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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 4대 문명] 황하 문명

Buddhastudy 2023. 2. 16. 19:48

 

 

 

현대 사회 국제 뉴스에서 가장 자주 등장하는 국가는

미국과 중국이라 할 수 있는데요.

중국은 국토 면적, 경제면에서도 미국과 맞붙으며

국제 이슈에서 끊임없는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장차 중국의 미래는 다른 세계 나라들에게

위협이 될 거라는 가설을 지닌 중국 위협론

혹은 중국 경제성장이 지닌 많은 문제점으로 인해

붕괴할 단계를 밟아갈 것이라는 중국 붕괴론이 있는데요.

 

10분 세계사에서는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세계사라는 주제답게 고대 문명에 대하여

그동안 이집트 문명, 인더스 문명, 메소포티미아 문명에 이어

오늘은 황하 문명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우리가 중고등학교 때 교과서로 공부하며

시험 점수를 얻기 위해 달달 외운 4대 문명은

사실은 학계에서 수십년 째 많은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4대 문명은 동서양과 관련된 위치를 언급하고 있는데

이는 아메리카 지역이나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지역의 문명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이죠.

4대 문명 이외의 문명에 대해서는

다음 영상에서 다시 다루어보도록 하겠습니다.

 

황하문명은 중국 황하 중,하류 유역의 황토 지대에서 발달한 문명으로

양쯔강 문명과 함께 중국의 고대 문명을 대표하고 있습니다.

 

황하문명을 제외한 나머지 서양의 세 문명은

서로 영향을 끼치며 발전하게 되지만

황하문명은 타클라마칸 사막과 히말라야 산맥으로 가로막혀 있기 때문에

독자적으로 발전하게 되죠.

 

등장 시기는 서양의 세 문명에 비해 가장 늦은

기원전 1600년전 정도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황하문명은 어떤 나라부터 존재했을까요?

이 역시 시험점수를 올리기 위해 중고등학교 시절 때는

하은주라고 외우기도 했는데

요즘 교과서에서는 어떤지 모르겠네요.

 

하은주는 하나라, 은나라, 주나라를 의미하는데요.

문제는 하나라는 전설상의 국가일 뿐이고

실존했다는 고고학적 증거가 없다고도 합니다.

 

여기서 잠깐, 중국 역사에 대한 특징을 짚고 넘어가자면

중국 역사는 일반적인 고고학과는 달리

명분이라는 것에 의미를 많이 부여하는 편입니다.

 

역사적인 이러한 사실이 있었다. 저러한 사실이 있었다고 이야기를 할 때는

그에 대한 근거자료로

인간이 남긴 유적, 유물과 같은 물질적인 증거를 통해

과거를 유추하는 방법이 과학적인 접근방식이라 할 수 있는데요

중국 역사의 경우 왕조가 바뀔 때

천명이라는 개념을 사용합니다.

, 하늘이 개입해서, 왕이 올바르게 행동을 하면

그 왕조가 평안하게 잘 이어지고

아니면 국가가 흉흉해지면서 나라가 망한다라는 접근법이죠.

 

고대 황하 문명 은나라가 망하며, 주나라에 접어들면서

하늘이 개입하는 천명이 발생하고,

시간이 지나 공자가 나타나면서 군자다움을 요구하게 되니

이후, 한나라 수나라 당나라 송나라 등등 이어지는 기간 동안에도

국가 흥망성쇠에 요구되는 것은 왕의 덕목에 대해 무게를 두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왕이 착한 사람이냐 나쁜 사람이냐에 따라

국력이 결정된다는 것이 역사학자들 사이에서

객관적 사실보다 주관적 접근방식이라는 논란이 있기도 하죠.

 

 

황하 문명의 시초라고 하는 하나라부터 살펴보겠습니다.

기원전 2000년경에 발생하여 기원전 1600년경에 없어졌다고하는 하나라

시작부터 역사학자들 사이에 논란거리가 되는 나라입니다.

 

아까도 잠시 언급했지만, ‘하나라는 기록상으로는 존재했지만

실존했다는 고고학적 증거가 없어 전설상의 국가다.

혹은 하나라라는 것을 일부러 창작해냈다 라는 말들이 있습니다.

 

전통적으로 중국 한족을 하화족이라고 부르는데

이 한족의 명칭은 하나라 국명에서 유래했다고 합니다.

이 당시의 문명을 문화로 부르기는 하지만,

문화는 있어도 국가로 존재하지는 않았다는 거죠.

 

하나라에서 유명인사는 마지막 왕인 걸왕이 있습니다.

중국 폭군의 대명사라고 불리는 왕들로 하걸은주라는 말이 있는데,

바로 하나라의 걸왕, 은나라의 주왕을 의미합니다.

 

하나라의 걸왕은 매일같이 향략을 즐기고, 잔치만 열여서

하나라를 망하게 한 왕으로 유명합니다.

하지만, 이에 대한 구체적인 근거자료보다는

다음 나라에서, 신하가 임금에게 글을 올리기 위해 기록한

상서에만 짧은 기록으로만 남았을 뿐이었죠.

, 하나라의 왕이 부도덕했기 때문에

나쁜 행실의 걸왕에게서 천명을 거두고

은나라가 권력을 쥐어도 된다는 명분을 만들 수 있는 겁니다.

 

시간이 흘러, 은나라의 마지막 왕인 주왕에 가서는

달기라는 미녀에 빠져 역사상 가장 음란하고 잔인한 왕으로

자신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죽여서 고기로 만들어 먹었다고 기록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역시 매일매일 악행만 하고 다녔다고 쓰여있는 상서 기록만 쓰였을 뿐,

진위 여부에 대해서는 고고학적 근거를 찾아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로인해 황하문명의 초반부였던

하나라의 멸망과 은나라의 멸망을 두고서는

외세의 침략이나 내분의 쿠데타나 자연환경의 변화가 아닌

왕이 나쁜 행실을 했기 때문이라는 도덕성에 주안점을 두어

이후 나타나는 주나라에게 국가를 세운 명분을 주게 됩니다.

 

주나라가 권력을 가지기 위해서는

이전 왕들이 나빠야만 한다는 당위성을 만드는 것이죠.

 

중국 역사는 이러한 반복의 패턴성을 가지고 있으며

이러한 이유들은 이후, 중국 역사의 특징을 자아내는데요

바로, 역사를 유교적인 도덕적 행동과 결부시키게 되었던 겁니다.

 

하나라 다음으로 있었던 은나라는

기원전 1600년경에 있었던 나라로

실증적으로 확인된 가장 오래된 왕조로 상나라 라고도 합니다.

상나라와 은나라는 같은 나라인 거죠.

 

출토된 유물에 기반한 연구에 따르면

상나라의 통치영역은 그리 넓지 않았으며

당시의 중국 대륙은 지금과는 달리 대부분이 밀림이었다고 합니다.

 

우리가 아마존에서나 떠올릴법한 수많은 맹수들이 존재했죠.

호랑이, 악어, 코끼리 대형 파충류들이 즐비했습니다.

슬슬 청동기 시대 시작될 때 쯤이기 때문에

인간과 많은 짐승들이 함께 살아가던 시기였죠.

 

이후, 기원전 700년경에 이르러서 춘추전국시대가 되어서야

밀림지대들이 평야가 된 후, 한나라 이후에 개간되지만

아직 기원전 1600년경의 상나라 시절에는

아마존 같은 풍경을 떠올릴 수 있을 듯합니다.

 

이 시기의 문화적 특징은 고도로 발전된 청동기 기술인데요.

종교의식에 사용된 고대 문양인 도철문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상상의 동물인 도철에서 비롯된 문양으로

중국 신화에서 나오는 네 명의 흉악한 괴물 중 하나인데요.

이 괴물들은 사흉이라고도 하는데,

여기서 슬슬 잠도 올 법 하니, 한 번 사흉에 대해 살펴볼까요?

 

사흉은 각각 위대한 제왕의 피를 이어받았지만,

선천적인 흉폭함 때문에 서쪽에서 침입해오는

온갖 도깨비들을 막아주었다고 합니다.

 

먼저, ‘혼돈은 개의 모습으로 긴 털이 있으며

언제나 자기 꼬리를 물고 빙빙 돌기만 하여

이름 그대로 혼돈 상태를 나타내기도 합니다.

 

도올은 인간의 얼굴과 호랑이의 몸이 합쳐져

죽을 때까지 그저 싸우기만 하는 괴물이구요.

그리고, ‘궁기는 호랑이에 날개가 달린 괴물로

하늘을 날 수 있으나 성격이 안 좋아서,

싸움을 하고 있는 사람들을 찾아가 정직한 자를 먹고,

악인에게는 선물을 주었다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도철은 양의 몸통에 인간의 얼굴을 가진 자로

엄청난 식욕을 지니고 있으며

남의 소유물을 뺏는 특징을 지니고 있는 괴물입니다.

 

이렇게 도철문이 새겨진 조형물들에서는

토템신앙의 대상으로 쓰였다는 견해들이 있으며

상나라의 청동기 특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상나라를 멸망시킨 나라는 주나라였는데

왕의 부도덕적인 측면이 아닌 실제적인 멸망 이유로는

당시 상나라를 제외한 주변국에서

주나라의 편을 많이 들었을 거라 추측하는 견해가 많습니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갑골문자와 인신공양에 대한 이야기로 풀어보면 될 것 같네요.

갑골문자를 처음 발견한 사람은 청나라 말기의 금석학자 왕의영으로,

1899년 말라리아를 치료하기 위해

약재로 사들인 용골에 문자가 새겨져 있는 것을 발견한 것이

중국의 고대 문자임을 밝혀낸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 뒤 수많은 학자들이 갑골의 수집과

갑골문자의 연구에 참여하여 1928년부터

상나라의 옛 도읍지인 은허를 발견하여

전설로만 여겨지던 상 왕조의 존재가 입증되게 되죠.

 

상나라의 왕은 제사와 군사를 주관하는 사람으로서 강력한 왕권을 가지고 있었고

국가적으로 중요한 사항의 결정을 내려야 할 때 점을 쳤는데요.

그 점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기록한 것이 갑골문자입니다.

 

갑골문자에는 인신 공양에 대한 내용들도 기록되어 있는데요

인신 공양은 비단, 중국 고대 왕조때 뿐만 아니라

유럽 지중해의 페니키아인

아메리카 대륙의 잉카, 아즈텍, 마야

심지어는 아시아의 일본이나 한국의 고조선 시절에도 있었던 것으로

차차 시절이 지나면서, 법적으로 금해졌습니다.

 

상나라에서의 인신공양 제물로서는

동쪽의 족과 양과 함께 다니는 유목민들 ''족이 주요 타킷이 되었습니다.

주로 노예나 다른 민족의 포로를 죽여서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형식이었는데요.

다른 민족을 구하지 못하는 경우에는 자국민에게도 행했습니다.

 

방법은 십이지신에 나오는 동물 모양으로 변형하여

12가지 방법으로 제사를 진행했다고 하는데요.

갑골 문자에는 적국의 포로를 잡았는데, 그 포로가

고위직인데도 이런 방법을 써도 되나?'

하는 점을 치곤 했다고 합니다.

 

이러한 잔인한 방법은 한자에서도 나타나는데요

눈 목 ()자에서 노예의 눈을 멀게 만들면

그것이 바로 백성 민() 자가 되었다고 합니다.

 

백성 민()은 고대 사회에서는 하층민을 의미했고

춘추전국시대에 가서도 사람 인()은 지배층에 불과했죠.

 

이러한 인신공양은 농사가 잘 안되거나

자연이 무서워지는 천재지변이 일어난다 싶으면

하늘을 달래기 위해 행해졌다고 합니다.

 

이와 함께 다양한 잔혹한 일들 때문에

주변 민족들은 당시 주요 세력이었던 상나라 편이 아니라

주나라 편을 들면서, 점차 상나라의 멸망으로 이어지는 견해도 있습니다.

 

 

오늘은 황하 문명과 중국 역사에 대한 특징

그리고 고대 중국인 은나라이자 상나라에 대해서 정리해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