 25%가량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4. 자연환경 & 문화

 

바레인의 국명은 아랍어로 두 개의 바다라는 의미입니다.

바레인은 중동지역에서는 유일한 도서국가로

사우디아라비아의 동쪽 페르시아만에 있는 군도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서쪽으로는 사우디아라비아, 남쪽으로는 카타르와 접하는데

특히 사우디아라비아와는 1986년 완성된

킹 파드 코즈웨이(King Fahd Causeway) 다리로 연결되어 있어

차량으로 30분밖에 소요되지 않을 정도로 가깝습니다.

 

가장 큰 섬이자, 수도인 마나마가 위치한 바레인섬을 중심으로

양쪽으로 무하라크섬과 움나산섬이 있고

그 외 크고 작은 30여개의 섬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바레인에서 가장 큰 도시이자 수도인 오아시스 타운 마나마가 위치한 바레인섬은

남북으로 약 50km, 너비는 15km의 크기입니다.

 

하지만 전체 국토 중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땅은 약 5% 남짓이라

농업이 거의 발전하지 못했습니다.

전체적으로 고온다습한 기후여서

여름에는 평균기온이 45도까지 오를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11월부터 1월 사이의 겨울에는

아침과 저녁의 일교차가 25도 이상 날 정도로 기후변화가 심하며

전체 강우량의 90% 이상이 겨울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바레인은 다른 아랍국가들에 비하면 민주화가 많이 진행된 나라이며

상대적으로 법률이 엄격하지 않은 편입니다.

덕분에 주말이나 휴일에는

영화관이나 돼지고기, 주류를 찾아 바레인을 찾는 사우디아라비아 관광객들로 붐빈다고 합니다.

 

그뿐 아니라, 여성의 정치, 경제적 참여도 상당히 자유로운 편인데다

히잡이나 차도르와 같은 전통복장 역시 강요하지 않는 분위기여서

서구식 복장을 하고 다니는 여성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또한 미국 헐리우드의 영화가 가장 발 빠르게 개봉하는 곳 역시 바레인이라고 합니다.

흔히 천연염색제로 알고 있는 헤나는 바레인의 전통예술 중 하나로 시작했습니다.

바레인의 민속 문화에서는 여러 의식에서

여성의 손과 발을 화려하게 치장하는 방법으로 헤나를 널리 사용해왔습니다.

 

헤나의 밤은 중요한 결혼전야 의식으로

신부의 부모들이 헤나 디자이너를 불러

신부의 손과 발에 복잡한 문양을 그려 꾸몄다고 합니다.

 

바레인에서는 축구가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입니다.

국제무대에서 화려한 성적을 거둔 적은 없으나, 종종 이변을 낳는 다크호스팀입니다.

2019년 걸프컵 대회에서 최초로 사우디아라비아를 1:0으로 제압하고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습니다.

 

 

 

 

5. 인물

바레인 출신의 유명한 인물로는

영화배우인 맘타 모한다스(Mamta Mohandas)가 있습니다.

그녀는 주로 인도영화에 출연하며, OST도 직접 부르는 실력 있는 가수이기도 합니다.

 

1984, 바레인에서 인도 케랄라 출신 부모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2002년까지 바레인에 위치한 인도인외국인 학교에서 학업을 마친 그녀는

인도의 마운트 카멜 대학(Mount Camel College)으로 유학을 떠났습니다.

 

대학생 시절, 아름다운 외모와 뛰어난 악기연주 실력으로

기획사에 눈에 띄어 광고 모델로 활동을 시작하게 된 모한다스는

2005년 하리하란 감독의 로맨스 영화 메컴 Mayookham’으로 데뷔하였습니다.

데뷔 영화는 흥행에서는 크게 성공을 거두지 못했으나

그녀는 그 후로 계속해서 꾸준하게 영화에 출연하며

배우로서의 경력을 쌓아가기 시작했습니다.

 

2007년 그녀는 영화 ‘Big B’를 통해 영화계에서도 점차 실력을 인정을 받게 되었고

같은 해 인도영화계에서 가장 큰 성공을 거둔

라자몰리(SS Rajamouli) 감독의 영화 ‘Yamadonga’에서 조연으로 출연하기도 했습니다.

 

2010년 그녀는 인생영화를 만나게 되는데요.

Sathyan Anthikkad 감독과 함께 작업한 영화 ‘Kadha Thudarunnu’를 통해

흥행과 평단의 높은 평가를 받으며

필름페어에서 처음으로 최우수연기상을 수상하게 됩니다.

 

2005년 데뷔 후 최근까지 약 50여 편의 영화에 출연하는 등

바쁜 와중에도 자신이 출연한 영화의 OST를 직접 부르는 등

영화에 대한 열정과 성의를 보였습니다.

 

특히 모한다스는 남부인도의 전통악기인 카르나틱(Carnatic)

힌두교음악 연주에 능통했던 덕에

2006년 최고의 플레이백 가수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