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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분상식 세계사] 불가리아 10분 완벽정리

Buddhastudy 2022. 12. 14. 19:52

 

 

 

1. 소개

불가리아 공화국(Република България), 약칭 불가리아는

동유럽 발칸반도 남동부에 있는 공화국으로 수도는 소피아(Sofia)입니다.

 

불가리아의 국기는

위로부터 하양, 초록, 빨강의 3색기로

1877년 오스만제국의 지배에 저항한 독립운동 당시

사자형상과 함께 국명이 쓰여 있던 기를 처음으로 사용하였습니다.

공산국가 시절인 1971년부터는 좌측 상단에 국장이 그려져 있었으나

1991년 공화국으로 변경된 후에

국장부분이 삭제되어 현재의 국기에 이르고 있습니다.

 

불가리아는 북쪽은 루마니아와 접하고

동쪽은 흑해, 남쪽은 터키와 그리스

서쪽으로는 세르비아, 북마케도니아와 국경을 접하고 있습니다.

 

불가리아의 국토면적은 약 111,000km²

세계 103위이며, 이는 대한민국 면적과 비슷합니다.

2020년 기준으로 약 700만 명의 인구가 살고 있으며

인구수로 세계 106위이며

경상남도와 부산광역시의 인구를 합친 것과 비슷합니다.

 

불가리아의 1년 총 GDP2019년 기준 약 660억 달러로

세계 74위이며,

비슷한 수준의 국가로는 미얀마가 있습니다.

 

불가리아어를 공용어로 하고 있으며

이외에도 터키어, 롬어 등이 함께 쓰입니다.

 

주민은 약 85%가 불가리아인이며

그 외 터키인과 롬족, 기타 아시아인이 소수 존재합니다.

 

불가리아의 종교는 불가리아 정교회가 약 76%

그 외 이슬람교, 개신교, 로마가톨릭이 있습니다.

 

 

 

2. 역사

캅카스와 소아시아에서 건너온 트라키아인들이

처음으로 불가리아 지역에 정착하여 트라키아 왕국을 세웁니다.

 

트라키아 왕국은 마케도니아와 로마제국의 지배를 받다가

6~7세기 무렵에는 북쪽에서 이주해온 슬라브인의 지배를 받습니다.

 

7세기 후반에 볼가강 유역에 정착해 살던 투르크계 불가리아인이

발칸반도로 진출하여

기존의 트라키아인과 슬라브 족을 모두 통합하는 혼합국가인 불가리아 왕국이 탄생했습니다.

불가리아 왕국은 비잔틴제국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강성한 국가로 성장했으며

9세기경 보리스 1세의 집권시기에는

비잔틴제국으로부터 기독교를 받아들였습니다.

 

10세기 시메온 1세가 활발하게 영토확장을 하면서 황제로 등극하였고

불가리아 제1제국은 전성기를 맞았습니다.

하지만 봉건제에 불만을 품은 국내세력의 반란과 비잔틴제국의 공격으로 인해

불가리아 제1제국은 몰락했고

한동안 비잔틴제국의 지배를 받게 됩니다.

 

1185년 비잔틴제국이 약화된 틈을 타 독립하여

불가리아 제2제국을 세웠고

이반 아센 2세 시기, 마케도니아, 알바니아 등지를 차지하는

거대한 제국으로 발전해 전성기를 누리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반 아센 2세의 사후

몽골의 침입과 농민들의 불만이 폭발하면서

다시 국력은 약화되었고 영토를 잃어갔습니다.

 

1300년에 즉위한 차르 토도르 스베토슬라프 시대에

잠깐동안 다시 중흥을 맞기도 했으나

1330년 세력을 키워오던 세르비아 왕국과의 전투에서 대패하면서

이후 발칸반도의 주도권은 세르비아에게 완전히 넘어갔습니다.

 

14세기 영토를 확장하던 오스만제국은

1396년 불가리아 제 2제국을 완전히 정복했고

이때부터 약 500년간 암흑시대가 시작됩니다.

 

19세기 중반부터 본격적으로 불가리아 민족해방운동이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고

러시아와 오스만제국 사이에 터진 전쟁의 결과

불가리아는 드디어 오스만의 지배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1878년 독립과 동시에 불가리아 공국이 성립되었고

이후 1908년에는 불가리아 왕국으로 승격해

완전히 오스만제국에서 벗어났습니다.

 

불가리아는 1912년과 13,

2년 연속으로 1, 2차 발칸전쟁을 치뤘고

이후로는 1,2차 세계대전에도 참전했습니다.

 

특히 19449, 소련이 불가리아에 침입하여

불가리아의 공산화 개혁을 실시하였고

이듬해인 1945년 게오르기 디미트로프 공산당 서기장이 집권하면서

불가리아 인민공화국이 선포되었습니다.

 

뒤이어 정권을 잡은 토도르 지프코프는

친소노선을 표방하며, 1954년부터 1989년까지 35년간 장기집권을 하였습니다.

1980년대부터 경기침체와 공산당에 대한 비판이 거세졌고

198911, 민주화를 요구하는 전국적 시위를 기점으로 정치체제가 바뀌었습니다.

 

199011, 국명을 불가리아 공화국으로 바꾼 뒤

다당제 정치체제를 승인하였고

최초의 연립내각이 출범하였습니다.

 

 

3. 정치 & 경제

불가리아의 정치는 1991년 제정된 헌법에 따라

의원내각제를 채택하고 있습니다.

대통령의 권한은 상당히 제한적이기 때문에

사실상 불가리아의 최고 권력기관은 불가리아 의회입니다.

 

불가리아 의회는 단원제로

임기 4년의 240명의 의원으로 구성됩니다.

실질적인 정부 수반인 총리는

3번째 총리직을 맡고 있는 보이코 보리소프로

그는 2005년에 소피아 시장에 취임하였고

2009년에는 불가리아 총리가 되어

현재 3번째 총리직을 맡고 있습니다.

 

불가리아의 주요 정당으로는

불가리아사회당연합, 시메온2세 국민연합,

민주세력동맹 등이 있습니다.

 

5년 임기의 대통령은 국민 직선제로 선출되며

현재 불가리아의 대통령은 무소속 출신으로

2017년에 당선된 루멘 라데프 대통령입니다.

권한이 미미하다 보니, 불가리아 대통령의 월급은

미화로 약 400달러에 불과한 걸로 유명합니다.

 

불가리아는 전통적인 농업 강국이었으나

2차 세계대전을 기점으로

국가주도의 공업화를 추진하면서

후진농업국에서 공업국으로 탈바꿈했습니다.

 

구소련의 영향을 받던 인민공화국 시절에는

군수공업과 철강, 화학 산업 분야가 발전했고

특히 경제 상호원조회의, 코메콘(COMECON)의 지원에 힘입어

상당히 높은 수준의 경쟁력을 확보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1990년대, 자본주의 체제로 편입한 후로는

중화학 분야에서의 경쟁력이 크게 떨어지며

농업 분야도 부진한 상태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불가리아를 대표하는 특산물로는

장미, 담배, 유산균 등이 있는데

특히 장미의 생산이 가장 뛰어납니다.

향수와 화장품의 원료가 되는 로즈오또의 80% 가량이

불가리아에서 생산되고 있으며

연간 1,000kg의 장미유를 생산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국영기업인 LB불가리쿰에서

독자적으로 재배한 유산균으로 요구르트를 만들어

해외로 독점수출을 하고 있습니다.

 

또한 불가리아는 유럽에서 6번째로 석탄을 많이 생산하는 국가이며

그 외에도 철, 구리, 납과 같은

지하자원들이 풍부하게 매장되어 있어

광업개발 가능성도 높은 국가입니다.

 

그동안 여러 경제적 어려움을 겪어왔으나

2007년 유럽연합에 정식으로 가입하면서

경제부흥의 시기를 맞고 있습니다.

 

 

4. 자연환경 & 문화

불가리아는 북쪽은 도나우강을 국경으로 루마니아와 접하고,

서쪽은 세르비아와 북마케도니아

남쪽은 그리스와 터키, 동쪽은 흑해에 접해있습니다.

 

불가리아는 발칸산맥에 의해 국토가 남과 북으로 양분되는데

북부지역은 다뉴브 평원, 남부지역은 트라키아 평원지대로 불립니다.

 

남쪽 분지 지형은 산림이 풍부한데

릴라 산맥의 무살라 산(Mt. Musala)

해발고도 2,925m로 발칸반도에서 가장 높은 산입니다.

 

불가리아의 기후는 바다에 가까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으로 대륙성 기후를 보입니다.

발칸산맥의 북부는 겨울이 길고 추우며

눈이 많이 내립니다.

하지만 산맥의 남쪽 지역은 지중해성 기후에 가까워

겨울이 비교적 온화하고 여름은 매우 더운 편입니다.

평균기온은 약 10도 내외이며

전 지역에 걸쳐 강수량은 많지 않습니다.

 

불가리아는 동유럽에서 음식과 술이 맛있기로 정평이 나 있습니다.

술의 경우 자두, 살구 등의 과일을 증류해서 만든

발칸반도의 전통주인 라키야(Rakija)가 유명합니다.

 

또한 프랑스나 이탈리아와 같은 와인강국들에게도 뒤지지 않을 정도로

맛과 질이 좋은 와인을 생산하고 있기도 합니다.

다양한 와인 브랜드들 가운데

마부르트는 불가리아 현지에서만 나는 토착 포도품종으로만 양조하는 걸로 유명합니다.

 

불가리아의 요리는 남유럽에서도 가장 맛있기로 소문이 자자한데요.

중유럽과 그리스, 터키의 영향을 많이 받은 덕에

지역마다 사용되는 식재료도 매우 다양하다고 합니다.

다양한 과일과 채소, 허브를 재배하고 있기 때문에

거의 매 끼니마다 다양한 샐러드를 함께 먹습니다.

 

요구르트로 만든 스프 종류도 많은데

특이하게도 차갑게 즐기는 스프로 유명한

타라토르가 있습니다.

타라토르는 채소, 견과류, 요구르트만 가지고 만드는 건강식으로

불가리아의 보양식이자 여름 별미로 알려져 있습니다.

 

또한 짭짤한 불가리아 전통 치즈 파이인 바니짜(banitza)

불가리아의 대표적인 아침 식사 메뉴입니다.

 

대부분의 불가리아인들은 꿀이나 잼을 바른 바니짜에

연한 커피를 함께 마시면서 하루를 시작한다고 합니다.

 

 

 

5. 인물

리듬체조계의 전설이라 불리는

비앙카 파노바(Bianka Panova)가 있습니다.

 

1985년 리듬체조 선수로 데뷔한 비앙카 파노바는

2년 뒤인 1987, 세계선수권대회 개인종합부문에서

전 종목 10점 만점으로 개인종합과

리본, 곤봉, 후프, 공의 4개의 종목에서도

모두 금메달을 휩쓸어

기네스북에 오르기도 한 전설적인 선수인데요.

 

1970, 불가리아 소피아에서 태어난 그녀는

15살이 되던 1985,

스페인의 바야돌리드에서 열린 세계선수권 대회에서

리본 종목으로 3위에 입상하며

화려하게 리듬체조계에 데뷔했습니다.

 

이듬해인 1986, 유럽선수권대회 금메달을 시작으로

일본 리듬체조월드컵 금메달을 석권했고

1987년 세계선수권대회에서 그야말로 돌풍을 일으켰습니다.

 

1987, 불가리아의 바노바에서 열린 세계선수권대회에서

리듬체조 역사상 최초로 4종목 전체 만점을 받으며

퍼펙트 우승을 차지한 것이죠.

 

그전까지 선례가 없었던 성과에 그 당시 IOC 위원장이

파노바의 업적을 치하하면서

메달을 직접 수여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세계 최고의 리듬체조 선수로 군림하고 있던 비앙카 파노바는

아쉽게 한 번의 실수로 1988년 서울올림픽에서는

기대에 못 미친 4위의 성적에 머물러야 했는데요.

심기일전하여 4년 뒤에 있을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을 준비하던 와중에

불가리아 코치진과의 불화가 깊어졌고

그 당시 불가리아에서 떠오르던 신예 선수인

마리아 페트로바(Maria Petrova)를 밀어주기 위해

코치진은 파노바에게 은퇴를 종용했다고 합니다.

 

이 때문에 파노바는 1989년 떠밀리듯 은퇴를 할 수밖에 없었고

그 후로는 이탈리아의 리듬체조 코치로 활동하게 됩니다.

 

19세에 은퇴하여 선수생활은 매우 짧았지만

오랜 시간이 흐른 현재까지도

리듬체조계에서는 전설로 화자되며

진정한 체조요정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