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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 4대 문명] 메소포타미아 문명 : 길가메쉬

Buddhastudy 2023. 2. 15. 18:42

 

 

 

1990년 걸프전 이후로 지금은 여행금지국가가 된 이라크는

그나마 다른 여행금지 국가인 시리아나 리비아, 소말리아에 비해서는

최근 비교적 상황이 좋아지고 있어서

여행금지가 가장 먼저 풀릴 것으로 전망되기도 합니다.

 

이라크의 여행 금지가 풀리게 된다면

관광지로서의 매력을 지닐 수 있는데요

기원전 400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장대한 역사를 지니고 있으며

수많은 국가들이 생겨났다 없어짐을 반복하며 남겨놓은

유적지와 건축물들의 흔적으로 인해

관광상품의 경쟁력이 높은 국가이기도 합니다.

 

고대에는 세계 4대 문명의 발상지라는 메소포타미아 지방이

대부분 현재의 이라크 땅이며

중동에서 가장 중요하다는

유프라테스 강과 티그리스 강이 모두 이라크를 지나는데요.

 

바로, 메소포타미아 문명이 일어났던 곳이기도 하죠.

메소포타미아는 고대 그리스어에서 온 말로

메소는 중간을

포타미아는 강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어

유프라테스와 티그리스 두 강의 중간이라 할 수 있습니다.

 

고대 문명 중에서도 메소포타미아 지역은

가장 오래된 문명이라 할 수 있는데요.

그 시작은 기원전 7000년경

지금이 2020년도 이니까 무려

9천 년 정도 전에 시작되었던 거라 할 수 있죠.

 

이라크의 북쪽 자그로스(Zagros) 산록지대에 정주한 농경민은

동시에 목축도 하며, 후기 신석기 문화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후 하라프 문화

즉 발달된 촌락문화를 거쳐

기하학 무늬나 동물무늬가 새겨져 있는 채문토기가 만들어지며

금속의 한 종류인 구리가 사용되기도 했는데요.

 

기원전 6천년경, 우바이도 문화기에서는 구리의 야금술도 발달하게 됩니다.

야금술은 간단히 말해, 광석에서 금속을 추출하여

필요한 형상으로 공정이라 할 수 있는데요.

 

이렇게 주조된 연모, 무기들은

물질의 활용과 함께 메소포타미아의 도시화를 가져온 요인이 되기도 합니다.

이후 점점 문명이 발달하여 수메르 문명을 시작으로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왕국을 간략하게 먼저 순서를 나열하자면

다수의 도시 국가가 건설되고

아카드 왕국이 통일한 다음

함무라비 왕이 바빌로니아 왕국을 지배하게 됩니다.

 

그리고, 아시리아, 신 바빌로니아를 거쳐서

아케메네스 왕조 페르시아가 메소포타미아를 지배한 후

시간이 흘러서는 알렉산드로스에게 정복당하며

그후 셀레우코스 왕조, 파르티아 왕국 등등

고대부터도 조용한 날이 하루도 없었을 법한 시기를 보냈던 곳이죠.

 

정신없이 왕국들이 나타났다 사라졌는데

초기 메소포티마의 사람들은 살펴보면

초기에는 원시 사회주의 형태의 모습을 띄고 있었습니다.

 

농민들이 농산물들을 공동창고에 모으게 되면

식량들은 모든 직업의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게 됩니다.

무기를 만드는 금속업자라든가

건축물을 짓는 사람들이라든가 말이죠.

 

그러다 청동기 시대에 접어들며 잉여생산물이 생기게 되자

사람들 사이에 갈등이 일어나게 되고

점차적으로 국가와 도시간의 끊임없는 충돌이 발생하게 됩니다.

 

 

소설이나 영화 작품에서는 역사를 바탕으로 각색하여

흥미진진하게 풀어가는 경우가 많은데요

고대 메소포타미아를 배경으로 하는 문학작품으로는

단연 길가메시 서사시가 가장 유명한 작품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작품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바빌로니아의 서사시이며

주인공 길가메시는 수메르 자료에 의하면

우르크 제1왕조 5대왕이었다고 합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판타지에 판타지를 붙여서

신화의 주인공으로 거듭나게 된 것이죠.

 

가장 오래된 서사시라고 하니, 줄거리를 짚어볼까요?

배경은 기원전 2750년경 도시국가 우르크로

길가메시는 3분의 2가 신이고, 3분의 1이 인간인 반신형태의 우르크왕이었습니다.

 

문학작품의 주인공답게 당연히 잘 생기고,

똑똑하고 싸움도 잘하는 만능캐릭터인데요.

작품 초반부에는 인성이 천하의 막장으로

자신의 잘난 맛에 취미가 백성 괴롭히기였습니다.

 

도장깨기 하듯이 온동네 사내들을 패고 다니며

결혼하는 사람들에게는 초야권을 행사했습니다.

초야권이라 하는 것은 신혼 첫날밤에

신랑이 아닌 초야권을 가진 자가 대신해서

신부와 동침하는 권리를 말합니다.

 

이는 중세 유럽의 영주나 성직자,

혹은 고대인도의 승직 브라만,

캄보디아의 예전 불교, 도교 승려들에게서도 그 예를 찾아 볼 수 있는데요

영화 브레이브 하트초반부에 나오기도 합니다.

 

왕이 이렇게 백성들을 괴롭히는 취미를 갖고 있으니

백성들은 천신 아누에게 길가메시를 벌해달라고 호소하는데요.

 

그러자 아누는 괴물 엔키두를 만들게 되는데

엔키두도 길가메쉬 못지 않게 강하고, 온몸은 털로 덮여있었죠.

엔키두는 우르크에 와서 길가메쉬와 맞짱을 뜨게 되고

팽팽하게 싸우던 둘은 좀처럼 승부가 나지 않았지만

결국 길가메시가 무릎을 꿇고 패배하게 됩니다.

 

하지만, 무서운 외모하는 달리

넓은 마음을 지녔던 엔키두는

길가메쉬에게 화해하면서, 둘은 절친이 됩니다.

 

그 후 영웅콤비로 활동하며

많은 이들을 도우며 살다가

세상에서 제일 무섭다고 하는 산지기 훔밤바까지 죽이는데요.

이쯤 되자, 잘생기고 힘쎈 길가메쉬의 명성은

하늘에 있는 사랑과 풍요의 여신 이슈타르에게 전해지고 되고

이슈타르는 길가메시에게 대시를 하게 되죠.

 

하지만, 길가메시는 이슈타르를 퇴짜를 놓고

그녀는 화가 나서 하늘의 황소를 지상에다 풀어버립니다.

하늘의 황소는 이 땅의 건축물과 대지를 생지옥을 만들었고

다시 또 수습하기 위해, 길가메쉬와 엔키두가 나서는데요.

 

황소를 제압하고는 신의 짐승이라 죽이기 망설였지만

지상을 사랑하는 엔키두는 하늘의 황소를 죽여버립니다.

 

이제, 일은 너무나도 커져버려 하늘의 신들은 노하게되고

결국 엔키두를 처형한다는 판결을 내려,

엔키두는 병이 걸려 죽게 되죠.

 

슬픔에 가득찬 길가메시의 이야기는 여기까지 하구요.

더 궁금하신 분들은

길가메시 서사시에 관한 책 등을 찾아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이제 문학작품에서 빠져나와 길가메시의 고향 우르크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우르크는 성벽도시로,

거대한 운하가 있었으며

지구라트들이 있었는데

지구라트는 일종의 신전이었습니다.

 

사람들은 하늘에 있는 신에게 좀 더 가깝게 다가가고자

건축물을 높게 올렸고,

후대로 갈수록 차차 더 높아지게 되었죠.

 

수메르 초기왕조 시대 때는 1층에 테라스 형태가 있었으나

우르 시대에 접어들어 3층 테라스를 겸한 탑이었습니다.

 

이곳을 지키고 있는 사제들은 당시 권력의 끝판왕이었는데요

왜냐하면, 당시 사람들은 사제들이 신들과 직접 소통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죠.

 

현대 사회에는 기상청의 일기예보를 참고하여

맑고 흐리거나 혹은 태풍 등에 대한 대비를 할 수 있지만

수천 년 전에는 날씨는 신의 마음에 달렸다고 생각했습니다.

 

가령, 길가메시 작품에 등장하는 신들은

지상에 사는 인간들이 너무 시끄운 것이 화가 나서

조용히 자고 싶다는 이유로

인간들이 모여있는 장소에 홍수를 일으켜 풍비박산을 내기도 했죠.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이집트 문명의 나일강과는 달리

티그리스강, 유프라테스강에서는

끔찍한 홍수나 가뭄이 예측할 수 없이 발생하여

신의 성격이 까칠하다고 생각을 했던 겁니다.

 

그래서, 까칠한 성격의 신들의 노여움을 달래기 위한 제사장은

이 지역 사람들에게는 아주 중요한 사람이었던 거죠.

 

 

우르크 시절 때만 하더라도

지구라트가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눈에 띄는 건축물이었다면

1000년도 더 시간이 흐른 뒤에는

사원이 아니라 거대한 궁전의 형태로 건축물들이 지어지게 됩니다.

예를 들면, 200개가 넘는 마당과 방들을 지니고 있는

기원전 720년경의 사르곤 궁전 등이 있었죠.

 

이러한 현상은 좀 더 인간 사회의 사회질서나 복지에 대한 관심으로 인해

그동안 신과 가깝게 지내던 사제의 권력이

신에게서 인간으로 옮겨가고 있다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신의 존재는 절대적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사제가 갖고 있던 권력을 왕이 함께 손에 쥐게 되면서

행정과 종교적인 역할도 같이 도맡게 되었던거죠.

 

이제 메소포타미아 지역은 왕이라는 존재들이 생기면서

이전과는 분위기가 사뭇 달라지게 됩니다.

 

영상 초반부에 말씀드렸던 것처럼

이 지역의 특징은 다수의 도시 국가들끼리 부딪히고

또 새로운 강자인 외부인들이 쳐들어와서

아카드 왕국, 바빌로니아 왕국 등을 거쳐 가며

더욱 강한 왕국이 살아남게 되는 시대가 된 거죠.

 

사회시스템 면에서는 생산물을 똑같이 나누는 초기 원시 사회주의 성향에서

이제, 세금의 형태가 생기게 되면서

사람들이 세금을 낸 만큼 생산할 수 있는

개개인의 기업같은 사회구조가 발생하기 시작했습니다.

 

권력을 가진 왕들은 강건한 세력을 키우기 위해

다른 영토로의 확장을 넓혀 활동영역을 넓히고

자신의 아들에게 왕위를 물려주려는 현상이 생겼죠.

 

이 지역에서 강력한 왕권을 지닌 유명한 왕으로는

5분 세계사 때, 함무라비 법전으로 주제를 다루었던

바빌론 왕국의 6대왕인 함무라비 왕이 있습니다.

 

함무라비는 기원전 1792년부터 1750년까지 42년간 바빌론을 통치하는데요.

그가 왕으로 즉위했을 때 메소포티마아 지역은

아시리아, 라르사, 에시눈나 등 여려 왕국으로 분열되어

왕국끼리 영토전쟁을 벌이고 있을 때 였습니다.

 

그는 재위기간 중 30년 동안 경제력을 키우기 위한 내정에 집중하여

국가의 생산물과 군사력을 증진하며 국력을 길렀으며

31년째부터 본격적으로 주변국과의 전쟁 끝에

39년째 메소포티미아 전역을 통일하여 바빌로니아라 칭했습니다.

 

함무라비는 통일을 이룬 뒤, 정복지에 총독을 파견해서

지방 총독에게는 행정권만 부여하고 사법과 재정은 허용하지 않았으며

지금으로부터 약 4천년전인 옛날 이야기인데도

중앙집권적 통제라는 형태를 만들어냈습니다.

 

그리고, 그 중앙정부의 법률조항에 따른 판결을 내리기 위해

동일한 법률체계의 함무라비 법전이 탄생하게 된 것이죠.

이 법전에는 단순히 눈에는 눈, 이에는 이만 적혀 있는 것이 아니라

282개의 법률조항으로 구성되어 있어

여러 가지 사회에서 일어나는 범죄나 문제들에 대한 규정을 명시하고 있습니다.

강도, 납치 등과 같은 극악 범죄뿐만 아니라

지금으로 치면 부동산법과 같은 집의 임대법

장사하는 사람들이 지켜야 할 고용법, 임금문제

빚에 관련된 채무와 채권

그리고 결혼관련법과

당시에 존재했던 노예에 관련된 법 등

다양한 법들을 명시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메소포타미아 지역에 대한 전반적인 흐름과

길가메쉬 서사시 문학작품,

함무라비 법전 등

당시 이 지역이 얼마나 다사다난한가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