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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분상식 세계사]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10분 완벽정리

Buddhastudy 2022. 11. 16. 19:36

 

 

1. 소개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Bosna i Hercegovina)

북부의 보스니아와 남부의 헤르체고비나가 합쳐진

남동부 유럽 발칸반도에 있는 삼각형 모양의 국가로

수도는 사라예보(Sarajevo)입니다.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국기는 1992년부터는

하얀색 바탕에 가운데 6개의 노란색 백합문양이 새겨진

방패가 그려진 국기를 사용해오다가

199824일 현재의 국기로 바뀌었습니다.

파란색 바탕 가운데는 노란색 삼각형이 그려져 있으며

노란색 삼각형 빗변에는 7개의 하얀색 별과

위아래로 잘려진 1개의 하얀색 별이 그려져 있습니다.

파랑과 노랑, 하양의 3색은 중립과 평화를 상징하며

삼각형은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국토의 모양을

삼각형의 세 모서리는 보스니아인, 크로아티아인, 세르비아인을 뜻합니다.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는

북쪽과 서쪽으로는 크로아티아

동쪽으로는 세르비아

동남쪽으로는 몬테네그로와 접하고 있고

해안선이 매우 짧아 거의 내륙국에 가깝습니다.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국토면적은 약 51,000

세계 126위이며,

대한민국 면적의 1/2에 해당합니다.

 

2020년 기준으로 약 328만 명의 인구가 살고 있으며

인구수로 세계 134위이며

경상남도 인구수와 비슷한 수준입니다.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1년 총 GDP

2019년 기준 201억달러로 세계 113위이며

1인당 GDP5700달러로 세계 94위입니다.

 

보스니아의 공용어는 보스니아어, 세르비아어, 크로아티아어입니다.

또한 독특하게도 유럽에서 유일하게 아랍문자를 사용하기도 합니다.

 

주민은 보스니아인이 약 50%, 크로아티아인이 15%,

세르비아인이 35% 정도로 구성되어 있으며

보스니아인은 이슬람교, 크로아티아인들은 로마 가톨릭,

세르비아인은 정교회를 믿습니다.

 

 

2. 역사

고대 이 지역에는 일리리아(illyria)인이 정착해 살았으며

기원전 1세기 무렵부터 로마제국의 지배를 받았습니다.

4세기 후반 로마제국이 동서로 분리되면서 서로마 제국에 편입되었으나

서로마의 힘이 약해지는 6세기 후반부터는 슬라브족이 대거 이주하여 정착했습니다.

 

이후로도 줄곧 슬라브계의 크로아티아 왕국과 세르비아의 영향을 받아오다가

1377년 보스니아 왕국이 건국되었고

1448년에는 헤르체고비나가 독립했습니다.

 

하지만 1463년 오스만제국이 보스니아를 정복했고

이슬람으로의 개종을 강요했습니다.

19세기 중반까지 지속된 오스만의 통치를 받으면서

보스니아는 이슬람교로 개종한 보슈냐크인과

가톨릭교를 믿었던 크로아티아계 보스니아인

그리고 정교회 신자가 많은 세르비아계 보스니아인으로 갈라지게 됩니다.

 

1878년 오스만제국이 러시아-투르크 전쟁에 패하자

보스니아 지역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에 편입됩니다.

 

1908년 오스트리아가 보스니아를 합병하자

세르비아는 격렬하게 반발했고

()오스트리아 비밀결사를 조직했습니다.

 

이렇게 조직된 비밀결사는 19146월 보스니아의 수도 사라예보에서

오스트리아의 황태자인 프란츠 페르디난드를 암살했고

1차 세계대전이 터지게 됩니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난 1918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해체되었고

보스니아 지역은 후에 유고슬라비아로 개칭한

세르비아- 로아티아-슬로베니아 연합왕국에 병합됩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요시프 브로즈 티토의 주도로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공화국이 수립된 이후에는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역시 독립공화국으로 편입되었습니다.

 

하지만 1991년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가 유고슬라비아에서 독립했고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에서도 독립 요구가 높아졌습니다.

이듬해인 1992년 국민투표를 실시하여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공화국으로서의 독립을 선언합니다.

 

이슬람교를 중심으로 하는 보스니아인들과

가톨릭교회를 중심으로 하는 크로아티아계 주민들은 환영했으나

인구의 약 30% 가량을 차지하고 있던 세르비아계는 격렬히 반대했습니다.

 

결국 그들은 독자적인 세르비아 공화국을 설립

무장투쟁에 들어갔고

결국 보스니아 내전(1992-1995)이 터지게 됩니다.

 

세 민족 간의 갈등이 수습되지 않고 계속 커지는 상황에서

결국 19936UN 보호군과 나토(NATO)의 무력중재가 개입되었고

1995년 데이턴 협정(Dayton)에 따라 오랜 내전이 종식되었습니다.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공화국은 해체되고

보스니아계 이슬람교 공화국과 세르비아계 스릅스카 공화국으로 구성된

12체제의 연방공화제가 채택되었습니다.

 

 

3. 정치 & 경제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는

보스니아계와 크로아티아계 연방인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연방과

세르비아계 공화국인 스르프스카 공화국으로 구성된

1국가 2체제로 매우 복잡하고 독특한 정치체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행정구역상 구분을 보면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연방과 스릅스카공화국

그리고 양측의 공동 통치구역인 브르치코 행정구가 있습니다.

 

세르비아계, 보스니아계, 크로아티아계에서

각각 대통령 1명과 상원의원 5명을 뽑으며

이들이 대통령위원회와 연방의회의 상원을 구성합니다.

연방의회는 상원과 하원, 양원제로 이루어지며

상원은 15명의 의원이, 하원은 인구비례에 따라 42명의 의원으로 구성됩니다.

 

두 공화국을 총괄하는 연방정부 아래

두 공화국은 각기 다른 정치체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연방은

의원내각제를 채택하고 있으며 총리가 국가행정을 총괄합니다.

하지만 스르프스카 공화국은

대통령중심제를 채택하고 있기 때문에 대통령이 행정수반입니다.

 

세르비아계를 대표하는 공동대통령은 대외적인 명분일 뿐,

스르프스카 공화국을 실질적으로 통치하는 것은

따로 선출한 공화국의 대통령이라 할 수 있습니다.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는 구유고슬라비아 연방공화국 내에서도

마케도니아와 함께 농업 위주의 가장 저개발된 공화국 중 하나였습니다.

 

국토의 40% 가량이 산림지역이고

농업과 목축이 가능한 경지의 비율도 약 40% 정도입니다.

주요 농산물로는 옥수수, , 보리 등이 있으며

목축에서는 소, 돼지, 양을 많이 사육합니다.

 

제조업 분야에서는 시멘트, 알루미늄, 면직물 등을 생산하며

치즈와 포도주, 올리브와 같은 식품 가공업도 발달했습니다.

또한 자동차, 텔레비전의 생산량도 높은 편입니다.

하지만 내전을 겪으면서 농지가 황폐해지고,

80%에 가까운 산업시설이 파괴되면서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경제 상황도 매우 안 좋아졌습니다.

 

고인플레이션과 높은 실업률, 경기침체로 인해

대부분의 국가제정을 외국 원조에 의존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4. 자연환경 & 문화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는

보스니아와 헤르체고비나를 붙여 부르는 국명입니다.

 

보스니아라는 이름은

전통적으로 북부지역을 통칭하는 이름으로

10세기 중반 동로마제국 시절부터 기록이 전해집니다.

 

헤르체고비나라는 이름은

남부지역을 일컫는 이름으로,

이 지역을 봉토로 하사받은 봉건영주의 칭호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아드리아해 바로 동쪽에 위치하지만

아드리아해에 접한 해안선은 20km 남짓에 불과하고

국경선의 대부분이 크로아티아에 둘러싸여있는 내륙국입니다.

 

크로아티아와의 국경지대를 흐르는 사바강 일대의 북부 평야지대와 남부의 네레트바강 유역 평야를 제외하면

평균 해발고도가 1000~1,600m에 이르는 전형적인 산악국입니다.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기후는

서쪽 지역은 지중해성 기후

중부 지역은 온난습윤기후

그리고 동쪽 지역은 서안해양성 기후가 나타납니다.

 

비교적 북쪽에 있는 보스니아는 대체적으로 온화하나

겨울에는 혹독한 추위가 있는 편입니다.

반면 헤르체고비나 지역은 여름철에는 매우 기온이 높고 건조하나,

겨울철에는 온난하고 비가 많이 내립니다.

 

내셔널 지오그래픽은 ‘2020년에 갈 최고의 여행지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모스타르를 꼽았습니다.

모스타르는 수도 사라예보와 함께

보스니아에서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관광도시입니다.

 

16세기에 만들어진 올드 브릿지가 가장 유명한 모스타르는

15세기 터키인들에 의해 건설된 도시인데요

매력적인 중세 건물들과 조약돌이 깔린 도로,

내전의 흔적을 가리기 위해 화려하게 채색된 벽화 등을 볼 수 있습니다.

 

보스니아에서는 축구가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입니다.

2010년 월드컵 예선에서는 벨기에를 2:1로 제치고

터키와도 1:1 무승부를 기록하며 플레이오프에 나가기도 했고

2014년 브라질 월드컵 예선에서도 매우 좋은 성적을 거두며 본선에 진출했습니다.

 

 

5. 인물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를 대표하는 인물 중 한 명은

역대 최고의 축구선수로 꼽히는 에딘 제코(Edin Džeko)입니다.

 

1986년 유고슬라비아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공화국의 사라예보에서 태어난 그는

1996년부터 2003년까지 보스니아의 프로축구팀인 FK젤레즈니차르에서 유소년기를 보냅니다.

 

2003년 정식으로 프로데뷔를 한 그는

체코리그에서 맹활약을 하며 06/07 시즌 최우수 외국인 선수에 뽑힙니다.

 

체코리그에서의 활약에 힘입어 독일 무대로 진출한 에딘 제코는

독일 분데스리가 팀인 볼프스부르크에서 32경기에 출전하여

2610도움을 기록하며 그야말로 눈부신 활약을 했고

그 덕에 그의 소속팀인 볼프스부르크는 리그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2010년 영국 프리미어리그 팀인 맨체스터시티로 이적한 그는

4년 동안 맨시티에서 선수로 뛰었으나

기복이 심한 편으로 이렇다 할 활약을 하지 못하다가

2015년 이탈리아 세리에A리그의 AS로마로 이적했습니다.

 

AS로마로 이적한 후 2016-17 시즌에는

세리에A 득점왕을 차지하는 등

볼프스부르크 시절을 떠올릴법한 좋은 활약으로 제 2의 전성기를 맞았고

현재 AS로마의 새 주장이 되었습니다.

 

193cm의 월등한 신장을 활용한 공중전 플레이와

골문 앞에서의 탁월한 결정력을 지닌 천상 공격수로

보스니아에서는 보스니아의 다이아몬드, 보스니아의 폭격기 등으로 불립니다.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축구 국가대표팀으로서의 활약도 대단해서

역대 출전 1, 최대 득점 1위를 기록하고 있을 뿐 아니라

자국민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