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즉문즉설(2009)

즉문즉설_법륜스님(제67회) 집에서 기도수행 법

Buddhastudy 2011. 1. 26.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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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인사 할 때 어떻게 합니까? 우리는 오래간만에 만나면 무릎 꿇고 머리를 땅에 조아리고 옛날에 인사를 했죠. 미국사람들은 어떻게 합디까? 두 손을 쥐고 악수를 하지요? 또 저기 회교도 지역에 가면 서로 껴안고 볼을 비비는 데도 있고, 입술을 대는데도 있고, 포옹을 하는데도 있고, 하는 소리가 좋은 아침입니다’ ‘굿 모닝하는 사람도 있고, 우리처럼 안녕하셨어요하는데도 있고, 인도 같은 데 가면 나마쓰데이렇게 하는데도 있고.

 

그러니까 그 인사를 하는 방식이 다 다르죠. 그 다음에 인사의 말도 다 다르잖아요. 옛날에 우릴 어려울 때는 어른들 만나면 어떻게 인사 했었어요? ‘진지 잡수셨어요?’ 하고 아침 드셨어요?’ 이렇게 인사를 했습니다. 요즘 그렇게 인사하는 사람 많지 않죠? 그럴 때 어떻게 인사 하는 게 좋습니까? 라고 나한테 물으면 내가 뭐라고 대답하면 좋겠어요? 이 사람은 이렇게 인사하고, 저 사람은 저렇게 인사하고. 이 사람은 인사할 때 이런 말 하고, 저 사람은 저런 말 하는데. 그 어떻게 인사를 해야 인사를 제대로 하는 겁니까? 하고 제가 보살님한테 물으면 보살님 대답 한 번 해 보세요. 아 그냥 편하게 얘기해 보세요.

 

그래요. 기도를 하실 때 본인 하고 싶은 데로 하십시오. 삼배를 하고 하시든지, 입정을 하고 하시든지. 천수경을 먼저 치고 하시든지. 그러니까 이런 방식은 그렇게 중요한 게 아니다. 필요 없다는 뜻은 아니에요. 그러니까 제일 쉬운 방법. 보통 우리가 하는 방법. 꼭 그래야 되는 건 아니에요. 불자는 어떤 일을 할 때, 맨 먼저 불법승 삼보에 귀의 하는 마음을 먼저 내야 됩니다. 아시겠습니까? 그래서 부처님께 귀의합니다. 부처님 가르침에 귀의합니다. 또 스님들께 귀의합니다. 이걸 먼저 낸다.

 

그 형식을 전통식으로 하든지. 요즘처럼 노래로 하든지. 그냥 말로 평범하게 읽든지. 이것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먼저 삼보에 귀의 하는 마음을 낸다. 그리고 두 번째로는 삼보에 귀의한 자는 오계를 지켜야 한다. 이게 불자의 기본 행동지침입니다. 그래서 오계를 한 번 더 내가 되세기는거요. 살아있는 생명을 함부로 죽이지 않겠습니다. 주지 않는 남의 물건을 갖지 않겠습니다. 삿된 음생을 하지 않겠습니다. 거짓말을 하지 않겠습니다. 술을 먹고 취하지 않겠습니다. 이걸 삼귀오계다 이렇게 말해요. 이걸 먼저 하고 그 다음에 자기 하고 싶은 데로 하면 되요. 이게 현재 세계 공통적인 방식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지금 반야심경을 하고 모든 행사를 하죠? 그죠? 원래는 삼귀오계. 이게내가 불자임을 한 번 되세기는거요. 그러고 나서 어떤 행식을 해도 좋다. 그런데 이 삼귀가 조금 더 늘어난 게 우리가 칠정례란 말이오. 그러니까 칠정례 첫 번째가 뭐요? 석가모니 부처님께 지심귀명례하는거 아니에요? 석가모니 부처님과 그 외 모든 부처님께 귀의합니다. 그래서 두 개고, 그 다음에 모든 법에 귀의한다. 세 개죠.

 

그 다음에 모든 보살님들께 귀의하고, 그 다음에 성문연각에게 귀의하지 않습니까? 그죠? 그 다음에 역대 전등 제대조사님께 귀의 하지 않습니까? 그 다음에 모든 스님들께 귀의하니까. 이 승가에 귀의한다. 스님들께 귀의한다는 게 보살승, 성문연각승, 제대선지식, 그 다음에 모든 스님들. 4개로 나누어진 거란 말이오. 이걸 합하면, 칠정례를 합하면 결국 뭐요? 삼귀에요. 그러니까 예불하고 반야심경하시고 하시든지. 그렇지 않으면 삼귀하고 반야심경 하시든지.

 

그 다음에 뭘 더할 거냐 하는 거는 지금 말 한데로 본인의 의사에 따라 하시면 되요. 천수경을 하고 하는 게 좋겠다 하면 천수경을 하고. 천수경 속에 대다라니만 하면 좋겠다 하면 대다라니를 하시면 되고. 그 다음에 또 뭘 하고. 하고 싶다 하면 뭘 하시고. 뭘 추가하는 거는 본인의 의사에 따라 하시든지. 내가 다니는 절에 스님이 가르쳐 주는 데로 하면 되요. 그럼 스님마다 가르쳐주는 게 조금 같아요 달라요? 조금 다르지. 이럴 때 왜 내가 다니는 절에서는 이렇게 가르쳤는데 이 스님은 이렇게 가르치시느냐? 그래서 새로 가르쳐준 것을 부정하거나. 안 그러면 ~ 맞아. 이렇게 하는데 우리 스님은 저렇게 가르치더라.’ 그 전거를 부정하거나 이러면 안 되요.

 

그러니까 우리 옛날 식으로 절하는 게 좋다 하는 인사법도 주장하는 사람도 있고. 요즘 바쁜데 언제 그렇게 무릎 꿇고 머리 조아리나? 악수하고 말지. 이런 스님도 계시죠. 그래서 여러분들 절에 가면 꼭 삼배를 받는 스님도 있고. 삼배 하겠다 하면 아이고 아이고 관둬라 하고 악수하고 그만두는 스님도 있죠. 요즘 또 서양식 닮아서 스킨쉽 한다고 포옹해주는 사람도 있지 않습니까? 그죠?

 

그러니까 이걸 가지고 어떤 게 좋다고 말 할 수가 없다. 그런 것처럼 고건 고때 고때 절에서나, 스님이 가르쳐 주시 거나, 내가 하던 대로 하시면 된다. 그러나 우리가 일상적으로 하는것을 이야기 한다면 시작할 때 부처님께 귀의 하고, 세계 공통으로는 오계를 하고 하는 거고. 우리는 전통이 반야심경하고. 끝날 때 뭘 해야 됩니까? 우리는 사옹서원을 해야 됩니다. 네 가지 큰 서원을 세우는 거요.

 

두 번째, 염불수행을 하신다고 하니까 염불할 때 어떤 마음이어야 되느냐? 이걸 말씀드릴께요. 이렇게 관세음보살을 부르던, 지장보살을 부르던, 아미타불을 부르던, 석가모니불을 부르든, 약사여래불을 부르든, 이건 또 사람마다 다 따로 부르죠. 이건 제가 얘기할 수가 없어요. 어느 불 보살을 부르는 게 더 좋습니까? 하는 거는 어떤 식으로 인사하는 게 더 좋습니까? 이런 얘기와 같아진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각 종파 별로, 절 별로 부르는 대로 부르면 되는데. 다 부처님이고 보살이니까. 다 훌륭하신 분이에요. 그러니까 어떤 분이 더 높고 낮다 이렇게 생각하시면 안 되요.

 

그런데 부르는 마음의 자세를 어떻게 해야 되느냐? 이건 제가 얘기를 할 수 있을 거 같애요. 관세음 보살을 아주 지극정성으로 부르고 싶은데.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지극하게 부르면 불 보살이 가피를 주신다는데. 지극하게 부르고 싶은데. 불러보면 지극하게 됩니까? 안됩니까? 안되죠. 온갖 망상이 생깁니다. 언제는 입으로만 부르지. 생각은 늘 딴 데 가 있어요. 그러니까 아무리 부르고 싶어도 그렇게 잘 안 되요. 이러면 고민이 생겨요. 그래서 정신을 집중해야지. 정신을 집중해야지. 이렇게 합니다.

 

그런데 정신을 집중해야지 하면 집중해야지 하는 게 염불이에요 아니에요? 아니지. 그러니까 또 번뇌가 하나가 더 생기는 거요. 그래서 입으로 관세음 보살을 부르면 이 생각으로는 관세음 보살 성상을 생각합니다. 아시겠습니까? 관음상을 딱 생각을 하거나, 만약에 법당에서 기도를 한다면 관음상을 딱 주시하면서 그렇게 부르되. 이 귀로는 오직 관.....만 늘 들리도록 해야만 됩니다. 그걸 목표로 해야 된다 이 말이오.

 

그러니까 관할 때는 관에만 딱 집중이 되고, 세 할 때는 세에만 집중이 되고, 음 할 때는 음에만 집중이 되고, 보 할 때는 보에만 집중이 되고, 살 할 때는 살에만 집중이 되도록 이렇게 딱 하는데 현실은 이렇게 안 된다. 그러면 온갖 망념이 생기고 하더라도 다만 이렇게 하려고 노력만 하지 안되는거를 문제삼지 마라 이거야. 나는 왜 집중이 안되느냐? 나는 왜 염불이 제대로 안되느냐? 이런 생각을 하지 마라. 그게 번뇌요.

 

제가 기도를 할 때 염불을 할 때 딴 생각이 일어나는 건 내가 원해서 일어나는 거요? 저절로 일어나는 거요? 저절로 일어나는 거요. 저절로 일어나는 거는 문제 삼을 필요가 없어요. 왜 나는 기도가 안되지? 이건 저절로 일어나는 거요? 자기가 일으키는 거요? 자기가 일으키는 거요. 자기는 일으키면 안되. 저절로 일어나는 거는 문제삼지 말고, 다만 나는 일심으로 관세음보살만 부른다. 그 때 망념이 일어나면 망념에 따라가지 마라. 망념이 일어나면 어! 망념이다라고 원래대로 돌아와야 된다.

 

그러면 다시 돌아오면 또 도망가고, 돌아오면 또 도망가고, 잡아다 놓으면 또 도망가고, 잡아다 놓으면 또 도망가고. 그렇게 천 번 만 번을 했다 하더라도 나는 왜 염불이 안되지. 이런 생각을 내면 안 된다. 다만 할 뿐이어야 됩니다. 다만 할 뿐이다. 그러면 이 망상이 일어나는 건 기도가 잘못되는 게 아니고 망상이 일어나는 건 자연스러움이다. 일어나는 게 자연스럽다 이 말이오. 이걸 남이 보면 망념이 일어나는 게 눈에 보입니까? 안보입니까? 내 귀에 들려요 안 들려요? 그러니까 딴 사람은 다 열심히 하는 거 같애. 나만 문제야.

 

그런데 그 사람도 마찬가지요. 염불 중에 집안 생각이 났다. 그러면 집안생각을 하고 있는 나를 알아차리고 다시 염불로 돌아오면 되지. 그냥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계속 거기에 빠지면 안 된다 이 말이오. 그래서 알아차리면 다시 돌아오고, 다시 돌아오고. 그래서 다만 염불만 할 뿐이다. 주위에서 이런 저런 일이 일어나도 그것을 그냥 파도가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처럼 본다. 구애를 받지 않게 된다. 시비가 없어집니다. 그렇게 되야 염불공덕이 생겼다. 연불의 가피를 입었다. 이렇게 말 할 수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