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공부 1

[지혜별숲] 감정과 역할의 생생한 체험을 위해 이것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깨달음과 신비/23회]

Buddhastudy 2023. 5. 3. 19:47

 

 

 

구독자님께서 별숲코칭을 통해 주신 질문인데요

코칭에서 다 다루지 못한 내용들 좀 더 자세하게 함께 나누어 보려고 해요.

 

질문 읽어보겠습니다.

영성에 대한 공부를 하다보면 깨어있음을 굉장히 중요하게 여깁니다.

지금 이 순간에 깨어있어라. 현존하라. 이런 말씀들을 많이 하십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우리가 생생한 체험을 하기 위해 이번 생으로 들어오기 전에

망각을 선택했다고도 합니다.

저는 이 두 가지 말이 모순으로 느껴집니다.

깨어있음을 통해 에고의 허상을 자각할수록 생생한 체험은 약해지는 것 아닌가요?”

 

진지하게 고민하고 탐구하고 계시는 구도자의 마음이 너무나 잘 느껴지는 질문인데요

두 개의 영상으로 나누어서 살펴보겠습니다.

 

오늘 영상에서는

우리가 생생한 체험을 하기 위해

이번 생으로 들어오기 전에 망각을 선택했다라는 내용에 대해서 다루어 보구요.

 

깨어있음을 통해 에고의 허상을 자각할수록 생생한 체험은 약해지는 것 아닌가요?”라는 질문은 다음 영상에서 다루어 보겠습니다.

 

 

그럼 먼저 망각을 선택했다라는 표현부터 살펴볼게요.

망각은 크게 두 종류로 나눌 수 있는데요.

-하나는 영적 존재에 대한 망각이구요.

-또 하나는 전생에 대한 망각이에요.

 

많은 분들이 한 번쯤 들어보신 적이 있으실 텐데요

망각은 신이 준 선물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여기에서 신이 준 선물이라는 표현이

선물을 준 주체로서의 신이 있고

그것을 받은 객체로서의 인간이 있는 것으로 느껴지죠.

 

조금만 깊게 생각을 해 보면

우리는 신이라는 존재가

인간 육체의 형상을 가진 존재는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신이라는 존재가 하얀 수염을 늘어뜨리고

의자에 앉아서 인간 세상을 내려다보며

인간에게 선물 상자를 건네주는 것은 아니라는 거죠.

 

, 근원, 실재, 참나, 존재이런 말들은요

하나이면서 전체인 근원 에너지를 지칭하는 동의어일 뿐입니다.

 

결국 신이 준 선물이라는 말은 신을 의인화해서 표현한 것이죠.

따라서 망각은 신이 준 선물이다라는 표현은

망각은 신의 섭리이다’ ‘망각은 근원의 섭리이다’ ‘망각은 존재의 섭리이다

이런 뜻인데요

이것을 신이 준 선물이라고 표현을 한 거죠.

 

이 섭리가 우리의 물질 삶 속에서 어떻게 작용하고 있는지 살펴보면요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무수히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무수히 많은 사건들을 경험하면서 살아왔습니다.

 

하지만 그 모든 사람들과 경험들을 다 기억하지는 못하죠.

만일 그 모든 것을 생생하게 기억한다면

삶은 너무나 무겁고 복잡해질 겁니다.

 

사고나 질병으로 갑작스럽게 사랑하는 아이를 잃은 부모가 있습니다.

이 부모가 아이의 죽음에 대한 슬픔과 애달픔을

평생토록 첫날처럼 생생하게 느끼며 살아야 한다면 아마 살 수 없을 겁니다.

또 끊임없이 두들겨 맞으며 학대받으며 자란 아이가 있습니다.

이 아이가 어른이 되어서도 어릴 때와 똑같은 고통을 평생토록 생생하게 기억하며 산다면 온전한 마음으로 살아가기 힘들겠죠.

 

하루, 이틀, 1, 2

시간이 지나면서 그 생생한 기억들이 조금씩 줄어들기 때문에 살 수 있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는 감당하기 힘들 만큼 큰 고통 앞에서

시간이 약이다’ ‘세월이 지나면 잊혀질거다이런 말들을 하구요.

망각은 신이 준 선물이다라는 말을 합니다.

 

망각을 선택했다라는 표현 역시 비슷한 맥락에서 이해하시면 되는데요

이 신의 섭리는 우리의 꿈에서도 작용을 하죠.

우리는 밤에 잠을 자면서 꿈을 꾸는데요.

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 무수히 많은 꿈을 꾸었지만

선명하게 기억나는 것은 몇 개 되지 않죠.

그조차도 시간이 흐를수록 희미해지고 잊혀집니다.

방금 꾼 꿈조차 기억나지 않을 때도 있구요

기억났더라도 하루 이틀 지나면 그다지 선명하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망각은 자연스런 존재의 섭리이기 때문이에요.

이 섭리는 당연히 영혼이 한 생에서 다음 생으로 넘어갈 때도 작용을 합니다.

 

우리는 현생에서의 일도 다 기억하지 못하고

어제 밤에 꾼 꿈조차 다 기억하지 못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죽음을 건너 한 생을 넘어가면서

모든 것을 기억할 수 있을까요?

 

물론 저쪽 세상에서 이쪽 세상으로 갓 넘어온 아기들은

전생의 일부를 기억하기도 해요.

하지만 이 기억은 아이가 커 가면서 점점 사라집니다.

 

물론 가끔은 어른이 되어서도

그 기억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또 영적으로 깨어나면서 잊어버리고 있었던 기억을 새롭게 되찾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모든 기억은 아니에요. 일부를 기억할 뿐이죠.

만약에 모든 전생의 모든 기억을 가지고 현생으로 들어온다면

우리는 미쳐버릴지도 모릅니다.

 

예를 들어볼게요.

전생에서 나를 짓밟고 때리고 괴롭히고 성폭행한 누군가를

이번 생에서 형제로 만났어요.

이때 그 기억을 고스란히 가진 상태로

형제와 한 가족으로 살아가는 것은 너무 어려운 일이겠죠.

또 지난 생에서 내 자식을 죽인 폭력범을

이번 생에서 내 아들 딸로 만나게 되었어요.

그리고 내가 이것을 아이가 태어나는 순간 기억하게 되었다면 어떻게 될까요?

 

한 번의 생에서 일어난 일조차 고통스러웠던 경험을

일생동안 생생하게 기억하며 살아가야 한다면

삶은 너무 고통스러워질 겁니다.

 

하물며 무수히 많은 생들을 모두 기억한다는 건

축복이 아니라 저주에요.

 

생각해 보세요.

인류 전체가 전생에 대한 모든 기억을 고스란히 가지고

이생으로 들어오는 모습을 한 번 상상해 보면요

아마도 지구는 서로서로 자신의 상처와 복수를 쏟아내는

지옥의 아수라장이 될지도 모릅니다.

 

망각이라는 자연의 섭리 때문에

우리는 안정된 상태에서 윤회를 반복할 수 있는데요.

이것을 우리는 망각은 신이 준 선물이다

혹은 망각을 선택했다와 같이 표현하는 거죠.

 

그리고 이 과정에서

에고가 만들어내는 드라마에 너무 몰입하여

영적인 존재로서의 자신을 자꾸 잊어버리게 되는 거예요.

 

다음으로 우리가 생각해 보아야 할 표현이 하나 더 있는데요

생생한 체험을 위해서라는 표현이죠.

생생한 체험이라는 표현 역시 두 가지 관점에서 생각을 해 보아야 해요.

-하나는 감정의 생생함이구요.

-또 하나는 역할의 생생함입니다.

 

무슨 뜻이냐 하면요

예를 들어 지난 생에서 나를 죽도록 괴롭힌 영혼이

이번 생에서 나의 아들로 태어났어요.

이번 생에서 내가 맡은 역할은

부모로서 이 아이에게 온전한 보살핌과 사랑을 주는 거예요.

그런데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전생의 악연을 생생하게 기억하게 되었어요.

그럼 이제 나는 이번 생에서

내가 맡은 부모의 역할에 제대로 집중하기 어려워지겠죠.

 

물론 전생을 기억한 자가 성숙한 영혼이라면

, 그래서 자꾸 이 아이와 부딪치고 불편한 감정이 올라왔구나.

아이와의 관계에서 나는 이번 생에 이 감정을 해결해야 되겠구나.

그래서 더 많은 사랑을 줄 수 있어야겠구나.’

이런 이해를 가지고

더 좋은 방향으로 관계를 개선해 나갈 수도 있습니다.

 

덕분에 둘 사이에 있는 감정의 얽힘을 더 쉽게 풀고

서로 더 온전한 사랑을 줄 수 있는 상태로 성장해나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전생을 기억한 자의 영혼이 성숙하지 못 한 상태라면

전생의 악연이 기억남과 동시에

상대가 더 미워지고, 싫어지고, 심지어는 죽이고 싶어질 수도 있어요.

 

이렇게 되면 현생의 삶은 둘 다에게 더 고통스러워지고

두 영혼 모두 자신의 신성을 표현하고자 하는 소망을 이루기는

점점 더 어려워지겠죠.

 

따라서 생생한 체험이란

감정의 생생함도 포함하지만

역할의 생생함이 먼저 선행되어야 합니다.

 

 

오늘 내용 다시 한번 정리해볼게요.

첫째, 망각은 자연스러운 존재의 섭리입니다.

둘째, 생생한 체험이란 역할의 생생함이 먼저 선행되어야 하는데요

이것은 망각을 통해 가능해집니다.

 

 

오늘 영상은 여기에서 마무리 하구요.

다음 영상에서

깨어있음을 통해 에고의 허상을 자각할수록

생생한 체험은 약해지는 것 아닌가요?” 라는 질문 함께 다루어 보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오늘도 평온하시고 고요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