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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광사TV_지산스님] 복수는 나의 것! 불교판 더 글로리! 복수는 우리가 할 일이 아닙니다

Buddhastudy 2024. 3. 6. 19:34

 

 

오늘은 복수에 대한 얘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사람은 부당한 대접을 받거나 억울한 일을 당하면

화가 점점 치밀어 올라서

상대에게 앙갚음을, 복수를 하고 싶은 마음이 생겨납니다.

 

그런데 복수라는 것은 사람이 할 일이 아닙니다.

경험이 많은 분들은 아시겠지만

욕을 하거나 나쁜 짓을 한 사람은

그 과보를 그대로 받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이 생이 아니면 내 생이라도 꼭 받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복수 같은 건

부처님과 관셈보살님께 맡기면 됩니다.

부처님과 관세보사님은 대자대비하시지만

불법을 호위하는 신장들은 일절 용서라는 것이 없습니다.

 

영적 신적 세계를 조금이라도 아는 분이라면

그 세계가 얼마나 무서운지 아실 겁니다.

신에서 움직이면 사람 목숨도 개미 목숨이 됩니다.

 

그래서 남들이 뒤에서 나를 욕을 하거나 나쁜 짓을 할 때

그 사람에게 복수 같은 건 우리가 직접 하면 안 됩니다.

 

부처님 말씀을 전해드리다 보면

항상 같은 말들이 반복해서 나옵니다.

새로운 이야기나 이상한 이야기는 전혀 없습니다.

 

진리는 오직 하나입니다.

진리는 하나이기 때문에

오늘 한 말과 내일 할 말이 틀릴 수가 없습니다.

또 누구에게는 맞고 누구에게는 안 맞을 수도 없습니다.

 

지금은 영혼과 정신의 시대가 왔기 때문에

새로운 영적인 세계에 대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그렇다고 완전히 새로운 진리가 탄생하거나 뭐 그런 뜻은 아닙니다.

새로운 영적인 시대에 대한 의식의 개혁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어떤 종교의 수행이 되었든

교리와 진리를 잘 이해하고 믿고 따르던 사람들은

반드시 빛을 보게 되는 시대가 왔습니다.

진리를 알면서도 천지 분간 못 하고 자기 마음대로 살던 사람들은

앞으로 더 이상 그렇게 살지는 못한다는 말입니다.

 

예전부터 그렇게 자기 마음대로 살아오던 사람들은

요즘 같은 이런 지옥이 없을 것입니다.

이런 영적인 시대에 의식 개혁이 없는 한

계속 그 산지옥 같은 곳에서 살아가야 합니다.

 

그래서 굳이 내 힘으로 용써가면서 복수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영적인 세계에 옛 서양에서 일어났던

르네상스와 같은 혁명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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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구체적으로 어떤 혁명이 일어나는지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자면

인간의 [영혼]

태어남도 죽음도 없는 [불멸]이라는 것이 점점 밝혀지고 있습니다.

여러 가지 과학적 증명으로 점점 더 명확해지고 있는 겁니다.

 

지금까지 유행하던 유물론적 사상이 점점 바뀐다는 것입니다.

예전에는 과학이 발달하면서

종교나 부처님이나 신적인 존재를 믿지 않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반면 어느 시대이건 그런 존재를 믿어오던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전자의 경우에는

과학적으로 증명이 안 된다면 못 믿겠다는 말이겠죠.

지금까지의 과학은 그것을 증명해 내지 못했습니다.

 

어머니가 자식을 생각하는 마음이나

어떤 사람이 누군가를 사랑하는 마음이나

과학적으로 증명할 방법이 없습니다.

그런데 부모자식간의 사랑이나 연인 간의 사랑은

증명할 수는 없지만 분명히 존재는 하죠.

그런 감정들은 누구라도 느낄 수 있을 만큼 분명히 존재합니다.

그걸 측정하는 기계가 없을 뿐이죠.

 

그런데 기계로 측정할 수 없다고

그것이 없는 것은 아니죠.

유일한 방법이 최면이나 과거생을 기억하는 사람을 발견해서

인터뷰를 따는 정도입니다.

 

불교계에서 열심히 증명해 보이려고 노력하는 것 중에 하나가

생활 속에 각계 각층 여러 곳에서 [마음을 닦는 수행]을 하는 것입니다.

쉽게 말하면 [영혼의 정화]를 말합니다.

 

이 불법 수행과 마음공부를 하다 보면

꼭 만나게 되는 것이 영적인 세계입니다.

산 사람이든 죽은 사람이든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존재가 영혼입니다.

 

만약에 사람이 죽어서 그걸로 끝이라면

영혼 같은 건 존재하지도 않겠죠.

그런데 영혼은 불생불멸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영혼의 존재에 대해서 인정하지도 부정하지도 않으셨지만

산 사람 죽은 사람 가리지 않고

중생을 구제하시겠다는 이 마음 하나는 같았습니다.

 

구천을 떠도는 영혼들은

죽을 때 잘못되었거나

살아생전에 지은 업장 때문에 잠시 옆길로 샌 것입니다.

원래는 극락을 갈지, 육도 윤회를 다시 할지 결정이 되어야 되는데

어디에서든 영혼도 그 세계에서 공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떠도는 영혼들은

원래 공부하러 학교를 가야 하는데

잠시 뒷골목에 숨어서 담배 한 대 피우고 있는

비행 청소년들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영혼의 존재를 알았다면

영혼은 왜 몇 번이고 다시 태어나면서

윤회를 하는지 궁금해지실 겁니다.

 

다시 윤회를 하는 이유는

아직 내가 풀어야 할 숙제가 남아 있고

또 그것을 완성시키기 위해서 다시 태어난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영혼이 성장해 가는 것입니다.

 

살아가면서 여러 어려운 일들이 들이닥치면

그 순간만큼은 앞이 캄캄하지만

내 영혼의 성장을 위한 숙제라고 생각하고 차근차근 풀어가다 보면

해결 못 할 일이 없습니다.

 

영혼의 성장은

부처님의 인과법으로 성장하게 되어 있습니다.

전생에 나쁜 일을 저질렀으면

나쁜 일을 당하면서 그 숙제를 풀어야 됩니다.

 

주변에 저 사람, 사람도 착하고 정말 좋은 분인데

일이 잘 안 풀리거나 좀 막혀 있거나

뭐 그런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성장이라고 하면

마음자리와 마음그릇이 커지는 것으로 생각하시겠지만

그렇지가 않습니다.

겨우 내 원래 있던 본성의 자리로 돌아온 것뿐입니다.

쉽게 말해서

그 악업으로 인한 숙제를 해결하고

이제 겨우 인간 구실을 한다고 보시면 됩니다.

 

인간 구실이라고 한다면

도덕적으로 문제가 없는 참된 사람이 아니라

자비로운 마음이 커지는 것입니다.

 

상대의 슬픔은 내 슬픔처럼 느끼고

더 큰 사랑으로 감싸는 것입니다.

그래서 대자대비 관세보살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비로운 마음도

처음에는 내 자신을 사랑하는 것부터 시작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 마음이 점점 성장하게 되면

내 자신을 사랑하다가

점점 타인도 소중하게 생각할 줄 아는 마음이 생겨납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또 사람이라면 누구나

나의 근본과 본성인 불성을 가지고 있고

분명히 그런 마음이 생겨나게 되어 있습니다.

 

사람이 꽉 찬 지하철에서 발 밟혀보신 분들은 아실 겁니다.

밟은 사람은 안 아파도 밟힌 사람은 발등이 아프죠.

밟은 사람도 자신이 밟혀보면 얼마나 아프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것을 알게 되면 서로 상처 주는 짓은 서로 안 하게 됩니다.

 

뒤에서 남 험담하는 사람도 그렇습니다.

그 자리에 없는 사람을 욕하면

그렇게 재미있을 수가 없습니다.

내가 욕을 하고 험담할 때는

너무 재밌고 즐겁다가도

거꾸로 그런 일을 본인이 당해보면

얼마나 마음의 상처를 받는지

그런 것들을 점점 알아가고 깨우치게 됩니다.

 

49재나 천도재를 지내보면

돌아가신 기간 동안 영가들은

그 지옥을 관장하는 신들에게 여러 가지 평가나 시험을 받게 됩니다.

쉽게 말하면 한 평생 살아온 결과를

49일 동안 평가를 받게 되는 건데,

옥황상제나 전륜대왕같이

지옥을 관장하는 신들이 검사라고 본다면

이 염불해 주는 스님들은 변호사라고 보시면 됩니다.

 

거기서 한 평생 동안의 성적과 육도 윤회가 결정이 되는데

나쁜 업을 지은 사람은

반드시 그 업장을 본인이 풀어야 되기 때문에

과보를 받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내가 아무리 억울한 일을 당했더라도

굳이 스스로 그 사람에게 복수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얼마 전 방영한 학교 폭력, 복수하는 드라마

저도 봤습니다.

우리나라 정서에는 딱 맞는 그 복수법이어서

정말 통쾌하기도 하고

한이 서려 있어서 강한 공감대를 느끼게 해주는 드라마였습니다.

감수성이 풍부한 우리 국민성에도 잘 들어맞았던 것 같습니다.

작가가 그런 걸 참 잘 풀어냈죠.

 

근데 불교적인 입장에서 본다면

그런 복수를 하는 자체가 어리석은 짓입니다.

물론 드라마니까 따라 하시는 분들은 안 계시겠죠.

그러니까 훨씬 예전에 전생이나 전전생에

반대의 상황이었을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럼 도대체 왜 전생의 기억을 하지 못하느냐?

물어보신다면

만약에 지금 눈앞에 그 상대가

전생에 누구였는지 만약에 다 알고 기억을 한다면

지금 이 생에 우리가 정상적으로 살아갈 수가 있을까요?

 

지금 내 엄마가 전생에 내 애인일 수도 있습니다.

지금 내 아버지가 전생에 키우던 강아지일 수도 있습니다.

지금 내 남편이 전생의 원수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전생의 기억이 없다는 것은

정말 다행스럽고 정말 큰 행운입니다.

이렇게 시스템을 잘 만들어 놓을 수가 없습니다.

다 우리의 영혼의 성장과 마음공부를 위해서이죠.

 

스스로 수행하고 기도해서

그 숙제를 풀고

또 그 인연법을 스스로 알아내는 것입니다.

 

복수는 나의 것이라고 할 때 나는

내가 아닙니다.

거기서 나는 어떤 신적인 존재를 얘기합니다.

그 신들이 풀어야 될 숙제라는 말인 것이죠.

마음공부하는 우리가 할 일은 아닌 것입니다.

 

내가 스스로 복수를 하면

그 과보는 또 내가 그대로 또 받게 됩니다.

정말 쓸데없는 에너지 소비고 또 악순환인 것이죠.

 

그러니까 우리가 스스로 인과법을 자꾸 나쁜 쪽으로 굴러가다 보면

악순환과 악연 속에서 사는 자체가 지옥이 됩니다.

그 드라마 주인공처럼요.

 

이 감정적인 마음을 내려놓고

부처님 말씀대로 순리에 따르면

반드시 일은 바로 잡히게 되어 있습니다.

절대 피해 갈 수도 없고, 누가 대신해 줄 수도 없습니다.

 

부처님께서는 항상 자비광명을 비춰주시고

항상 그 법을 내려주십니다.

받고 안 받고는 우리 마음인 것이죠.

그 자체가 바로 자비와 지혜입니다.

 

그것을 잘 느끼고 잘 받아서

순리에 맞게 살아가야 됩니다.

조금 전 말씀드린 의식의 혁명이라는 것은

우리 모두가 반신반이하는 애매한 교리가 아니라

사람은 영혼의 성장을 위해서

윤회를 반복한다는 그 사실을 믿는 것입니다.

또 그것을 위해서 최고의 마음 수행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렇게 받기 힘든 인간 몸을 받았고

또 우주생명의 진리를 배울 수 있는 부처님 법을 만나서

정말 다행이라고 또 행복이라고 생각합니다.

 

만약 부처님 법을 못 만났다면

정말 살벌하고 각박한 세상이 되었겠죠.

특히 국민성이 이렇게 감정적인 우리나라는

정말 생각만 해도 끔찍합니다.

 

 

그래서 오늘도 드리고 싶은 말씀은 정말 많은데

두서없이 이렇게 말씀을 드렸습니다.

제가 하는 법문은 좀 알아듣기 힘드시면

몇 번 반복해서 들어보시면

제가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지 잘 아실 수가 있습니다.

 

오늘도 이렇게 시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에는 또 더 좋은 법문으로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성불하십시오.